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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metoo #herstory

“내 안에 차별이라는 괴물이 자라지 않도록, 더 예민져야죠.”

이은의 성폭력 피해자 전문 변호사가 말하는 지금, 미투운동

EDITOR 김지은

2018. 09. 03

최근의 미투운동을 관심 있게 지켜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들어보았음직한 이름이다. 이은의 변호사. 직장 내 성희롱에 맞서 대법원에서 승소한 후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가 된 그의 ‘성폭력 투쟁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2014년 11월에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해서 2015년 2월에 이 자리(서초동 법원 앞)로 옮겨왔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피해자 변호사’라는 게 있는 줄 몰랐어요. 삼성전기에서 싸울 때도, 로스쿨에서 법 공부를 하는 동안에도 들은 적이 없었거든요.” 

가수 출신 배우 박유천의 성폭행 무고 혐의 고소 사건 피의자 A씨, 영화계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인 개그맨 출신 배우 B씨, 스튜디오 촬영 성추행 사건 피해자 모델 C씨, KBS 성추행 피해자에서 무고 피고인이 된 D씨 등 이은의(44) 변호사는 최근 몇 년 사이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성폭력 사건 피해자들의 변호를 맡아왔다. 그들이 대형 로펌의 베테랑 변호사들을 제쳐두고 그를 찾은 이유는 간단했다. 피해자들은 편견 없이, 사건을 자기 일처럼 받아들여줄 변호사를 찾고 있었고 그런 점에서 그는 충분한 적임자였다. 그 역시 직장 내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였고, 심지어 골리앗 삼성을 상대로 긴 법정 다툼 끝에 승소 판결을 얻어내고 아예 변호사가 된 의지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 후 1998년 삼성전기에 입사한 그는 2005년 사내에 부서장의 성희롱 사실을 알렸다가 인사상 불이익을 받았다. 사건 은폐와 부서 이동, 직장 내 왕따, 회유와 협박을 맨몸으로 받아야 했고, 그를 보호해줄 방패막은 존재하지 않았다.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여 4년 만에 승소한 그는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전남대 로스쿨에 진학, 2014년 변호사가 됐다.

직장 내 성폭력 사건 겪은 후 변호사로 전업

“인터넷 같은 곳에서 ‘성폭력 사건 가해자로 지목되면 무조건 불리하다, 절대 벗어나기 힘들다’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헛웃음이 나요.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법정에서도 성폭력 사건은 피해자가 절대적으로 불리합니다. 2017년 전국 평등의전화 상담 내용을 분석한 결과 피해자 10명 중 6명은 문제 제기를 한 후 보호를 받기는커녕 오히려 불이익을 당했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게다가 성폭력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위증죄나 무고죄 등으로 맞고소를 당하는 일이 허다해서 피해자는 물론 피해자의 변호사까지 힘든 싸움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변호사를 고소하는 경우도 있고요. 가해자가 피해자 측 변호사를 고소한다고 해서 변호사가 처벌받을 가능성은 없어요. 가해자 측 변호사도 이를 모르지 않죠. 다만 변호사를 이런 저런 방법으로 괴롭히고 스트레스를 주려는 건데, 횡령이나 배임 같은 사건에선 남자 변호사들끼리 감히 하지도 않던 말들이 마구 튀어나옵니다. 결국엔 변호사들끼리 유치한 싸움을 하게 되는 거죠. 이런 상황들이 피해자를 더 불안하게 만들기도 하고요.” 

성폭력 피해자는 물론 변호인들에 대한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욕설을 쏟아내는 사람도 있다. 그 역시 인터넷에서 신상이 털린 적도 있다. 



“피고인의 방어권은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누적된 토대 위에 있습니다. 피고인을 조력하는 변호사의 보호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피해자의 변호사’라는 건 개념부터가 생소할 만큼 역사가 길지 않고 그만큼 매우 취약하다고 볼 수 있어요. 피해자 변호사의 방어권도 물론이고요. 법정에서도 피해자 변호사의 발언은 ‘참고 발언’ 정도로 사용될 뿐이죠.”

미투운동 이후 더욱 거세지는 가해자들의 반격

최근의 미투운동(#metoo ·나도 당했다)으로 용기를 내 피해 사실을 알리는 이들이 늘었지만 그 이상으로 가해자들의 반격은 더 정교하고 거세졌다고 한다. 일견 성폭력에 대한 문제의식이 대두되고 여성들의 목소리가 높아진 것 같지만 정작 사회적으로 공격을 받고 있다고 느끼게 된 가해자 측은 더 치밀하고 치졸한 방법으로 반격을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변화보다는 안정을 중시하는 사법부의 특성상 ‘사회 분위기에 휩쓸리거나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일부에서는 하는 것도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인터뷰가 있던 날 오전 그는 성폭력 피해자 D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열었다. KBS 파견직 직원이던 D씨는 직장 내 상급자였던 카메라 기자를 강제추행죄로 고소했다가 무고죄로 기소됐다.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이은의 변호사는 김용원 변호사와 함께 공익 사건의 일환으로 이 사건의 변호를 맡고 있다. 

“사건 기록을 보니 경찰 수사부터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만 집중적으로 이뤄졌더라고요. ‘범죄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에게 하는 거짓말탐지기 조사조차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를 대상으로만 진행됐을 정도니까요.” 

검찰은 가해자를 무혐의 처분하면서 피해자를 오히려 무고죄로 기소했고, 그 과정에서 성폭력 사건을 수사한 경찰의 1, 2차 피의자 신문조서를 법원에 제출조차 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그는 “성폭력 피해자가 무고죄로 기소 당하는 상황에 국가가 일조를 하고 있는 것” 이라고 말했다. 

여성단체 회원들이 여성이 가해자로 지목된 성범죄에 대해 경찰이 편파수사를 하고 있다며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를 펼치고 있다.

여성단체 회원들이 여성이 가해자로 지목된 성범죄에 대해 경찰이 편파수사를 하고 있다며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를 펼치고 있다.

찬찬히 들여다보면 피해자가 너무 억울한 상황인데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 사건처럼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지 않으면 피해자가 사회적으로 지지를 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피해자가 홀로 버려져 있는 사이 가해자는 온갖 방법으로 피해자를 회유하고 협박하고 사회와 단절시킨다. 그는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편향된 법 적용 관행을 깨기 위해 사법부만이 아니라 법을 만들고 원칙을 세우는 입법부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법부는 시험을 통해 임용되고 입법부는 선거를 통해 선출됩니다. 법은 안정성을 중시하고 입법부는 시대의 흐름과 시민의식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남역 살인사건과 미투운동 등을 거치면서 여성들이 성범죄에 대해 과거보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최근 안희정 전 지사의 무죄 판결과 맞물려, 홍익대 미술 수업 중 모델의 나체 사진을 찍어 극단적 여성주의 커뮤니티 ‘워마드’에 올린 여성이 징역 10월이라는 형량을 선고받은 것에 대해 일각에선 형평성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가해 남성 처벌엔 미온적인 사법부가 가해 여성에겐 유독 엄격한 법의 잣대를 들이댔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은의 변호사는 TBS 교통방송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여성이 당하는 몰래 카메라 범죄는 굉장히 다양하고 많다. 그로 인해 자신이나 주변 여성들이 주변에서 느꼈던 위기나 공포감에 비해 범죄자에 대한 처벌 강도가 낮았던 반면 홍대 몰카 사건 가해자는 굉장히 중하게 처벌됐다고 느끼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이번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여성이라고 해서 중하게 처벌됐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다만 그동안 법이 (남성이 가해자인 몰카 사건에 대해) 미온하게 대응했던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러한 문제들에게 대해 과격한 표현을 동원해 분노를 표출하는 극단적인 여성주의 단체 워마드에 대해서는 “워마드에서 활동하는 여성들이 보여주고 있는 온도는 실제로 자신이 당했던 차별, 부조리를 근간으로 하는 것이다. 물론 그간 용인돼왔던 수위를 넘어선 과격한 표현들이 등장한다. 그러다보니 기성세대의 입장에선 화들짝 놀라고, 위험하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워마드가 실제 위험한지 그리고 어느 지점이 불법인지 문제를 들여다봐야겠지만 그보다는 우리가 워마드에 대해 굳이 토론하고 이슈 삼는 이유가 뭔지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물론 그들이 다 잘했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법적으로 잘못한 것이 있다면 똑같이 처벌을 받아야겠지만 유독 워마드에 대해서만 칼날을 들이대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오히려 저는 워마드의 행위보다, 주체인 것으로 추정되는 20대 젊은 여성들이 그런 과격한 언행을 하게 된 계기, 분노의 지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감정과 인권에 예민해져야

이은의 변호사는 자신의 성폭력 피해와 변호 경험을 바탕으로 2016년 ‘예민해도 괜찮아’(북스코프)라는 책을 펴냈다. 책에서 그는 성폭력은 욕망을 제어 못한 사람의 예외적인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내면에 잠재한 차별의식과 갑질이 발현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이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예민하고 피곤한 사람으로 몰린다. 성폭력 사건 앞에서 피해 여성들이 입을 다물게 되는 이유다. 자신이 입을 열어 피해 사실을 알리면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봐, 분위기가 나빠질까 봐, 되레 손가락질 받게 될까 봐 숨을 죽이게 되는 것이다. 그가 ‘예민해도 괜찮아’라고 하는 건, 단순히 가해자의 손길이나 눈길, 말에 예민해지라는 것이 아니다. 차별의식과 갑질이라는 괴물이 누구의 내면에서든 자라날 수 있으며, 그것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서로의 감정과 인권에 예민해져야 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예민하다’는 단어를 ‘과민하다’는 의미로 많이 쓰지만 사실 예민하다는 건 어떤 문제에 있어 그 본질을 예리하게 보는 거예요. 물론 그것이 어떤 이들에겐 굉장히 낯설고 불편한 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대한민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학생들의 예민함이 없었다면 군부독재를 물리칠 수 있었을까요? 사회는 예민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의해서 앞으로 나아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홍중식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디자인 김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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