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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With specialist | 김선영의 TV 읽기

사랑이라는 온 감각의 언어와 시각장애

‘그 겨울, 바람이 분다’

글·김선영 대중문화평론가 | 사진제공·SBS

입력 2013.04.03 15:24:00

사랑이라는 온 감각의 언어와 시각장애

오영이 시각장애인이라는 설정은 오수와 오영의 사랑에 더욱 풍부한 의미를 부여한다.



겨울의 멜로드라마는 그 안에 이미 봄을 품고 있다. 추운 무채색의 계절에 다가온 사랑은 거기에 온기와 다채로운 생기를 부여해 얼어붙었던 땅을 서서히 회복시킨다. SBS 수목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는 이러한 겨울 멜로 특유의 감성을 잘 보여준다. 주인공 오수(조인성)와 오영(송혜교)의 삶은 모두 춥고 컴컴한 어둠 속에 갇혀 있다. 남자는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려져 밑바닥 사회의 사기꾼으로 쓰레기 같은 인생을 살았으며, 여자 역시 어릴 적 사랑하는 엄마, 오빠와 헤어지고 외롭게 살아왔다. 겨울의 싸늘한 풍경은 이러한 둘의 황량한 내면을 반영한다.
노희경 작가의 치유 마법이 발휘되는 것은 바로 이때부터다. 작품에서 일관되게 인간 내면의 상처와 고독에 관심을 기울여왔던 노희경은 이번에도 외로운 존재들이 서로의 아픔에 교감하고 사랑과 삶의 의미를 회복해가는 과정을 따스한 시선으로 그려낸다. 오수는 오영에게 돈을 목적으로 접근하지만 차가운 표정 뒤에 감춰진 그녀의 연약한 내면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어느새 오영이 행복하길 바라는 진심을 깨닫는다. 세상과 단절된 채 살아가면서 그의 “사랑 따위 필요 없다”고 거부하던 오영 또한 서서히 마음의 문을 연다.
치유의 시작은 그렇게 상처에 대한 교감과 소통으로부터 출발한다. 여기에서 주목할 것은 시각장애라는 설정이다. 여섯 살 때 부모의 이혼으로 커다란 저택에 엄마 없이 남겨진 오영은 큰 병을 앓은 뒤 시력을 잃었다. 그동안의 멜로드라마에서 장애라는 설정은 인물에 비장미를 더함과 동시에 사랑의 진정성을 깨닫게 하기 위한 시련의 소재 이상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 작품은 장애인에 대한 새로운 묘사를 시도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삶과 사랑의 본질에 대한 성찰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인상적이다.
먼저 오영의 캐릭터는 화사한 화장, 킬힐 패션 등 외모에서부터 기존의 수수한 시각장애인 묘사와는 다른 면을 보여준다.
그녀는 러닝머신, 수영 등 운동을 통한 몸매 관리에도 열심이고 쇼핑도 자주 하면서 자기계발에 힘을 쏟는 적극적인 여성이다. 작가는 오영이 의도적으로 ‘정안인(정상 시력을 지닌 사람들)’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시각장애 청소년들을 후원하는 모습을 그리는 등 당당한 캐릭터 만들기에 공을 들인다.
더 인상적인 점은 오영과 오수의 감정이 진전되는 동안 시각장애라는 설정이 단지 시련만이 아니라 사랑의 의미에 대해 더욱 풍부한 해석을 이끌어내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가령 이 작품은 시각을 대신하는 다양한 감각의 언어를 동원해 둘의 감정을 묘사한다. 오영이 오수에게 마음을 연 뒤 그의 얼굴과 몸을 손으로 짚어가며 촉각을 통해 그 모습을 그려가는 장면이나, 바람이 풍경을 스치는 소리로 오수를 떠올리는 장면 등은 온몸의 촉수를 예민하게 되살리는 사랑의 속성을 깨닫게 한다.
9회에서 오수가 오영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점자를 하나하나 새겨가며 편지를 쓰는 장면은 사랑이 이처럼 자기중심적 언어를 상대에게 익숙한 언어로 정성스럽게 번역해주는 과정과도 같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시각장애라는 설정이 두 사람 사이에 장벽이 아니라 자기중심의 언어를 넘어 더 확장된 소통으로 나아가는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온갖 감각의 언어를 동원해 깊어진 소통은 삶의 의미까지 새롭게 돌아보게 한다. 작품 속에서 오영과 오수는 시한부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오영은 뇌종양이 재발했고 오수는 정해진 시한 내 빚을 갚지 못하면 목숨을 내놓아야 할 운명이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기에 둘은 서로가 같이 있는 순간을 최대한 음미하고자 한다. 그것을 표현하듯 영상 또한 둘의 감정이 교류하는 장면들에선 시간을 영원히 붙드는 스틸 사진에 가깝게 연출된다. 사랑이란 또 삶이란, 그렇게 온몸의 감각을 활짝 열어 서로가 함께하는 순간의 기적을 지속시키는 과정이어야 한다는 것을, 이 드라마는 슬프도록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사랑이라는 온 감각의 언어와 시각장애


김선영은…
텐아시아, 경향신문, 한겨레21 등의 매체에 칼럼을 기고 하고 있으며, MBC, KBS, SBS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에서 드라마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여성동아 2013년 4월 5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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