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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With specialist | 홍석천의 스타일리시 맛집

자장면 한 그릇

애잔한 추억이 있어 더 맛있다

기획 | 한혜선 기자 사진 | 문형일 기자

2012. 03. 28

자장면 한 그릇


졸업식, 입학식, 혹은 생일 때나 돼야 입술에 검은 자장 잔뜩 묻히며 먹을 수 있었던 자장면. 지금이야 흔해졌지만, 어린 시절에는 자장면 한 그릇을 내건 일이라면 죽을 힘을 다해 했을 만큼 귀하디귀한 음식이었다. 라면이 지겹다고 투덜거리는 아들에게 비상금으로 사주신 자장면, 그 자장면이 싫다며 마다하셨던 어머니… god ‘어머님께’라는 노래 가사가 심금을 울리는 것은 저마다 자장면에 얽힌 애잔한 추억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역시 자장면을 좋아하고, 자장면에 대한 추억이 많다. 누군가 중국집 맛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자장면부터 먹어보라고 했던가. 자장면에 얽힌 추억을 새록새록 새기면서 맛있는 자장면 먹기에 임하려 한다.
중식당 티원(서울역 02-392-0985)은 플라자호텔에서 운영하는 모던 차이니스 레스토랑이다. 탕수육, 유린기, 유산슬, 양장피 등 이름만 들어도 군침 도는 일품요리도 유명하지만, 중식당의 정석이자 기본인 자장면이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하다. 각종 채소의 아삭함, 해물의 깊은 맛, 자장소스 특유의 맛이 어우러진 삼선자장면은 면과 소스가 따로 담겨 나온다. 탱탱하게 잘 삶은 면에 자장소스를 부어 비비기 시작! 면 상태가 좋지 않으면 잘 비벼지지 않고 소스가 잘 배지 않는데, 면이 제대로 삶아져 원래 한 몸인 것처럼 골고루 비벼진다. 자장면을 먹을 때 간혹 느끼는 불만 중 하나가 소스의 양이 부족하다는 것. 이곳 자장면은 자장소스가 넉넉하고 신선한 재료의 질감이 살아 있어 맛의 감동이 두 배다. 특히 볶은 양파에서 나오는 자연 단맛이 식욕을 돋워 먹으면서도 또 먹고 싶은 맛이랄까. 이곳에서는 색다른 자장면도 맛볼 수 있는데, 티원에서 개발한 미소자장면이 그것이다. 오묘하고 신선한 맛으로 여태까지 먹어본 자장면과는 확실히 다르다. 된장의 구수한 맛과 볶은 각종 채소의 맛이 잘 어우러지고, 산뜻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전해진다. 기본 자장면보다 담백하고 부드러운 맛으로 건강을 생각하는 이에게 강추! 모던하고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 화려한 불쇼를 볼 수 있는 오픈 키친으로 구성된 공간은 먹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보는 즐거움까지 전해준다.
마포구 용강동에 위치한 부영각(02-716-2413)은 화교가 운영하는 30년 넘는 전통을 지닌 중국집이다. 내부는 여느 중국집과 다를 게 없지만, 음식 맛을 보면 그 내공에 무릎을 꿇게 된다. 향신료 맛이 강하지 않고, 자장 특유의 달콤하고 고소한 맛이 매력적이다. 이곳의 자장면 한 그릇은 미각의 즐거움뿐 아니라 정겨운 옛 추억까지 떠올리게 한다. 자장면을 담은 낡은 그릇에서 역사와 전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곳 자장면의 생명은 뭐니 뭐니 해도 수타면. 화교 출신 주방장이 직접 만든 수타면은 씹을수록 그 진가를 경험할 수 있다.
나는 중국집에서 가장 맛있어야 하는 음식은 당연히 ‘자장면’이라고 당당히 외친다. 4월 14일 짝 없는 이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음식으로 각인된 자장면.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허리케인 같은 매력을 지닌 자장면 한 그릇으로 정신적 외로움뿐 아니라 미각의 허전함도 달래보길. 단언하건데, 맛있는 자장면 한 그릇이면 충분하다.

자장면 한 그릇


홍석천씨는… 각종 시트콤과 드라마,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는 방송인이자 이태원 마이타이를 비롯해 마이첼시, 마이차이나 등을 성공시킨 레스토랑 오너다. 미식가로 소문난 그는 전문적인 식견으로 맛은 물론 서비스, 인테리어, 분위기가 좋은 베스트 맛집을 매달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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