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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바탕 소설 ‘바보 엄마’ 최문정 작가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을 위하여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이기욱 기자, SBS 제공

입력 2012.03.22 15:42:00

‘바보 엄마’는 강간 당한 어머니가 낳은 딸과 손녀, 3대의 사랑과 용서, 화해를 그린 소설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출간 당시 화제를 모았고 3월부터 주말드라마로 방영된다. 원작자인 최문정 작가를 만나 작품과 영원한 바보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실화 바탕 소설 ‘바보 엄마’ 최문정 작가


강간당해 미쳐버리고서도 딸을 낳아 기른 엄마 김선영. 엄마의 지독한 사랑이 싫어 도망치듯 결혼하고 정신병원에 엄마를 버린 비정한 딸 김영주. 할머니와 엄마에게서 우울증을 대물림한 천재 소녀 이닻별….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실화라면. 소설 ‘바보 엄마’를 쓴 최문정 작가(36·본명 최유경)는 작품의 속편 격인 ‘바보 엄마-닻별 이야기’ 발행에 앞서 등장인물을 추가하고 스토리 전개 일부를 바꾼 ‘바보 엄마-영주 이야기’(2011년 개정 증보판)를 펴냈다. 최 작가는 현재 고등학교에서 과학 교사로 재직하며 작품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이번 개정판은 2007년 발표한 소설에 원고지 2백장 분량을 추가해서 거의 5분의 1이 늘어났죠. 원래는 선영, 영주, 닻별 세 사람의 이야기만 있었는데 새로운 캐릭터를 추가했어요. 그런데 2부인 닻별이 이야기를 위한 연결고리가 필요해 내용을 수정했어요.”

자살 예방 사이트에서 만난 카시오페이아의 이야기
작품을 읽은 이들은 백이면 백 그에게 묻는다. “이거 당신 이야기냐”라고.
“실화는 맞지만,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는 아니에요. 저희 어머니도 ‘어머니가 영주고 따님이 닻별이냐’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대요. 그래서 ‘우리 엄마는 바보 아닌데!’라고 말씀하셨다더라고요(웃음). 소설이니까 절반은 허구예요. ‘그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사실만 가져왔죠. 강간 당한 부분이나 아이를 낳고 심장 이식을 한 부분 등 주요 모티프를 따왔어요.”
그가 말한 ‘그 사람’은 인터넷 자살 예방 사이트 ‘재낙스’에서 알게 됐지만 직접 만난 적은 없다. 어느 날 가입만 해놓고 방문하는 일도 드물던 사이트를 탈퇴하려고 접속했다가 독특한 제목에 눈길이 갔다. ‘이젠 죽음조차 지겹다’라는 제목의 소설 속 닻별이, ID 카시오페이아의 글이었다.
‘지겹다. 내가 인생에 대해 가졌던 최초의 감정이자 지금까지 가질 수 있었던 유일한 감정이다. 아이큐테스트를 마치고 나오던 나를 보며 수군거리는 교수들을 본 순간부터 인생이 지긋지긋할 거란 생각을 했다. 지겹게도 내 예측은 빗나가는 법이 없었다. 그 지겨움을 끝내고 싶어 죽고 싶었다. 하루도 죽음에 대해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매일 밤 꿈꿨다. 내 손목에서 흐른 피가 내 방 안을 다 적시는 꿈을. 하지만 이젠 그 꿈조차 지긋지긋하다.’
그는 닻별이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다음 날 답장이 왔다. 극단적인 우울과 대인기피, 사회성 결핍, 자기학대, 편집증, 그리고 엄마에 대한 증오…. 누구에게도 할 수 없는 이야기를 이메일로 털어놓았지만, 서로의 정체는 철저하게 숨겼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10년 동안 최씨는 별로 변하지 않았다. 직장 생활은 여전했고 우울한 감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반면 닻별이의 우울증은 호전되고 있었다. 그는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닻별이에게 이메일을 띄웠다. 다음 날 답장이 왔다. ‘내가 사랑한 사람도 리브리움(신경안정제의 일종)을 먹었었지….’ID 카시오페이아의 긴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몇 년 전 교사들이 받는 방학 연수차 수원에서 한 달 반 동안 지낸 적이 있어요. 그곳에선 다른 교사들도 각자 공부하며 지내는 분위기였거든요. 숙소에 들어오면 오후 7시였어요.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타지에서 지내며 외롭고 쓸쓸했고, 심심하기도 했죠.‘어차피 이렇게 시간 날 때 해보고 싶은 걸 하자’는 생각으로 카시오페이아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소설을 쓰기 시작했어요.”
한 줄 한 줄 써내려가며 우울함을 토해냈다. 백지가 검은 글씨로 채워지는 동안 그는 조금씩 엄마에게 다가설 수 있었다. ‘바보 엄마’에서 영주의 독백은 작가의 하고픈 말이자 모든 어머니와 딸의 목소리였다.

실화 바탕 소설 ‘바보 엄마’ 최문정 작가

3월 방송되는 드라마 ‘바보 엄마’ 대본 리딩 현장. 하희라가 선영, 김현주가 영주 역을 맡았다.



‘자장면보다는 찬밥이 훨씬 맛있다고, 새 옷보다는 헌 옷이 편해서 좋다고, 구멍 난 양말은 바람이 잘 통해 좋다고….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이 하는 거짓말일 터였다. 말도 안 되는 그 거짓말들을 난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중략) 우스웠다. 어쩌면 한 번도 그 쉬운 거짓말들을 의심하지 않았을까. 왜 엄마는 그런 손해나는 거짓말을 해야만 했을까. 이유는 간단명료했다. 엄마니까. 그게 답이었다. 그 많은 질문의 답은 하나였다. 엄마니까. 하지만 내 머릿속엔 아직도 답을 알 수 없는 질문 하나가 맴돌고 있었다. 엄마는 내게 얼마나 더 많은 거짓말을 했을까. 나를 위해 얼마나 더 많은 눈물을 삼키며 거짓말을 했을까.’
글을 쓰면서 그는 엄마를 이해할 수 있었고, 다시 엄마를 사랑하게 됐다.
“사실 굉장히 희박한 확률의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책이 나오고 미국에서 한 남자분이 ‘자기가 아는 사람의 이야기 같다’라며 저를 만나러 들어오겠다고 하셔서 놀랐어요. 이런 일이 또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세상에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드라마 같은 일이 곳곳에서 일어나더라고요.”



김현주, 하희라 주연의 드라마로 제작
‘바보 엄마’에서 ‘별’은 중요한 상징성을 가진다. 작품 속 영주의 딸 이름은 닻별이다. 닻별은 영어로 카시오페이아자리를 뜻한다. 에티오피아의 왕비인 카시오페이아는 자기 딸인 안드로메다가 바다의 님프인 네레이스보다 예쁘다고 동네방네 자랑한다. 결국 포세이돈의 분노를 산 카시오페이아는 나라를 잃고, 죽어서도 의자에 앉은 채 하늘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형벌을 받는다. 다음은 책 속에서 영주가 자신의 딸 닻별이에게 하는 말을 옮긴 것이다.
“…그런데 난 카시오페이아가 잘못했다고 생각해 본 적 한 번도 없어. 누구에게나 자기 딸이 가장 아름다운 법이니까. (중략) 카시오페이아가 사랑하는 딸 안드로메다 곁에 영원히 머물 수 있도록 안드로메다까지 빛나는 별로 만들었겠지. 그래서 네 이름을 카시오페이아자리의 우리말인 닻별로 지었어. 닻별아, 하고 이름을 부를 때마다 카시오페이아의 사랑을 기억할 수 있게.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던 그 사랑만큼 널 사랑할 수 있게. 카시오페이아가 딸을 사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내 딸을 사랑할 수 있게. 카시오페이아처럼 죽어서도 내 딸 곁을 지킬 수 있도록.”
작가가 지난해 펴낸 다른 소설 제목은 ‘아빠의 별’. 이 작품 역시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아빠의 위로와 격려에 목말라 있는 발레리나 딸과 항상 딸에게 잘해주지 못해 괴로워하는 군인 아버지의 갈등과 화해를 그렸다. 별. 어두운 밤하늘에 빛나는 존재. 별은 종종 많은 작품에서 영혼이나 운명, 희망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한편으로는 고등학교에서 과학을 가르치는 그의 관심사가 반영된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이론적으로 소행성 몇 번 이렇게 외운다기보다는 그냥 별 자체를 좋아하죠. 별자리 이야기나 전설도 좋아하고요. 소설 속 캐릭터의 이름을 뭐로 지을까 고민하다가 엄마 이름은 가장 흔한 이름 중 하나로 짓자고 해서 ‘선영’으로 지었어요. 자식은 가장 특이한 걸로 하자는 생각에 ‘닻별’이라고 지었죠. 마침 카시오페이아는 제가 좋아하는 별자리이기도 하고 우리말 이름도 예뻐서 골랐어요. 그 별자리가 아주 밝은 별이에요.”
원작이 가진 힘인 ‘모성’이라는 테마와 개성 있는 캐릭터는 일찌감치 제작자들의 눈에 띄었다. 2007년 소설이 나오자마자 드라마 판권이 팔렸다. 그러나 여러 사정으로 제작이 차일피일 미뤄졌고, 최근 제작사를 옮겨 주말드라마 제작이 확정돼 3월 정규 편성됐다. 김현주, 하희라, 김태우 등 쟁쟁한 배우들이 뭉쳐 드라마 대본 리딩도 마쳤다. 김현주가 엄마를 끔찍이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딸 영주 역을, 하희라가 강간당해 미쳐버렸지만 딸에 대한 묵직한 모성애를 보이는 선영 역을 맡았다.
“제 첫 작품이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니 설레는 마음이죠. 부족한 부분도 많은데, 이런 부분이나 제가 소설에서 표현한 부분을 어떻게 다르게 표현할지 그런 게 궁금해요. 저도 드라마를 자주 보는 편인데, 이미지가 얼마나 어울리느냐 안 어울리느냐가 아니라 아픔을 가진 캐릭터를 연기로 얼마나 보여줄지가 중요한 거죠. 워낙 다들 연기를 잘하는 배우라서 만족스러워요.”

실화 바탕 소설 ‘바보 엄마’ 최문정 작가


소설 ‘바보 엄마’에서 영주는 갑갑한 엄마로부터 벗어나고자 결혼을 도피처로 삼는다. ‘아빠의 별’에 나오는 딸 수민도 아버지와 다른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여 결혼한다. 결혼을 일종의 도피처로 설정한 이유가 뭘까.
“저희 또래가 굉장히 과도기예요. 절반은 결혼했고 절반은 안 했죠. 결혼한 친구들이 모두 상대를 죽도록 사랑해서 결혼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완벽하게 새로운 환경에서 나를 바꾸고 싶을 때 결혼을 택하는 것 같아요. 결혼 생활의 에피소드는 주위 친구들에게 들은 건데 누가 저더러 ‘네 친구들 결혼생활이 너무 불행한 것 아니냐’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다 그런 건 아니에요. 행복하게 잘 사는 친구들도 많은 걸요.”
그는 ‘바보 엄마’ 첫 페이지에 ‘내 어머니의 어머니, 고 박태순의 영정에 이 글을 바칩니다’라고 적었다. 외할머니 박태순 여사는 그에게 커다란 사랑을 온몸으로 보여준 사람이었다.
“초등학교 1~2학년 때였어요. 수박이 1천~2천원 할 때였는데, 시골이라 1백원짜리 수박을 팔더라고요. 외할머니께 ‘수박을 살 테니 1백원을 달라’고 했었죠. 외할머니는 ‘맛없으니 사지 말라’고 했지만 막무가내로 졸라서 샀는데 진짜로 맛이 없는 거예요(웃음). 다른 사람이었으면 ‘그러게 왜 샀느냐’고 혼낼 법도 한데 외할머니는 그러지 않으셨죠. 맛없어도 오기가 생겨서 다 퍼먹고 수박 껍질을 말려 바가지를 만들겠다고 장독대 위에 널어놨어요. 그리곤 잊어버렸죠. 다음 날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는데 외할머니께서 ‘이거 우리 손녀가 말려서 바가지 만들 건데…’라며 뛰어가서 수박 껍질을 가져오시더라고요. 어차피 그걸 말린다고 바가지가 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비를 맞아서 망가지면 손녀가 상심할까 봐 걱정하신 거죠. 제게는 그냥 ‘이런 게 해보고 싶어’ 하는 순간이잖아요. 그 순간조차 지켜주고 싶었던 게 외할머니의 사랑이죠. 제가 중학교 3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상실감을 느꼈죠.”

바보와 동의어, 그게 엄마였다
소설 속 ‘바보 엄마’가 영주에게, 영주가 닻별에게 그렇듯 최씨의 어머니도 딸에게 절대적인 사랑을 줬다.
“어머니는 아직도 저를 아이 취급하세요. 제가 아침잠이 많은 편이라 식사를 하기보단 조금이라도 더 자는 걸 택하죠. 겨우 일어나서 씻고 나가려고 하면 어머니께서 ‘넌 밥 먹고 있어, 머리는 내가 말려줄게’라며 머리를 말려주셨죠. 예전에는 그게 부담스럽기만 했어요. 저는 이만큼 받으면 이만큼 주는 성격이거든요. 엄마에게 받은 만큼을 돌려 드릴 수 없을 거라는 생각에 부담스럽고 엄마의 사랑이 구속처럼 느껴졌어요. 무조건 엄마가 희생하는 게 싫었고 이해하기 어려웠죠. 그런데 얼마 전 어린 조카랑 간식을 먹는데 조카가 ‘내가 더 먹을 거니까 먹지 마’ 하더라고요. 그래도 마냥 예쁘고 아이가 잘 먹는 모습을 보는 것 자체가 좋았어요. 엄마가 희생하고 계시지만, 한편으로는 자식을 위해 희생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는 이 땅의 딸과 어머니가 “행복하면 좋겠다”고 했다.
“요즘 부모님들은 아이에게 많은 것을 바라잖아요. 공부가 1순위고, 돈도 많이 벌면 좋겠고. 제가 반 아이들에게 항상 ‘너희가 행복하면 좋겠다’고 말해주거든요. 고등학교 3년 고생하면 50년이 행복하다고들 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나중에 자신이 행복할 수 있다면 소박한 직업을 갖더라도 행복한 걸 하면서 살면 좋겠어요. 멋대로 살 수 있는 시기가 우리 인생에서 얼마 없잖아요. 어른이 되고 나면 마음대로 못하는 게 더 많으니까요. 자유스럽고 행복한 것, 지금 이 순간 행복한 것. 저와 제 반 아이들에게 바라는 바죠.”
평생을 들여 쓰고 싶은 작품은 ‘사랑’과 ‘꿈’에 대한 것이다.
“엄마의 사랑은 ‘바보 엄마’에서 썼고, ‘아빠의 별’에서 아빠에 대해서도 썼고, 남녀 간의 사랑과 꿈에 대해서는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에서 썼고요. 제 작품의 밑바탕은 사랑이에요. 앞으로도 쓰고 싶은 걸 쓰려고요(웃음). 가족은 아주 가까우니까 서로 상처 입히기도 쉽고 상처도 가장 많이 받는 것 같아요. 그래도 가족은 함께 있어야 하고, 마지막 순간 상처받은 마음을 위로해줄 사람도 가족이라는 걸 알면 좋겠어요. 제 책을 통해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기 바라죠.”
엄마와 딸은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다는 말이 있다. ‘딸은 엄마 팔자를 따라간다’는 검증 안 된 말도 전해 내려온다. 언젠가 딸은 엄마가 되고, 어릴 적 엄마에게서 들었던 ‘너도 나중에 너 같은 자식 낳아 보면 알 거다’라는 말을 자신의 딸에게 해줄 것이다. 애증으로 얽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 땅의 엄마와 딸들. 굳이 따지자면 이 책은 바보 엄마와 영주, 닻별만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최 작가와 그의 어머니, 외할머니의 삶도 녹아 있다. 아니, 사실은 세상 모든 엄마와 딸의 이야기다.

참고도서 | 바보 엄마(다차원북스)

여성동아 2012년 3월 5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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