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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장사는 종합예술, 외식 경영자는 만능 엔터테이너”

한국 외식산업 대모 전길희 30년 외길 인생

글 | 김현미 기자 사진 | 홍중식 기자

입력 2012.02.15 14:10:00

음식 장사는 쉽게 시작했다 빨리 망한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어느 산업이 하루 세 번 꼬박꼬박 돈을 쓰게 만들 수 있나. 인간이 있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산업이 바로 외식산업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개인은 망해도 외식산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 외식산업의 대모로 불리는 전길희 대표의 말이다.
“먹는 장사는 종합예술, 외식 경영자는 만능 엔터테이너”


우리는 언제부터 ‘외식’이라는 용어를 썼을까? 일제 강점기 때 신문들을 검색해보면 겉치레라는 뜻의 외식(外飾)은 있어도, 집이 아닌 곳에서 돈을 내고 식사하는 것을 가리키는 외식(外食)이란 말이 쓰인 예는 찾아볼 수 없다. 1940년대 후반부터 외식이란 용어가 눈에 띄는 것으로 보아 광복 후 서양 문물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서 영어 Eating out을 한자로 옮겨 쓰기 시작한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외식과 관련된 기사는 부정적인 내용이 대부분이다. ‘봄철 전염병 주의, 어른들은 외식을 극히 조심토록 해야 한다’(경향신문 1947년 4월27일), ‘관공리 외식 하려면 소속장의 허가 필요, 툭 하면 점심 먹으러 다니는 관공리에 일침’(동아일보 1949년 10월29일) 등의 기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광복 후 정치적 혼란과 식량난에 시달리던 시절 외식은 비위생적일 뿐만 아니라 낭비와 나태의 상징으로 지탄받았다. ‘공직 기강 확립’이 필요할 때마다 정부가 들고 나온 것이 ‘공무원 외식 금지, 도시락 지참’이었고, 이 규정을 지키지 않아 면직을 당하는 이도 있었다. 이런 인식은 한국전쟁을 극복하고 경제적으로 윤택해진 1970년대까지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매식(買食)에 음식 낭비 연간 1백55억원’(매일경제 1970년 5월23일), ‘외식은 가계에 부담, 저녁 식사를 가족과 함께, 재건국민운동중앙회 캠페인’(동아일보 1970년 8월11일),‘생활 공해의 복병 여름철 외식’(경향신문 1975년 6월26일)과 같은 기사들이 종종 신문 지면을 장식했다.
1980년대 들어 상황은 급변했다. ‘생활수준이 상승함에 따라 즐거운 식사를 지향하는 경향과 함께 외식이 증가하고 있다’(매일경제 1980년 10월18일)는 보도가 나온 것을 전후로 ‘외식산업’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했다. 버거킹과 같은 미국의 패스트푸드점이 국내에 들어오고, 서울 강남에 대형 갈비집이 잇따라 생긴 것도 이 무렵이다. 이제 외식은 개탄의 대상이 아니라 식생활의 대세였다. 더욱이 한국이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올림픽대회 유치에 성공하자 외식산업의 선진화는 국가적 과제가 됐다.

밥장사가 아니라 이제부터 외식산업
호텔 경영학 분야 명문으로 꼽히는 미국 FIU(Florida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호텔·푸드 서비스 매니지먼트를 전공한 전길희씨(75·전 중앙대 외식산업경영자과정 주임교수)에겐 이 모든 상황이 절호의 기회였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과 같은 대형 이벤트를 앞두고 온 나라가 손님맞이 준비에 한창인데 정작 외국인이 가장 많이 이용할 음식점에 대해선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맛도 중요하지만 서비스와 위생 문제가 시급했죠.”
1984년 귀국하자마자 그는 외식산업 종사자들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역설했고 1987년 한국 최초로 YWCA에 외식산업경영자과정을 개설했다. 원래 대학에 설치하려 했으나 당시만 해도 음식 장사가 무슨 대학 공부냐며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그러나 올림픽을 치르고 외식산업이 고속 성장을 거듭하자 외식 분야에도 경영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드디어 1992년 중앙대학 산업교육원에 외식산업경영자과정이 만들어졌다. 전 교수는 2006년 퇴직할 때까지 이곳에서 1천여 명의 제자를 길러내며 ‘한국 외식산업의 대모’가 됐다. 퇴직 후에도 서비스 교육 전문 회사인 아비아 대표로서 한국 외식산업이 나아갈 길을 제시하고 있다.
전 대표와의 인터뷰 자리에 권창심 현 중앙대 외식산업경영자과정 주임교수(56)와 2004년 이 과정을 이수한 이한업 소공동뚝배기 사장(59)이 함께했다. 각기 다른 방식으로 외식업에 참여해온 두 사람은 스승의 말씀 사이사이 자신들의 경험담을 풀어내며 새삼 ‘먹는 장사 아무나 하는 것 아니다’란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 호텔경영을 전공하면 대부분 호텔업계로 진출하는데 외식 경영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택한 이유는?
“이화여대 사학과를 나와 대학원에서 고고학을 전공한 뒤 1962년 미국 유학을 갔지만 결혼해서 두 아이를 기르다 보니 학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어요. 전업주부로 16년을 보내고 아이들이 커서 어느 정도 제 시간을 갖게 되자 다시 공부를 시작했는데 취미인 요리와 연결시키다 보니 마이애미에 있는 FIU에 눈길이 갔죠. 거기서 호텔·푸드 서비스 매니지먼트라는 분야를 처음 접했어요. 제가 한국인으로는 이 학교 첫 졸업생이었는데 같이 공부한 후배 남자들은 다 호텔 아니면 학교로 진출하더군요. 저는 가정주부라서 밤 근무가 많은 호텔 대신 외식산업 분야를 목표로 했죠. 단체 급식과 음식점 경영을 공부했습니다.”
1984년 전 대표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한국에서는 외식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가 팽창하고 있었지만 식당 주인들은 여전히 ‘밥장사, 음식 장사는 격이 떨어진다’는 의식에 젖어 있었다. 음식 장사를 외식산업(Food Service Industry)으로 격상시키려면 그들에게 경영자 마인드를 심어줘야 했다.

“먹는 장사는 종합예술, 외식 경영자는 만능 엔터테이너”

왼쪽부터 전길희 대표, 권창심 교수, 이한업 사장.



▼ 흔히 ‘회사 때려치우고 먹는 장사나 하겠다’고 하는데 외식업은 쉽게 시작했다 빨리 망하는 분야가 아닐까요?
“수치로만 보면 맞는 말이에요. 한국은 식당 수가 인구 80명당 한 곳, 일본은 1백80명당 한 곳, 미국은 3백70명당 한 곳꼴이라고 해요. 숫자야 해마다 조금씩 달라지겠지만 한국 외식업계가 제일 경쟁이 치열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죠. 옛말에 ‘음식 장사는 망해도 먹을 건 남는다’고 했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아요. 외국 통계를 보면 식당은 창업 1년 내에 폐업할 확률이 85%나 되고 우리나라도 연간 폐업하는 업소가 30~40%에 이르죠. 식당을 폐업할 경우 회수할 수 있는 투자액은 0에 가까워요. 그만큼 위험한 사업입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외식산업 말고 어느 산업이 하루에 세 번 돈을 쓰게 만듭니까. 경제가 어려워지면 옷은 안 사 입고 버틸 수 있지만 세 끼니는 안 먹고 지낼 수 없잖아요. 전 세계적으로 유류산업 다음으로 통화량이 많고, 관련 종사자가 가장 많고, 인간의 건강을 책임지는 산업이자, 인간이 있는 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산업이 바로 외식산업이에요. 그래서 역설적으로 ‘개인은 망해도 외식산업은 절대 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맛은 필수, 서비스·분위기·청결 다 갖춰야
▼ 음식 솜씨가 좋은 사람에게 ‘식당이나 해보라’는 말을 하죠. 경영자에게 음식 솜씨는 필수인가요?
“아뇨. 그 말대로라면 조리사 출신이 하는 음식점은 다 성공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잖아요. 저는 음식 솜씨보다 경영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봐요. 직원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 손님을 어떻게 접대하느냐, 음식점을 홍보하고 판촉 하는 능력이 있느냐, 이런 것들이 성공의 열쇠죠. 외식업은 그냥 음식 장사가 아니라 서비스, 분위기, 청결 등을 파는 일종의 종합예술이에요.”
13년째 식당을 경영하고 있는 이한업 사장이 보충 설명을 했다.
“저는 전 교수님의 수업에서 ‘외식 경영자는 만능 엔터테이너가 돼야 한다’는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대부분의 산업에서는 생산자와 판매자가 따로 있지만 외식업은 생산해서 바로 그 자리에서 팔기 때문에, 그럴수록 더 잘 만들고 더 잘 팔아야 해요. 음식 맛이요? 중요하지만 전부는 아니에요. 예를 들어 입맛이란 게 사람마다 다 달라요. 유명한 맛집이라고 소문 듣고 갔더니 전혀 맛있는 줄 모르겠다고 불평하는 사람도 있어요. 경영자라면 내 식구 입맛에만 맞는 게 아니라 여러 사람이 좋아할 수 있는 맛을 찾아내야죠. 그리고 늘 똑같은 맛을 유지해야 해요. 누가 만들어도 같은 맛이 나오게끔 하는 것이 시스템이죠. 결국 경영을 하려면 직원들과의 관계가 중요해요. 서비스를 하는 것은 종업원들이니까요. 외람되지만 교수님이 식당을 해도 잘 안되실 거예요. 우리나라처럼 식당에서 손님들이 많은 것을 요구하는 나라도 없기 때문이죠. 잔돈 바꿔달라는 기본이고 휴대전화 충전해달라, 담배와 라이터 달라, 맛있는 반찬 좀 싸달라는 요구까지 손님들은 음식점에서 이런 서비스를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요. 애들은 뛰어다니고, 물은 엎질러지고, 1인분 시켜놓고 밥만 추가해서 둘이 먹는 일이 비일비재한데 이런 것을 다 감안해서 손님에게 웃으면서 서비스하려면 달인이 돼야죠. 손님은요, 기가 막히게 눈치가 빨라요. 저 사람이 가짜로 서비스하는지 진짜로 하는지 금방 알죠. 그리고 요즘 손님들은 전 세계의 맛과 서비스를 다 경험해본 분들이에요. 음식점에 가면 당연히 그런 서비스를 받는 것으로 알죠. 그런 손님들 눈높이에 맞추려면 밥장사가 보통 일이 아니구나, 대단한 일이구나 하는 자긍심을 갖게 돼요.”



▼ 1988년 서울 올림픽이 한국 외식업계의 전환점이 됐다고 하는데….
“그 전까지는 말 그대로 밥장사였어요. 주인은 음식을 만들어 팔고 손님은 허기를 채우면 됐죠. 그러나 올림픽을 계기로 음식의 품질뿐만 아니라 서비스와 청결이 요구되기 시작했거든요. 그리고 1990년대 중반이 되자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간판 메뉴’가 필요했습니다. 다시 말해 누가 얼마나 차별화된 상품을 내놓느냐가 성공의 열쇠였죠. 2000년대에 들어서자 고객 관리의 중요성이 강조됐어요. 단골 고객을 얼마나 확보하느냐에 성공이 달렸죠. 이 점은 아직까지 유효합니다만 앞으로는 그것만으로는 성공하기 힘들어요. 이젠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 외식 경영에서 창의력은 구체적으로 어떤 능력을 말합니까?
“식당을 열면 손님이 알아서 찾아오던 시기가 있었죠. 그다음엔 식당이 손님이 있는 곳을 찾아가는, 즉 점포의 위치가 중요했어요. 그다음엔 손님이 무엇을 좋아하느냐를 따라잡아야 성공할 수 있었죠. 앞으로는 외식 경영자가 먼저 크리에이티브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손님이 그것을 좋아하게끔 이끌어야 해요. 메뉴만이 아니라 서비스와 분위기 모두에서 창의력이 필요하죠.”

미래를 위해 황당한 메뉴 개발하라
▼ 외식산업경영자과정을 마친 제자들이 이런 것을 현장에서 잘 적용하나요?
“제가 1~26기까지 가르쳤는데 이분들이 과연 무엇을 배워갔을까 궁금했어요. 일반인의 눈에는 어떤 변화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주인과 가르친 사람의 눈에는 달라진 게 보이죠. 바로 시스템이에요. 예를 들어 제가 메뉴 강의를 하면서 강조하는 것이 ‘수시로 바꿔라, 그러나 반드시 표준화하라’입니다. 아무리 맛있는 것도 진력이 나잖아요. 그러니까 메뉴를 바꿔야죠. 바꿀 때도 원칙이 있어요. ‘잘 팔리는 50%는 그대로 유지한다. 30%는 일반적으로 유행하는 것을 집어넣는다. 10%는 시험적인 것을 넣는다. 나머지 10%는 미래를 위해 아주 황당한 메뉴를 넣는다. 그리고 손님들의 반응을 살펴 수시로 교체한다.’ 이런 원칙을 적용하면서 식당을 운영하는 것이 시스템이죠.”

▼ 황당한 메뉴란 게 뭔가요?
“앞으로 이런 게 유행할 수도 있겠다,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새로운 메뉴를 만드는 것이죠. 사실 한식은 무(無)에서 유(有)보다 유(有)에서 유(有)를 찾으라고 합니다. 아직도 지방에는 알려지지 않은 맛이 많이 있으니 그것을 찾아 현대인들의 입맛에 맞게끔 개발하고 서비스하는 게 새로운 메뉴 개발법입니다.”

▼ 외식이 보편화된 지금도 여전히 사 먹는 음식에 대해 낭비, 나태와 같은 부정적인 시각이 남아 있습니다.
“요즘 여자들이 얼마나 할 일이 많아요. 일하고 아이 기르고 매 끼니 음식까지 하라고 하는 것은 너무 가혹하죠. 그럴 때 외식은 하나의 즐거움, 인생의 활력소가 됩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늘고 있는 싱글들에겐 외식이 더 경제적이에요. 또 고령화 사회에서는 새로운 개념의 외식이 생깁니다. 노인들이 혼자 조리해 먹기 힘드니까 배달이 늘죠. 조리사가 집으로 와서 1주일 식단을 짜고 음식을 만들어 차곡차곡 냉장고에 넣어주는 방식도 가능합니다. 노인들은 꺼내서 데워 먹기만 하면 돼요. 외국에서는 노인 복지 차원에서 정부가 이런 사업을 지원하고 있어요. 외식은 밖에 나가서 먹는 장소적 개념이 아니라 내가 직접 조리해서 먹는 것이 아닌 모든 걸 포함합니다. 그러니까 외식산업은 계속 발전할 수밖에 없어요.”

주부에게도 필요한 외식 경영자 마인드
권창심 교수는 “주부들이 요리뿐만 아니라 외식업을 배워두면 쓸모가 많다. 외식 분야로 시선을 돌리면 인생의 터닝 포인트로 삼을 수 있다”며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5기생으로 중앙대 과정에 들어갈 때 저는 전업주부였어요. 친구 따라 등록을 했는데 친구는 중간에 포기하고 저는 공부가 너무 재밌어서 계속 다녔죠. 저희는 1년에 한 번씩 학술 세미나를 했는데, 제가 그룹 대표로 발표를 하게 됐어요. 그 뒤 전 교수님이 저를 불러 학교에 남을 생각이 없느냐고 하시더군요. 그게 오늘날 저를 만들었죠.”
전 대표는 “왜 외식업이라고 하면 음식점만 생각하느냐”며 외식업의 분야는 무궁무진하다고 설명했다.
“음식점용 소품 개발, 요리 스타일링, 요리 사진 등 여러 방면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많아요. 요즘 외식업 하는 분들이 공통적으로 재고 관리가 힘들다고 해요. 음식점 재고 관리만 전문으로 해주는 컨설팅도 유망한 분야죠.”

▼ 식당에 가면 제일 먼저 무엇을 살피시나요?
“분위기요. 그리고 종업원들이 손님을 어떻게 맞이하나 살핍니다. 식당을 하려면 손님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손님들은 돈 쓰러 식당에 가요. 그 대신 ‘나를 알아달라’ ‘내 요구에 응해달라’ ‘그러면 또 오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 손님이 식당에 들어왔을 때 건성으로 ‘어서오세요’ 하는 것과 ‘그동안 격조하셨네요’ 또는 ‘처음 오셨습니까? 주차는 힘들지 않으셨습니까?’ 하고 응대하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죠. ‘나를 알아달라’는 손님의 요구에 응하면 그 손님을 반드시 다시 옵니다.”
전 대표의 설명을 들으며 주부들이 외식 경영자 마인드로 매일 식탁을 준비하면 저절로 행복한 가정이 되겠다고 하자 식당을 하는 이한업 사장이 더 반색을 했다.
“주부에게 남편은 최고의 고객이죠. 월급 가져다주지, 아내가 만든 음식을 맛이 있든 없든 먹어주지. 남편들이 밖에서 매일 좋은 것, 비싼 것만 먹는 줄 아는데 절대 아니에요. 직장 다니는 남자들 식당에서 돈 낼 때 서로 눈치 보며 안 내려고 해요(웃음). 그러니 늦게 들어온 남편에게 ‘지금 이 시간에 저녁도 안 먹고 왔냐’며 불평하지 말고 집에 와서 밥 먹어주는 거 고마워하며 반찬도 바꾸고 그릇도 바꿔보세요. 외식 경영을 가정에 적용하면 모두가 행복해져요.”
외식산업 전문가와 맛집 탐방
3년 된 묵은지로 승부 건 여의도 ‘마실’

“먹는 장사는 종합예술, 외식 경영자는 만능 엔터테이너”

왼쪽은 ‘마실’ 이규순 대표.

전길희 대표와 인터뷰를 마치고 일행은 여의도 직장인들 사이에서 손꼽히는 맛집인 ‘마실’로 자리를 옮겼다. 마실엔 간판 메뉴가 따로 없다. 점심때 이곳을 자주 이용하는 사람들은 갈치·고등어 조림 잘하는 집으로 기억하고, 저녁에 자주 오는 사람은 오리장작구이·홍어삼합에 탁주 한 잔을 먼저 떠올린다. 특정 지역을 앞세운 마케팅도 하지 않는다. 이규순 대표는 충북 괴산 출신이지만 김치는 괴산에서, 갈치는 제주도에서, 홍어는 물론 목포에서 공수하니 음식에 지역색이 없다.
“먹는 장사는 종합예술, 외식 경영자는 만능 엔터테이너”

홍어삼합

어찌 보면 두루뭉술한 이미지인데 마실을 하나로 묶어주는 맛이 있다. 바로 김치다. 마실에서는 홍어, 오리, 갈치, 고등어 등 모든 메뉴에 묵은지가 함께 나온다. 홍어삼합은 3년 된 묵은지와 먹어야 제일 맛있다는 게 이 대표의 설명. 나머지 음식에는 2년 된 묵은지가 사용된다. 조림은 생선과 함께 푹 익어 부드러우면서도 새콤한 맛이 배어나오는 김치를 길게 찢은 다음 생선살을 싸서 먹어야 제격이다. 이 대표는 갈치조림과 고등어조림 사이에서 살짝 고민하는 기자에게 담백한 갈치조림을 먼저 맛보고, 진한 맛의 고등어조림을 나중에 먹어야 맛이 섞이지 않는다고 가르쳐준다. 점심 식사여서 식탁에 탁주가 오르진 않았지만 홍어삼합을 맛볼 수 있었다. 큰 접시에 보기 좋게 차려진 홍어삼합은 ‘프레젠테이션’ 측면에서 합격점. 남도식 푹 삭힌 맛은 아니지만 그 대신 초보자도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이 마실 홍어의 특징이다.
이 대표는 중앙대 외식산업경영자 과정을 이수하며 ‘묵은지’를 주제로 논문을 썼다. 그만큼 김치에 대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매년 괴산에서 2천5백 포기씩 김장을 하는데 그중 8백 포기는 여의도에 묻어두었다고 한다. 마실의 비법이 담긴 김칫독이 어디에 묻혀 있을까 궁금해진다. 마실·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정우빌딩 지하 4호 02-783-6210


여성동아 2012년 2월 5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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