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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오승은의 인생 노트

수능 사상 첫 만점자 14년 뒤 뼈 성장의 비밀 풀다

글·구희언 기자 | 사진·오승은 제공

2013. 05. 15

199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 사상 첫 만점자로 화제가 된 오승은 씨. 서울대 진학 후 MIT와 하버드대에서 공부에 매진하던 그가 14년 만에 기어이 일을 냈다.

오승은의 인생 노트


1998년 말, 사람들은 한 여고생의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199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최초로 4백 점 만점을 받은 주인공이 나왔던 것. 수능뿐 아니라 모든 대입시험을 통틀어 사상 첫 만점자였다. 주인공은 한성과학고에 재학 중이던 오승은(33) 씨. 화제 속에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한 그는 수능시험을 준비하며 만든 과목별 정리노트를 이듬해 ‘오승은의 수능노트’라는 7권의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는 “(책 판매) 수입은 유학 자금으로 적립하겠다”고 당차게 밝혔다. 실제로 그는 서울대를 졸업한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하버드 의대 시스템생물학과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연구에 매진했다. 그의 이름을 다시 언론에서 들은 건 얼마 전인 3월 21일. 오씨가 세계 최고 과학 저널인 ‘네이처’에 제1저자로 논문을 게재한 사실이 알려진 날이었다.

수능 만점 여고생이 뼈 성장 비밀 풀기까지
오씨는 “새로운 현상을 발견해 인류 지식에 작게나마 무언가를 이바지한 것과 이 발견의 중요성이 권위 있는 저널을 통해 인정받은 것이 기쁘다”고 했다.
그가 발표한 ‘연골 세포의 분열, 성장과 뼈 길이의 관계’ 논문은 동물의 성장판 속 연골 세포가 어떻게 뼈의 길이를 결정짓는지에 대한 내용을 다뤘다. 성장판이 ‘긴 뼈(장골)’의 끝에 있고, 성장판 내 연골 세포의 분열과 성장이 뼈 길이와 신장을 결정한다는 건 이미 알려진 사실. 그러나 왜 연골 세포가 다른 세포와 달리 급속도로 성장하고, 동물의 키를 결정짓는지 알려진 바가 없었다.
그는 연구를 통해 성장판 내 연골세포가 물을 흡수하면 부피가 팽창하면서 성장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왜소증이나 거인증 등 성장판 관련 질환의 치료에 핵심 원리를 제공할 것으로 평가받는 연구다. 보통의 동물 세포가 성장하려면 세포질의 단백질 함량과 물의 양이 1:1로 증가해야 하지만, 연골세포는 세포 분화 후 일정 단계를 넘어서면 부피가 몇 배로 늘어난다. 그는 “네이처 제1저자로 중요한 연구를 발표하는 한국인 과학자들이 많은데, 과분한 관심을 받는 것 같아서 송구스럽다”며 겸손해했다.
“MIT에서 의생명공학을 공부했고, 스스로는 생물물리학자라는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어요. 하버드 의대 시스템생물학과에서의 연구는 박사 학위 때 연구한 광학적 측정 기법을 다양한 생명 현상에 적용하는 일이에요. 외부에서 보기에는 학과명이 많이 바뀐 것 같지만, 박사 과정 공부와 지금 박사후연구원으로서의 연구와는 연속성이 강하죠. 박사 과정을 마칠 즈음 지금의 박사후연구 지도교수님인 마크 커쉬너 교수님을 알게 됐는데,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연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연구팀에 합류했어요. 이곳 시스템생물학과의 분위기를 좋아해요. 트렌드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학풍도 좋고, 물리·수학·화학·컴퓨터공학의 특징과 장점을 살리면서 생물학 고유의 통찰력을 찾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어요. 세포나 생리학적 현상을 물리량으로 측정하고 정량적으로 설명하는 일이 매력적이라 그런 쪽 연구에 관심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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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은 하버드대 박사후연구원의 지도교수 마크 커쉬너(왼쪽). 오씨가 학문과 직업적 이상형으로 꼽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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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은 씨의 멘토인 조영미 씨와 최대성 목사 부부. 최 목사는 신학 공부를 하기 전 미생물학을 전공하고 국방과학연구소에서 13년간 근무했다. 가운데는 부부의 딸 최산성 씨.





그는 “물리학과 생물학 안에서도 취향이 분명한 편”이라고 했다.
“공부하면서는 통계물리학, 열물리학, 복잡계물리학이 재밌었어요. 생물학을 공부할 때는 가끔 분자나 세포의 이름만 나오고 양이 얼마인지, 위치가 어디인지, 크기가 어떤지 설명이 없으면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서 교과서를 읽으며 가장 어려운 부분이 그거였죠. 반대로 정량적인 관점으로 생물학을 연구하는 건 재밌더라고요.”
장기간 연구하는 과정에서 슬럼프는 없었을까.
“과학 연구도 어렵고 박사 학위 받는 것도 어려웠어요. 답이 있는 문제를 공부해서 아는 것과 달리 아무도 답을 모르는 문제를 연구할 뿐더러, 스스로 좋은 문제를 제시해야 하는 거잖아요. 많은 사람이 연구가 어려울 때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이걸 왜 하는 걸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그럴 땐 주위의 격려가 가장 중요했던 것 같아요. 타국에서 오랫동안 공부하는 데도 늘 응원해주시는 가족과 특히 미국까지 비행기 타고 오셔서 몇주씩 함께 지내주신 어머니, 믿고 기다려주시는 지도교수님, 제 능력을 믿어주는 동료와 친구들, 기도해주는 목사님과 교회 성도들이 있었기에 극복할 수 있었죠.”
그의 멘토는 그레이스 미션센터 디렉터인 최대성 목사 부부다. 그는 “젊은 시절 커리어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멘토링을 두 분께 받았다”며 “목사님이 과학자 출신이고 사모님이 유학생 출신이라 유학생의 처지와 고민을 정말 잘 알고 계신다”고 했다.
“이 모임을 통해서 배출된 교수도 많고, 여기서 나온 논문들의 수준도 상당해요. 지금도 이분들과 전화 통화로 연구와 커리어에 관한 중요한 일을 상의하는데 매번 조언을 아끼지 않고 기도해주세요. 저도 후배에게 이만큼 좋은 멘토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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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그레이스 미션센터에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 첫 번째 사진은 왼쪽에서 두 번째, 두 번째 사진은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오씨다.



과학자로서 한 단계 더 성장하고파
그는 학창 시절 책만 파고드는 공부벌레 스타일은 아니었다. 교지 편집부 활동과 음악 감상, 독서 등 다양한 취미를 즐겼던 그는 미국에서도 다양한 활동을 했다고.
“13년째 이어지는 MIT의 한인 크리스천 모임에서 성경 공부를 하고 있어요. 유학 생활과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공유하는 자리인데, MIT에 다니는 동안 매주 참여했어요. 하버드로 옮긴 후에도 보스턴의 그레이스 미션센터에서 활동하고 있죠. 자발적으로 한글날 행사를 만들어 학생회관에서 한글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에 대해 홍보한 적도 있고, 짧은 기간이나마 학생들이 자생적으로 운영하는 무료 한국어 학당 보조교사를 자원해 맡은 적도 있어요. MIT 한인 모임은 규모도 크고 활동도 활발해요. 제가 참여한 건 극히 일부분이죠. 체력 관리를 위해 여러 가지 운동을 시도해봤는데 웨이트 트레이닝이 잘 맞아서 꾸준히 하고 있어요. 어릴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있어서 유학 오기 전에는 미술 학원을 취미로 한 달 정도 다녔고 미국에 와서 아크릴화를 그리곤 했어요. 박사 학위 마칠 때쯤부터 너무 바빠져서 몇 년간 손을 놓고 있었는데 다시 시작하고 싶어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이 궁금했다. 그는 “스트레스의 종류와 레벨마다 푸는 방법이 다르다”고 했다.
“운동으로 풀리는 스트레스가 있고 친구들 만나서 수다를 떨거나 맛있는 요리를 해먹어야 풀리는 스트레스가 있잖아요. 최근엔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이번 봄에는 하루에 5km씩 달리는 게 목표예요. 야외에서 달리면 기분전환이 되더라고요. 새로운 취미도 생겼는데, 집 앞에 있는 새들의 소리를 듣거나 생김새를 보고 이름을 알아맞히는 거예요. 집 앞에 개천이 있어서 여러 종류의 새가 살거든요.”
삶에서 가장 중시하는 가치를 묻자 그는 “질문이 너무 크다”며 고민하다 이렇게 답했다.
“가치 있는 것은 많고 그 종류도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생각나는 대로 꼽아보아도 믿음, 사랑, 소망, 감사 등등…. 과학도 가치 있지만 예술이나 경제 활동, 체육 활동도 가치 있고요. ‘가장’ 중시하는 걸 꼽으라면 제가 신앙인이기에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게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다음 도전 목표는 과학자로서의 ‘성장’.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연구 주제를 개발할 생각이다. 요즘엔 새로운 연구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한다.
“아직 과학자로서 시작하는 단계이고 앞으로 배울 것도 많은데, 세계적인 학문의 중심지 보스턴에 있는 동안 한국 과학계에 기여할 만한 것을 많이 축적하고 싶어요. 과학자로서 보람 있고 재미있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유익한 일을 하는 모습을 통해서 청소년에게 꿈을 가지도록 격려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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