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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뮤지컬의 대부 박명성 커튼콜

“천생 여자 박칼린, 연습벌레 옥주현, 몸값 아깝지 않은 조승우… 작품은 돈보다 사람을 남긴다”

글 | 김명희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신시컴퍼니 제공

입력 2012.08.14 15:09:00

국내 라이선스 뮤지컬 1호 ‘더 라이프’,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도 흥에 겨워 들썩이게 하는 ‘맘마미아’, 재즈 선율이 매혹적인 ‘시카고’…, 가난한 극단 연구생으로 무대와 인연을 맺은 신시컴퍼니 박명성 대표는 어느덧 대한민국 최고의 뮤지컬 제작자가 됐다. 30년간 묵묵히 배우가 무대에서 빛나도록 판을 만들었는데 어느덧 자신이 배우보다 더 빛나는 존재가 된 것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뮤지컬에서 번 돈을 연극에 쏟아 부을 각오가 돼 있다는 그의 무대 뒤 이야기.
한국 뮤지컬의 대부 박명성 커튼콜


박명성(49) 대표가 신시컴퍼니를 맡은 1999년부터 무대에 올린 작품은 연극과 뮤지컬을 포함, 총 96편이다. 1년에 일곱 작품 이상 꾸준히 공연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 최초 라이선스 뮤지컬인 ‘더 라이프’, 1천 회 공연을 돌파한 ‘맘마미아’, 각각 1백억원과 40억원의 제작비가 들어간 ‘갬블러’ ‘댄싱쉐도우’, 신경숙의 베스트셀러를 무대로 옮긴 ‘엄마를 부탁해’ 등 그 면면도 화려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뮤지컬 ‘시카고’와 ‘헤어스프레이’, 연극 ‘니 부모 얼굴이 보고 싶다’가 공연 중이다. 적게는 수억부터 수십억까지 막대한 제작비가 드는 작품을 턱턱 올리는 걸 보면 분명 물려받은 재산이 많은 모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웬걸, 관객의 마음에 불을 지핀 이 제작자는 자신을 “전남 해남 출신 촌놈”이라고 소개했다.

배우로도 연출로도 실패했지만 연극판 떠나지 못해
▼ 배우보다 더 배우처럼 생겼습니다. 고집스러워 보이는 곱슬머리에 선이 굵은 얼굴, 맛깔스러운 전라도 억양까지. 드라마나 영화에서 개성 강한 조연으로 딱 어울릴 것 같은데요.
“고등학교 때 광주에서 차범석 원작의 연극 ‘산불’을 보고 배우병이 생겼어요. 서울 올라와 전봇대에 붙은 전단지를 보고 동인극장을 찾아가 청소하고 심부름하는 일부터 시작했죠. 그때가 1982년이었어요. 선배들 어깨 너머로 연기를 배웠는데, 같이 살던 (김)갑수 형이 나를 데리고 다니며 자신이 주연으로 출연하는 작품에 단역으로라도 끼워 넣으려고 애를 많이 썼죠. 그때는 배우층이 두터워서 단역 하나 따는 것도 경쟁이 치열했거든요. 그런데 갑수 형이 아무리 ‘빽’을 써줘도 2분 이상 무대에 서 있은 적이 없어요. 연기가 안 되니까 등장하자마자 죽거나 쫓겨나거나…(웃음).”

▼ 김갑수 씨는 지금 한국을 대표하는 배우가 됐어요.
“갑수 형은 자신도 열심히 하지만 후배들 발성이며 대사, 호흡도 많이 봐줘요. 같이 배웠던 최일화 씨, 그리고 우리 극단 막내로 들어온 이대연 최철호는 쭉쭉 커나가는데 나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늘 제자리걸음이니까 재미가 없더라고요. 한 7~8년 해도 안 되니까 선배들도 너는 ‘배우로는 텄다’고 두 손 두 발 다 들더라고요. 재주가 없다는 걸 깨달았죠.”

▼ 그만하면 연극판을 박차고 나갈 생각도 했을 텐데….
“오히려 ‘지금까지 이 고생을 했는데, 뭐가 되든 한번 해보자’는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그리고 연극판이 사람 냄새가 난다고 할까, 죽어라 공연해도 한 달에 몇만원, 최저생계비만큼도 못 벌지만 정이 있었거든요. 그게 좋아서 못 떠났죠. 배우로는 도저히 안 되니까 조연출 겸 극단 살림살이를 담당하다가 1989년 처음으로 연출 기회를 잡았어요. 죽기 살기로 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형편없는 작품이 나왔어요. 당시 극단 대표였던 김상열 선생이 하신 말씀이 지금도 잊히지 않아요.‘배우는 텄다 싶어서 연출을 시켜놨더니 그것도 젬병이네’ 그러시더군요.”

▼ 배우도 안 되고, 연출도 안 되고 그래서 프로듀서가 됐군요.
“그렇죠. 그때 신시에서 ‘애니깽’ ‘등신과 머저리’ ‘우리는 나발을 불었다’ ‘바람 분다 문 열어라’ 같은 연극을 제작했는데, 내가 기획한 게 먹히니까 성취감이 느껴지더군요. 처음부터 기획을 했더라면 그만큼 안 됐을 거예요. 바닥부터 일을 배워서 배우나 스태프의 생리를 알고, 무대 돌아가는 걸 훤하게 꿰뚫고 있으니까 가능했지. 더러 공연이 망하면 배우들 출연료를 떼먹는 극단도 있는데 우리는 공연이 망하고 흥하는 것과 상관없이 배우들 능력에 따라 출연료를 주고, 한 번도 떼먹은 적이 없어요. 그게 좋은 배우들과 함께할 수 있는 계기가 됐죠. 배우들에게 돈은 생계 수단이기도 하지만 자부심이기도 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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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배우시절 박명성 대표를 살뜰하게 챙겼던 김갑수(오른쪽). 2 뮤지컬 1세대 배우들과 함께 왼쪽부터 전수경, 이경미, 최정원(사진 1·2 하하호호 스튜디오 제공). 3 그의 소울메이트 같은 음악감독 박칼린.



선배들에겐 깍듯한 후배, 후배들에겐 오빠 같은 존재
“21년 전 처음 뵈었는데, 그때는 말을 못하는 분인 줄 알았어요. 워낙 조용하셔서. 그래도 눈빛이 살아 있어서 언젠가는 일을 낼 분일 줄 알았죠.”(전수경)
“제가 신인 시절 언니들(선배들)한테 구박받고 울고 있을 때마다 ‘정원 씨 힘내세요’라며 친오빠처럼 따뜻하게 위로해주셨어요. 그래서 저는 대표님이 꿇으라면 꿇고, 울라면 웁니다.”(최정원)
“13년 전 한국 뮤지컬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떠나려는 순간 대표님이 ‘이리 한번 와보더라고’ 하시며 제 손을 잡아 이끌어주셨어요. 그 인연이 오늘의 저를 있게 했죠.”(박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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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신시는 오디션을 통해 배우들을 발탁해서 키우는 사관학교이기도 하다. 2 신시의 연습 장면. 3 뮤지컬 ‘아이다’에서 열창하는 옥주현.



7월 초 서울 신도림 디큐브아트센터에서는 박명성 대표를 위한 작은 축제가 열렸다. 그의 에세이 ‘세상에 없는 무대를 만들다’(북하우스) 출간에 맞춰 인순이, 전수경, 이경미, 최정원, 박칼린, 이태원, 성기윤, 김선영, 김우형, 배해선 등 내로라하는 뮤지컬 배우들이 박 대표가 제작한 작품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묶은 갈라 공연을 꾸민 것. 뮤지컬은 사람으로 시작해 사람으로 끝난다. 누구를 캐스팅하느냐, 배우와 스태프가 얼마나 호흡이 잘 맞느냐에 따라 성패가 갈리기도 한다. 성공 여부를 떠나 캐스팅부터 연습, 공연 기간까지 족히 1년을 함께하다 보면 가족 같이 끈끈한 사이가 된다. 그래서 박 대표에게는 96편의 작품보다 공연을 통해 만난 사람이 더 소중하다. 갈라쇼 무대에 오른 배우들은 박 대표를 “친오빠 같은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힘든 일이 있을 땐 따뜻하게 품어주지만 부족한 점이 엿보이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는다.

▼ 그 쟁쟁한 배우들이 한자리에 떴다는 게 놀랍네요.
“저 스스로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느껴요. 젊은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손숙, 강부자, 김성녀 선생님 같은 선배님들도 ‘박명성이 하는 작품이면 해야지’ 하시며 흔쾌히 나서주시거든요. 그간 별의별 고생을 다했지만 곁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행복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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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1999년부터 지금까지 신시컴퍼니와 박명성 대표가 받은 상들.



▼ 박칼린 씨를 처음 알아본 분도 대표님이라죠. 이번 갈라 공연을 연출한 박칼린 씨가 대표님 뮤지컬사(史)를 엮은 깜짝 공연을 준비한 걸 보면 두 분 우정이 대단한 것 같아요.
“1999년 그 친구가 다른 극단에서 일하다가 적응을 못하고 짐을 싸서 미국으로 떠나려던 순간, ‘시카고’를 함께 해보자고 붙잡았어요. 칼린도 내가 ‘더 라이프’를 라이선스로 들여와 공연하는 걸 보고 호감을 갖고 있었는데 ‘시카고’ 라이선스까지 들여왔다고 하니 놀라더군요. 당시만 해도 한국 뮤지컬은 영국이나 미국 걸 몰래 가지고 와 무대에 올리는 수준이었거든요. ‘더 라이프’ 라이선스를 들여올 때 ‘한국 뮤지컬 제작자들은 다 부도덕하다’는 편견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일본 대행사에서 보증을 해준 덕분에 가까스로 들여올 수 있었죠. 그 후론 해외 공연계에서 ‘한국에 미스터 박이라는 엉뚱한 사람이 있는데 라이선스를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라는 소문이 나면서 신용이 생겼어요. 그렇게 칼린을 주저앉힌 것이 벌써 13년이 됐네요. ‘시카고’ ‘렌트’ ‘키스 미, 케이트’‘갬블러’ ‘아이다’ 등을 잇따라 하면서 칼린도 한눈팔고 보따리 싸고 어쩌고 할 여유가 없었죠.”

▼ 두 분 다 고집이 센 것 같은데, 의견 충돌이 많지 않았나요….
“우리 둘은 한 번도 언성 높여 싸운 적이 없어요. 칼린한테 내가 을이니까(웃음). 모든 일은 갑이 아닌 을의 처지에서 볼 때 트러블이 없어요. 새로운 형식의 작품을 추구한다거나 신인 발굴을 중요하게 여긴다거나 하는 지향점은 같아요.”

▼ 박칼린 씨가 2010년 ‘남자의 자격’ 합창단을 통해 유명해진 후 신시가 덕을 많이 봤다고 하던데….
“‘남자의 자격’ 최대 수혜자가 바로 저예요(웃음). 뮤지컬 주 관객층이 아니었던 중년 남자들이 칼린 보려고 공연장에 많이 오거든요. 칼린이 카리스마도 있고 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천생 여자예요. 힘든 일이 있을 때 뜬금없이 전화해서 ‘대표님, 맥주 한잔 사주세요’ 해서 나가 보면 속상한 일을 털어놓으며 펑펑 울고 그래요. 여린 면이 있죠.”

▼ 제작자가 보기에 음악감독 박칼린의 매력은.
“남들이 못 듣는 소리를 끄집어내는 신비한 능력이 있어요. 칼린 손을 거치면 배우 자신도 몰랐던 깜짝 놀랄 만큼 좋은 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아요. 두 사람이 호흡만 잘 맞는다면. 대신 뮤지컬 정신, 원칙을 엄청나게 따져요. 자기가 정말 열심히 지도하는데 안 쫓아오는 배우는 과감하게 포기해버리죠(웃음).”

▼ 요즘 최고 뮤지컬 스타 옥주현도 신시 오디션을 통해 뮤지컬 배우가 됐죠. 처음 보는 순간 될성부른 떡잎이란 생각이 들던가요.
“2005년 ‘아이다’ 오디션에 웬 벙거지 모자를 쓴 키가 큰 친구가 있더라고요. 누구냐고 물었더니 핑클 리드싱어래요. 나는 그때 핑클이 뭔지도 몰랐는데, ‘이효리가 있는 걸그룹’이라고 해서 그런가 보다 했죠. 그런데 정말 파워풀하게 노래를 잘하더군요. 원래 재능도 있었고, 운도 좋았어요. 그때 처음 뮤지컬을 시작하면서 칼린을 만나 뮤지컬 정신, 소리를 끄집어내는 방법을 제대로 배웠거든요. 옥주현이나 고등학교 때 오디션을 보러 왔던 정선아 같은 친구들은 외국 스태프들도 브로드웨이 배우들보다 노래를 더 잘한다고 칭찬을 해요. 한국에서만 활동하기엔 아까운 친구들이죠. 영어만 잘하면 뮤지컬 본토인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통할 거라고 봅니다.”

▼ 옥주현이 뮤지컬 무대에서는 실력을 인정받고 있지만 인터넷에서는 안티가 많아요. ‘백만 안티’라고 들어보셨나요.
“말을 툭툭 던지는 습관이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 실제로 만나면 굉장히 겸손하고, 눈치도 빠르고, 열심히 하는 친구죠. 스타 의식 같은 것 다 버리고 동료 배우들과도 잘 어울리고 앙상블을 위해 자신을 낮출 줄도 알고. 백만 안티도 그 친구 진면목을 알면 언젠가는 열성팬으로 돌아서지 않을까요.”

아이돌 스타의 치솟는 몸값, 꼭 사라져야 할 백해무익한 거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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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성 대표는 1999년 신시뮤지컬컴퍼니 대표를 맡으며 “딱 10년만 뮤지컬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시 한국은 뮤지컬 불모지나 다름없었지만 그의 눈에는 블루오션이었다. 흥이 있고, 트렌드에 민감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라면 충분히 통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물론 대박만 거둔 건 아니다. 대부분이 흥행에 성공했고,‘맘마미아’는 1천 회 공연을 돌파하며 8백억원이라는 수익을 안겼지만 제작비 1백억원을 쏟아부은 ‘갬블러’, 자신을 무대로 이끌었던 연극 ‘산불’을 뮤지컬화한 ‘댄싱쉐도우’는 수십억원씩 적자를 안겼다. 한때 공연계에 ‘신시가 문 닫게 생겼다’는 소문이 돈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게 10년간 뮤지컬계에서 한 획을 그은 그는 2009년 회사 이름을 신시컴퍼니로 바꾸고, ‘침향’ ‘피아프’ ‘가을소나타’ ‘33개의 변주곡’ ‘대학살의 신’ ‘엄마를 부탁해’ 같은 작품성 높은 연극도 제작해오고 있다. 박명성 대표는 “원래 본바탕이 연극이라 뮤지컬만 했을 땐 뭔가 켕기고 뒷골이 무거웠는데 연극을 시작하자 그런 증상이 싹 사라지고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한다.

▼ 연극배우들은 아직도 1년에 몇백만원도 못 버는 이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런데 아이돌 스타들은 뮤지컬 한 회 출연하면 몇천만원씩 받는다던데….
“아이돌 스타를 출연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글쎄, 우선 그 배역에 맞아야 하고, 천하 없는 스타라도 그 역을 소화하기 위해 투자하고 희생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해요. 나는 ‘한눈 한 번 팔아볼까’ 하는 스타와는 절대 일 안 해요. 일을 시작했더라도 불성실하면 소속사 사장에게 전화해 ‘당장 데려가라’고 하죠. 실명을 밝히지는 못하지만 그런 친구들 많아요(웃음). 연습량이 부족해서 더블, 트리플 심지어는 퀸튜플 캐스팅까지 가는데, 그런 경우엔 작품이나 다른 배우들에게도 민폐고요. 그 친구들이 티켓파워가 있어서 몸값이 비싸다고 하는데, ‘오빠’ 보러 오는 사람들이 미래의 뮤지컬 관객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에요. 비싼 개런티 때문에 티켓 가격만 높여 관객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보고 더군다나 아이돌 스타들이 비싼 개런티를 받는 건 목숨 걸고 이 일에만 매달려온 배우들에게도 상처가 될 수 있어요. 건강한 공연 문화를 위해서는 기량 있는 사람들, 충분히 작품에 뛰어들 준비와 자세가 돼 있는 친구들에게 기회가 주어지고 그 사람들이 제대로 대접을 받아야 합니다.”

▼ 비싼 개런티 하면 조승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은데, 회당 2천만원에 육박한다죠? 그것도 거품일까요.
“우리 컴퍼니에서 ‘렌트’를 했는데 그 정도 재능을 갖춘 남자 뮤지컬 배우는 1백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하다고 봐요. 돈으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친구죠. 특출한 재능, 감성, 센스에 노력까지. 일단 작품을 시작하면 아무것도, 심지어 인터뷰도 안 하고 거기에만 매달리거든요. 이름값, 몸값 제대로 하는 배우죠.”

▼ 그 밖에도 손꼽는 배우가 있다면.
“전수경, 최정원, 남경주 같은 뮤지컬 1세대 배우들은 말할 것도 없고 성기윤, 배해선, 김선영, 김보경 등도 앞으로 뮤지컬계를 짊어지고 나갈 보배들이죠. 인순이 선생님 열심히 하시고, 아이비도 성실하고 음감이 좋더군요. 김준수도 2~3년만 여기에 매달리면 좋은 배우가 될 자질이 있다고 보고요.”

▼ 아직은 연극이 뮤지컬만큼 돈이 안 되죠.
“물론 수익 창출은 어렵지만 그래도 제대로 사는 것 같은 신바람이 나요. 좋은 연극을 만들었을 때 희열은 뮤지컬 때와는 또 달라요. 어렵지만 희망도 있어요. 지금은 연극이 젊은 사람들의 전유물인데, 격이 있는 작품을 만든다면 중년 세대까지 끌어들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한국 뮤지컬의 대부 박명성 커튼콜


▼ 명지대 영화뮤지컬학과 부교수로 재직 중인데, 최근에는 초·중등학교에서도 연극을 가르쳐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계시죠. 외국에선 이미 초등학교부터 드라마 수업이 있고 방과 후 수업으로도 인기가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어린이들에게 연극을 가르치는 건 두 가지 측면에서 유용하다고 봐요. 첫째 연극의 작품성이 높다는 건 희곡이 얼마나 좋으냐, 연기를 얼마나 잘하느냐 문제인데 어릴 때부터 연극을 접하면 커서도 좋은 작품을 쓰고 연기도 잘하지 않겠어요. 영국에서는 초등학교부터 드라마 수업을 하는데, 그런 덕분에 좋은 연극 콘텐츠는 영국에서 다 나와요. 둘째 아이들 인성 교육 차원에서 긍정적이에요. 연극 교육이 학교 폭력을 없애는 데 가장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더군요. 연습하는 동안 다른 친구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고, 자신감도 키울 수 있으니까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과죠. 무엇보다 하는 동안 즐겁고 대본을 통해 인간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연극과 인연을 맺은지 꼭 30년, 다양한 레퍼토리로 관객들을 웃기고 울린 그의 눈빛은 여전히 살아 있다. 도전과 모험으로 가득 찬 그의 삶이야 말로 한 편의 살아 있는 드라마가 아닐까 생각한다.

여성동아 2012년 8월 5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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