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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여성 서울역장 김양숙 ‘기찻길 위의 인생’

글 | 진혜린 자유기고가 사진 | 박해윤 기자

입력 2012.12.17 16:54:00

11월 초 1백13년 전 서울역사가 문을 연 이래 처음으로 여성 역장이 부임했다. 전 세계적으로도 여성이 중앙역 역장이 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그 ‘최초’라는 화려한 기록과는 달리 김양숙 역장의 삶은 화려하지 않다. 아내로, 어머니로 그리고 공무원으로 살아온 그의 인생은 ‘노력’이 성공을 낳는다는 절대 불변의 법칙을 가르쳐준다.
최초 여성 서울역장 김양숙 ‘기찻길 위의 인생’


김양숙(44) 서울역장의 부임 소식을 듣고 두 번 놀랐다. 대한민국 기찻길의 중심인 서울역에 부임한 최초 여성 역장이라는 것에 한 번 놀라고, 9급 공채 시험으로 입사한 지 25년 만에 초고속으로 1급 고위 임원이 됐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서울역은 하루 30만 명이 이용하는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기차역이다. 이곳에 근무하는 코레일 직원만 1백 명이 넘는 데다 연간 코레일 수입의 16%를 차지한다. 이 때문에 서울역장은 전국 역장 중 유일하게 실장급 고위 임원이 맡는 자리라고 한다. 그래서 궁금했다. 무엇이 그를 서울역장으로 만들었는지 말이다.

9급 공채 공무원에서 1급 서울역장이 되기까지
이제 막 신임 서울역장으로 부임한 김양숙 역장은 ‘얼떨떨했던 기분’을 벗어던지고 “전의를 다지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책임은 태산처럼 무겁고, 임무는 막중한데, 갈 길은 멀다”던 시진핑 중국 부주석의 말처럼 서울역장으로서의 책임감을 실감하고 있는 중이란다.
‘최초’라든가 ‘여성’이라는 말은 김 역장에게 불필요한 수식어였다. 집에서는 아내이고 엄마이지만 직장에서만큼은 ‘여자’라는 타이틀이 필요한 적이 없었다. 그것은 서울역장이 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철도공사에서 일하며 ‘여자라서’ 달랐던 점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굳이 따지자면 남자보다 더 세부적으로 꼼꼼하게 챙기니까 직원들이 좀 더 힘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긴 해요(웃음).”
2001년 국내 최초 여성 역장(부천역 박영자 역장)이 탄생했고, 김 역장도 2007년 서대전역장을 맡은 바 있어 코레일 내에서 남녀의 구분이 희미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요즘이니까 가능한 일이다. 그가 처음 철도청에 발을 딛었던 1987년의 상황은 조금 달랐다.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김 역장은 순천여고를 졸업하고 재수를 준비하던 중 아버지의 권유로 ‘총무처(지금의 행정안전부)’ 9급 시험을 봤다. 시험에 합격한 후 발령 받은 근무지가 철도청이었다. 2005년 공사로 전환되기 전까지 지금의 ‘코레일’은 정부 산하 국가 기관이었고, 스무 살의 그 또한 대한민국 9급 공무원으로 철도청에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철도청에는 유난히 남자들이 많았다. 기차를 조종하는 기관사나 철도를 관리하는 현장직 업무의 강도가 세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행정직도 예외는 아니었다. 총 3백여 명의 직원 중 여직원은 달랑 3명뿐이었으니 말이다.
“세 사람의 유대가 아주 돈독했죠(웃음). 그런데 그때는 여자가 맡을 수 있는 업무에 한계가 있었어요. 단순 경리일이나 일상 업무가 대부분이었거든요. 일은 편하고 쉬웠지만 더 많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이 더 힘들었죠.”
그렇게 한정된 업무만 하던 9급 여사원이 어떻게 지금의 서울역장이 될 수 있었을까? 그 비결을 물으니 김 역장은 손사래를 치며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말한다.
“성격이 워낙 급해서 빨리 성과를 내야 직성이 풀리죠(웃음). 그런데 저만큼 노력 안 하는 사람들이 어디 있겠어요. 다만 저는 위기 때마다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맡은 역할의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려고 애썼죠.”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다녔다. 누구는 ‘사서 고생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여자라서, 직급이 낮아서, 노력을 알아봐주는 이가 없어서 겪는 아픔도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인간사가 원래 불공평한 거잖아요. 하지만 그 불공평함 때문에 주저앉는다면 자신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거예요. 불공평함을 인정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져요. 제가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면 좋겠지만 저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혹은 자리에 대한 욕심 때문에 일해본 적은 없어요.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무조건 밀어붙였죠. 그런 것들이 나중에 좋은 평가로 돌아왔던 것 같아요.”
그렇게 ‘자신의 몫’을 다했던 김 역장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은 순천지방청 재산과 매각계장이 되면서부터였다. 김 역장은 지적도와 배치도, 용지도를 들고 현장을 누볐다. 토지의 형상을 파악하기 위해 걷고 또 걸으면서도 자신이 맡은 일을 숙지하고 회사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찾아다녔다.
“그때 6급 주사가 됐는데, 본사에 지원할 기회가 찾아오더라고요. 오라는 사람도 없고, 지원하면 된다는 보장도 없었지만 무작정 지원서를 냈어요. 어떻게 보면 제 회사 생활 중 가장 넘기 힘든 장벽이었고, 또 그만큼 무모한 도전이기도 했죠.”

최초 여성 서울역장 김양숙 ‘기찻길 위의 인생’


전단지 돌리는 역장
지방청에서 본사로 근무지를 이전한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고 복잡한 절차가 필요했다. 지금은 공개 모집을 통한 단계별 절차를 거치지만 그때는 말 그대로 당시 근무지의 대다수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었다. 김 역장은 그렇게 2001년 본사 발령 이후 전략기획실 평가팀장으로 근무하다 2007년 서대전역장이 됐다. 그리고 인사노무실 노경지원처장을 거쳐 2011년 5월부터는 문화홍보처장을 역임했다. 본사 발령 당시 6급이었던 그는 문화홍보처장이 되면서 1급 간부가 됐다. ‘현실에 안주하지 않았다’는 김 역장의 말이 실감 나는 대목이다. 특히 서대전역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일화에서 김 역장에게 ‘권위 의식’을 내려놓고 ‘회사의 앞날’을 걱정하는 진심까지 느껴졌다.
“공사가 적자로 힘들던 때였어요.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여행 상품을 기획했죠. 열차를 타고 관광지를 찾아갈 수 있는 상품이었는데, 직원들과 등산로에서 직접 세일즈를 했어요. 친목 회원들, 동호회 회원들에게 전단지를 나눠드렸는데 외면하는 분들이 너무 많았어요. 그때까지 영업이라는 것을 직접 해본 적이 없어서 여러모로 힘든 경험이었죠(웃음).”
역장까지 나서 전단지를 돌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어차피 빈 좌석으로 운행되던 열차를 이용한 여행 상품이었기 때문에 추가 비용 없이 순이익을 창출해낼 수 있었다. 그는 그와 같은 상품을 3개나 기획해 판매했다. 김 역장은 그때가 힘들었지만 가장 보람 있었던 순간이라고 기억했다.



엄마, 아내, 그리고 내 삶

최초 여성 서울역장 김양숙 ‘기찻길 위의 인생’

한국 전통 공예품을 판매하는 서울역 내 ‘하이핸드코리아’ 는 문화와 디자인이 접목된 공간으로 여행객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김양숙 역장이 일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가족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김 역장은 가족 이야기가 시작되자 ‘미안하다’는 말부터 꺼냈다. 대학에 다니며 아빠와 대전에 머물고 있는 첫째 딸과 얼마 전 수학능력평가시험을 본 뒤 대학 입시를 위해 자신과 서울역 관저에 머물고 있는 둘째 아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뿐이란다.
그가 출산할 시기에는 육아 휴직이 2개월에 불과했다. 워킹맘들 모두 겪는 일이라지만 출근 시간에 우는 아이와 헤어질 때마다, 또 퇴근 후 놀이방 교사와 홀로 남겨진 아이를 볼 때마다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와중에 그는 대학, 대학원까지 도전해 못다 한 학업의 꿈까지 이뤘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니까 오히려 아이들이 바빠서 함께할 시간이 없더라고요(웃음). 저는 운이 좋게도 옆에서 도와주는 친척이 계셨고, 남편도 한마디 불평 없이 집안일을 나눠서 해줬으니까요. 제사나 명절 때 시댁 식구들의 배려도 큰 힘이 됐죠. 저는 집안일까지 완벽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시간 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이라도 해주려고 노력했어요. 다행인 것은 이번 서울역장 발령이 둘째 수능시험 다음 날이었다는 거죠. 수능 시험까지 챙겨주지 못했다면 무척 미안했을 것 같아요(웃음).”
그렇게 25년간 쉬지 않았던 노력이 지금의 김 역장을 있게 했지만, 그가 서울역장이 된 데는 작년 5월부터 1년 남짓 문화홍보처장으로 활동하며 일궈낸 성과가 한몫을 한 것도 사실이다. 김 역장은 춘천역 재건설 계획에 합류하며 디자인 공모 등을 통해 새로운 춘천역의 탄생에 일조를 했다. 고객 동선에 장애가 되는 시설물을 철거하고 단순한 매장 디자인에 활력을 불어넣는 한편, 천편일률적인 역사 내 ‘맞이방(대합실)’에 색다른 변화를 모색해 이용객들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7월 ‘제1회 철도문화체험전’을 성황리에 개최한 것도 김 역장의 작품이다.
“최근 ‘서울역 재창조’ 작업이 진행되고 있어요. 공항철도와 연계되면서 서울역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는 관문이 됐고 이에 따른 서비스의 품격도 성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국 전통 공예품을 판매하는 ‘하이핸드코리아’나 ‘여행 장병 라운지’는 서울역의 또 다른 변화죠. 앞으로도 문화와 디자인이 있는 서울역을 만들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고 사진 촬영을 위해 서울역 플랫폼을 찾았을 때 오가는 사람들로 바쁜 서울역사에서 김 역장이 입은 짙은 감색 유니폼은 단연 눈에 띄었다. 서울역장실에서 플랫폼까지 그 짧은 거리를 이동하면서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김양숙 역장을 불러 세웠는지 모른다. 대문짝만하게 ‘3’이라고 쓰인 간판 밑에서 “여기가 3번 플랫폼인가요?”라고 묻는 사람부터, 일본어로 질문을 건네는 일본인이나, 무턱대고 그를 부르는 지팡이 짚은 어르신까지 그 연령층과 질문도 다양했다. 김양숙 서울역장은 그 많은 사람들에게 일일이 안내를 해주거나 다른 역무원에게 인계한 후 가던 길을 재촉했다. 그런 김 역장의 모습에는 편안한 미소가 깃들어 있었다. 놀라운 추진력에 따뜻한 카리스마, 그리고 자신의 일을 사랑할 줄 아는 김양숙 역장이 앞으로 꾸며나갈 서울역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여성동아 2012년 12월 5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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