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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윤혜진 & 원로배우 윤일봉 부녀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입단

글 | 권이지 객원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국립발레단 제공

입력 2012.07.17 13:41:00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윤혜진이 유서 깊은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에 입단해 화제다. 그의 아버지는 한국 영화계의 산 증인인 원로배우 윤일봉.
분야는 다르지만 각자의 길에서 한 우물을 판 뚝심 있는 부녀 이야기.
발레리나 윤혜진 & 원로배우 윤일봉 부녀


애지중지 키운 딸이 한국 땅을 떠나 유럽의 작은 나라 모나코로 간다. 넓은 세상에서 날개를 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뼈를 깎는 노력으로 기회를 거머쥔 딸이 대견하면서도 물가에 세워 놓은 아이처럼 걱정스럽다.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인 윤혜진(32)과 원로배우 윤일봉(78) 부녀의 이야기다.
윤혜진은 오는 9월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으로 떠난다. 몬테카를로 발레단은 안무가 장 크리스토퍼 마이요가 이끄는 세계 정상급 발레단으로, 클래식 발레가 아닌 모던 발레를 주로 공연한다. 윤혜진은 2009년 마이요 안무의 ‘신데렐라’에서 표독한 계모 역을 맡아 개성 강한 연기로 주목받았다. 이후 마이요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는 줄리엣의 엄마인 마담 캐플릿 역을 맡아 도도하고 섹시한 중년 여자의 이미지와 사랑하는 조카 티발트의 죽음에 분노하는 모습을 탁월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윤일봉은 1948년 영화 ‘구원의 애정’으로 데뷔해 1990년대까지 50여 년간 1백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다작의 배우. 원래 성우로 연기 생활을 시작해 영화배우로 활약할 때도 깊은 울림을 지닌 중저음으로 멜로 영화에서 큰 인기를 모았다. 그의 전성기는 한국 영화의 황금기로 불리는 1960~1970년대로 최은희, 김지미, 윤정희, 장미희, 정윤희 등 당대 최고 여배우들과 멜로 영화를 찍어 ‘최고의 행운아’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여름의 초입, 국립발레단이 있는 서울 강남구 서초동 예술의 전당에서 윤일봉, 윤혜진 부녀가 모처럼 데이트를 했다. 윤일봉은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꼿꼿한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그래서인지 스크린에서보다 키(178cm)가 훨씬 더 커 보인다. 윤혜진이 동료들도 부러워할 만큼 큰 키(170cm)에 긴 팔과 다리를 가진 것은 아버지의 유전자임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땅 속 깊이 뿌리를 내린 향 짙은 야생화처럼 팔과 다리에는 무용수로서의 치열한 삶을 보여주는 자잘한 근육들로 가득했다.

마이요와의 만남으로 제2의 발레 인생 꿈꿔
윤혜진은 어릴 때 심장이 약해 운동 삼아 시작한 발레가 평생 업이 됐다. 남들보다 2~3년 늦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발레에 입문했지만 타고난 재능은 속이지 못했다. 서울예고에 진학했으나 1학년 때 미국 SAB(스쿨 오브 아메리칸 발레)로 유학을 떠났고, 미국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하자마자 1주일 만에 세종대 주최 전국 발레 콩쿠르에서 1등을 했다. 세종대에 수석입학하기까지 그의 발레 경력은 모든 게 순풍이었다. 하지만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진로 문제로 고민했다. 원래 프로 입단을 꿈꾸고 유학생활을 한 터라 대학을 계속 다니는 게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대학 졸업장을 포기하고 2001년 국립발레단에 입단했다.
“외국에서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발레단에 들어가 프로 무용수가 되는데 한국에서는 대부분 대학 졸업 후 입단을 해요. 그때는 이미 나이가 스물 넷, 다섯이 돼 어찌 보면 무용수로서 가장 예쁜 모습을 무대에서 보여주지 못하는 거잖아요. 그게 아쉬워서 발레단 오디션을 봤죠.”
국립발레단 최태지 단장은 그의 끼와 재능을 알아보고 그해 12월 크리스마스 특별 공연 ‘호두까기 인형’ 주역으로 발탁했다.
“제가 군무나 솔리스트를 거치지 않고 주역만 한 건 아녜요. 오히려 제 발레 인생에서 군무 생활을 했을 때가 가장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그런 시간이 없었더라면 무용수로 이 자리까지 오지 못했을 거예요.”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과의 인연은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립발레단이 마이요 안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공연할 때 그는 군무를 췄다. 그때 마이요의 작품을 처음 접하고 불꽃이 튀는 것 같은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그때까지는 클래식 발레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선뜻 모던 발레를 해볼 생각을 못 했어요. 그러다가 2009년 국립발레단이 마이요의 ‘신데렐라’를 공연할 때 계모 역을 맡은 뒤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에 들어가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됐죠.”
‘신데렐라’를 계기로 윤혜진은 또 다른 윤혜진을 발견했다. 마이요의 안무는 표정이나 동작이 워낙 강렬해서 처음 배울 때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솔직히 끝까지 해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마이요는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윤혜진을 도와주었다. 그 무대를 통해 윤혜진은 발레를 즐기는 자신을 발견했고, 관객들의 호응도 뜨거웠다.
2011년 마이요의 또 다른 작품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마담 캐플릿 역을 한 뒤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입단의 열망은 확신이 됐다. 그 전까지만 해도 새로운 발레단에서 시작하기엔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망설이고 있었다. 마이요의 아내인 몬테카를로 발레단의 주역무용수 베르니스의 추천도 큰 힘이 됐다. 3월 일본 투어를 온 마이요를 만나 프라이빗 오디션을 본 윤혜진은 3월 28일 집으로 날아온 발레단 계약서를 받아들었다. 꿈이 이뤄지던 순간이었다.
“마이요의 다른 작품들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설레요. 앞으로 원 없이 발레를 하고 싶습니다.”

모던 발레 하면서 “아버지 피 흐르는구나” 깨달아
윤일봉은 예술계 선배로서 딸의 발레를 어떻게 평가할까.
“연말에 공연하는 ‘호두까기인형’부터 ‘지젤’ ‘백조의 호수’ 같은 클래식 발레도 좋지만 혜진이는 개성이 강한 역을 잘 소화해내죠. 단편으로 했던 ‘젊은이와 죽음’과 마크 에츠가 안무한 ‘카르멘’의 마담M 역이 특히 좋았어요. 내 딸이지만 손끝과 표정을 통해 감정을 표현하는 건 발레리나들 가운데 최고인 것 같아.”

발레리나 윤혜진 & 원로배우 윤일봉 부녀

윤혜진이 국립발레단에서 마지막으로 공연한 ‘로미오와 줄리엣’. 왼쪽이 윤혜진이다.





발레리나 윤혜진 & 원로배우 윤일봉 부녀

국립발레단 연습실에서 연습중인 윤혜진. 가녀린 외모지만 그의 팔 다리는 대부분 근육이다.



해맑은 윤혜진의 얼굴에서 ‘신데렐라’의 계모, ‘로미오와 줄리엣’의 마담 캐플릿의 이미지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일단 무대에 서면 윤혜진의 카리스마는 악역에서 더 빛났다. 아버지의 연기력을 물려받은 것 아니냐고 했더니 클래식 발레를 할 때는 그런 생각을 해본 적 없단다.
“모던 발레에는 극적인 장면이 많아요. ‘신데렐라’에서 계모를 할 때나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마담 캐플릿을 할 때 남보다 ‘센’ 연기를 하는 게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제야 제게 아버지의 피가 흐른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죠.”
아버지는 여전히 딸의 연기에 대해 해주고 싶은 말이 많은 듯하다.
“움직임으로 감정을 표현하거나 대사나 연기로 표현하는 걸 보면 뭔가 통하는 점이 있지. 그래서 새로운 역을 맡으면 뭔가 조언을 해주고 싶어요. 내가 무용은 잘 몰라도 표정 하나라도 어떻게 처리하면 더 좋을지,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면 좋을지 아니까. 하지만 그럴 기회가 있어야지….”
사실 딸의 공연이 있으면 빠짐없이 가서 보고, 또 어떻게 하면 한 마디라도 도움이 될까 고민하지만 정작 쉽게 말하지 못하는 데는 평소 말수가 적고 묵직한 윤일봉의 성격도 한 몫 했다. 배우 윤일봉은 감정 표현을 잘 하지만 아버지 윤일봉은 표현이 서툰 편이다.
“저는 부모님한테 사랑한단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정말로요. 제가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엄마가 편지에다 ‘사랑한다’라고 써 보내신 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죠(웃음).”(윤혜진)
이 대목에서 윤일봉이 딸의 말에 태클을 건다.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라 마음 씀씀이에서 사랑을 느껴야 한다고.
“우리 집이 경기도 분당 끝에 있는데 혜진이가 현관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가 날 때까지는 잠을 못자요. 많이 늦는다 싶으면 전화해서 확인하죠. 이런 게 자식 사랑하는 부모 마음 아니고 뭐겠어요. 갑자기 생뚱맞게 ‘혜진아, 사랑한다’라고 할 수는 없잖아요.”

아버지는 걱정하지만 결혼은 꼭 하고 싶어

발레리나 윤혜진 & 원로배우 윤일봉 부녀


모나코 몬테카를로 발레단 입단이라는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온 딸. 먼 곳으로 떠나는 딸을 바라보는 아버지의 눈에는 아쉬움과 걱정이 교차했다. 미국 유학 시절에는 아버지가 종종 딸을 보러 갔지만 유럽, 그것도 한 번도 가본 적이 없는 모나코라니 걱정이 태산이라고 했다.
“내가 걱정을 하면 주위 사람들이 다 큰 딸을 두고 뭐 그리 걱정하느냐고 놀리는데, 부모의 마음은 그렇지 않아요. 화려한 나라라서 더욱 걱정이 되죠.”
윤혜진이 모나코로 떠나는 9월까지 아버지의 노심초사는 줄어들 것 같지 않다. 딸의 일이라면 매사에 전전긍긍하는 윤일봉이지만 딸의 결혼에 대해서는 관대하다 못해 무관심 수준이다. 윤일봉 자신도 결혼이 늦은 편이라 딸에게 결혼 스트레스를 주지는 않는다고 했다. 혼담은 자주 들어오지만 아버지 선에서 대부분 거절. 이 정도면 예쁜 딸을 누구에게도 주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마음이 읽힌다. 윤혜진도 짝이라는 것은 서로에 대해 잘 알고 이끌고 감싸주는 것이지 단순히 외모나 조건이 어울린다고 짝이 아니라는 아버지의 생각에 동의한다. 다만 부모님이 하도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니 오히려 결혼이 하고 싶어졌단다.
“결혼은 꼭 하려고요. 옆에 제 편이 꼭 있어야 할 거 같아서요. 제 큰 꿈 중 하나가 가족과 가정이에요. 아이들도 너무 좋아하거든요. 남편과 아이들 문제로 힘들어하는 친구들 보면 걱정은 되지만 부러울 때가 더 많아요. 제가 외로움을 못 견뎌서 그런가봐요(웃음). 남자 친구가 없으니 공연 끝나고 집으로 돌아올 때 특히 허전하죠.”
아버지는 예술가의 삶이 겉으로는 화려해 보여도 안으로는 외롭다는 것을 딸이 꼭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덧붙여 결혼을 먼저 생각하기보다는 발레를 더 애인처럼, 자식처럼 여기면 좋겠다는 것이 바람이라고. 옆에서 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던 윤혜진이 ‘어휴’하며 손사래를 친다.
“발레와 결혼할 거라고 말하는 친구들도 있는데, 저는 싫어요. 일은 일이고 삶은 삶이죠.”
아버지와 딸의 나이는 마흔여섯 살 차다. 윤일봉은 열여덟 살 연하의 여성과 결혼해 화제를 뿌렸다. 이에 대해 호기심 갖는 사람들이 있지만 결혼 35년 동안 부부는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왔다. 딸은 부모님이 존대하는 모습과 서로를 대하는 행동이 참 좋아보였다고.
“아버지가 저녁 9시 이후에 들어오시는 것을 본 기억이 열 번도 안 되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당연한 줄 알았죠. 그런데 나이가 들고 보니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게다가 운전을 못하는 어머니를 위해 평생 아버지가 기사 노릇을 해주셨어요. 일이 있어 나가시더라도 엄마가 어디 계신다 하면 꼭 픽업을 하셨죠. 그러고 보니 열여덟 살이나 차가 나니까 에이, 무조건 (아버지가) 도와줘야겠네(웃음).”(윤혜진)
“제가 좀 더 많이 살았으니 아내나 딸에게 조언을 많이 하죠. 사고방식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살면서 나이 차를 느끼지는 못해요. 그래도 내가 열이면 아홉은 양보해요.”(윤일봉)
백범 김구 선생이 70세 이후로 즐겨 썼다는 좌우명이 ‘눈 밟고 들길 갈 때 함부로 걷지 말자. 오늘 내가 남긴 자국이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된다’였다. 아버지가 배우 인생을 살아오며 남긴 발자국. 딸은 발자국을 바라보며 묵묵히 세상을 향해 걷는다. 더 빛난 삶 위해.

여성동아 2012년 7월 58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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