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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 영재들은 남이 쓴 곡이 지겹대요”

타고난 절대음감 & 강한 표현의 욕구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박해윤 기자

입력 2012.04.16 18:14:00

다섯 살 때 떡을 먹다 맛있어서 즉흥적으로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른 소년, 제주도 여행에서 아름다운 풍경에 감동받아 즉흥환상곡을 쓴 소년, 또래 친구들이 ‘빵’ 터지도록 재밌는 음악을 만든 소년. 자폐의 일종인 아스퍼거증후군을 앓고 있지만 음악과 숫자에 천재적 재능을 갖고 있는 소년. 그들이 음악회를 열었다. 한곡 한곡 연주가 끝날 때마다 객석은 술렁였다. 그 음악이 너무 아름다워서….
“작곡 영재들은 남이 쓴 곡이 지겹대요”

‘작곡 영재들의 그림책 음악 여행’에 참여한 6명의 학생들. 왼쪽부터 김남걸(15·용인 홍천중학교 3학년), 신지섭(13·흥덕중학교 1학년), 김균민(16·선화예술고등학교 1학년), 박건욱(13·예원학교 작곡과 1학년), 최병돈(15·분당 수내중학교 3학년), 김어윈(11·거제 대우초등학교 5학년).



3월 3일 서울 삼성동 올림푸스홀에서 열린 ‘작곡 영재들의 그림책 음악 여행’은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아카데미 작곡부에서 수학한 6명의 학생이 고영신 지도교수(한국교원대학교 음악교육과)와 준비한 창작 발표회였다. 제일 어린 학생의 나이는 열한 살. 그렇다고 학예회 수준의 연주회를 예상했다면 오산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작곡 영재들이 피아노 건반을 매개체로 관객을 동화 속으로 이끌었다. 또한 여느 연주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림책과 내레이션이 함께했다는 것. 아이들은 제각기 마음에 드는 그림책 내용에 맞춰 곡을 썼다.
턱시도를 입은 소년이 제 덩치보다 훨씬 큰 그랜드피아노 앞으로 걸어왔다. 객석에서 “엄청 어리네!”라며 수군댔다. 김어윈(11·거제대우초등학교 5학년) 군은 모디캐이 저스타인의 글과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쌍둥이 빌딩 사이를 걸어간 남자’를 연주했다.
두 번째 곡은 박건욱(13·예원학교 작곡과 1학년) 군의 ‘반 고흐, 영혼의 편지’. 빈 센트 반 고흐의 그림 5개를 묶어서 쓴 곡이다. 해바라기 그림에서는 건조하고 시들한 느낌을,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잘라낸 자화상에서는 감2도를 사용해 극도의 긴장감을 클라이맥스로 끌어올려 강렬한 인상을 줬다.
신지섭(13·흥덕중학교 1학년) 군은 ‘괴물들이 사는 나라’라는 그림책에서 주인공 맥스가 장난치며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모습은 스타카토로, 괴물이 등장하는 장면을 옥타브로 넣어 웅장하게 표현했다. 또래다운 개그감으로 곡 중간에 재밌는 장치를 삽입했다.
다음 차례인 김남걸(15·용인 홍천중학교 3학년) 군이 등장하자 객석이 잠시 술렁였다. KBS 인간극장 ‘화성에서 온 모차르트’ 편에 출연해 알려진 얼굴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아스퍼거장애가 있다. 아스퍼거장애는 지능과 언어 발달 상태는 정상이지만 자폐 증세를 보이는 발달장애의 일종. 하지만 작곡 능력과 숫자 기억력은 탁월했다. 이번 발표회에서 김군은 아프리카 북부 사하라 사막의 웅대한 아름다움을 피아노 곡으로 표현했다. 화산 폭발로 검게 그을린 흑사막, 석회암 조각상이 즐비한 백사막, 끝없는 모래언덕이 펼쳐진 샌드듄 사막의 풍광이 그의 손끝에서 되살아났다.
최병돈(15·분당 수내중학교 3학년) 군은 교과서에 실려 친근한 작품인 ‘무지개 물고기’를 연주했다. 물고기 비늘이 반짝이는 모습을 트릴과 트레몰로로 묘사했다. 헤엄치는 물고기의 모습은 아르페지오로 표현하는 등 다양한 음악 기법으로 바닷속 풍경을 음악화했다. 마지막으로 음악영재아카데미 작곡부를 수료한 김균민(16·선화예술고등학교 1학년) 군은 그림책 ‘강아지똥’을 가지고 곡을 썼다. 옥타브를 넘나드는 격정적인 음으로 강아지똥이 우는 모습을, 불협화음으로 흙덩이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작곡 영재들은 남이 쓴 곡이 지겹대요”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아카데미에서 공부한 아이들이 직접 작곡한 곡으로 창작 발표회를 열었다. 김남걸 군이 자작곡 ‘사하라 사막’을 김지은 씨의 내레이션에 맞춰 연주하고 있다.



놀이처럼 편안하게 음악에 몸을 맡겨
며칠 뒤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아카데미 작곡부 수업 시간에 고영신 지도교수와 아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소년들은 때로는 장난스럽게,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진중한 자세로 인터뷰에 응했다.
일곱 살에 피아노를 처음 배운 김균민 군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음악영재아카데미에 입학해 중학교 2학년 때 수료했다.
“선생님께서 언젠가 제자들을 모아서 그림책 음악회를 할 거라고 하셨어요. ‘강아지똥’은 예전에 정말 감명 깊게 읽은 책이었거든요. 이곳에서 기억에 남는 곡은 입학해서 쓴 ‘폼페이의 최후’예요. 동화책을 읽다 영감이 떠올랐죠. 4학년 때 작곡한 ‘태풍 나리’는 우리나라가 태풍 나리로 피해를 본 모습을 보고 써야겠다고 결심해 만든 모음곡이죠.”
좋아하는 작곡가를 묻자 “존경하는 작곡가는 베토벤, 좋아하는 작곡가는 라벨”이라고 했다.
“베토벤의 ‘운명교향곡’과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을 좋아해요. ‘발트슈타인’은 베토벤이 즉석에서 주제를 받아 쓴 곡이라 감명 깊었어요. ‘합창교향곡’도 좋아하는데, 특히 4악장에서 인간의 목소리가 나오면 카타르시스가 느껴져요. 라벨의 ‘물의 희롱’은 물이 살아 숨 쉬는 것 같은 인상파적 느낌이 있어요. 저도 그런 느낌으로 곡을 쓰고 있고요. 클래식 외에도 영화음악 등 다양한 음악을 쓰고 싶어요.”
최병돈 군은 중학교 1학년 때 어머니의 권유로 음악영재아카데미 오디션을 봤다.
“기악 부문은 초등학생만 모집해서 어머니께서 ‘작곡을 해볼래?’라고 하셨고, 언젠가 저도 배워보고 싶었기에 지원했어요. 처음 써본 곡은 6분 남짓의 피아노 소나타였는데 제목은 따로 없었어요. 머리에서 떠오르는 악상을 곡으로 쓰고 끊임없이 갈고닦았죠.”
최군은 정통 클래식 작곡과 지휘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지휘자 카라얀과 피아니스트이자 지휘자인 다니엘 바렌보임을 가장 좋아해요. 카라얀이 지휘한 공연 실황 DVD를 처음 보고 음악을 전공하겠다고 마음먹었거든요. 바렌보임에게는 사람을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있어요. 연주를 하든 지휘를 하든 늘 감동을 줘서 존경스럽죠. 지난해 한국에 공연하러 왔을 때도 보러 갔었어요. 저도 그들처럼 되고 싶어요.”
‘화성에서 온 모차르트’로 통하는 김남걸 군은 “저는 이곳이 아주 좋은 곳이라는 것을 알았어요”라며 “놀러 온 것처럼 편안한 분위기에서 시험 봤어요”라고 말했다. 그는 혼잣말처럼 속삭이듯 말했지만 감정 표현은 정확했다.
“일곱 살 때 선생님이 피아노로 치라고 한 곡 대신 옆방에서 들려오는 다른 소리를 쳤어요. 선생님이 ‘이 아이는 피아노를 전공한 선생님에게 데려가야겠다’고 해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김군에게 언제 이곳에 입학했느냐고 묻자 “2007년 6월 30일에 처음 다녔어요”라고 정확하게 답했다. 이곳에서 10학기째 작곡을 배우고 있다. 중학교 3학년인 그는 “2013년 3월 4일에 고등학교에 가요”라며 웃었다.
“좋아하는 음악가…, 모차르트. 터키행진곡이요. 아주 신비스러워요. 보통 것과 달라요. 단조인데 장조로 바뀌어요. 저는요…, 목소리로 세상에 알려지고 싶어요. 노래는 아니고(웃음). 작곡은 계속 해야죠. 아주 아름다운 곡을 쓰고 싶은데 창작의 고통이 있어요. 곡이 안 떠올라요.”
일곱 살 때 모차르트의 곡을 듣고 ‘저런 곡을 쓰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박건욱 군. 정식으로 작곡 레슨을 받은 것은 4학년 2학기 때 음악영재아카데미에 입학하면서부터다.
“어머니께서 모차르트 전집을 사주셨어요. 원래 피아노를 배우고 있었는데, 그걸 듣고 작곡하는 것도 재밌겠다고 생각했죠. 첫 곡은 제주도를 처음 여행하고 풍경에 영감을 받아서 쓴 즉흥환상곡이었는데 고치는 작업까지 해서 서너 달 정도 걸렸어요.”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하는 박군은 피아노도 꾸준히 배우고 있다.
“현대음악에도 관심이 많아요. 프로코피예프의 곡을 요즘 자주 들어요. 다른 곡보다 깊이 있고 주제도 좋고 심오한 면이 있어요. 앞으로는 오케스트라 곡을 써보고 싶어서 오케스트라에 대해서 공부하고 공연도 꾸준히 보러 다니고 있어요.”

이야기하듯 곡을 만들다



“작곡 영재들은 남이 쓴 곡이 지겹대요”

김어윈 군은 평소 즐겨 보던 그림책 ‘쌍둥이 빌딩 위를 걸어간 남자’에서 영감을 받아 곡을 썼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바이올린을 배우다 4학년 때 작곡 공부를 시작한 신지섭 군은 “어려운 클래식이 아니라 관객과의 소통을 위한 연주회라고 해서 곡에 재미있는 부분을 넣었다”고 했다.
“친구에게 클래식을 들려주니까 별로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이건 어떨까’ 하고 쳐봤는데 ‘빵’ 터지는 거예요. 반응이 좋아서 흐뭇했죠. 오디션 때는 ‘바닷가’라는 곡을 썼어요. 서해안에 놀러 가서 꽃게를 잡고 중간에 진흙에도 빠진 내용을 이야기하듯 썼어요. 스타카토로 위급함을 알렸죠. 지금 들어보면 다시 편곡하고 싶어요(웃음).”
신군이 존경하는 음악가는 베토벤.
“베토벤의 인생이 잔인하잖아요. 거기에서 나오는 영감, 그의 곡이 그의 인생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했어요. 제일 좋아하는 작곡가는 라흐마니노프, 그중에서도 피아노협주곡 1번의 3악장을 좋아해요. 경쾌한 면도 있지만 음역이 넓어 치기 어렵죠. 아바 같은 고전 팝송을 좋아하는 아버지께서는 클래식을 들으면 머리는 맑아지는 것 같은데 뭘 말하는 건지 잘 모르겠다고 어려워하시더라고요. 쉽지만 다이내믹하면서도 너무 반복되지 않고 소통하는 클래식을 만들고 싶어요.”
다섯 살 때 떡을 먹다가 맛있어서 즉흥적으로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는 김어윈 군은 경상남도 거제시에 산다. 매주 한 차례 4시간의 작곡 수업을 듣기 위해 버스를 3시간 반씩 타고 서울에 온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면 새벽 2시가 넘는 데다 다음 날 학교에 가야 하지만, 스스로 좋아서 다니는 거라 가기 싫다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한다. 연주회에서는 ‘쌍둥이 빌딩 위를 걸어간 남자’를 선보였다.
“어릴 때 읽고 좋아한 책인데, 작곡하면 좋을 것 같아서 골랐어요. 만드는 데 한 달 정도 걸렸어요. 각 장면을 나눠서 곡을 썼죠.”
김군은 음악회에 가면 ‘다른 방식으로 치면 좋겠다’는 생각이 자주 떠오른단다. 그래서 실제로 집으로 가자마자 변주를 해보곤 한다.
“음악가 중에는 쇼팽하고 드뷔시를 좋아해요. 쇼팽 곡 중에서도 많은데…(웃음). 즉흥곡이나 발라드가 좋아요. 제가 후기 낭만파를 좋아하거든요.”

강한 표현 욕구 가진 작곡 영재들

“작곡 영재들은 남이 쓴 곡이 지겹대요”

고영신 교수에게 작곡 수업을 받고 있는 아이들.



고영신 지도교수는 “그림책 음악 여행이라는 타이틀로 연주회를 계속 해왔는데 현장 반응이 좋았다”고 했다. “그림이라는 회화적인 것, 책이라는 문학적·언어적인 것, 그걸 음악적으로 형상화했다”며 “교육적 내용을 담은 그림책을 많이 활용했다”고 했다. 고 교수는 이번 음악회에서 직접 그림책 ‘동강의 아이들’을 가지고 만든 곡을 들려줬다. 7월에는 ‘이야기, 그림, 그리고 음악’이라는 주제로 연주회를 열 예정이다.
“음악영재아카데미에 들어온 아이들의 특징은 소리에 민감하다는 거죠. 대부분 절대음감이에요. 음악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뿐 아니라 모든 소리에 예민해요. 작곡하는 아이들에게는 강한 표현 욕구가 있죠. ‘어떻게 저걸 음악으로 표현해볼까’ 하는 호기심이 있고 집중력이 굉장해요. 오디션에서는 기존의 곡들이 싫증 나서 직접 곡을 써보고 싶었다고 하는 아이들이 많아요. 남이 쓴 곡은 지겹대요(웃음).”
고 교수는 아이의 음악성을 발달시키고 싶다면 먼저 “다양한 체험을 하게 하라”고 조언했다.
“곡을 쓰고 음악을 듣는 것 외에도 다양한 경험을 하면 예술적인 사고가 깊고 넓어질 거예요. 한 사람이 다양한 포지션을 소화하는 축구선수처럼 아이들을 오케스트라 같은 진지하고 심각한 곡 외에도 그림책이나 다큐멘터리 음악처럼 사회에서 요구하는 곡도 쓸 수 있는 작곡가로 성장시키고 싶어요.”
음악에 재능 있는 아이들 지원하는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아카데미
1999년부터 시작된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아카데미는 음악에 재능 있는 아이들에게 저렴한 비용으로 교육받을 기회를 주는 프로그램이다. 7개의 기악 전공(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하프, 플루트, 클라리넷)과 작곡 전공까지 총 8개 분야로 나뉜다. 한 반의 학생 정원은 5명 이내. 학생들은 매주 토요일 열리는 ‘토요콘서트’에 참여해 수시로 실력을 점검하고, 학기 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향상 음악회’에서 선보이기도 한다. 연주 실력이 뛰어난 수강생에게는 매년 가을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리는 ‘음악영재 가을 콘서트’에 출연하는 기회도 주어진다.
예술의전당 예술사업본부 황복희 차장은 “한 학기에 2백여 명 정도 뽑지만, 음악영재아카데미의 특성상 자리가 빈다고 해서 정원을 채우지도 않고, 수준이 되는 아이를 정원이 넘친다고 떨어뜨리지도 않는다”며 “유동성 있게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매 학기 운영되는 예술의전당 음악영재아카데미의 제29기 수강생 오디션은 5월에 예정돼 있다. 지원 자격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5학년. 지원을 희망하는 학생은 음악영재아카데미 행정실을 방문해 신청서를 내면 된다. 오디션은 매년 5월, 11월 2회 이뤄진다.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http://www.sac.or.kr)를 참고하면 된다. 문의 02-580-1450~3


여성동아 2012년 4월 5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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