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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의 딸 김미루 파격 퍼포먼스… 돼지와 뒹군 104시간

“돼지, 고로 나는 존재한다(The Pig That Therefore I Am)”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지호영 기자

입력 2012.05.16 14:20:00

아버지 도올은 예쁜 딸에게 미륵 미(彌)에 누추할 루(陋) 자를 써서 ‘미루’라고 이름 지어줬다. 딸은 이름처럼 자랐다. 늘 낯선 장소에서 자연과 가장 가까운 상태로 자신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사진작가 겸 행위예술가 김미루. 이번엔 돼지우리 속으로 들어갔다.
도올의 딸 김미루 파격 퍼포먼스… 돼지와 뒹군 104시간


김미루(31). 사진작가 겸 행위예술가. 발표하는 작품마다 파격적이라고 평가받는 작가. 낯선 장소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피사체가 주는 임팩트는 강했다. 자신의 몸을 도구로 주제의식을 표현하던 김미루가 도올 김용옥(64) 한신대 석좌교수의 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대중은 다시 그에게 집중했다.
그의 작품전 ‘돼지, 고로 나는 존재한다(The Pig That Therefore I Am)’가 열린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트렁크 갤러리. 4월 3일 김영옥 이화여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아티스트 토크 현장에서 김미루는 자신의 작품 세계와 작품 활동 중 있었던 일화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이름처럼 ‘누추한 곳’에 주목하다
작품이 주는 강렬한 여운과 달리 청중 앞에 선 김미루는 수줍음 많은 소녀 같았다. 그는 자신을 내성적이라고 평가했다.
“지금도 잘 씻는 편이지만 어릴 때는 손을 하도 많이 씻어서 옆에서 사람들이 그만하라고 하기도 했죠. 뉴욕에서 사는 게 지하철도 더럽고, 굉장히 힘들거든요(웃음).”
조근조근 이야기하며 미소 짓는 김미루. 아티스트 토크는 한국어로 진행됐지만 긴 외국 생활에 그는 익숙하지 않은 단어가 나올 때마다 큰 눈을 도로록 굴리며 생각에 잠겼다.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었다. 영어 단어를 어떤 말로 풀지 어려워할 때마다 김영옥 이화여대 교수가 도움을 줬다. 강박적으로 씻는 습관이 있는 그가 어떻게 돼지우리에서 104시간 동안이나 돼지와 살을 비빌 생각을 한 걸까. ‘나는 돼지를 좋아하고, 돼지는 나를 좋아한다(I Like Pigs and Pigs Like Me)’ 퍼포먼스 이야기다.
“돼지는 사람들과 가까운 동물이잖아요. 하지만 가까우면서도 그만큼 돼지와 교류한 사람은 거의 없죠. 도시에서 돼지를 보기도 어렵고요. 대학교 때 인체 공부를 위해 아직 새끼를 낳지 않은 돼지를 해부해본 적이 있어요.”
사실 김미루의 꿈은 수의사였다. 어린 시절부터 동물을 무척 좋아했기 때문이다. 미술은 대학원 때 정식으로 전공했다. 2003년 미국 컬럼비아대학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의사가 되려고 준비하다 프랫 인스티튜트 미술학교로 진학했다. 그는 사람과 비슷한 구조를 가진 돼지에게 놀랐다고 했다. “특히 소화기관은 원숭이보다 외려 돼지가 더 사람과 비슷하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해부 때 만진 건 죽은 돼지였잖아요. 2005~2006년도쯤 베를린의 한 농장에서 살아 있는 돼지를 만져볼 기회가 있었어요. 개처럼 순하고 꼬리도 흔들 줄 알고, 사람을 인식하는 모습에 깜짝 놀랐죠. 그때부터 돼지에 관심을 뒀어요. 피부색도 인간과 비슷하니까 (작품에서) 시각적 파워도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수십 마리의 돼지 사이에서 벌거벗은 채로 웅크린 여인의 뒷모습을 찍은 사진. 사진 속 여인은 작가 자신이다.
“여기는 몰래 들어가서 촬영했어요. 퇴근하고 저녁 시간이었는데 5월이라 아직도 해가 떠 있더라고요. 차를 몰고 갔는데, 농장 주인에게 안 들키게 차를 세워두고 빨리 들어갔다 나왔죠. 안 들켰어요. 그런데 진짜로 무서웠어요. 돼지가 한 2천4백 마리 정도 있었을 거예요. 이렇게 생긴 돼지우리가 끝없이 이어져 있었죠.”
일명 ‘몰카’도 찍을 줄 아는 대담함은 보기와는 다른 부분. 암퇘지들과 촬영하다가 놀란 적도 있다고 했다.
“우리 문을 여는 순간 6백 파운드(약 270kg) 이상 되는 어마어마하게 큰 돼지들이 놀라서 한꺼번에 일어나는 거예요. 꽥꽥대는 돼지들의 비명과 덜컹거리는 소리에 엄청나게 무서웠죠. 손에 진땀이 흠뻑 날 정도로요. 사실 돼지가 무섭지는 않았어요. 농장 주인에게 들킬까봐 무서웠죠(웃음).”

돼지우리에서 본능적으로 동물의 언어 깨달아
김미루는 잊히고 버려진 공간을 작품에서 주로 다룬다. 국내 개인전은 이번이 두 번째. 3년 전에는 ‘나도(裸都)의 우수(憂愁)’ 시리즈를 선보였다. 대도시의 버려진 공간에 주목한 연작이었다. 뉴욕의 하수구, 버려진 설탕공장 등이 주 무대였다.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공간에 그는 주목하고 있었다.
아버지 도올은 예쁜 딸에게 미륵 미(彌)에 누추할 루(陋) 자를 써서 ‘미루’라고 이름 지어줬다. 딸은 이름처럼 자랐다. 여러 도시의 하수구, 지하도, 폐허가 된 누추한 공간을 헤집고 다니는 예술가가 된 것. 나체가 등장하는 작품이 화제가 되다 보니 지난해 6월에는 터키 이스탄불에서 나체로 사진을 찍다가 현지 경찰에게 체포될 뻔했다는 뜬소문이 퍼져 작가가 직접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도올의 딸 김미루 파격 퍼포먼스… 돼지와 뒹군 104시간




갤러리 2층에서는 그가 104시간 동안 돼지우리에서 벌인 퍼포먼스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영상 속에서 김미루는 돼지와 자신의 몸에 진흙을 바르기도 하고,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몸을 쓸어올리는 등 돼지들과 친해지려 노력했다.
“저랑 비슷한 몸무게의 암퇘지 두 마리를 사와서 마이애미에서 104시간 동안 논스톱으로 촬영했어요. 온순해서 같이 있을 때 편하고 좋더라고요. 지금은 어느 농장 가서 잘살고 있어요. 하하. 돼지와 지내는 동안 인간으로서 살면서 골치 아팠던 일을 잊어버릴 수 있었죠. 한번은 누워 있는데 돼지가 머리를 물려고 하더라고요. 호기심이죠. 새로운 존재, 인간 냄새는 나는데 여기 들어와서 사육하는 인간과 제가 너무 다르니까. 냄새 맡아보고 머리카락 무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사진 때문에 가만히 있었는데 놔두니까 거의 뽑아버릴 정도로 물어서 깜짝 놀라기도 했죠.”
두렵지는 않았을까. 그는 “물론 두려웠다”고 했다.
“돼지들이 호기심에 무는 경향이 있어요. 돼지는 화나면 소리부터 다르거든요. 그냥 두면 공격할 수도 있고, 일하는 사람에게 들은 바로는 물려서 병원까지 가는 일도 있대요. 너무 오래 물게 놔두지 않고 자꾸 움직이고, 팔을 돼지 코 위에서 흔들거나 코를 누르면 돼지들이 알아서 피하더라고요. 제게 동물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이 있어서인지 어떻게 보면 직감적으로, 원초적으로 깨달았던 거죠.”
퍼포먼스 내내 유리로 된 칸막이 안에서 지낸 그는 돼지가 먹는 음식을 먹고 건초를 이불 삼아 진탕에서 잠을 잤다. 그는 “밤에 너무 춥기에 지푸라기를 덮었는데 알레르기 때문에 온몸에 두드러기가 생겼다”라며 웃었다.
“저는 촉감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촉감이 없으면 느낌이 없어서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촉감을 통해 몸과 영혼이 만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있고요. 제게 피부는 듀얼리즘, 이분법, 그런 사상을 깨는 역할을 해요.”
작품전 제목 ‘돼지,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을 비판하는 의미를 담았다. 프랑스 철학자 데리다의 ‘동물, 고로 나는 존재한다(The Animal That Therefore I Am)’라는 대목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이성이 있다고 인간인 제가 돼지보다 더 우월하지는 않다는 거죠. ‘동물은 이성이 없기 때문에 살아 있는 기계다’, 데카르트는 항상 그렇게 얘기했어요. 저는 반대예요. 불교식으로, 동물도 살아 있기 때문에 원형으로 통해 있다는 거죠. 기가 통하니까. 기라는 게 사실 몸에 배어 있는 거고, 육체와 영혼이 따로 구분되지는 않잖아요. 대부분 동물은 굉장히 비인간적으로 잔인하게 사육되고 있어요. 집 가(家) 자에 들어갈 정도로 사람과 친밀했던 돼지가 이제는 살아 있는 동물이 아니라 하나의 로 머티리얼(raw material), 질료로 변한 거죠.”
하지만 자신의 작업은 “정치적인 게 아니라 시적인 작업”이라고 선을 그었다.
“제 몸을 돼지고기 걸듯 고리에 건다거나 하는 공격적, 정치적인 작업은 피해요. 남들이 했던 거라 재미도 없고(웃음). 저는 쇼킹한 게 지루해요. 재미를 못 느끼죠. 목표가 그쪽으로 내던져지면 시각적으로 어그레시브(aggressive)하게 만들려고만 하게 돼요. 그러다 보면 작품을 보고 금방 눈을 돌리는 사람도 생길 거고요. 성격상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고, 쉬워 보이면서도 이상한 느낌이 나는 작업을 좋아해요.”

도올의 딸 김미루 파격 퍼포먼스… 돼지와 뒹군 104시간


나체 작업 반대한 아버지, 편지로 설득
김미루는 아버지에 대한 생각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도올은 지난해 5월 한 특강에서 “딸이 사진 프레임 안에 나체로 있는데, 내가 보수적이라 미친 짓 하지 말라고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딸은 그런 아버지에게 편지를 썼다. 공간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한 오브제로 자기 육체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딸의 진심 어린 편지에 완강한 아버지도 손을 들었다.
“(아버지의 프리미엄으로 활동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저는 한국에서 활동을 별로 안 해서…. 뉴욕에서는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몰라요. 부모님께 도움받은 건 제가 공부하는 동안 학비 등을 지원해주셨다는 거죠. 그런 점은 감사드려요. 하하.”
벗었다는 사실만으로 화제가 되는 점은 “이해할 수 없다”고. 그는 과거 인터뷰에서 “아무도 위험하고 더러운 장소에서 모델이 되려 하지 않았기에 직접 등장할 수밖에 없었고 그게 가장 편한 방법이었다”고 밝혔다.
“한국에서는 문화적인 억압, 특히 몸에 대한 억압이 많은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벗은 모습이 왜 대중의 관심사가 되는지 이해가 안 돼요. 특별한 게 아닌걸요.”
세상의 경계에 서서 낯선 풍경과 익숙함 그 근처를 바라보는 김미루. 그는 그 자체로 세계와 세계를 잇는 이음매 노릇을 하고 있었다. 다음에 보여줄 작품에 대해서도 살짝 귀띔했다.
“다음에 다룰 건 역시 낯설고 버려진 세계예요. 힌트는 사막입니다.”

여성동아 2012년 5월 5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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