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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응모작 8백74편 경합, 대상은 이숙경의 ‘노래하는 하우스 푸어’

LH공사와 여성동아가 함께하는 에세이 공모전 ‘이야기가 있는 집’

글·김현미 기자 | 사진·이기욱 기자

2013. 01. 09

가슴이 먹먹해지고, 콧등이 시큰하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인생 대하드라마 8백74편을 읽었습니다. 2012년 9월 24일부터 11월 30일까지 에세이 공모전 ‘이야기가 있는 집’에 접수된 작품은 9백 편에 달했고 그중 중복 접수된 것을 추리고 나니 총 8백74편. 비록 2백자 원고지 30장 안팎의 짧은 분량이지만 사연 하나하나가 한 사람의 일생 또는 한 집안의 대하드라마를 압축해 놓은 듯한 이야기여서 마지막 마침표가 나올 때까지 원고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12월 15일 수상작을 선정하는 운명의 최종 심사일. 소설가 이경자, 시인 이정록,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공사) 홍보실 박인제 차장과 주거복지처 사업총괄부 김성호 차장 4명의 심사위원이 추리고 추린 원고를 한아름 안고 여성동아 회의실에 모였습니다. 심사가 진행된 3시간. 대상 1편, 금상 2편, 은상 4편의 상위 수상작은 점점 좁혀지고, 그 안에서 엎치락뒤치락 순위가 바뀌고, 심사위원들 간에 이견이 생기면 원고를 다시 읽어가며 토론을 벌였습니다. 이어 동상 40편, 참가상 1백 편까지 총 1백47편의 수상작이 결정됐습니다.

응모작 8백74편 경합, 대상은 이숙경의 ‘노래하는 하우스 푸어’

앞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김성호, 박인제, 이정록, 이경자.



여름 ‘이야기가 있는 집’ 기초를 닦다
지난여름 여성동아 80주년, LH공사 통합 3주년을 기념하는 공동 프로젝트를 하기로 한 뒤 주제 선정을 놓고 고심했지만 의외로 결론은 쉽게 났다. 서민 주거 안정에 앞장서 온 LH공사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집’, 여성동아는 ‘가족’이 아닌가. 이 둘을 결합해 ‘이야기가 있는 집’이 탄생했다. 마침 2012년 봄 영화 ‘건축학 개론’이 흥행 돌풍을 일으킨 것도 큰 힘이 됐다. ‘건축학 개론’을 모티프로 공모전 개최 의도를 이렇게 설명했다.
“영화 ‘건축학 개론’에서 여주인공 서연은 병든 아버지를 위해 고향 집을 다시 짓기로 하고 첫사랑이었던 승민에게 설계를 맡기죠. 처음엔 낡은 집을 부수고 새 집을 지을 계획이었으나, 그렇게 되면 어린 시절 발자국이 남아 있는 작은 연못과 키 재기를 하며 눈금을 그어놓은 벽마저 사라져 버립니다. 결국 설계 변경을 거듭해 집은 추억을 고스란히 품은 채 다시 태어납니다. 여러분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가슴 설지
만 시리기도 했던 첫사랑과 같지 않을까요? 나의 작은 방에서 꿈꾸던 세상, 부모 곁을 떠나 새 출발을 하던 순간의 설렘, 신혼 생활을 시작한 첫 보금자리의 아련한 기억, 이를 악물고 마련한 내 집에 입주할 때의 감격, 좋은 이웃 정든 집을 떠나야 하는 이사의 아쉬움까지 집은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가을 ‘이야기가 있는 집’을 짓다
응모 기간은 9월 24일부터 11월 30일까지. 여성동아 2013년 1월호에 공모전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어서 심사 일정이 빠듯한 것이 단점이었지만, 응모자들에게 하루라도 더 시간을 주기로 했다. 공모전 공고가 나간 지 이틀 뒤 첫 원고가 이메일로 접수됐다. 원고가 도착하면 제일 먼저 응모자 이름, 주소와 전화번호 등 인적사항 중 누락된 부분을 체크하고 응모자 한 분 한 분에게 원고가 접수됐음을 확인하는 회신을 했다. 여성동아 편집실의 회신을 받고 깜짝 놀라 다시 감사의 답장을 보내는 이들도 많았다. 공모전을 알리는 포스터가 붙고, 라디오 CF ‘우리 가족 최고의 순간’ 편이 나가면서 접수 열기는 점점 더 고조됐다. 공모전 막바지인 11월 28~30일 사흘 동안 한꺼번에 4백여 편이 몰렸다. 이메일 접수 마감 하루 전, 편집실로 ‘애원’하는 전화가 걸려오기도 했다. “공모전 공고를 오늘에야 봤다. 월요일(12월 3일)까지 시간을 줄 수 없나.” 사정은 안타까웠지만 “기회는 공평하게, 이메일 접수는 11월 30일 자정까지!”라는 냉정한 답변을 되풀이 할 수밖에 없었다.
우편, 이메일, 페이스북으로 접수된 원고는 9백 편에 달했으나, 그중에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재전송을 했거나 원고를 수정해서 재응모한 분들이 있어 최종 응모는 8백74편. 응모자는 남녀노소 불문, 주소지를 보면 전국 방방곡곡뿐만 아니라 미국, 스위스, 일본 등에서도 응모해 ‘집’ 이야기는 시공을 초월하는 우리 시대의 화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뜨거운 열기에 심사위원들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순간이었다.

겨울 ‘이야기가 있는 집’이 완공되다
12월 15일 토요일 오전 10시. 1천만원의 상금을 나누어 갈 1백47명을 선정하는 순간이 다가왔다. 4명의 심사위원들은 각자 열흘간 검토한 원고 중 수상 후보작들을 추려 여성동아 회의실로 모였다. 이경자 위원은 응모작에 A+ A- 와 같이 등급을 매겼고, 이정록 위원은 현직 교사답게 80, 85.5, 88, 93점 등 에누리 없이 냉정한 평점을 주었다. LH공사 김성호·박인제 위원은 공모전의 취지에 맞는 작품을 선정하는 한편, 긴급 구호가 필요한 사연을 확인하는 데 집중했다.
심사위원 간의 이견도 적지 않았다. 특히 대상, 금상, 은상 선정 과정에서 사연의 절절함이냐, 문학적 완성도냐를 놓고 토론이 벌어졌다. 사실 8백74편 모두 예외 없이 한 편의 소설 같은 사연들이었다. 대상 최종 후보작들을 놓고 심사위원들이 다시 윤독을 한 뒤 결론을 내렸다. “공모전 취지에 맞으면서 문학적 완성도가 높은 작품” “이야기의 진정성과 희망이 담긴 작품”으로 좁혀졌다. 3시간의 난산 끝에 대상은 이숙경 씨의 ‘노래하는 하우스 푸어’로 결정됐다.



심사위원

응모작 8백74편 경합, 대상은 이숙경의 ‘노래하는 하우스 푸어’


이경자 1948년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서라벌예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197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소설 ‘확인’이 당선됐다. 1988년 여성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소설집 ‘절반의 실패’로 큰 반향을 일으켰고 2012년 2월 장편소설 ‘순이’로 민중문학상을 수상했다.
이정록 196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89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와 199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등단했다. 2001년 김수영문학상과 2002년 김달진문학상을 받았고, 주요 시집으로 ‘정말’ ‘의자’ ‘어머니 학교’ 등과 수필집 ‘시인의 서랍’이 있다.

응모작 8백74편 경합, 대상은 이숙경의 ‘노래하는 하우스 푸어’


심사평
심사위원 이경자·이정록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는 진리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문인수 시인의 시집 제목이다. 총 8백74편의 ‘길’을 읽었다. 한 편당 원고지 20매가 넘는다. 한 번 읽는 데에만 꼬박 일주일이 걸렸다.
아프고 슬픈 이야기가 많기에, 객관적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집으로 가는 길만이 아니라, 집이란 숙명을 극복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오는 희망의 길을 보고자 했다. 자신의 상처에 갇혀서 징징거리는 글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당당하게 살아간다는 역동적인 가슴을 만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진정성을 보았다.
작위적인 글쓰기에 해당되는 작품들은, 그 화려함에도 불구하고 선자의 손에서 밀려났다. 수필이라는 장르가 갖는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하면서 동화나 소설적 기법이 차용된 작품에도 추가점이 부여됐다. 글을 심사한 게 아니라 만화경의 삶을 엿본 것 같다. 수백 수천의 벗을 얻은 느낌이다.
더 열심히 산 사람을 뽑은 게 아니다. 모두 잘 살아오셨고 치열하게 삶을 통과하고 계셨다. 글을 읽는 내내, 심사자 또한 큰 위안을 받았다. 글을 쓰고 다듬고 응모하는 동안, 마음 속 응어리가 풀리고 자신이 대견하기도 했으리라. 잘 견뎌온 자신에게 감사했으리라. 그리고 용서도 했으리라. 응모한 모든 분은 이미 자신에게서 가장 큰 상을 받은 것이다. 응모자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이숙경 씨의 ‘노래하는 하우스 푸어’가 대상의 영광을 안았다. 이숙경 씨의 가장 큰 장점은 자신의 고통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써가는 힘이다. 슬픔에 빠져 허우적이는 게 아니라, 희망의 언덕 쪽으로 흥겹게 노를 저어가고 있다. 눈물에 빠져 익사하지 않고, 고해의 삶에 돛을 올리고 키를 꽉 부여잡은 손아귀의 힘줄에 악수를 건넨다. 견디기 어려운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다. 읽는 이에게 긍정의 자세와 용기를 선사한다.
조정금 씨의 ‘파란 대문 집 이야기’는 집이 화자가 돼 이끌어가는 형식이 신선했다. 글도 안정돼 있었다. 문장을 많이 다룬 분이었다. 집이 아름다운 건 곳곳에 이야기가 쌓여 있기 때문이다. 삶을 꾸리는 집은 결국 이야기의 보따리를 꾸려나가는 것임을 잘 풀어주었다.
염희정 씨의 ‘꿈꾸는 집’은 유폐된 사춘기의 한 소녀가 어떻게 세상과 연대하고 소통해 나가는가를 차분하게 그려낸 수작이었다. 작은 집 한 채가 우주처럼 넓어지는 성장과 확산의 비밀을 잘 표현했다. 집은 성장으로 가는 통로이다. 그렇다. 집은 성장통이다.
김민정 씨의 ‘나에게 집이란’은 진솔한 내용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공감의 글이다. 가족 간의 왁자지껄한 건강성이 좋았다. 명랑가족의 대소사에 사돈의 팔촌 쯤으로 방문하고 싶었다.
나미리 씨의 ‘공간들, 입을 열다’는 방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동화적 상상력이 돋보였다. 미래의 작가에게 미리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이연하 씨의 ‘꿈에도 그리운 우리 외갓집’은 애틋한 외갓집에 대한 추억담이다. 공간으로서의 집이 아니라 마음으로서의 집에 대한 이야기이다. 진정성이 높은 점수를 받았다.
김혜림 씨의 ‘아버지의 집’은 아버지의 집짓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집을 완공한 뒤 3년 만에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가 집과 함께 어떻게 회복해가는지를 건강한 문장으로 뭉클하게 써나가고 있다.

우리의 집은 왜 이리도 아픈가?
전국 각지에서 참 다양한 글들이 올라왔다. 고향 집에 얽힌 이야기, 집 짓는 이야기, 내 집 마련의 우여곡절 이야기, 보금자리 주택과 임대아파트에 관한 이야기, 북쪽에서 온 분들과 외국에서 시집온 분의 이야기, 대학생 전세임대 및 다가구 매입에 관한 이야기, 삶의 벼랑에서 굴러떨어지는 이야기 등등.
집은 왜 이리도 아픈가? 불에 탄 집은 왜 이리도 많은가? 수중 궁궐에 세든 것도 아닌데, 물이 새는 집은 왜 이리도 많은가? 고생 끝에 낙이 아니라, 고생 끝에 더 큰 고생이 오는 삶은 또 얼마나 많은가? 세상 모든 길은 혹 무덤으로 가는 건 아닐까? 고개를 갸우뚱거려도 보았지만, 그 무덤에서 피어나는 할미꽃 같은 이야기들이 심금을 울렸다.
역시 진정성이다. 희망이다. 용서와 배려다. 사랑이다. 집은 부동산이 아니다. 투자 증축의 경제적 대상도 아니다. 상처를 치유하는 안식처이자 추억의 앨범이고 설렘과 희망의 두레학교다. 도란도란 수저 부딪는 소리가 들리는 가족의 품이다.
한 편 한 편의 글이 아니라 두꺼운 책이었다. 응모한 모든 이들의 건강한 자서전에 큰 박수를 보낸다. 덤으로 수상까지 하신 분들에게 조금 더 축하를 드린다.
*시상식 일정과 상금 지급은 개별 통보합니다.
*주요 수상작은 여성동아 2월호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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