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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의 경쟁 상대는 서울 강남이 아니라 미국 뉴욕”

다산 목민대상 수상 배덕광 부산 해운대구청장

글 | 김화성 동아일보 전문기자 사진 | 지호영 기자, 해운대구청 제공

입력 2012.05.15 13:36:00

'해운대 동백섬에 벚꽃이 우우 피어나는 4월 5일 배덕광 구청장을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그는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그를 만나러 온 사람들이 줄을 섰다. 그의 결재를 기다리는 공무원들도 목이 빠지기는 마찬가지. 그는 에너지가 넘쳤다. 바로 얼마 전 다산연구소가 주최하고 행정안전부가 후원하는 ‘다산 목민대상(대통령 표창·상금 2천만원)’을 받아서일까. 대답이 시원시원하고 거침이 없었다.
“해운대의 경쟁 상대는 서울 강남이 아니라 미국 뉴욕”


배덕광(64) 부산 해운대구청장. 이 남자는 만나자마자 살갑다. 이야기하면 할수록 정이 간다. 우선 유쾌하다. 즐겁다. 심지어 편안하기까지 하다. 당연히 그는 일벌레다. 이렇다 할 취미도 없다. 담배도 못 피우고, 골프도 전혀 못 친다. 술은 어쩔 수 없이 조금씩 하지만 사실 온종일 오로지 ‘일! 일! 일!…’뿐이다. 하루에 많이 자야 5시간. 다행히 그는 이불 속에 들어가는 순간 3분이면 쿨쿨 세상모르게 곯아떨어진다. 그는 하루에 두 번 목욕탕에 간다. 새벽에야 그렇다 쳐도, 오후 업무가 끝난 뒤 왜 또 샤워를 하는 걸까. 저녁에 있을 각종 모임과 상가(喪家)에 가기 위해서다. 몸을 깨끗이 씻고 정갈한 마음가짐으로 찾아뵙는 게 예의라고 생각한다. 영락없는 ‘범생이’다. 어릴 적부터 엄한 밥상머리 교육을 받아서일 것이다.

스스로 ‘빵점남편’, 알고 보면 ‘애틋한 경상도 사나이’
▼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시니 제때 집에 들어가시나요?
“푸하하! 집사람(이필순)은 스스로 ‘생과부’라고 합니다. 제가 젊을 때부터 사람을 좋아해서 늘 늦게 들어가고 또 야근과 출장은 얼마나 많았겠어요. 집사람은 이제 남편이 들어오나 안 들어오나 신경도 안 씁니다. 집사람과는 1975년 스물일곱 때 결혼했는데 삼천포세무서에 있을 때 두 살 아래인 집사람을 만났어요. 6년 정도 연애했지요. 내 위로 형님 두 분이 계셨는데 그분들이 결혼을 안 하니 기다렸던 거죠.”

▼ 사모님이 부처님이나 예수님 가운데 토막도 아니고 살다 보면 부부싸움도 했을 텐데….
“부부싸움을 한 번도 안 했다면 거짓말이겠고 하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사소한 말다툼은 몰라도, 큰소리 내며 싸워본 적이 없어요. 1967년부터 세무공무원(9급) 생활을 하다 보니까 여기저기 이동이 많아서 집사람은 이삿짐 싸는 데 도사가 됐죠. 고마운 것은 그렇게 수도 없이 이사를 다녀도 힘든 표정 한 번 짓지 않고 묵묵히 따라줬다는 것. 그뿐인가. 내가 공직 생활하는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아침마다 와이셔츠와 바지를 다려주었습니다. 몸이 아파도 그것만은 어김없이 해줘요. 공무원 박봉에도 아이들(1남2녀)을 잘 키웠으니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내가 힘든 눈치면 집사람이 먼저 알아차리고 ‘힘들지요? 고생하셨습니다’라고 해주니 피로가 눈 녹듯 사라집니다.”
배 구청장은 2011년 제17회 세계부부의 날 위원회가 선정한 ‘올해의 구청장부부상’을 수상했다. 말은 ‘빵점남편’이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애틋한 경상도 사나이’인 것이다. 그는 아무리 밖에서 힘든 일이 있어도 집에서는 내색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아내에게 그런 고민까지 얹어주기 싫다는 것이다. 그만큼 그는 웅숭깊다. 하기야 ‘서로 아끼며 사랑하는 으뜸부부상’을 아무에게나 줬을까.

▼ ‘경상도 사나이는 무뚝뚝하다’고 하는데 구청장님은 예외인 것 같습니다.
“(살짝 정색하며) 사실 집에 들어가면 굉장히 엄한 아버지예요. 아마 우리 아버지를 닮아서 그럴 겁니다. 내 고향이 창원 덕산이라는 곳인데, 주남저수지 입구가 바로 우리 동네죠. 아버지가 워낙 엄해서 별명이 ‘짝대기(작대기). 배짝대기’였어요. 지금도 촌로들한테 ‘배짝대기 집이 어디요?’ 하고 물으면 ‘역 앞에 다 쓰러져가는 집이요’ 합니다. 그만큼 정직하고 경우 바른 분이었습니다. 어쨌든 어릴 때부터 엄한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커서 정 깊은 아버지가 돼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요즘도 나하고 우리 막냉이(막내) 딸하고 슬픈 영화 보면서 잘 울어요.”



▼ 자녀교육의 기본 철학은 무엇인가요.
“며느리가 미국 뉴욕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는데 매일 카카오톡으로 대화합니다. 출산이 두 달도 안 남았는데 한미 FTA 이후 일이 너무 많아져서 계속 야근한다니 마음이 안 좋죠. 딸들과도 매일 전화해요. 요즘은 카톡이 있으니까. 저는 자녀교육과 관련해 딱 두 가지만 강조합니다. 첫째 ‘어릴 때부터 신문을 읽게 해라.’ 둘째 ‘아이들이 부모에게 꼭 전화하게 해라.’ ‘저 지금 어디 있어요. 몇 시에 들어갈게요’ 정도면 충분해요. 아이들은 스스로 한 약속 시간은 지키려고 노력할 것이고, 며느리도 시부모님께 ‘잘 계시느냐’고 전화 한 통 하면 온 가정이 평화롭죠.”

“해운대의 경쟁 상대는 서울 강남이 아니라 미국 뉴욕”

2011년 10월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은 김혜선, 정한용, 고창석 등 영화인들과 함께 문탠로드를 걷고 있는 배덕광 해운대구청장.



▼ 요즘 아이들에게 신문을 읽으라고 하면 질겁할 텐데요.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10년 동안 (부산)‘국제신문’을 배달했어요. 우리 집이 창원에서 국제신문 지국을 했는데, 형들은 창피하다고 신문 배달을 안 하려 하니까 초등학생인 제게 시킨 거죠. 그 덕분에 신문 읽는 것이 어릴 적부터 몸에 뱄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부산 영주동에서 청소부 가족이 식당에서 버린 복어알을 먹고 모두 죽었다’는 기사를 읽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1960년 2월 ‘조병옥 박사 영면’ 소식을 읽고 또 울었죠. 1980년 11월 전두환 정권이 국제신문을 폐간시켰을 때도 울었습니다. 저는 신문을 통해 학교에서 배우지 못한 세상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인간을 사랑하는 ‘감성 지수(EQ)’를 촉촉하게 적실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구청에서 발행하는 ‘해운대신문’이 나오면 1천 부 정도 직접 챙겨 들고 직원들과 거리로 나섭니다.”

주민들과의 ‘공감행정’은 소통과 사랑에서 나온다
배덕광 구청장은 1967년 마산상고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9급 세무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주경야독으로 1974년 동아대 경영학과를 마쳤다. 군대는 왼쪽 폐결핵으로 면제 판정을 받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폐가 안 좋았는데, 1967년 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재발해서 거의 죽다 살았다. 그는 스스로 머리가 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죽을 둥 살 둥’ 잠을 안 자고 책을 팠다. 책상 앞엔 ‘최선을 다하자’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같은 다짐 말을 붙였다. 그가 가진 것이라곤 맨주먹밖에 없었다. 그가 존경하는 인물도 바로 맨주먹으로 일어선 덴마크 부흥의 아버지 엔리코 달가스(1828~94)다. 달가스가 누구인가. 그는 프로이센과의 전쟁에서 두 번이나 패배한 조국 덴마크를 구한 사람이다.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국민에게 용기와 희망의 싹을 심어줬다. 그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황무지에 묵묵히 혼자 나무를 심었다. 처음엔 모두가 시큰둥했지만 하나둘 그를 따르기 시작했다. 덴마크 국토가 기름진 옥토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 올해 다산 목민대상까지 받으셨는데 심사위원들이 만장일치로 주민들과의 ‘공감행정’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주민들을 만나면 신나고 즐거워요. 워낙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는 데다 수십 년 동안 부산 시내 이곳저곳 세무서를 돌아다니며 일해서 알고 지내는 사람이 엄청 많죠. 그래서 사람을 만나는 데 두려움이 없어요. 전과 19범, 20범 이런 이들이 찾아와 청장을 만나겠다며 눈을 부라리면서 큰소리 칠 때가 있는데 직원들은 겁을 내고 움츠러들지만 저는 일단 만나자 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다소곳이 들어줍니다. 듣다 보면 자연스럽게 통해요. 통하면 이해하게 되고 사랑하게 됩니다. 결국 사랑이에요. 사랑? 베푸는 게 곧 사랑이죠. 다산 선생의 목민정신을 ‘율기(律己), 봉공(奉公), 애민(愛民)’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 그중에서도 ‘애민’ 즉 ‘백성사랑’이 으뜸이죠. 자신을 엄격히 다스려야 하는 ‘율기’나, 사욕보다 공익을 앞세우는 ‘봉공’은 공직자로서 당연한 것이고요.”
그의 기억력과 친화력은 놀랄 정도다. 모두가 혀를 내두른다. 주민과 악수 한 번을 해도 그 집안 식구들 이름을 부르며 안부를 묻는다. 20년 전 직장 동료들의 이름과 직책을 정확하게 말할 정도다. 그만큼 따뜻하고 인간적이다. 그는 세무서에 있을 때 세무 조사 업무를 주로 했다. 상대편에서 ‘무서운 사람’ ‘비정한 사람’으로 느낄 수밖에 없는 위치. 그런데도 조사받는 기업체 경리들이 오히려 ‘사람이 이렇게 좋아서 어떻게 세무공무원을 하느냐’는 말을 할 정도였다. 그는 평생 숫자만 본 사람이다. 마산상고에 다닐 때도 그렇고, 졸업 후 세무공무원 생활도 그렇고, 그다음 세무사 생활도 그렇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 마음이 강퍅해지는 걸 늘 경계했다. 틈날 때마다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책’을 읽는 것도 그런 이유다.
해운대구청엔 ‘세계시민사회과’도 있다
해운대구청엔 ‘세계시민사회과’라는 게 있다. 2010년 8월 국내 최초로 만들어져 아직까지도 유일무이하다. 2011년 3월에는 민간 주도의 사단법인 ‘세계시민사회센터’도 만들었다. 도대체 하는 일은 뭘까. 한마디로 ‘선진국 수준의 시민 되기 운동’을 펼치는 곳이다. 해운대가 국제도시가 되려면 하드웨어만 가지고는 안 된다. 그에 걸맞은 시민의식이 뒷받침돼야 한다. 2011년 ‘담배꽁초 없는 해운대’, 2012년 ‘불법 주정차 없는 안전한 해운대’ 운동을 펼친 것도 다 그런 이유다.
성금을 모아서 방글라데시에 ‘해운대세계시민학교’를 지어주고 있는 것도 그렇다. 2012년 10월 학교가 준공될 예정. 5천만원이면 방글라데시에 초등학교 하나 세울 수 있다. ‘세계시민사회센터’에서 7천1백69만원을 모아서 5천만원은 학교 짓고, 나머지 2천만원은 학생들에게 학용품을 사줬다. 우크라이나(3백 벌)·벨라루스(50벌) 고려인들에게 한복을 모아 보내는 일도 같은 차원이다. 한복을 보내려면 수선 비용이 많이 드는데 자원봉사로 해결한다. 2009년 해운대는 자원봉사 대통령상을 받았다.


▼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구청장에 도전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국세청과 청와대 등 공무원 생활 31년 6개월 하고 그만두니 뭔가 아쉽고 허전했어요. 그동안 현장에서 배우고 느낀 것을 몽땅 쏟아놓고 싶었죠. 2004년 처음 해운대구청장이 됐을 때부터 다산의 ‘목민심서’를 곁에 두고 읽었습니다. 다산 선생은 1801년 해운대 이웃인 기장에 6개월 정도 귀양살이를 한 인연도 있고, 그분은 오로지 목민, 자나 깨나 나라와 백성만 생각하셨습니다. 행정의 기본 정신은 그분이 2백여 년 전에 다 이야기해놓았어요.”

▼ 다산의 ‘애민(愛民)’을 민생 현장에 적용하기는 쉽지 않을 텐데요.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제가 세 번째 구청장으로 선출될 때 유일하게 상대 후보보다 표가 적게 나온 곳이 해운대 장산 너머 반송(주민 6만 명)이란 곳인데 상대적으로 어렵게 사는 분들이 많아요. 그곳 보건소가 낡고 형편없어서 볼 때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제가 젊은 시절 폐결핵을 앓아서 더욱 그랬죠. 구청장 되자마자 맨 먼저 반송보건소부터 새로 지었습니다. 부족한 예산 털어 주민 스포츠센터도 마련해줬고요. 보건소와 스포츠센터가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은 해운대에서 반송뿐입니다. 요즘엔 지하철 노선까지 연결돼 살기 좋은 동네가 됐어요. 저는 그곳에 갈 때마다 ‘반송은 제 외갓집’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뭐가 잘 안 되면 ‘외갓집이라더니 왜 안 해주나’라며 반론이 돌아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게 소통이에요. 통하면 사랑하게 된다, 서로 터놓고 이야기하다 보면 안 되는 게 없다, 주민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어우러지다보면 잠을 적게 자도 전혀 피곤하지 않아요.”

“해운대의 경쟁 상대는 서울 강남이 아니라 미국 뉴욕”

1 해운대구는 2011년부터 장롱 속에서 잠자는 한복을 모아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 등에 거주하는 고려인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2 재송어린이도서관 일일 훈장으로 나선 배 구청장이 어린이들에게 해운대 역사에 대해 들려주고 있다. 3 2011년 12월 ‘엄홍길 대장과 함께하는 해운대 삼포걷기’ 행사에 참가한 주민들.



매력 있는 세계 일류도시 해운대의 경쟁 상대는 뉴욕
그와 만나면 순식간에 무장해제된다. 경계심이 눈 녹듯 사라진다. 그건 그가 솔직하고 가식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말과 몸짓엔 진정성이 녹아 있다.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소박하고 따뜻하다. 그는 아무리 손해 보더라도 남을 속이지 않는다. 구청장 선거에 나설 때도 “폐결핵으로 군대에 못 갔다”며 맨 먼저 고백했다.

▼ 해운대구청사 앞에 ‘세계 일류도시 해운대’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던데. 뉴욕이나 런던 같은 국제도시를 만들겠다는 건가요?
“당연하죠. 해운대의 경쟁 상대는 서울 강남이 아니고 미국 뉴욕입니다. 동백섬에 가면 최치원 선생(857~?)의 ‘海雲臺(해운대)’라는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어요. 최치원 하면 당나라로 유학 가서 장원급제해 벼슬살이 하다가 신라로 귀국한 분 아닙니까. 당시 국제적인 감각을 갖췄던 분인데, 그 포부를 다 펼칠 수 없으니까 산속으로 은둔해버렸어요. 최근 김지하 시인이 ‘해운대는 세계적 도시가 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조선 중기 정주신(1472~1504)이란 학자의 예언 중에 ‘신령스러운 거북이가 바다를 바라본다’는 뜻의 ‘靈龜望海(영구망해)라는 말이 있는데, 바로 해운대 동백섬을 가리킨다는 거예요. 이 해운대라는 도시가 국운을 융성시킨다는 의미죠. 현실적으로 2015년쯤이면 OECD 세계 10대 도시 기준인 개인소득 4만 달러, 고용률 65%, 초·중고 학급당 20명, 장애연금 GDP 2.7%, 교통사고 사망률 1만 대당 3명을 충족하고도 남을 겁니다.”
그의 말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뭐든 묻자마자 대답이 술술 나온다. 그만큼 업무를 훤히 꿰뚫고 있다. 달리 말하면 일밖에 모른다는 의미다. 하지만 그에겐 일이 곧 놀이다. 정신없이 주민들과 노는 게 그에겐 일이다. 그렇다고 노래 한 자락쯤 못하는 건 아니다.
“노래 18번이 뭔가요?” “주병선의 칠갑산, 그리고 남진의 가슴 아프게.” “좀 썰렁한데요?” “푸하하! 그래도 할 수 없지. 마누라 꼬실 때는 ‘해변의 여인’을 불렀다 아이가. 마누라가 삼천포 여인이니까. 요즘은 가끔 최백호의 ‘내 마음 갈 곳을 잃어’도 불러요.” “해운대해수욕장이 코앞이니 헤엄은 잘 치시겠네요?” “전혀 못해요. 내 고향은 내륙이거든. 열 살 때 동네 못에 빠져 죽을 뻔했다 아이가. 그다음부터 물가엔 얼씬도 안 해요.”
배덕광 구청장의 유일한 취미는 책 읽기
“해운대의 경쟁 상대는 서울 강남이 아니라 미국 뉴욕”
그는 틈만 나면 읽는다. 여태껏 읽은 책 중에서 가장 가슴에 꽂힌 책은 뭘까. 서슴없이 정범모 교수가 쓴 ‘한국의 내일을 묻는다’를 꼽는다. 이 책에서 해운대구정의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다고 말한다. ‘지도자에겐 자신만의 비전이 있어야 한다. 또한 그 비전을 실행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라는 구절을 따로 메모해 놓기도 했다. 박세일의 ‘창조적 세계화론’에서도 벤치마킹을 많이 했다. 해운대구정의 목표인 ‘매력 있는 세계 일류도시 해운대’도 그중 하나. ‘해운대만이라도 넓은 세계로 나가자’는 뜻인데, 그 이론적 바탕이 곧 박세일 교수의 ‘창조적 세계화론’이다. 박 교수와는 문민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같이 근무한 인연이 있다.


여성동아 2012년 5월 5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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