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교육 선진국으로 불리지만, 과거 핀란드는 ‘왕따 공화국’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핀란드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학교 다닐 때 반마다 왕따가 한 명씩 있는 것은 예사였다고 한다. 마흔이 돼가는 필자의 남편(핀란드인)도 13세 때 왕따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하다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한다. 한번은 핀란드 외무부 장관이 왕따 구설수에 오른 적도 있다. 문제는 그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라는 점이었다. 그가 외무부 장관으로 취임하자마자 그에게 어릴 때 왕따를 당했다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결국, 장관은 오래전 벌어졌던 왕따 사건에 대해 공개적으로 사과하고 나서야 겨우 여론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핀란드에 이처럼 왕따가 많은 이유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단일 민족 국가여서 타 민족에 대한 배타심이 강하고, 이런 민족성이 왕따 문화로 이어진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있다. 특히 1990~2000년 사이 왕따 문제는 극에 달해 당시 학생 중 5~15% 정도가 상시적으로 왕따를 당했다는 통계 조사도 있다. 이에 핀란드 투르쿠대 심리학과와 교육연구소가 왕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키바 코울루’라는 프로젝트를 발족시켰다. 핀란드 정부도 70억원을 내놓는 등 이 프로젝트를 전폭 지원했다.
‘키바(KiVa)’라는 말은 핀란드어로 ‘왕따에 맞서다(Kiusaamista Vastaan)’의 맨앞 두 글자를 따서 만들었고, 코울루(Koul)는 ‘학교’라는 뜻이다. 따라서 ‘키바 코울루’는 ‘왕따에 맞서는 학교’라는 뜻이다. 이 프로젝트는 3년여의 개발 과정을 거쳐 2009년 가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됐다. 2012년 현재, 핀란드 초·중학교의 90% 이상이 키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데 학교 관계자들은 “프로그램 도입 후 왕따가 놀랄 만큼 줄었다”고 입을 모은다.
왕따 없어지자 학생들 우울증 줄고, 학업성취도 높아져
1 왕따로 자살한 엘리사의 일기.
전문가들은 키바 코울루 프로젝트의 성공 요인을 왕따를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에 국한된 문제가 아닌 학교 전체의 문제로 보고, 모든 학생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실시한 데 있다고 보고 있다.
키바 프로젝트 개발자인 투르쿠대 심리학과 크리스티나 살미발리 교수도 인터뷰에서 “피해자나 가해자가 아닌 침묵하는 다수가 왕따를 막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침묵하는 다수에게 가르치는 것이 키바 프로젝트의 핵심”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 프로젝트의 근간은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수업에 있다. 초등학교 1학년~중학교 3학년 학생들은 1년에 총 20시간의 키바 교육을 받는다. 수업은 역할극, 왕따에 관한 단편 영화 감상, 학생 토론·발표 등으로 구성되며 왕따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을 담은 컴퓨터 게임 수업도 있다. 이런 체험 수업을 통해 아이들은 피해 학생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고 왕따에 대한 이해력을 높여나간다. 매 수업이 끝나면 학생들 스스로 왕따를 방지하는 규정을 만들어 지켜나간다. 학부모 매뉴얼도 만들어 학부모들도 왕따를 막는 데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키바 프로젝트 실시 후, 핀란드 학교에서는 왕따뿐 아니라 학생들의 스트레스와 우울증도 함께 줄어든 것으로 보도됐다. 반면 학생들의 사회성, 학습 의욕과 동기는 더 높아졌다고 한다. 왕따 방지 교육으로 핀란드는 학생들의 심리적 안정과 학업성취도 향상이라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얻은 셈이다.
2 컴퓨터로 키바 수업을 받는 아이들. 3 여학생들이 키바 수업 시간에 친구의 장점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보영씨는…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아이오와주립대 교육공학 석사 과정을 마쳤다. 1999년부터 핀란드에 거주하고 있으며 핀란드 교육법을 소개한 책 ‘핀란드 부모혁명’ 중 ‘핀란드 가정통신’의 필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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