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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산부인과 의사 시신 유기 사건 미스터리

불륜, 약물 중독…

글 | 권이지 객원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REX 제공

입력 2012.09.18 09:28:00

7월 30일 서울 강남 유명 산부인과에서 벌어진 엽기적인 사건. 소속 의사가 내연 관계에 있던 유흥업소 여성과 병원 내에서 약물을 투여한 뒤 성관계를 맺었고, 그 직후 여성이 사망하자 의사가 사체를 아내와 함께 유기했다. 왜?
강남 산부인과 의사 시신 유기 사건 미스터리


“언제 우유주사 맞을까요?”
7월 30일 오후 8시 54분.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유명 산부인과 의사 김모(45) 씨가 내연 관계에 있던 이모(30) 씨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우유주사는 중독성이 있어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된 수면마취제 ‘프로포폴’의 은어다. 보통의 주사약처럼 무색투명한 대신 우유처럼 불투명한 흰색을 띠어 붙여진 이름이다. 프로포폴 과다 투약으로 사망한 마이클 잭슨은 평소 이 약을 ‘우유(milk)’라고 불렀다.
강남 고급 유흥업소 여성으로 알려진 이씨가 “오늘요 ㅋㅋㅋ”라는 답 문자를 보내고 김씨의 병원을 찾은 것은 오후 11시쯤. 이씨가 진료실로 들어가자 밖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김씨가 몇 분 뒤 병원에 도착했다. 7월 31일 오전 12시 1분. 이씨는 병실로 향했고, 김씨도 그를 뒤따랐다. 김씨는 생리식염수에 수면유도제 ‘미다졸람’ 5ml를 섞어 이씨에게 투약했다. 그리고 포도당 영양제인 하트만덱스 1L에 수술용 마취제인 나로핀, 베카론, 리도카인 및 비타민제 비콤, 진통제인 케로민, 항생제 박타신 등 10여 종의 약품을 섞은 정체모를 혼합약을 정맥주사로 투여했다. 이 중 나로핀은 정맥으로 투여할 경우 근육이완작용으로 호흡곤란이 일어날 수 있는 약품이다.
오전 1시 50분쯤 김씨는 급히 병실에서 나와 진료실에서 청진기와 펜라이트를 가지고 들어갔다. 오전 2시 42분에는 병실에서 나오더니 휠체어를 갖고 또다시 병실로 들어갔다. 이씨는 숨진 상태였다. 휠체어에 이씨를 태운 김씨는 곧장 병원 지하 주차장에 있는 자신의 승용차로 향했다. 이씨의 시신을 싣고 그는 자택으로 차를 몰았다. 아내 A(40) 씨에게 환자가 죽었다고 알린 김씨는 다시 오전 4시 40분 경 한강공원 잠원지구로 이동했다. A씨는 자신의 차를 몰고 그 뒤를 따랐고, 남편이 차를 버리고 올 동안 기다렸다. 남편을 태운 A씨는 병원에 남편을 내려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오후 6시경 서울 한강공원 잠원지구 수영장을 찾은 시민이 아우디 승용차 안에 누워 있는 여성을 보고 신고했다. 몇 시간 뒤 김씨는 변호사를 대동하고 경찰에 출두해 자수했고, 아내 A씨는 살인방조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다. 경찰 조사 당시 A씨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집에 온 남편이 자기 실수로 환자가 죽었다고만 말했다”며 “둘 사이가 내연 관계인지는 몰랐다”고 진술했다.

우유주사로 얽힌 남녀
경찰 조사결과 김씨와 이씨는 약 1년 전 수술 때문에 알게 된 뒤 부적절한 관계를 맺어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김씨는 당초 진술에서 “이씨가 피곤하다고 해 영양제를 투여했다”고 했으나, 1차 부검 결과 이씨의 몸에서 정액이 검출되자 성관계 사실을 인정했다.
두 사람의 만남은 김씨가 이씨의 집을 방문하는 형식으로 약 6차례 정도 이뤄졌다. 경찰은 “두 사람 사이의 돈 거래는 드러난 바 없다”고 밝혔으나 가끔 연락을 할 때마다 프로포폴을 투약하고 성관계를 맺은 정황을 볼 때 이를 맞교환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프로포폴은 일반적으로 위내시경이나 대장내시경 검사 시 수면마취제로 사용된다. 하지만 저용량으로 투약하면 환각 효과가 있고, 맞고 나면 몸이 개운하고 힘이 난다고 해서 일부에서는 ‘힘주사’라고도 불린다. 식품의약품안전청에서는 과다 투약 시 호흡 정지의 위험성이 있는 이 약품을 2011년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하지만 환각 효과 때문에 오·남용이 심각한 상황. 이번 사건이 발생하기 며칠 전 근처 서울 강남경찰서에서는 프로포폴 상습 투약으로 중독된 피의자 B(32) 씨가 절도 행위를 하다 발각되는 일도 있었다. B씨는 강남 소재 성형외과 등을 찾아가 직원들의 관리가 소홀한 틈을 이용해 프로포폴을 절취하고 이를 투약해온 것. 그는 마약류관리에관한법률위반(향정) 및 절도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이씨는 숨을 거두기 전에는 정체불명의 혼합약물을 투여 받았으나 그가 원하던 약품은 프로포폴이었다. 프로포폴은 처방전이 있어야 맞을 수 있으며 병원은 치료받은 환자와 투여량, 투여 목적 등을 관리대장에 기록하고 2년간 보관해야 한다.
그런데 김씨는 왜 프로포폴이 아닌 미다졸람을 투약했을까. 경찰 안팎에서는 의사인 김씨가 이씨와의 성관계를 인정한 사실에 비춰 미다졸람을 영양제와 함께 투약해 성관계 시 흥분을 돋우는 최음제나 환각제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미다졸람은 프로포폴과 함께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지정된 약품으로 수술 전 진정(수면 또는 가면 상태 유도 및 불안 경감) 및 수술 전후의 기억력 장애를 유도하는 목적으로 투여하는 약물이다. 김씨는 당시 “피곤해서 미다졸람을 맞아야겠다”며 간호사에게 이를 받아 이씨에게 투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미다졸람은 프로포폴만큼 환각 효과가 없어 다른 약물을 섞어 투여했을 것으로 본다. 하지만 김씨가 투여했다고 털어놓은 13가지 약물 중 ‘리도카인’은 국소마취제로 신경 차단을 요하는 증상에 사용되는 것으로, 기자가 취재한 마취통증의학과 전문의들은 하나같이 “만취 상태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섞을 수 없는 약품을 조합했다. 최음제 용도는 아닐 것”이라고 의견을 밝혔다.

강남 산부인과 의사 시신 유기 사건 미스터리

1 사건이 발생한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산부인과. 2 3 ‘고인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CCTV영상. 병원에 들어간 지 4시간 만에 그는 차가운 시신이 돼 차량에 옮겨져 유기됐다.



사건 장소가 산부인과? 해당 병원 산모 충격
이번 사건은 사건이 발생한 장소가 산부인과이고, 피의자가 생명 탄생 과정을 집도하는 산부인과 의사였기 때문에 충격이 더 컸다. 해당 산부인과의 사과 아닌 사과문도 실망감을 안겨줬다. 병원 측은 “사건의 책임을 통감해 진료비 할인 행사를 진행하겠다”고 병원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려 오히려 사람들에게 반감을 샀다.
진료비 할인행사가 시작된 첫 날 기자가 사건이 발생한 산부인과를 찾아갔으나 병원 안은 한산했다. 1층에서 관리인들이 취재진의 사진 촬영을 막기도 했다. 접수실과 진료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벽면에는 해당 병원 의사들과 진료과목이 붙어 있었으나 김씨의 이름만 지워진 상태였다. 진료실에서도 그의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 내원한 사람들에게 사건이 일어난 병원인데 부담스럽지 않으냐고 묻자 “이미 다니고 있는 병원이고 의사도 다른데다 지금 상태에선 옮길 수 없어 찜찜하지만 계속 다닌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간호사에게 현재 병원 상황에 대해 묻자 “답해줄 수 없다”며 취재를 거부했다. .
경찰은 김씨를 사체유기,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로 8월 9일 검찰에 송치한 상태다. 숨진 이씨에 대한 정밀 부검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병원에서 의약품 관리를 담당하던 약사에게 특별 관리를 요해야 하는 향정신성의약품 관리가 소홀한 책임을 물어 경찰이 약사를 현재 마약류관리위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한 상태다. 해당 병원의 원장도 관리 소홀로 추가 조사를 받을 예정이다.
검찰로 송치된 이번 사건에 대한 자세한 결과가 나오지 않은 상태이기에 김씨를 범인으로 단정할 수 없지만 현재 드러난 정황만으로도 씁쓸한 세태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돈와 성, 쾌락, 약물중독, 책임전가 및 회피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이 한데 뒤엉킨 사건이기 때문이다.

여성동아 2012년 9월 5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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