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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월가의 기적이 된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 신순규

“슬퍼도 울지 않고, 울지 않아 슬프지 않다”

글 | 진혜린 자유기고가 사진 | 현일수 기자

입력 2012.09.18 11:21:00

앞을 볼 수 없는 사람이 미국 두뇌들의 집결지 ‘월가’에서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거짓말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는 것이, 실제 그런 사람은 단 한 명뿐이기 때문이다. 재무분석사(CFA)이자 브라운 브러더스 해리먼에서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신순규 씨. 눈을 떠도 어둠뿐인 세상에서 더 밝은 안목으로 세상을 꿰뚫어보는 신순규 씨의 행복한 시선과 마주했다.
美 월가의 기적이 된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 신순규


장애인들의 성공 신화를 접한 사람들은 ‘장애인인데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를 깊이 들여다보면 그들이 맞닥뜨린 고난과 역경은 장애 그 자체가 아니라 사회의 편견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신순규(45) 씨도 마찬가지다. 그가 가장 넘기 힘들었던 관문은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금융계에서 일하느냐는 생각이었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 변환 시스템이나 점자 입력기 등을 사용한다 해도 시시각각 쏟아져 나오는 방대한 양의 금융 정보를 파악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이런 편견을 예상했다는 듯, 신순규 씨는 휴대용 점자 키보드를 들고 인터뷰 장소에 나왔다. “남들과 똑같은 주식 프로그램을 사용하고, 똑같이 일할 수 있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 강한 의지와 집념이 엿보인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증시 분석 자료가 모두 책자로 돼 있어서 한 장씩 뜯어 스캔을 하고, 텍스트로 바꿔 음성 변환을 하거나 점자로 찍어봐야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대부분의 분석 자료가 이메일로 송고되거나 웹 사이트로 다운로드되고 어도비(Adobe) 파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일일이 스캔하는 번거로움은 덜었어요.”
그는 1994년 JP모건에 입사한 이래 앞이 보이지 않아서 힘들었던 적은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거래 실적으로 자신의 노력과 능력을 평가받는 지금의 일이 성취감이 크다고. 그는 JP모건을 거쳐 현재 프라이빗 뱅크인 브라운 브러더스 해리먼까지 18년간 일해온 베테랑 애널리스트다. 지금은 자산운용 비즈니스 라인의 채권 그룹 중 한 팀을 이끌고 있으며 팀장으로 고객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하는 일에도 능숙하다.
지금이야 회사 동료들도 그에게 익숙하지만 처음부터 그가 남들과 똑같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는 이도, 이해해주는 이도 없었다. 어쩌면 그것이 앞을 볼 수 없게 됐던 아홉 살의 어린 그에게 주어진 가장 큰 숙제였는지도 모른다.

스무 번이 넘는 수술, 아홉 살 때 완전 실명
신순규 씨는 양쪽 눈 모두 녹내장을 지닌 상태로 태어났다. 일곱 살이 될 때까지 스무 번이 넘는 수술을 했다. 아이들은 간단한 검사를 하려 해도 수면 마취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림잡아 1백 번이 넘는 전신 마취를 당했다. 수많은 시도 끝에 한쪽 눈의 시력을 회복할 수 있었지만 그마저도 오래가지 않았다. 일곱 살 무렵 원인을 알 수 없는 망막 박리 증상이 찾아온 것. 당시에는 손으로 망막을 고정시키는 방법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두 번의 수술이 실패로 끝나고 아홉 살 되던 해 남은 한쪽 눈마저 실명됐다.
아버지는 은행원이었지만 아들 셋을 키우며 수십 차례에 걸친 그의 수술비를 감당하기가 버거웠다. 집보다 병원에 있는 시간이 더 많던 그를 곁에서 지켜야 했던 어머니 또한 그의 형과 동생을 돌볼 여력이 없었다. 가족들은 친척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가정 형편은 빠듯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신씨는 시각장애를 슬픔이나 절망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제가 좋아하는 말 중 하나가 ‘슬퍼서 울지만 울어서 더 슬프다’라는 말이에요. 다들 장애를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 같다고 하지만 제 성격이 워낙 낙관적이어서 특별히 힘들었던 기억은 별로 없어요. 오히려 제가 태어나던 순간부터, 수년간의 노력이 물거품이 돼 실명을 선고받았을 때 저보다 부모님의 마음이 더욱 아프셨을 것 같아요.”
서울맹학교를 다니며 악착같이 공부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서울대에 입학한 시각장애인이 없었지만 그는 호기롭게 ‘서울대에 들어가겠다’는 각오로 1등을 놓치면 큰일 날 것처럼 공부에 매진했다.
“맹학교의 초·중학교 과정은 일반 과정과 똑같지만 고등학교는 일종의 직업 훈련 교육과 비슷해요. 대부분 안마와 침술 수업을 받으면서 공부는 개인적으로 하죠. 당시만 해도 시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도 제한적이었어요. 결국 어머니는 여러 가지 궁리 끝에 당시 맹학교 음악 선생님이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고, 음악 선생님이 되라며 제게 피아노를 가르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피아노에 흥미가 없던 그는 어머니의 등쌀에 못 이겨 6년 동안 반 강제적으로 피아노 학원을 다녔는데 결국 그것이 신씨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15세 되던 겨울, 맹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남성 4중창단의 반주자로 미국 공연에 참여했다가 그의 인생은 전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저를 눈여겨본 선교사가 피아노 반주자로 저를 추천했는데, 학교에서는 반대가 심했대요. 중창단원들은 모두 고등학생들인데 저만 중학생이었거든요. 저보다 피아노를 훨씬 잘 치는 선배들도 많았으니까요. 그런데도 그 선교사가 저만 고집했어요. 나중에 여쭤보니까 ‘미국에서 어떤 기회가 주어지더라도 너라면 그 기회를 꽉 잡을 것 같았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실제로 엄청난 기회가 찾아왔다. 기금 마련을 위해 미국을 순회공연을 하던 중, 필라델피아에 있는 한 특수학교에서 유학 제의를 받은 것. 당시 그 학교에서 개발도상국 장애 청소년을 후원하고 있었는데, 한국 학생을 초청할 계획을 세우다 공연단에서 가장 어린 그를 적임자로 지목했다.
“저희 집안 형편으로는 유학을 꿈도 꿀 수 없었는데, 기숙사비와 학비를 지원해 준다고 해서 열다섯 살에 혼자 유학을 떠났어요. 그런데 막상 찾아간 학교는 제가 기대했던 것과 많이 달랐어요.”
물론 시설과 환경은 훌륭했다. 어린 나이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던 탓에 홀로 지내는 낯선 이국땅도 두렵지 않았다. 문제는 ‘장애인을 위한 교육’이 그리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것이다.

억지로 배운 피아노가 인생을 바꿔놓다

美 월가의 기적이 된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 신순규




“학교 수업이 복합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어서 학업량이 너무 적었어요. 더 많은 것을, 더 깊이 배우는 데는 한계가 있었죠. 일반 학교로 전학 가고 싶었지만 미국에 연고가 전혀 없어 어쩔 수 없었죠. 이럴 바에는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무렵, 기적적으로 선교사 한 분이 상상도 못할 제의를 해오셨어요. 처음 미국에 갔을 때 그분의 소개로 6주간 일반 가정집에서 머문 적이 있는데, 마침 제 사정을 안 그 집 부부가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들의 집에 와서 살라고 하신 거예요. 정말 감사했죠.”
두 번째 행운을 만난 신씨는 데이비드 부부의 집에 머물면서 일반 고등학교를 다녔다. 전교생이 1천3백여 명에 불과했던 시골의 작은 학교에는 중국계 미국인 한 명과 자신, 그리고 흑인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백인이었다. 그럼에도 인종차별이나 소외감을 느껴본 적이 없다. 오히려 인기 투표만으로 선출되는 학생회장에 뽑힐 만큼 학교생활에 잘 적응했다. 그는 “당사자가 차별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떤 차별도 차별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낙천적이고 긍정적인 그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전교 2등 자리(1등은 늘 중국계 미국인 학생의 차지였다) 를 한 번도 놓친 적 없던 그는 하버드와 MIT 등 명문 대학에 합격했다. 그 무렵 정신과 의사가 되는 게 꿈이었고, 하버드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했다.
“의사가 되려면 학부 과정을 마치고 의대 입학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그 무렵 사실상 시각장애인은 의사가 될 수 없다는 새로운 법규가 만들어졌어요. ‘의사는 누구의 도움 없이 환자의 증상을 진단해야 한다’는 법이었죠. 그동안 공들였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거기서 주저앉을 신순규 씨가 아니었다. 그는 대학교수로 진로를 변경하며 MIT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나갔다. 가정 형편에 따라 장학금을 차등 지급했던 하버드대에서는 전액 장학금으로 공부를 했지만 석사 과정부터는 오히려 돈을 받고 조교로 일하며 공부했다. 박사 학위만 받으면 교수가 될 수 있는 자리였다. 당시 연구의 일환으로 금융계에 종사하는 사람 중 장애인의 비율과 그들의 생활을 조사하던 신씨는 그 일을 통해 인생의 또 다른 변화를 경험했다.
“조사를 해보니 시각장애인으로 투자은행에 근무한 사례가 전혀 없더군요. 그렇다면 내가 도전해보자 싶었죠. 그날부터 월가에 있는 투자은행 대부분에 입사 지원서를 냈어요. 한 군데도 서류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했지만 수십 차례 은행에 전화를 걸어 입사 결과를 물었고, 결국 JP모건에서 만나자는 응답이 왔어요.”
JP모건은 그를 금융인이 아닌 인사과 인턴으로 채용했다. 하지만 그는 한 달 뒤 기업을 분석해 대출 여부를 결정하는 대출 심사역으로 채용됐다.

이제 누군가에게 행운을 선물하고 싶다

美 월가의 기적이 된 시각장애인 애널리스트 신순규

신씨가 재무분석에도 이용하는 휴대용 점자 키보드.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지 못할 일은 없다.



경영학 교수를 꿈꿨지만 막상 현장에서 일해보니 학교로 돌아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주식, 펀드, 채권 등의 이야기만 나오면 목소리부터 달라질 만큼 이 분야에 깊은 흥미를 느꼈다. 경력이 쌓이고 능력 또한 인정받자 이직을 위해 다른 회사에 지원서를 내고 면접을 보더라도 ‘시각장애’에 대해 묻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시각장애인 최초로 금융계에서 입지를 다지는 순간이 온 것이다.
“2, 3년 전까지만 해도 시장 분석과 애널리스트 관리만 했지 고객들을 직접 만난 적은 없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고객들 앞에 서는 일이 많아지더라고요. 투자를 망설이고 있던 분들이 저를 만난 후 투자를 결정한 경우도 늘었고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처럼 보이는데 오히려 혼자 힘으로 자산관리에서 탁월한 성과를 내고 있다는 점이 더욱 믿음을 심어준다고 하세요.”
신씨는 장애인을 위한 봉사단체에서 만난 아내와의 사이에서 일곱살 배기 아들을 두고 있다. 그는 결혼 10년 만에 어렵게 낳은 아들 이야기를 들려주며 긍정적인 생각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강조한다.
“우리 아들이 엄청난 개구쟁이예요. 그 아이와 시간을 보낸 사람들의 반응은 딱 두 가지입니다.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라 재미있었다’와 ‘아이를 돌보는 게 너무 힘들었다’죠. 힘들다고 생각하면 더 힘들어지는 거예요. 즐거운 마음과 긍정적인 생각으로 바라보면 힘든 것도 어려운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그가 느끼는 시각장애의 불편함은 뭘까. 신씨는 대번에 “상대에게 필요한 걸 모두 들어줄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아내와 말도 통하지 않는 오지로 해외여행을 떠났을 때 갑자기 두통과 구토를 호소하는 아내를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의 안타까운 마음이 지금도 그의 가슴에 아련히 맺혀 있는 듯했다.
그는 도움을 받는 인생이 아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오래전부터 시각장애인 혹은 난독증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오디오 교과서를 만들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또한 그는 한국의 보육원과 연계해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복지재단 ‘야나(YANA-You are not alone)’ 이사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그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있다.
“제가 데이비드 부부를 만난 것이 큰 행운이었듯, 다른 아이들에게도 희망을 전해주고 싶어요. 그것이 제가 받은 세상의 기적을 다시 한 번 재현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자를 더욱 부자로 만들어주는 지금의 직업은 제 가족의 윤택한 삶을 위한 것일 뿐, 더 가치 있는 곳에서 저를 필요로 할 거라 믿어요. 앞을 볼 수 없다고 해서 세상의 빛이 될 수 없는 건 아니에요.”

장소협찬 | 카페 라라(031-916-1225)

여성동아 2012년 9월 5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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