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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With specialist | 곽정은의 베드 토크

로맨틱한 섹스를 원해? 영화처럼 연기하라

일러스트·이영

2013. 05. 06

영화 속 주인공들의 섹스는 언제나 뜨겁고 격정적이건만 왜 우리의 섹스는 그렇지 않을까. 일상과 섹스가 만났을 때 어째서 로맨스가 증발하는 것일까.

로맨틱한 섹스를 원해? 영화처럼 연기하라


로맨틱하고 짜릿하며,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장면으로 에로 영화의 고전이 된 작품이 있다. 바로 ‘나인하프 위크’. 냉장고 앞에서의 섹스, 전희할 때 얼음을 활용하는 등 온통 따라 하고 싶은 장면으로 가득했던 그 영화. 하지만 킴 베이싱어와 미키 루크에게 빙의돼 그 장면을 따라 해본 사람이라면 깨달았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그토록 짜릿했던 장면이 현실로 옮겨지는 순간 환상이 깨진다는 사실을 말이다. 서로를 자극하기 위해 준비한 얼음은 순식간에 녹아 시트를 적시고, 냉장고를 열어둔 채 후배위를 하자니 시큼한 반찬 냄새에 저절로 고개를 돌리게 된다. 그렇다. 영화의 로맨틱함이 현실로 이어지지 않는 이유는 뜨거워야 할 섹스와 미지근해져버린 일상이 이미 깊게 결합해버렸기 때문이다.
영화 속 섹스 신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뜨거운 섹스 신의 공통점 중 하나는 남자와 여자가 언제나(!) 함께 오르가슴을 느낀다는 것이다. 주인공들은 눈을 맞추고 키스를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곧바로 함께 절정을 느끼며 서로를 격정적으로 끌어안는다. 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애먼 곳을 애무하거나, 아직 충분히 달아오르지도 않았건만 삽입을 시도하거나, 섹시하기는커녕 안쓰러울 정도로 찌푸린 채 피스톤 운동에 열중하는 그의 모습은 얼마나 우리를 지치게 했던가.
피임 문제도 그렇다. 영화 속 주인공들은 “콘돔 없는데 사와” “밖에다 하면 돼”와 같은 대사를 읊지 않는다. 또한 영화에서는 “그러니까 정관수술 하라고 했잖아”와 같은 채근도 없다. 당연히 영화에서는 서랍에서 콘돔을 꺼내거나 정액 묻은 휴지가 바닥에 나뒹구는 장면이 삭제된다. 결과적으로 ‘상호간의 만족스러운 오르가슴’이라든가, ‘임신’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슈들은 우리가 보는 영화 속에서 완벽히 가위질 당한 채 스크린에 상영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영화를 보며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왜 나의 섹스는 로맨틱하지 못한가’라고 탄식하며.

오늘 밤 필요한 것은 뜨거운 눈빛과 터치
하지만 그런 이유로 파트너에게 “왜 영화에서처럼 못 해주는 거야?”라고 물을 수는 없다. 현실의 섹스가 로맨틱하지 않은 것은 누구의 책임이 아니라 그냥 현실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실의 섹스가 그저 그럴수록 영화 속 섹스는 더욱 과장되게 로맨틱해진다.
관건은 로맨틱 영화 속 섹스 신을 쓸데없이 질투하지 않으면서도, 로맨틱 영화에 준하는 로맨스를 그와 당신의 침대로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서로에 대한 칭찬. “오늘따라 당신 뱃살마저 섹시해 보여”라든가, “자기만 보면 난 아직도 가슴이 두근거려”와 같이 뻔한 말이라도 둘 사이의 온도를 올리는 데 꽤 도움이 된다. 자, 오늘 밤. 그에게 먼저 칭찬을 건네고, 뜨거운 눈빛과 터치로 다가가보자. 혹시라도 당신이 꺼져버린 로맨스의 주인공이라면, 하나의 영화를 가슴속에 담은 채 그 영화의 가장 좋았던 5초 정도를 연기한다고 생각하고 먼저 그에게 다가가보자. 로맨스는 저절로 생겨나는 게 아니라 스스로 구하는 사람에게 실현되는 것이다.

섹스 칼럼니스트 곽정은은 …
결혼은 선택, 연애는 필수라고 믿는 ‘한국의 캐리 브래드쇼’. 한국 사회의 갑갑한 유리천장을 섹슈얼 담론을 통해 조금씩 깨나가는 것이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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