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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옥숙이란 배우의 힘

동시에 드라마 3편에서 종횡무진

글·김유림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13.01.16 14:28:00

평생 연기를 천직으로 여기고 살아온 중견 배우에게 연기력을 운운하는 건 어쩌면 실례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들의 명품 연기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역시 예의가 아니지 않을까.
현재 방송 3사를 종횡무진하며 무려 세 편의 드라마에 출연 중인 송옥숙은 각 작품에서 완벽한 캐릭터의 변주를 보이며 소름 돋는 연기로 찬사를 받고 있다.
송옥숙이란 배우의 힘


일주일에 무려 아홉 번 드라마에 등장하는 연기자가 있다. MBC 수목극 ‘보고싶다’, KBS 주말극 ‘내 딸 서영이’, SBS 일일 아침드라마 ‘너라서 좋아’에 출연 중인 중견 탤런트 송옥숙(54)이 그 주인공. ‘겹치기 출연’이라며 눈총을 받을 법도 하건만, 오히려 그는 소름 돋는 연기를 선보이며 새삼 연기력을 입증받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송옥숙은 세 편의 드라마에서 모두 완벽히 다른 캐릭터를 소화해내기 때문이다.
요즘 최고 시청률을 기록 중인 ‘내 딸 서영이’에서는 딸을 좋은 데 시집 보내는 걸 인생 최대 목표로 여기는 속물 근성 다분한 사모님을, ‘너라서 좋아’에서는 자신감과 카리스마 넘치는 기업 회장님을, 또 아동 성폭행이란 다소 무거운 주제를 다루는 ‘보고싶다’에서는 친딸을 만나고도 딸을 위해 앞에 나서지 못한 채 눈물을 삼키는 촌스럽고 억척스러운 엄마로 등장한다.
특히 ‘보고싶다’에서는 “송옥숙만이 할 수 있는 명품 연기”라는 호평을 얻고 있다. 극 중 송옥숙은 성폭행당한 뒤 살해된 딸 수연(윤은혜)을 가슴에 묻고 사는 인물이다. 극 초반에는 매일 폭행을 일삼는 남편과 가난에 찌든 일상이 안겨준 극악스러운 모습과 함께 딸을 잃은 엄마의 애끓는 심정을 제대로 보여줬다. 수연을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범인이 수연을 댐에 버리는 범행을 재현하는 장면에서는 정말로 넋이 나간 듯 “수연이 살아 있지”를 반복한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명장면이었다. 범인이 살해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내가 죽였어. 눈 감고도 죽이고, 눈 뜨고도 죽이고, 밥 먹으면서도 죽이고, 내가 천 번 만 번 죽였다”라며 그간의 아픈 세월을 피를 토하듯 쏟아냈다. 드라마 중반에는 프랑스에서 신분을 바꿔 돌아온 딸을 단번에 알아보지만, 딸을 위해 “우리는 못 본 거야”라고 말하며 등을 돌린다.
일주일에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촬영에 임하고 있는 송옥숙을 12월 중순, 경기도 일산 SBS 탄현 스튜디오에서 만났다. 역시나 그의 손에는 대본이 들려 있었다. 평소 대본 잘 외우기로 소문난 그지만, 방송 3사를 오가며 촬영하는 요즘 그야말로 “정신이 없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체력에 무리가 왔던지 편도선이 붓고 눈의 실핏줄까지 터져 애를 먹었다고.
“‘보고싶다’의 주제가 워낙 무겁고 우는 장면이 많아서 힘들어요. 스케줄이 빡빡하다 보니 밤낮, 새벽 관계없이 제작진이 나오라고 하는 시간에 나가서 울어야 하니까 더 힘들더라고요. TV에 보이는 장면은 아주 잠깐이지만, 그 한 장면을 찍기 위해서는 네다섯 시간이 걸리거든요. 그 시간 동안 계속 울고 있어야 하니까 감정 소모, 에너지 소모가 정말 심하죠. 그래도 이제는 드라마 세 편 다 어느 정도 내용이 전개돼 조금 편해졌어요(웃음).”
그는 감정을 잡는 것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다고 했다. 그 역시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만약 내 딸이 똑같은 상황이라면’하고 생각하면 금세 감정이 북받쳐 오르고 눈물이 쏟아진다고. “죽은 줄로만 알았던 딸이 성인이 돼 다시 내 눈앞에 나타났다고 생각하면 감정 몰입이 안 될 수 없다”며 ‘보고싶다’의 연기에 대해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실 늘 해오던 연기인데 새삼스럽게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니까 민망하다. 아무래도 (박)유천이 덕인 것 같다”며 웃었다.

송옥숙이란 배우의 힘

MBC ‘보고싶다’ KBS ‘내 딸 서영이’ SBS ‘너라서 좋아’에서 각기 다른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송옥숙.



너무 일찍 맡은 중년 캐릭터, 연기 인생엔 큰 도움
요즘 그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팔색조 같은 변신 때문이다. 완벽한 ‘모드 전환’의 비결을 묻자 그는 “연기자는 영악해야 한다. 계산만 잘하면 어려운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동안 워낙 세고 진한 연기를 많이 했기 때문에 솔직히 ‘보고싶다’에서 보여드리는 연기가 아주 새로운 건 아니에요. 그럼에도 중요한 건 비슷한 캐릭터라도 얼마나 다르게, 또 처절하게 표현해내는가죠. 제가 다른 여자 연기자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망가지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거예요. 처음 방송국에 들어올 때부터 저는 외모로 뽑힌 게 아니기 때문에 주목받기 위해 연기력으로 승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돌아보면 참 영악스러웠던 것 같아요(웃음). 처녀 때도 아줌마 역을 했고, 아줌마가 돼서는 할머니 역을 했어요. 언젠가는 할 배역인데 저는 남들보다 10년, 20년 빨리 시작해서 지금은 훨씬 편해요. 특히 밑바닥 인생을 연기할 때는 화면에 얼굴이 어떻게 나가든 상관없이 미친 듯이 달려들어요. 그 덕분에 재벌 회장님부터 시장 아줌마까지 폭넓은 연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도 여자다 보니까 너무 망가졌다 싶을 때는 모니터링을 잘 안 해요(웃음).”

‘내 딸 서영이’는 소현경 작가의 작품이라는 말에 두말 않고 출연을 결심했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촬영에 들어가자 예상치 못했던 난관에 부딪쳤다. 캐릭터 잡기가 쉽지 않았던 것. 그는 “드라마 초반에는 ‘보고싶다’보다 더 연기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너라서 좋아’는 보편적인 캐릭터가 잡혀 있어서 대사만 잘 외우면 됐고, ‘보고싶다’는 감정 소모가 많아서 그렇지 주로 해온 역이라 에너지만 쫙 끌어올리면 됐는데, ‘내 딸 서영이’는 부잣집 사모님도 아니고, 성격이 온순하지도 그악스럽지도 않은 아주 어정쩡한 인물이라 초반에 캐릭터 잡는 데 애를 많이 먹었어요. 감독님한테 얘기도 못하고 혼자서 ‘이게 맞나? 아닌가?’ 하고 전전긍긍했죠(웃음). 그러다 10회 정도 지나가니까 캐릭터에 대한 확신이 생겼고, 이제는 저 스스로 밀고 당기기도 하면서 편하게 연기하고 있어요. ‘보고싶다’ 역시 수연이와 재회하고 난 뒤부터는 좀 더 편하게 가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바쁜 스케줄 때문에 차 안에서 쪽잠을 자고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울 때도 있지만, 그는 연기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했다. 카메라 앞에 서서 느끼는 긴장감과 희열감이 그에게 살아 있음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축복받은 직업이 또 있겠나.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 받고, 보상도 따라오는 걸 생각하면 그저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입양한 딸과는 기찻길 같은 모녀 사이

송옥숙이란 배우의 힘


1980년 MBC 12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한 송옥숙은 당초 꿈은 교수가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연기자가 된 이유도 유학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그는 교수의 꿈도 이뤘다. 올해로 10년째 동아방송대 교수로 재직 중인 것. 그는 학생들 사이에서 엄하기로 소문나 있다.
“저한테 한번이라도 수업을 들은 학생이라면 연기자가 되든 안 되든 뭐라도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아이들을 가르쳐요. 그러다 보니 대충이란 있을 수 없죠. 반 전체를 놓고 수업하되 1대 1로 개인 교습을 한다는 기분으로 가르치기 때문에 아이들도 좋아해요. 처음에는 깐깐한 교수라고 힘들어하지만 나중에는 그렇게 해준 걸 고마워하더라고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제 연기에도 도움이 많이 되고, 보람 있는 일이에요.”
‘카리스마’ 송옥숙은 가정에서는 어떤 모습일까. 1999년 해양 선박 인양 및 수리, 인명구조 사업을 하는 이종인(59) 씨와 재혼한 그는 마흔한 살, 다소 늦은 나이에 첫딸 창선(13)이를 낳았고, 2007년에는 창선이보다 두 살 많은 조카 지원(15)이를 입양했다. 지원이는 한국인 아빠와 필리핀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출생 후 바로 송옥숙의 친정오빠에게 입양됐다. 그러다 지원이가 아홉 살 때 오빠네 부부가 이혼하면서 파양돼 보육원에서 잠시 생활하다가 결국 그의 품에 안겼다. 송옥숙은 그동안 몇 차례 방송을 통해 네 식구의 일상을 스스럼없이 공개했다.
“창선이가 일곱 살 되던 해 둘째를 가졌는데 유산이 되면서 더는 아이를 낳지 못하게 됐어요. 갑자기 우울증이 오더라고요. 마침 그때 신애라·차인표, 정혜영·션 부부 등 연예인들의 공개입양이 사회적 이슈였는데, 저도 그동안 대중에게 받은 사랑에 보답하는 길로 입양을 하면 어떨까 하고 고민했죠. 그랬더니 남편이 ‘멀리서 찾을 필요가 뭐 있나. 지원이를 데려오자’고 하더라고요. 사실 예전부터 저는 지원이를 데려오고 싶어 했는데, 남편이 심하게 반대했어요. 그런데 제가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니까 남편이 결국 마음의 문을 열었죠.”
하지만 막상 새로운 가족이 생기자 미묘한 갈등이 빚어졌다. 배로 낳은 딸과 가슴으로 낳은 딸 모두에게 최선을 다하려 했지만,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백이 있었다. 특히 지원이가 어느 정도 커서 입양된 데다 이내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그도 아이도 힘든 시기를 겪어야 했다. 송옥숙은 “입양이 쉬운 일은 아니더라. 그럼에도 최선을 다했고, 지원이도 이런 내 마음을 조금씩 알아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오죽하면 드라마 ‘대물’ 촬영 때 차인표 씨한테 ‘너는 입양한 아이들이 정말 네 자식만큼 예쁘니?’ 하고 물어본 적이 있겠어요(웃음). 그렇다고 제가 지원이를 사랑하지 않는 건 아니에요. 그건 지원이가 더 잘 알 거예요. 예전에는 사람들이 좋은 일 한다고 칭찬을 하면 너무 부끄럽고 민망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는데 요즘은 적어도 부끄럽진 않아요. ‘그래. 그동안 애썼다. 쉬운 일 아니었지. 내 인간성이 허락하는 만큼 최선을 다할 거야’ 하고 다짐하죠. 지원이가 갓난아기 때 왔으면 모를까, 어느 정도 커서 왔기 때문에 일반적인 입양 가정과는 분명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우리 모녀 사이는 ‘기찻길’과 같아요. 두 길이 같은 곳을 향해 뻗어 있지만 늘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잖아요. 하지만 기찻길을 멀리 내다보면 서로 합쳐지는 부분이 보여요. 지원이와 저도 세월이 많이 흐르면 언젠가는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송옥숙이란 배우의 힘


지원이는 2년 전부터 필리핀에서 유학 중이다. 필리핀계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찾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교육적인 측면에서도 나쁠 게 없다고 판단했다. 예상대로 지원이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욱 밝고 긍정적인 아이로 변했다. 교회 지인의 집에서 홈스테이를 하고 있는데 학교 공부는 물론이고 신앙 생활에도 매진하고 있다고. 또 얼마 전에는 반에서 총무로 선출됐을 정도로 교우 관계도 좋다고 한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자신이 필리핀계라는 걸 밝히기 싫어했어요. 그런데 필리핀에서 생활하니까 아이 스스로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가는 것 같아요. 또 열악한 환경의 친구들을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인지를 깨닫고, 그래서 자기가 잘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공부도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엄마로서 정말 고맙고 행복한 일이죠.”

액션 연기에 대한 로망

아빠를 쏙 빼닮은 창선이는 선생님들도 ‘4차원’이라고 부를 정도로 엉뚱하면서 귀여운 면이 있다고 한다. 어릴 때는 엄마가 탤런트란 사실을 무척 싫어했지만, 요즘은 누구보다 그를 자랑스러워한다고. 송옥숙은 “요즘 딸이 사춘기라 꼴 보기 싫을 때도 있지만 나보다 속이 깊고 배려심이 많다”며 은근히 딸 자랑을 했다. 그러면서 그는 “무늬만 엄마지, 아이들한테 특별히 잘해주는 게 없다”며 웃었다.
“저는 자기애가 워낙 강한 사람이에요. 남편이나 자식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려 늘 경계하죠(웃음).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접점을 찾되, 저 자신을 100% 희생하진 못하는 것 같아요. 연기자로서, 엄마로서 두 마리 토끼를 완벽하게 잡을 수 없다면 한 가지는 깔끔하게 포기하자 생각하고 연기에 더 치중하기로 했어요. 나중에 아이들이 ‘우리 엄마는 엄마로서는 별로였지만 연기자로서는 누구보다 훌륭한 사람이었다’고 인정해주면 좋겠어요.”
송옥숙은 34년 경력의 베테랑 연기자임에도 여전히 연기가 힘들다고 토로했다. 그가 가장 경계하는 건 타성에 젖은 연기. 연륜이 쌓이는 만큼 연기의 질도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돼야 한다고 말하는 그는 “차원 높은 연기를 선보이려면 자만하지 말고 언제나 빈 가슴으로 작품을 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체력적인 한계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었다.
“몇 년 전 이상한 경험을 한 적이 있어요. 예전에는 아무리 웃고 떠들다가도 ‘슛’ 소리만 나면 눈물을 주르륵 떨궜는데, 언젠가부터 감정은 목까지 차오르는데 눈물이 안 나오는 거예요. ‘몰입을 못하나? 이제 연기를 그만둬야 하나?’ 하고 얼마나 고민했는지 몰라요. 안 되겠다 싶어서 고두심 선배를 찾아가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벌써부터 그러면 어떡하니. 그거 다 나이 들어서 그런 거야’ 하면서 깔깔대고 웃는 거예요. 그러면서 어른들이 눈물 연기할 때 한번 가서 보라고 하더라고요. 알고 봤더니 나이가 들면 눈물샘이 말라서 우는 연기를 하려면 마중물이 필요했던 거예요. 예전에는 배우들이 인공눈물 쓰는 걸 폄훼했는데, 그걸 알고부터는 눈물 연기할 때 꼭 한 방울씩 떨어뜨리고 해요. 그렇게 하면 편하게 감정 몰입이 돼 눈물도 더 잘나오더라고요. 그 일이 있은 후, 내 몸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하루하루 더 열심히 연기해야겠다고 다짐했죠.”
앞으로 한 가지 욕심이 있다면 액션 연기에 도전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것도 전 세계에 개봉되는 한류 영화로. 송옥숙은 “레드카펫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가 아니라, 훗날 세상을 떠났을 때 자손들이 내가 출연한 영화를 보면서 배우 송옥숙을 ‘레전드’로 기억해주면 행복할 것 같다”며 싱긋 웃었다.

여성동아 2013년 1월 58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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