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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랄라세션 임윤택 멈추지 않는 열정

“문제아라는 편견, 암 세포와 싸우며 희망 아이콘 되기까지”

글 | 장혜정 객원기자 사진 | 문형일 기자, 안하진, 해냄 제공

입력 2012.08.14 17:45:00

2011년 11월 11일 울랄라세션은‘슈퍼스타K 시즌3’ 결승 무대에 서 있었다.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잠시 숨을 고르던 사회자가 입을 열었다. “최종 우승자 울랄라세션.” 순간 리더 임윤택이 손을 번쩍 들어 올려 멤버들을 끌어안았다. 주위의 온갖 우려 속에서 값진 우승을 거머쥔 그들은 엉엉 울고 있었다. 말기 암마저 꺾을 수 없었던 임윤택의 열정은 이렇듯 작은 기적을 빚어냈다. 그 후로부터 약 8개월. 문제아였던 그가 이 시대 최고의 ‘희망 아이콘’이 되기까지를 담은 책이 나왔다.
울랄라세션 임윤택 멈추지 않는 열정


7월 19일 오후 2시 30분. 서울의 한 호텔에서 그룹 울랄라세션의 리더 임윤택(33)의 출판기념 기자간담회가 열렸다. 부쩍 수척해진 몸과는 대조적으로 밝고 씩씩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네던 임윤택은 연신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8월 7일 헤어디자이너 이혜림(29) 씨와의 결혼을 앞두고 있는 그는 9월이면 아빠가 된다. 지난해 5월, 지인의 소개로 만나 연인이 된 두 사람은 투병 생활을 함께 하며 서로에게 큰 힘이 돼 주었다. 몸이 아픈 남자와 미래를 약속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겠지만, 이씨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아껴주는 임윤택의 모습에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더군다나 그의 뱃속에는 어여쁜 딸까지 자라고 있다.
예쁜 아내와 사랑스런 2세, 자서전 출간과 울랄라세션 첫 콘서트(8월 25일)까지 앞두고 있으니 그의 얼굴에 웃음이 가시지 않는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그러나 이런 벅찬 행복을 느끼기까지, 그가 달려온 길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그래서일까. 갓 출간된 자신의 에세이‘안 된다고 하지 말고 아니라고 하지 말고’를 매만지던 그의 표정은 참으로 복잡 미묘했다. 이 한 권의 책 안에 달고, 맵던 그의 33년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슈퍼스타K 시즌3’의 우승을 거머쥐며, 하루아침에 슈퍼스타로 거듭난 그는 요즘 밀려드는 공연과 강연으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워낙 특이한 인생을 살아왔기에 책을 써보라는 제의도 수없이 받았지만, 그는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한사코 거절했다. 그랬던 그가 “어렵게 생각 말고 그냥 살아온 얘기를 하라. 임 단장이 겪은 일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다”라는 소설가 이외수 씨의 조언에 생각을 바꾸게 됐다. 그는 자신의 경험이 꿈을 위해 매진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칫 흠이 될 수 있는 어두운 과거까지 탈탈 털어 책에 담았다.

춤추기 위해 살을 뺀 진짜 춤꾼

울랄라세션 임윤택 멈추지 않는 열정

임윤택이 갓 출간된 자서전을 든 채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어릴 적 임윤택은 방송 쇼 프로그램에서 댄스 가수가 나오면 작은 엉덩이를 흔들며 안무를 그대로 따라하곤 했다. 그러나 초등학교 입학 후 비만이라고 할 만큼 뚱뚱해지자 말수도 줄고 성격도 내성적으로 바뀌었다. 그런 그가 춤의 매력에 빠진 건 중학교 수학여행 때. 친구들 손에 이끌려 얼떨결에 전교생 앞에서 춤을 추게 된 후 그 매력에 빠져 혼자 춤 연습을 시작했다. 하지만 비만에 가까운 둔한 몸집으로 춤을 추려니 어딘가 우스꽝스러웠다. 여섯 살 위인 그의 형이 보다 못해 “춤을 추려거든 살부터 빼라”고 충고했고 그는 그렇게 좋아하던 야식도 거른 채 다이어트와 춤 연습을 병행했다.
당시 그에게 최고의 춤 선생은 TV였다. 가수들의 안무를 따라하며 연습을 계속하던 그는 어느새 주위에서 손꼽는 춤꾼이 됐고 그를 중심으로 춤 좀 춘다는 친구들이 하나 둘 모였다. 중학교 2학년 때 50개 팀을 제치고 전교 댄스대회에서 1등을 거머쥔 아이들은 그때부터 ‘루트 H’라는 팀명을 짓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부모님의 도움으로 연습실까지 마련해 연습에 매진한 결과 전국대회에서 우승할 만큼 실력을 키웠다. 급기야 단독 콘서트까지 갖게 되는데, 여기에는 임윤택의 수완이 결정적이었다. 당시 중학교 3학년에 불과했던 그는 구의원을 직접 찾아가 “청소년들의 놀이문화가 부족하니 공연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어린 학생의 당돌한 요구가 기특했던지 의원은 지원을 약속했고, 그해 서울 양천구민회관에서 열린 그의 첫 콘서트에는 1천 명 이상의 관객이 몰렸다.
춤이 돈이 된다는 사실을 안 것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여름방학 때 친구들과 경북 울진의 한 해수욕장으로 놀러간 그는 우연히 지역 불량배들 앞에서 춤을 춘 일을 계기로 시내 호텔의 한 나이트클럽 무대에서 댄스 공연을 하게 됐다. 이들의 공연이 얼마나 인기였는지 다른 나이트클럽으로부터 더 많은 출연료를 줄 테니 오라는 제안을 받기도 했다.



울랄라세션 임윤택 멈추지 않는 열정

내성적이고 숫기가 없던 어린 시절의 임윤택. 그러나 유치원 재롱잔치 무대에서만큼은 누구보다 끼가 넘쳤다.



실패와 방황, 다시 찾은 희망
중학교 시절 임윤택 인생의 절반이 춤이었다면, 나머지 절반은 싸움이었다. 초등학교 때, 늘 말이 없고 내성적이었던 그는 짓궂은 아이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며 알게 모르게 분노를 싹 틔웠다. 참고 참았던 감정이 폭발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다. 한 친구가 바닥 청소를 하고 있던 그 앞에서 침을 뱉은 것. 침을 뱉고 닦기를 거듭하다 결국 싸움이 터졌다. 죽기 살기로 친구와 맞붙은 그날 이후 그는 점차 폭력적인 아이로 변해갔다. 과거 자신을 괴롭힌 친구들을 찾아가 사과를 받아내기도 했고, 힘없는 친구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에겐 가차 없이 응징을 가했다.
방황은 고등학교 때 절정으로 치달았다. 고등학생이 된 그는 중학교 때 멤버들과 각종 대회에 참가해 상금을 휩쓸었다. 당시 전국댄스경연대회에 참가해 1백만원의 상금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아이들은 예전에 학교가 별다른 설명 없이 상금의 반을 떼간 일에 불만을 품고 그 돈을 몰래 나눠가졌다. 그러나 조용히 넘어갈 줄 알았던 이 일이 학교에 알려지면서 큰 위기에 빠졌다. 평소 학교 공부보다 검정고시를 보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했던 터라 그는 이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학교를 그만뒀다. 이듬해 다른 학교에 복학했지만 이 또한 얼마 가지 못했다. 이미 자퇴 경험이 있던 그를 곱게 보지 않았던 한 선생님은 그의 금팔찌를 보더니 “너 같은 놈이 가지고 있을 물건이 아니다”라며 도둑질을 한 것 아니냐고 몰아세웠다. 이 문제로 선생님과 면담을 한 아버지는 “더 학교를 다닐 필요가 없겠다”며 아들을 자퇴시켰다. 임윤택은 그때 아버지에 대한 죄송함으로 다시는 엇나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아들이 친구들을 데려오면 아무 말 없이 하루에도 몇 번씩 밥상을 차려준 어머니, 피곤한 몸을 이끌고나와 엉성하기 짝이 없는 연습실 벽을 수리해주던 아버지. 그리고 막내아들 때문에 한숨과 눈물이 끊이지 않던 어머니를 다독이던 형. 그들이 없었다면 임윤택이 그렇게 거침없이 날지 못했을 것이다.
임윤택의 왼쪽 날개가 가족이었다면, 오른쪽 날개는 친구였다. “사내아이들 운동화로 집 현관문이 닫히지 않을 정도였다”는 어머니의 말처럼, 그는 항상 친구들에 둘러쌓여 있었다. 그중에는 상황이나 사정에 따라 임윤택을 버리고 떠난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항암 치료를 받느라 머리가 휑해진 그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머리를 박박 밀고 나타난 친구도 있었다.
스무 살에 세 번째 고등학교(대안학교)에 들어간 임윤택은 이번에는 무사히 졸업하고 서울예대 방송연예과 2002학번으로 입학해 물을 만난 고기처럼 펄펄 날아다녔다. 고등학교 때부터 꾸려온 ‘이스케이프’ 팀을 이끄는 한편 자신이 졸업한 대안학교에서 후배들의 방과 후 활동을 도왔다. 하지만 이미 공연계에서는 프로 춤꾼인 그가 공연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무리였다. 학교 수업을 빼먹는 일이 잦아지자 그에게 선택의 순간이 왔다. 그는 1학년 2학기를 마치고 자퇴를 했다.

차별성으로 승부하라
대학을 그만둔 뒤 그는 팀 내 갈등 문제로 해체된 ‘이스케이프’ 대신 ‘겟 백커스’라는 새로운 연합팀을 구성했으나 오래가지 않았다. 뭔가 총체적인 문제에 직면했다고 생각할 무렵 지금의 울랄라세션 멤버인 박승일이 뜻밖의 제안을 했다. 그동안 발라드 일색이었던 미사리 무대에서 새로운 공연팀을 찾고 있으니 도전해보자는 것이었다. 춤에 관한 한 누구보다도 자신이 있었지만, 미사리 무대는 춤은 물론 노래 실력까지 요구하는 곳이었다. 그는 가창력을 겸비한 새로운 멤버를 영입해 ‘M.O.K(Man Of Korea)’라는 4인조 팀을 꾸렸다.

오디션을 겸한 첫 무대에서 그들은 피나게 갈고 닦은 춤과 노래를 선보이며 단박에 밤 11시 황금시간대 출연을 꿰찼다. 하지만 업소 주인들은 적당히 구색이나 맞추는 수준을 원했다. 또다시 임윤택의 반골 기질이 발동했다. 당시 ‘임 단장’으로 불리던 그는 매니저를 설득해 엄청난 규모의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관객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R·B, 아카펠라, 춤까지 겸비한 팀이 무대에 선다는 말에 미사리가 들썩였다. 무대에 선 지 보름이 채 되기도 전에 M.O.K를 보러 하루에 7백 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슈퍼스타K 무대에서 보여준 이들의 기량은 미사리 공연 때 다져졌다.
공연은 성공가도를 달렸지만 임윤택에게는 군 복무라는 과제가 남아 있었다. 그가 서른 살에 군 복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M.O.K 멤버들은 심각한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다. 야심차게 준비한 첫 앨범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빚더미에 앉자 그저 밥벌이를 위한 음악을 할 뿐이었다. 뭐든 대충대충, 적당히 하려 드는 멤버들을 바라보며 그는 과감히 팀 해체를 결정했다. 멤버들은 각자의 생활로 돌아갔고 미사리 공연은 기억 저편으로 멀어져가는 듯했다. 하지만 임윤택에게는 계획이 있었다. 정확히 6개월 후 다시 멤버들을 소집했다. 그 사이 멤버들은 음악에 대한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었다.

It‘s showtime 울랄라~

울랄라세션 임윤택 멈추지 않는 열정


하지만 팀을 재결성한 지 얼마 안 된 2011년 1월 임윤택은 멤버들에게 위암 4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전했다. 이제 이들이 음악을 해야 하는 목적이 달라졌다. “형의 수술비를 마련해야 한다”며 또다시 미사리 무대에 오르는 멤버들을 보며 그는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10년 넘게 자신을 믿고 따라준 멤버들에게 제대로 해준 게 없다는 생각이 들 무렵, 그의 시선이 ‘슈퍼스타K 시즌3’ 예선 공고에 꽂혔다. 만일 세상의 주목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동안 그늘에 가려져 있던 멤버들이 크게 성장할 수 있으리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울랄라세션이라는 새 이름표를 달고 세 번에 걸친 예선을 가볍게 넘긴 그들은 이후 버스커버스커, 투개월 등의 쟁쟁한 팀과 경쟁하며 매 무대마다 완벽한 퍼포먼스를 준비했다. 이들이 편곡해 선보인 ‘서쪽 하늘’ ‘미인’ ‘달의 몰락’ 등이 단숨에 가요 순위 차트를 석권했다.
긍정의 에너지 덕분일까, 본선 행 티켓을 거머쥘 무렵 수술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그의 몸 상태도 기적적으로 회복해갔다. 2011년 5월 수술이 가능하다는 진단을 받은 그는 가족과 멤버들에게 만일의 가능성을 담담히 이야기 한 뒤 수술대에 올랐다.
이후 항암치료를 받으며 삶에 대한 의지를 다져가는 그에게 ‘암 투병을 상업적으로 이용한다’ ‘암에 걸리지도 않았으면서, 홍보를 위해 거짓말을 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에 임윤택은 6월 주치의 라선영 교수(연세대 의대 종양내과 과장)의 소견을 첨부해 2011년 5월 위절제술을 받았으며, 9월에는 복강 내 암세포가 자라기 시작해 항암치료를 재개했다는 내용을 공개했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여전히 의혹을 접지 않고 있지만 임윤택은 개의치 않겠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서 이 문제가 언급되자 그는 “제가 원래 남의 말에 상처를 잘 받지 않는다”며 “만일 상업적 홍보를 위해 암을 이용했다면 생명보험 CF 제안도 받았들였을 것”이라고 했다. 또 그는 “꾸준한 항암 치료가 필요한 위암 4기”라고 재차 밝혔다.
기자간담회 말미에 그는 책 제목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아니라고 하지 말고’에 얽힌 사연을 들려줬다.
“‘안 된다고 하지 말고’는 사실 유재석 씨의 유행어입니다. 그 뒤에 ‘아니라고 하지 말고’를 제가 덧붙였죠. 우리 울랄라세션 멤버들이 무대에 오르기 전 꼭 이 말을 외쳤습니다. 또 제가 ‘어떻게?’하면 다들 ‘긍정적으로’라고 대답합니다. 이 구호가 저희에게는 큰 용기를 북돋아 줬습니다. 여러분도 해 보세요.”
“서른이 넘어서도 그렇게 살 거냐”며 우려와 비난을 섞어 보내던 이들은 이제 누구도 임윤택의 진가를 의심하지 않는다. 그의 표현대로 15년간 묵묵히 ‘꼴통’으로 살아온 대가는 이토록 달콤했다.

참고도서 |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아니라고 하지 말고(해냄)

여성동아 2012년 8월 5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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