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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다큐 사랑’ 유해진 PD ‘해나의 기적’과 ‘사랑’을 말하다

“슬픔을 이겨내고 기적을 만드는 힘은 사랑입니다”

글·김희선 자유기고가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13.06.17 17:09:00

기적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었다. ‘해나의 기적’이 건넨 깨달음은 그랬다.
2006년 전파를 타기 시작해 올해로 여덟 번째를 맞이한 MBC ‘휴먼다큐 사랑’. 선천성 기도 무형성증을 안고 태어난 해나와 가족의 이야기는 긴 여운을 남겼다.
‘휴먼다큐 사랑’ 유해진 PD ‘해나의 기적’과 ‘사랑’을 말하다


서울대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인형처럼 예쁘장한 아이가 부모와 장난치며 즐거워하고 있다. 캐나다인 아빠 대럴 워렌(38)과 한국인 엄마 이영미(37) 씨 사이에서 태어난 해나(3)다. 언뜻 보면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지만 해나는 ‘선천성 기도 무형성증’ 환자다. 그 탓에 소리 내 말할 수도 없고 입으로 먹을 수도 없다. 입에 꽂은 튜브가 유일한 호흡의 통로다. 전문의에 따르면, 기도 무형성증은 생존 가능성이 매우 희박한 병이라고 한다. 대개는 출생 직후에 사망하며 튜브를 삽입해도 며칠을 못 버틴다고. 그런데 해나는 식도 끝이 폐와 연결돼 있어 호흡이 가능했다. 튜브만 제대로 연결되면 호흡도 잘 유지했다. 하지만 튜브가 입에서 빠지면 전혀 숨을 쉴 수가 없어 위험해진다. 실제로 해나는 이런 위험한 순간을 숱하게 겪어온 터였다. 실낱같은 숨으로 하루하루를 이어가는 세 살 해나. 아이에게는 인공 기도가 필요했다.
2010년 10월, 재미교포 린제이 손(미국 일리노이주립대병원 간호사)이 서울대병원에 연수 차 방문하면서 해나의 기적도 시작됐다. 우연히 해나를 만난 그가 미국으로 돌아가 마크 홀트만 박사(시카고 성프란시스병원 소아외과)에게 도움을 청했고, 마크 박사는 파울로 마키아리니 박사(스웨덴 캐롤린스카병원 외과의)에게 무작정 이메일을 보내 수술을 부탁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세계적인 줄기세포 인공기도 권위자인 파울로 마키아리니 박사가 해나의 수술을 집도했다. 전 세계에서 모인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이 꺼져가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 하나가 된 것이다. 해나의 기적은 그렇게 탄생했다.

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아이, 해나
2006년부터 해마다 5월이면 방송되는 MBC ‘휴먼다큐 사랑’(이하 사랑)이 올해도 어김없이 안방극장을 찾아왔다. 지난 5월 6, 13일 총 2부에 걸쳐 방영된 1편 ‘해나의 기적’은 오랜 투병기와 수술에 이르기까지 제목 그대로 해나의 기적 같은 이야기를 그려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안타까움으로 시작된 눈물은 이내 감동으로 번졌고, 수많은 사람들의 응원과 지지가 쏟아지면서 해나는 어느새 ‘국민 딸’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여기, 해나의 놀라운 기적을 세상에 알린 이가 있다. 바로 ‘사랑’의 기획자이자 ‘해나의 기적’의 연출을 맡은 유해진(45) PD다.
“지난해 우연히 해나의 소식을 접했습니다. 인터넷상에서 해나의 수술과 관련한 모금운동이 진행됐거든요. 생존 확률이 높지 않음에도 기적처럼 살고 있는 해나의 모습이며 수술을 위한 과정들 모두가 너무나 놀라웠어요. 그래서 해나를 촬영하고자 부모님을 만났는데, 흔쾌히 승낙하셨죠. 국내외 많은 사람들에게 받은 은혜와 사랑에 응답하고 싶다는 게 출연의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걱정이 앞섰다. 당시 해나 가족은 2년 가까이 미국 식품의약국(FDA) 수술 승인을 기다리는 상황. 만약 (방송을 내보내는) 5월 전까지 수술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그래서 스토리가 성립되지 않으면 방송이 가능할지가 의문이었다. 그는 가슴에 물음표 하나를 꾹 누른 채로 촬영을 시작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후보 출연자도 마련해둔 터였다. 하지만 촬영을 시작한 지 불과 며칠도 안 돼 걱정은 기우로 흘러갔다.
“해나는 알면 알수록 사랑스럽고 특별한 아이였어요. 눈빛이며 행동이 여느 아이들과 확실히 달랐죠. 뭐랄까, 삶에 대한 강한 의지가 느껴졌다고 할까요? 그리고 해나가 지닌 매력과 아이를 둘러싸고 있는 사랑이 놀라움 그 자체였어요. 설령 수술 장면을 담지 못한다고 해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촬영을 시작한 지 2개월 만에 기적이 일어났어요. 모두가 그토록 바랐던 FDA 수술 승인을 받은 겁니다.”
‘사랑’은 6개월에서 길게는 일년 간 촬영되는 장기 휴먼다큐멘터리다. 스태프는 그 기간 동안 출연자와 한 가족처럼 지내며 밀착 촬영을 한다. 한데 ‘해나의 기적’은 조금 이례적이었다. 해나가 지내는 곳이 생후 5개월 이내의 갓난아기들이 입원한 신생아 중환자실인 까닭이었다. 그래서 해나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이 부담가지 않는 선에서 촬영을 최소화했고, 대신 부모의 촬영 분량을 늘렸다.

‘휴먼다큐 사랑’ 유해진 PD ‘해나의 기적’과 ‘사랑’을 말하다

1 기도가 없는 해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병원 밖을 나선 적이 없다. 2 인공 기도 이식 수술을 받은 후 회복 중인 해나. 왼쪽은 언니 대나. 3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감염 위험이 있어 늘 조심스럽다.



“작년 12월 24일부터 5개월간 촬영했어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는데 힘든 줄도 모르고 찍었죠. 해나를 보노라면 제가 다 행복했거든요(웃음). 다만 해나의 아빠인 대럴 씨의 모습에 가슴 아플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어요. 특히 해나가 수술방에 들어갈 때 왈칵 눈물을 쏟는데, 저도 아이 키우는 아빠로서 너무나 안타까웠어요. 대럴 씨는 외국인임에도 한국적인 정서를 가진 분이에요. 자식 사랑이 깊고 가족 사랑도 남달랐죠. 한 번은 캐나다에 사는 부모님과 인터넷 화상통화를 하는데, 장장 1시간을 대화하더군요. 보통 남자들은 통화를 길게 안 하거든요. 그 장면을 담느라 촬영감독이 꽤나 고생했던 기억이 납니다.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땀을 비 오듯 쏟더니 촬영이 끝나자마자 어깨에 파스를 붙이더라고요(웃음).”
캐나다 뉴펀들랜드에서 나고 자란 대럴 씨는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2002년 한국에 와 영어강사로 일했다. 영미 씨를 만나 결혼하면서 한국에 정착한 그는 해나를 낳아 키우는 동안 단 한 번도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 여행 가방을 꾸렸다가 풀기를 수차례 반복해왔다고. 이유는 단 하나, 해나의 위태위태한 삶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대럴 씨는 해나의 계속되는 수술과 간병으로 직장생활을 오래 지속할 수 없었고, 곧 취직 자체가 어려워졌다.
“해나네 가족은 시청자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생활이 어려운 상황이에요. 국내외 모금운동을 통해 큰돈이 모였지만 수술비와 입원비, 그리고 항공료로 지출되고 있거든요. 대럴 씨와 영미 씨를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파요. 모쪼록 시청자들의 관심과 사랑이 꾸준히 이어져 하루 빨리 경제적인 안정을 되찾았으면 합니다.”



12시간 걸린 인공 기도 수술
당초 ‘해나의 기적’은 8주 프로젝트였다. 해나가 성프란시스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4주간 입원해 지내는 모습, 퇴원 후 부모와 숙소에서 회복기를 보내며 달라지는 모습을 4주간 관찰한 뒤 귀국하는 것까지. 바로 이것이 유 PD가 구상한 방송의 흐름이었다. 하지만 4월 9일, 세계 최초로 기도 전체를 줄기세포로 배양해, 이를 이식하는 수술을 받은 해나는 한 달이 넘도록 퇴원을 하지 못하고 있다.
“영미 씨와 매일 SNS를 통해 대화하는데요, 현재 해나는 인공 기도가 잘 안착된 상태이며 나날이 좋아지고 있다고 해요. 다만 여러 가지 합병증과 감염의 위험 때문에 퇴원 날짜가 확정되지 않았답니다. 12시간의 대수술을 받은 터라 퇴원이 쉽지 않으리라 예상했지만, 생각보다 오래 걸리네요. 그래도 인공 기도를 통해 호흡한다는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카고로 건너가 파울로 마키아리니 박사로부터 줄기세포를 이용한 인공기도 이식수술을 받은 해나. 그 덕에 튜브 없이 호흡이 가능해졌고 막대사탕을 조심스레 맛보는 모습으로 ‘해나의 기적’은 막을 내렸다. 이후 시청자 게시판에는 해나의 근황을 궁금해하는 수많은 글이 게재됐다. 3부를 기다리고 또한 기대하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았다.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던 해나가 사탕을 먹다니…. 많은 시청자들이 경이로움을 느낀 것 같아요.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죠. 시간이 지나면서 이보다 놀라운 모습들이 또 얼마나 많겠습니까. 어느 날 갑자기 ‘엄마’ 하고 소리 내 부를지도 모를 일이고요(웃음). 그래서 ‘해나의 기적 3부’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해나는 물론, 언니 대나와 가족들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거든요. 이는 방송을 책임지는 PD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촬영과 방송 날짜는 확답드릴 수가 없네요. 해나의 수술 경과에 따라 진행될 계획이라 올해 방송될 수도, 내년으로 넘어갈 수도 있을 듯합니다.”

‘사랑’은 내 인생의 빚이자 빛이다
“2006년 5월 3일, 말기 암환자인 영란 씨와 그의 남편 창원 씨의 안타까운 사랑을 담은 ‘너는 내 운명’으로 ‘사랑’을 시작했어요. 이후 ‘안녕, 아빠’, ‘풀빵엄마’, ‘엄지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 등 병마와 싸우거나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소개했지요. 저는 17년간 PD로 지내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은 프로그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랑’을 했던 기간은 내 인생이 프로그램을 껴안았던 절절한 시간이었어요. 마치 내 몸의 세포 하나하나까지 프로그램을 향한 느낌이었죠.”

‘휴먼다큐 사랑’ 유해진 PD ‘해나의 기적’과 ‘사랑’을 말하다

1 시청자들이 ‘사랑’의 주인공들을 오래도록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유해진 PD. 2 수술 전 튜브를 통해 숨을 쉬었던 해나. 튜브는 그의 목숨 줄이었다. 3 헌신적인 아버지 대럴, 언니 대나와 함께.



‘사랑’은 제작진의 눈물로 만들어져 시청자들의 눈물로 기억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해진 PD는 출연자 섭외를 마치면 보통 반년에서 1년을 촬영하는데, 그 기간 동안 제작진과 출연자는 가까운 사이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촬영 중 마주하는 주인공들의 고통과 죽음이 마치 내 일처럼 느껴진다는 유해진 PD다.
“선배들이 항상 그랬어요. PD는 출연자와 일정한 감정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그런데 막상 절박한 상황에 다다르면 마음보다 행동이 앞서더군요. ‘너는 내 운명’을 촬영할 당시에도 갑자기 영란 씨가 각혈하는데, 카메라에 제 모습이 보이건 말건 세숫대야부터 찾고 간호사를 부르게 되더라고요. 어느새 출연자와 PD의 경계가 모호해져 가족이 되고 친구가 된 겁니다.”
진심은 통한다고 했던가. 촬영 내내 도타운 우정을 쌓았던 출연자들과의 인연은 방송 이후에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그중 ‘너는 내 운명’의 동갑내기 창원 씨와는 절친한 친구가 됐고, ‘엄지공주, 엄마가 되고 싶어요’의 주인공 선아 씨는 어렵게 출산한 아들이 성장한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종종 유 PD에게 보내온단다. “얼마 전에도 선아 씨가 아들 사진을 보내왔는데 한번 보실래요?”라며 유 PD가 휴대전화를 꺼냈다. 엄마, 아빠와 함께 소풍을 간 듯 꽃을 배경으로 찍은 모습부터 어린이집에서 즐겁게 놀고 있는 아이의 사진이 줄줄이 올라온다. 내친 김에 “어제 받은 것”이라며 해나의 사진까지 보여주는 얼굴에 ‘아빠 미소’가 가득하다.
“‘사랑’을 제작하면서 가족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곤 해요. 그런데 정작 저는 가족에게 소원할 때가 많아요. 이번 어버이날에도 ‘사랑’을 편집하느라 아버지를 찾아뵙지 못했죠. 부모님과 아내, 하나뿐인 아들에게 늘 미안해요. 참 아이러니하죠? 가족애를 고취하자며 ‘사랑’을 만들었는데 정작 담당 PD들은 집에 없거든요. 그래서 저희끼리 ‘우리는 가족애를 배반하는 사람들이다’라는 우스갯말을 하곤 합니다(웃음). 잘해야죠. 누구보다 가족에게 잘하고 싶어요. 일단 방송부터 잘 마치고요(웃음).”
그는 2006년부터 ‘사랑’을 연출한 덕에 주변인들로부터 ‘사랑 PD’라는 수식어를 얻었다. 그리고 ‘너는 내 운명’, ‘풀빵엄마’로 각각 2007년 반프 월드 TV페스티벌 심사위원 특별상과 2010년과 국제 에미상 다큐멘터리 부문상도 수상했다. 그는 말한다. “나는 상복보다 인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또 자신이 인복을 통해 만났던 우리 이웃들, 그들이 보여준 뜨거운 사랑의 온기를 사람들이 오래도록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TV 방송의 가장 큰 아쉬움은 찰나적이라는 사실이에요. 반면 책이라는 매체는 오랜 시간을 두고 사람들에게 회자되지요. 그래서 찰나가 영원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난해 ‘살아줘서 고마워요’란 책을 발간했어요. 주인공들의 방송 후 모습도 전해드릴 겸해서요. 저의 바람대로 많은 시청자들이 ‘사랑’의 주인공을 잊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 곁에 아름다운 삶이 있었음을 오래오래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결국은 ‘사랑’이었다. 우리가 슬픔을 이겨내고 기적을 이뤄내는 힘은 다름 아닌 사랑이었던 거다. 사랑이 있기에 사람도 있고 삶도 있는 것. 유해진 PD가 진심으로 빚어낸 ‘사랑’은 그래서 특별하다. 그는 오늘도 뜨겁게 살아줘서 고마운 사람들에게 사랑으로써 보답하려 한다. 유해진 PD에게 사랑은 인생의 빚이자 빛이기 때문이다.
“사랑이요? 제 인생의 빚이자 빛이에요. 저는 ‘사랑’을 하면서 벅찬 순간들과 커다란 영광을 한꺼번에 만났어요. 프로그램을 통해 누군가의 삶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는 모습도 보았죠. 그래서 ‘사랑’이 꾸준히 방송되길 바랍니다. 저 역시 ‘사랑’하고 오래도록 사랑할 것입니다.”

여성동아 2013년 6월 5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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