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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인생 사용설명서 아홉 번째 | 죽기 전에 꼭 한 번

“포기했던 비행사 꿈, 40년 만에 이뤘죠”

한국산업기술시험원 기업지원본부장 김정섭

글 | 권이지 객원기자 사진 | 지호영 기자

입력 2012.07.17 14:26:00

우주선 그림을 처음 본 순간, 여섯 살 소년에게 비행은 삶의 이유가 됐다. 비행기 모형을 만들며 파일럿을 꿈꿨지만 시력 때문에 포기. 하지만 뜻이 있눈 곳에 길이 있었다.
마음속 깊이 미련을 남겨둔 40대의 그에게 1999년 가을, 작은 비행기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포기했던 비행사 꿈, 40년 만에 이뤘죠”


고개를 들면 볼 수 있지만 갈 수는 없었던 파란 하늘. 1903년 라이트 형제의 노력으로 인간은 ‘비행기’라 이름 붙여진 기계를 통해 하늘을 날기 시작했다. 양팔로 날지 못하는 인간이라 날고자 하는 마음이 강한 걸까.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손으로 하늘을 날고 싶다는 간절한 꿈을 이룬 사람이 있다. 바로 김정섭 한국산업기술시험원 기업지원본부장(55)이다.
김 본부장을 만나러 경기도 화성시 시화방조제 부근 매립지에 위치한 신외리 비행장을 찾았다. 흔히 공항에서 볼 수 있는 아스팔트 깔린 활주로 대신 갈대밭 사이로 평평한 황무지가 눈에 들어왔다. 활주로로 추측되는 쭉 뻗은 평지에는 군데군데 흙더미가 쌓여 있었다. 비행을 하기엔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죽 늘어선 비행기를 바라보는 그의 눈에는 애정과 열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 신중한 목소리에 자상한 아버지의 인상을 지닌 그는 절대로 이 ‘위험한’ 취미를 즐길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김정섭 씨가 여섯 살 때 아버지는 그림을 좋아하던 그에게 크레파스를 선물했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케이스에 그려진 우주선과 우주인이 자꾸 들어왔다. 그때부터 그의 꿈은 파일럿이 됐다. 우주인과 파일럿을 분별하기 어려웠던 어린 나이였던지라 한참 뒤에야 둘이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단다. 어릴 때는 하루에도 몇 번이고 꿈이 바뀐다는데 그는 한결같았다. 아버지가 용돈을 주면 곧장 동네 문방구로 달려가 모형 비행기를 샀다. 다른 모형도 만들어봤지만 비행기가 제일 좋았다던 그는 “월요일에 용돈을 받으면 모형 비행기를 만드는 3일 동안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오로지 파일럿의 꿈을 안고 공부하던 중학교 2학년 어느 날. 칠판 글씨가 잘 보이지 않기 시작했고, 결국 이듬해 3학년 때 시력이 나빠져 안경을 쓰게 됐다. “당시에는 공군사관학교 입학이 파일럿이 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었어요. 그런데 안경을 쓰면 결격 사유가 생긴 거고, 그것은 제 꿈을 이루지 못한다는 뜻과 같았어요. 현재는 공군사관학교도 시력 규정이 많이 완화됐지만, 당시에는 나안(맨눈) 시력 1.0 미만이던 제 눈으로는 파일럿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한길만 바라보던 소년의 꿈에 사형 선고가 내려졌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중학교 때까지 모았던 모형 비행기를 보면 마음이 아파 결국 1백 개 가까이 되던 것을 다 내다버렸다. 한강다리에서 뛰어내릴까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했다. 방황은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 계속됐다. 다른 방향으로라도 비행기에 다가갈까 하며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한 그는 졸업을 앞두고 행글라이더를 알게 됐다. “비행기가 아니면 내 몸으로라도 하늘을 날아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이는 얼마 가지 못했다. 날기 위해 산을 오르느라 운동은 됐다지만 원하는 비행을 할 수 없어 오히려 실망만 했다. 그 후 패러글라이딩에도 도전했지만 성에 차지 않았다.
다시 모형 비행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10년 전 경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만든 모형 비행기만 3백여 대. 그는 색까지 직접 칠했다며 휴대전화를 꺼내 집에 진열해둔 비행기 모형 사진을 보여줬다. 일반 항공기며 전투기며 다양한 크기와 모양의 비행기가 가득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제발 좀 치우라고 성화였다. 결국 1백 대는 처분하고 남은 2백 대는 아내가 장식장을 짜줘서 거기에 정리했다며 멋쩍게 웃었다.

하늘에 오르면 세속의 근심 모두 사라져

“포기했던 비행사 꿈, 40년 만에 이뤘죠”

비행을 통해 많은 것을 얻었다는 그는 앞으로도 힘이 닿는 한 계속 하늘을 날 예정이라고 한다.



1999년 9월, 경기도 안산 비행장에서 열린 에어쇼를 찾은 김정섭 씨는 우연히 그곳에서 행글라이더에 엔진을 얹은 듯 생긴 작은 비행기를 발견했다. 그때 처음 초경량 항공기를 알게 된 것이다. 이거라면 꿈을 이룰 수 있을 것 같다는 작은 희망이 마음속에 싹텄다. 초경량 항공기는 1인승의 경우 자체 중량과 연료 용량이 각각 150kg과 19L 이하, 2인승의 경우 225kg과 38L 이하인 작은 비행기를 말한다. 그 이상의 규격을 가진 항공기는 일반 비행기에 속한다.
“제 나이 마흔을 넘은 때였죠. 직장에서도 자리를 잡았고 아이들도 커서 여유가 생길 무렵 초경량 엔진 부착 항공기(ULM)을 만난 겁니다. 그걸 본 순간 온몸에 전율이 일었죠.”
본격적인 비행기 이야기가 시작되자 그의 눈이 아이처럼 빛난다. 다행히 초경량 항공기 자격증에는 시력 제한이 없었다. 그때부터 주변을 수소문해 비행 스쿨에 들어가 비행 교육을 받았다. 2002년에는 1인승 초경량 항공기 자격증을 땄다. 조금 아쉽다 싶던 무렵에 초경량 항공기(ULP)를 만나 바로 2인승 경량 항공기 자격증으로 기종을 변경하는 데 성공했다. 첫 단독 비행에 성공하니 그제야 어린 시절부터 마음에 남아 있던 한이 풀렸다.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돈을 모아 초경량 항공기를 구입한 뒤에는 주말마다 하늘을 날았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아내는 남편의 위험한 취미를 말리려 했지만 비행에 대한 열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터라 고집을 꺾지 못했다.
김정섭 씨는 가끔 낙동강이나 경북 칠곡까지 장거리 비행을 하기도 하지만 주로 시화방조제 부근에서 10년 가까이 비행을 즐기고 있다. 주위 사람들에게서 “질릴 텐데 왜 그곳에서만 비행하느냐”는 핀잔을 듣곤 하는데, 그는 한 번에 산, 들, 바다를 볼 수 있고 계절별로 항시 다른 풍경이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서해안의 낙조를 하늘에서 바라보는 것은 으뜸이라고 극찬했다. 비행을 시작하며 그의 삶은 어떤 면이 달라졌을까.
“비행을 하니 스님이 된 것 같아요. 이륙 전에는 눈앞에 크게 보이던 사물들이 점차 고도가 높아지면서 발 아래 보이잖아요? 바로 전날까지 목소리를 높이며 언쟁을 벌였던 사람도 제가 높이 올라갈수록 작아져요. 화를 냈던 일들이 하늘 위에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며 마음이 편해집니다. 이제는 명상하는 마음으로 비행을 즐깁니다.”
인터뷰 내내 그의 말과 표정에서 드러난 삶에 대한 깨달음은 40년 동안이나 꿈에 대한 갈증으로 괴로워하던 그에게 하늘이 내려준 것이 아닐까.

여성동아 2012년 7월 5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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