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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향기 하정우

“치열하게 연기하고 진지하게 그리며 느낌 있게 산다”

글 | 김명희 기자 사진 |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딜라이트 제공

입력 2012.10.17 11:05:00

장동건·현빈 같은 조각 미남도 아니고, 공유 같은 근육질도 아닌데 이상하게 끌린다. 시상식에서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국토대장정에 나설 만큼 실행력도 있고, 화가로 활동하며 기존 미술계를 뒤흔들 만큼 예술적 감성도 충만하다. 꽃미남 열풍이 살짝 지루해졌다면 하정우를 주목해보길. 그에게선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진정한 남자의 향기가 난다.
남자의 향기 하정우

장난스러운 수상 소감에서 시작된 국토대장정을 그럴듯한 상업영화로 만들어낸 하정우. 상자 안 사진은 ‘557 프로젝트’ 미공개 스틸 컷.



지난 8월 개봉한 영화 ‘577 프로젝트’는 18명의 남녀가 서울에서 전남 해남까지 20일 동안 무작정 걷는 영화다. 하정우(34)와, 그와 같은 영화 ‘러브픽션’에 출연했다가 얼떨결에 낚인 공효진을 제외하면 등장인물 중 유명인이 전무하다. 그런데 이 영화가 극장가에서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누적 관객 수 10만 명이 놀라운 것은 제작비가 4억원에 불과한 저예산 다큐 영화이기 때문이다. ‘도둑들’(제작비 1백45억원)의 1천만 관객이 부럽지 않은 흥행 성적이다.
영화가 스크린에 걸리게 된 과정도 상상을 초월한다.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제작사가 투자를 받아서 크랭크인 하는 여느 영화와 달리 이 작품은 하정우의 장난스러운 말 한마디로 시작됐다. 그는 2011년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면 트로피를 들고 국토대장정에 나서겠다는 약속을 했고 ‘황해’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되자, ‘공약 실천’ 차원에서 국토대장정에 나섰다. 그리고 보란 듯이 기록으로 남긴 것이 ‘577 프로젝트’다. 영화 개봉에 앞서 시사회에서 만난 하정우는 “시상식에서 무심코 던진 수상 공약으로 이렇게 일이 커질 줄 몰랐다. 처음 영화를 만들 때는 배급 자체도 불투명한 상황이었는데 꿈만 같다”며 그 자신도 놀라워했다.

장난스러운 수상 소감에서 시작된 ‘577 프로젝트’
“제가 국토대장정에 나선다고 하니까 친구, 후배들이 하나둘씩 모이기 시작하더군요. 이왕 이렇게 모였으니 영상으로 한번 찍어보자 한 것이 여기까지 왔어요. 소규모라도 배급이 될까 싶었는데 운이 좋았죠.”
자칫 지루할 수 있는 다큐 영화를 개성 넘치는 B급 영화로 만들어낸 건 오롯이 하정우의 힘이다. 그는 시나리오도 없이 출발한 이 영화의 기획, 주연, 캐스팅을 맡아 재기발랄한 상업 영화로 탄생시켰다. 하정우는 대장정 막간에 ‘하숙쇼(하정우의 숙영지 토크쇼)’, 컵라면·등산화 중간 광고, 돌발 상황 등을 적절히 배치해 보는 재미를 선사한다. 특히 그는 577km를 걷는 동안 지친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준비를 좀 했습니다. 서울 인근에서 촬영하는 날이면 집까지 걸어오곤 했죠. 그렇게 3개월 정도 훈련한 덕분에 무리 없이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중간에 통증이 심해서 대원들 몰래 스포츠마사지를 받으러 간 적이 있어요. 대장정을 시작하며 몇 가지 규칙을 만들었는데 그중 마사지를 받지 말라는 내용은 없어서(웃음).”
하정우는 비교적 잘 버틴 편이었지만 다른 대원들은 진통제를 맞으며 버틸 만큼 험난한 일정이었다. 한계 상황에 다다른 대원들은 때론 싸우기도 하고 혼잣말로 욕설을 내뱉기도 한다. 걷기만 하는 다큐 영화가 15세 이상 관람 등급을 받은 것도 이 때문. 대원들 사이에 갈등이 있을 때마다 조정자로 나서거나, 낙오된 대원들을 추스르며 유쾌하게 대장정을 이끌어가는 하정우의 모습에서 노련한 리더십이 엿보인다. 이 대목에선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조폭 두목으로 보여줬던 마초 이미지가 떠오르기도 한다. 하정우는 “어떻게든 내가 중심이 돼서 분위기를 성실하게 이끌어가야겠다 생각했는데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모두들 기분 좋게 받아들여줘서 고마웠다”고 말했다.

남자의 향기 하정우


뿔테 안경에 느슨하게 풀어헤친 넥타이, 흰색 와이셔츠에 반쯤 걷어붙인 소매 그리고 그을린 구릿빛 팔뚝 … 시사회에서 만난 하정우는 누가 봐도 믿음직스럽고 건강한 남자의 표상이었다. 의외의 대목에서 기사도 정신을 발휘할 기회도 얻었다. ‘577 프로젝트’는 영화적인 부분 외에 하정우와 공효진의 열애설로도 화제가 됐다. 공효진이 10년간 교제하던 류승범과 결별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그 원인이 하정우 때문이라는 소문이 돈 것. 마침 하정우도 올 초 오랜 연인이었던 구은애와 헤어졌고, 두 사람이 ‘러브픽션’에 이어 ‘577 프로젝트’에서까지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소문이 더 확산됐다. 영화 시사회에선 공효진에게 그에 관한 질문이 쏟아졌다. 공효진이 류승범과의 결별 원인(오래된 연인으로 자연스럽게 관계가 멀어짐)을 설명하며 힘들게 방어하자 하정우는 “내가 그 소문에 대한 발언권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이라고 말문을 열며 조심스럽게 구원투수를 자처했다. 하정우는 현재 자신이 류승범과 함께 영화 ‘베를린’을 촬영하고 있으며 그의 형인 류승완 감독과도 절친한 사이로, 공효진과의 연애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그래도 한 가지 의문은 남는다. 하정우는 왜 공효진을 대장정 파트너로 선택했을까다. 하정우는 SBS ‘힐링캠프’에서 그 답을 공개했다.
“‘황해’ ‘의뢰인’ ‘범죄와의 전쟁’ ‘러브픽션’까지 2년간 쉬지 않고 네 작품을 찍었어요. 그러다 보니 제가 상황을 이끌어가지 못하고 끌려다닌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영화 촬영은 너무 재미있는 인생의 전부인데 점점 식어가는 제 모습을 보고 공포를 느꼈어요.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겠다 싶어 대장정을 결심했는데, ‘러브픽션’을 함께 하면서 보니까 효진 씨도 많이 지친 것 같더라고요. 정신이 메말랐다는 이야기를 습관적으로 하기에 같이 가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어요. 처음엔 솔직히 기대를 안 하고, 한 5일 정도 걸을 수 있을까 했는데 완주하는 걸 보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함께 하면서 인간으로서의 매력을 많이 알게 됐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탐났고, 영화에도 힘이 됐어요. 이 영화 시즌2가 만들어진다면 그때도 효진 씨와 함께 하고 싶습니다(웃음).”
하정우의 말 한마디에 긴장이 풀린 공효진이 폭소를 터뜨렸다.
“그래요. 우리가 할리우드 배우도 아니고…, 우리도 상도덕이란 게 있어요(웃음).”

남자의 향기 하정우

영화 ‘범죄와의 전쟁’ ‘황해’ 등에서 매번 다양한 모습을 선보인 하정우. 혹자는 그를 이전에 연기했던 캐릭터를 지우고 새로운 인물을 창조해낸다는 의미에서 ‘칠판 같은 배우’라고 말한다.



하정우의 냉정과 열정 사이
누군가는 하정우를 칠판 같은 배우라고 했다. 작품마다 이전 캐릭터를 지우고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세계적 거장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디카프리오, 맷 데이먼을 능가하는 잠재력을 지닌 배우”라 극찬하기도 했다. 배우인 아버지 김용건에게서 물려받은 끼 덕분이라고 설명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하정우는 대학 재학 시절인 1998년 국군홍보관리소에서 군 복무를 시작하고 군 홍보 영화를 10편 정도 찍었다. 개그맨 강성범과 3개월 동안 위문 공연차 동티모르에 파견근무를 한 독특한 이력도 있다. 첫 영화인 2002년 ‘마들렌’을 시작으로 2004년 ‘슈퍼스타 감사용’ ‘잠복근무’ 등에 출연해 연기의 내실을 다진 그는 윤종빈 감독의 화제의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 김기덕 감독의 ‘시간’ ‘숨’ 등으로 차세대 연기파 배우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이후 무심해서 더욱 소름 끼쳤던 사이코패스(추격자), 허영과 정의감이 공존하는 스타 변호사(의뢰인), 마초 조폭 두목(범죄와의 전쟁), 지질한 연애를 하는 소심한 소설가(러브픽션) 등은 그런 내공에서 비롯된 것이다.



남자의 향기 하정우

하정우는 네 차례 개인전을 연 화가이기도 하다. 그의 화풍은 인물을 단순화해 유쾌하게 표현해내는 것. 문학동네 제공. 1 I was born in 1978 l 2011 2 NO. 18 l 2011 3 present l 2011 4 I saw you dancing l 2011



하정우를 아는 사람들은 그 안에 냉철한 캐릭터 분석가, 지독한 연습벌레, 야심만만한 화가, 천진난만한 장난꾸러기 등 다양한 모습이 있다고 말한다. 지난해 출간된 에세이 ‘하정우, 느낌 있다’(문학동네)엔 그런 그의 다양한 모습이 잘 드러난다.
연기할 땐 느낌에 의존하지 않고 시나리오를 교과서 삼아 ‘바를 정(正)’자를 써가며 수없이 연습을 하고, 촬영이 없는 날에는 아침에 일어나 물을 세 잔 마시고 화장실에 가서 장을 비운 뒤 컴퓨터 게임을 하고, ‘불만제로’ ‘시사매거진2580’ ‘인간극장’ 같은 교양 다큐 프로그램을 보며 정확히 50분 동안 러닝머신 위를 달린다. 강박적이라 할 만큼 아무것도 하지 않고는 못 견디는 그는 운동 후 아침을 차려 먹고 그림을 그린다. ‘오늘 작업이 좀 된다’ 싶은 날엔 밤늦게까지 그림을 그리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운동을 한다. 간혹 저녁 약속이 있는 날엔 운동을 한 번 더 한 다음 외출을 하고, 늦어도 자정에서 새벽 1시에는 꼭 집으로 돌아간다.

배우보다 편하고 자연스러운 화가라는 직업
시계추처럼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그의 일상 중 운동과 함께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그림이다. 인물과 사물을 기본적인 구조로 단순화시켜 기분 좋은 재미를 선사하는 표현주의 화풍으로 이미 네 차례 개인전을 열었으며 지난 9월에는 한국 현대 미술을 알리는 ‘코리안 아티스트 페스티벌’의 홍보대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하정우는 언젠가 미국행 비행기에서 내릴 때 입국신고서 직업란에 ‘actor’라고 썼다가 불법체류자로 몰릴 뻔한 다음부터는 장난처럼 ‘painter’라고 쓰기 시작했는데, 그것을 계기로 화가라는 직업에 한 발 가까워졌다고 한다.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적도 없고, 아직은 스스로 화가라고 칭하기 어색해 주변에는 ‘화가놀이’를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에게 그림은 연기만큼이나 절실한 것이다.
“무엇보다 내게 배우와 화가는 같은 뿌리에서 나온 다른 얼굴이다. 배우가 쌀로 밥을 짓는 일이라면 화가는 그 찌꺼기로 술을 담그는 일과 같다고 설명하면 어떨까. 같은 재료로 만드는 것이지만 그 방법에 따라 결과물은 전혀 다르게 나온다. 운동선수처럼 독하게 훈련하고 경기에 임하는 자세로 영화를 찍는다. 그렇게 밥과 같은 연기가 만들어진다. 그러고 나면 몸과 마음에는 잔여물이 생긴다. 연기로서는 해소되지 않는 무언가, 그것을 끄집어내 그림을 그린다. 그러면 술과 같은 그림이 만들어진다. 그림이 나를 회복시키고 다시 연기에 정진하도록 고무하는 것이다.”(‘하정우, 느낌있다’ 본문 중에서)
올해만 해도 ‘베를린’ ‘시네노트’ ‘앙드레 김’ 등에 잇달아 투입돼 하정우가 재능을 소진하는 게 아닌가 걱정도 됐지만 그런 우려는 접어도 될 듯하다. 재능을 무한대로 끌어올릴 수 있는 화수분같이 든든한 정신적 뿌리가 있기에 하정우의 전성시대는 당분간 계속될 것 같다.

하정우라는 배우가 탄생하기까지

남자의 향기 하정우

지난해 화가 하정우의 개인전에 참석한 아버지 김용건(왼쪽)과 함께.

1978년 배우인 아버지 김용건과 무용을 전공한 어머니 사이에서 2남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본명은 김성훈. 동생 김영훈도 차현우라는 예명으로 배우 활동을 하고 있다.
1980년 세 살 때부터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한 꼬마 철학자. 예술 하는 부모의 기질을 물려받아 상상력이 풍부했다. ‘힐링캠프’에서 그는 어릴 때부터 어떤 일을 하면 항상 그다음 상황이 머릿속에 그림처럼 그려졌다고 말했다. 지금도 ‘사고가 나면 어떡하나, 승무원들은 어떻게 대처할까, 어떤 기분으로 죽음을 맞이해야 하나’라는 생각에 비행기 타기가 두렵다고 한다. 평범한 사람들보다 삶이 몇 배 피곤하다.
1982년 엄마에게 야단을 맞으며 ‘이 상황에서 울면 어떨까’ 했는데 진짜 눈물이 났다. ‘연기는 이렇게 하는 거구나’라는 걸 깨달았다.
1990~1992년 중학교 1학년 때 성적은 반에서 30~40등 정도로 우등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아버지는 유명한 사람인데, 너는 왜 이렇게 공부를 못하느냐, 커서 뭐가 되려고 하느냐”며 자극하는 바람에 작심하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암기 과목은 스스로 공부하고 태생적으로 거리가 있었던 수학과 과학 과목은 족집게 과외의 도움을 받았다. 성적이 올라가자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았다. 동네에서 걸어다닐 때 느낌도 그 이전과는 달랐다.
1997년 원래 꿈은 배우가 되는 것이었지만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대학 일반 학과에 진학했다가 방송사 공채 탤런트가 되고 싶었다. 소위 ‘엘리트 배우’ 타이틀을 달고 싶었던 것. 하지만 수능시험을 망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됐다. 재수를 하려고 하다가 어머니의 조언으로 연극영화과 지원을 결심하고 연기학원에서 과외를 받았다. 처음에는 배우 이범수에게서 지도를 받았지만 본인이 생각했던 것과 달라 환불을 받고 이경영·권해효 등이 가르치던 학원으로 옮겨 ‘얼음땡’ 같은 놀이를 하며 재미있게 연기를 배워 중앙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은 상상과 달랐다. 선배들은 인생을 다 산 것처럼 너무 진지했고, 단체 생활에도 좀처럼 적응이 안 됐다. 1학년은 자퇴도 할 수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을 때 최치림 교수의 도움으로 뉴욕으로 연수를 떠날 기회를 얻었다. 오전은 어학연수를 하고, 오후는 필름아카데미 워크숍에 참여하는 일정이었다. 어머니는 미국에서 쓰라며 두둑한 용돈과 카드까지 건네줬다. 뉴욕에서의 몇 달간은 세상 모든 것을 다 가진 듯 행복했지만 곧 어머니가 운영하던 사업체가 위기에 빠지면서 허망하게 뉴욕 생활을 마감했다.
1998~2004년 어머니가 운영하던 사업체가 빚더미에 올라앉고, 여러 가지 문제가 겹치면서 부모는 이혼을 했다. 연기학원 강사로 일하면서 돈을 벌고 군대에 다녀오고 학교를 졸업했다. 갈 곳이 없어 학교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했다. 연기하면서 위안을 얻었고, ‘좋은 배우가 되기 위한 시련의 과정이 아닐까’란 생각도 했다. 그리고 빚을 갚기 위해 1년에 4~5작품씩 출연하며 모든 상황을 묵묵히 견뎌내는 아버지를 보며 힘을 얻었다. 모든 빚을 청산하는 데 7년이라는 세월이 걸렸고, 그의 20대 대부분이 지나갔지만 돌이켜보면 배우로서 중요한 자산을 얻은 시기이기도 하다.


참고도서 | 하정우, 느낌 있다(문학동네)

여성동아 2012년 10월 58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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