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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Life in NewYork

비운의 요리사 바텔과 프라이빗 셰프의 세계

푸드칼럼니스트 미령·셰프 로랭 부부 맛을 탐하다

글 | 이미령 사진 | 로랭 달레, all-free.photos.com 제공

입력 2012.01.02 16:08:00

비운의 요리사 바텔과 프라이빗 셰프의 세계

1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 공식 디너를 위한 테이블 세팅. 2 타프나드 비네그레트 드레싱을 한 채소 콩피.



‘프라이빗 셰프’와 ‘퍼스널 셰프’가 어떻게 다르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 그때마다 로랭은 “나는 프라이빗 셰프이기도 하고 퍼스널 셰프이기도 하지요”라고 대답한다. 그러면 질문한 이의 동그래진 눈과 머리 위로 떠오르는 물음표가 보인다.
우리 부부가 프라이빗 셰프를 설명할 때 즐겨 사용하는 역사적 인물이 있다. 프랑수아 바텔(Fran·#46828;is Vatel, 1631~1671). 그는 태양왕 루이 14세 시절 재무장관이던 니콜라 푸케 후작과 콩데 왕자의 집사장이자 주방 총책임자였다. 오늘날로 치자면 푸케 장관과 콩데 왕자의 프라이빗 셰프였던 것. 그의 뛰어난 조직 능력, 스펙터클한 연회는 당시 프랑스 상류사회의 화젯거리였다.
1661년 푸케는 루이 14세를 자신의 거처인 보르비콩트(Vaux-le-Vicomte) 성에 초청한다. 최고의 연회를 마련해 왕을 기쁘게 할 요량이었다. 이번에도 바텔이 모든 준비를 책임졌다. 그는 주인으로부터 더 완벽할 수 없는 최고의 연회를 준비해달라는 지시를 받았다. 진기한 음식들이 다섯 코스로 준비됐다. 왕과 왕족들에게는 금제 식기, 나머지 귀족들에게는 은제 식기가 제공됐다. 왕과 귀족들이 식사하는 동안 장바티스트 드 륄리(Jean-Baptiste de Lully)의 음악을 24명의 바이올린 주자들이 연주했다. 식사 후에는 몰리에르와 그의 극단이 이날 연회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희극 ‘레 파슈(les Facheux)’를 공연했다. 발레를 포함한 희극은 몰리에르의 첫 실험작이었다. 루이 14세가 만족하느냐 아니냐에 그의 예술 인생이 걸려 있었다. 오직 왕의 만족만이 그들의 목적이었다. 17세기에는 그랬다. 푸케와 바텔은 몰리에르의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숨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루이 14세의 반응만 살폈다. 공연이 끝났다. 몰리에르의 ‘레 파슈’는 대성공이었다. 이것이 ‘코메디발레(Comedie-ballet)’가 탄생하게 된 계기다.

왕의 분노를 자아낸 너무 완벽한 파티

비운의 요리사 바텔과 프라이빗 셰프의 세계

루이 14세 시절 재무장관이었던 니콜라 푸케 후작의 보르비콩트 성. 푸케는 이 드넓은 성에서 왕을 위해 화려한 연회를 준비했다가 왕의 분노를 사서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바텔의 최고급 정찬도 왕의 찬사를 받았다. 푸케는 모든 것이 잘됐다는 생각으로 안심했다. 그런데 그 기쁨의 순간도 잠시, 마지막 불꽃놀이를 참관하던 루이 14세의 안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왕은 푸케의 화려한 파티에 분노가 치밀었다. 루이 14세는 당시 30년전쟁에 충당할 전비를 마련하고자 궁전에서 사용하던 금제 식기들은 물론 귀중한 금속들을 녹여야 했다. 그런데 재무장관 주제에 감히 왕을 능가하는 재정적 능력을 자랑하다니! 왕은 진노했고 시기심까지 느꼈다. 연회가 끝나갈 무렵 그는 푸케를 그 자리에서 체포하겠다고 결심했다. 왕의 불같은 성격을 잘 아는 모친이 간곡히 만류했다. 대신 왕은 푸케가 정성껏 마련한 화려한 침실을 거부하고 21km나 떨어진 자신의 거처인 퐁텐블로 성으로 돌아갔다. 파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왕의 분노는 푸케와 바텔에게 세상의 종말과 같았다. 결국 푸케는 체포돼 남은 인생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화려한 연회를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졌던 요리사 겸 집사 바텔도 영국으로 망명했다. 루이 14세가 그의 천재적인 능력에 감탄해 그를 비롯한 푸케의 고용인 전부를 베르사유 궁전으로 거두려했던 계획도 모르고 말이다.
그러나 바텔은 지인의 소개로 콩데 왕자의 집사 겸 주방 총책임자로 고용돼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 콩데의 거처인 샹티이(Chantilly) 성에서 일한다. 그는 콩데가 마련하는 각종 연회는 물론 자재 구입과 식음료의 모든 것을 책임졌다. 콩데는 루이 14세가 미성년이었을 때 ‘프롱드의 난’에 참가한 적이 있어 이에 대한 왕의 보복을 늘 두려워하고 있었다. 프롱드의 난은 당시 마자랭 섭정 체제를 전복하려던 귀족들의 난으로 이 때문에 루이 14세는 시골로 도피해야 했다.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귀족들은 엄청난 권력을 지니고 ‘태양왕’이라 불리는 루이 14세에게 용서를 구하고 환심을 사기 바빴다. 콩데는 루이 14세를 샹티이 성으로 초대하기로 결정했다. 왕과 왕족들을 비롯 베르사유 궁전의 하인들까지 전원 초대했다. 무려 3천여 명. 사흘 낮과 밤 계속되는 최대의 연회를 준비했다. 역시 모든 준비는 바텔이 진두지휘했다. 완벽주의자 바텔은 루이 14세와의 화해를 바라는 주인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루이 14세도 네덜란드와 전쟁을 하려면 콩데의 군사적, 재정적 협력이 필요하다고 계산했다. 왕이 3천여 명을 이끌고 샹티이 성에 도착했다.



비운의 요리사 바텔과 프라이빗 셰프의 세계

1 유자젤리에 감귤, 튈(종이처럼 얇은 쿠키), 초콜릿 크림을 얹은 요리. 2 제철 채소 샐러드. 3 가늘게 채친 채소 위에 데친 생선(참서대 일종인 도버솔)과 살구버섯, 패티팬 호박, 파르메산치즈 칩을 곁들인 요리. 4 다크 초콜릿 무스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라즈베리를 얹고 마지막에 에인절 헤어(아주 가는 파스타)를 올린 요리. 5 양 안심 구이와 그라탱 도피누아(감자와 크림으로 만든 그라탱). 6 바텔이 샹티이 성에서 처음 만든 것으로 알려진 샹티이 크림.



풍미 그윽한 샹티이 크림은 바텔의 마지막 선물
바텔은 성 전체를 환하게 밝히고 25개의 호사스러운 테이블을 준비했다. 테이블에 장식되는 꽃의 종류와 색깔까지 직접 챙겼다.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러나 연회는 바텔의 예상대로 완벽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생각지도 않은 추가 인원으로 마지막 두 테이블에 놓아야 할 구운 고기 요리가 모자란 데다 신선한 해산물이 예정된 시간에 도착하지 않았다. 바텔은 지인인 구르빌에게 이 엄청난 문제로 인해 자신의 명예와 명성을 영원히 잃게 됐다고 개탄했다. 구르빌은 이보다 더 완벽한 연회는 없다며 바텔을 위로했지만 이것이 죽음에까지 이를 만큼 심각한 문제인 줄은 몰랐다. 바텔은 구르빌과 대화를 마치고 자신의 방으로 올라가 자살했다. 해산물이 도착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을 지는 것과 동시에 스스로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가 자살한 직후 학수고대하던 해산물이 뒤늦게 도착했고 바텔은 전설이 됐다. 그의 자살은 당시 상류사회에서 ‘국가적 상실’로 여겼을 정도다.
이날 연회를 위해 프랑수아 바텔이 최초로 개발했다고 알려진 샹티이 크림(creme chantilly)은 오늘날까지 사랑받고 있다. 생크림에 설탕, 바닐라 향을 넣고 거품을 내어 만든 풍미가 그윽한 휘핑크림이다. 주로 케이크 장식이나 디저트에 얹는 재료로 사용한다. 어떤 사람들은 비엔나커피 위에 샹티이 크림을 듬뿍 얹어 특유의 고소하고 달콤한 맛을 즐기기도 한다. 바텔의 샹티이 성 마지막 연회와 자살 관련 일화는 제라르 드파르디외 주연의 영화 ‘바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영화 속 바텔이 자신이 만든 샹티이 크림을 손가락으로 찍어 맛을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비운의 요리사 바텔과 프라이빗 셰프의 세계

연회를 준비하고 있는 로랭의 모습(오른쪽).



문제는 언제나 있다, 셰프에게 필요한 것은 냉정과 침착

그러나 정작 셰프인 로랭은 바텔의 자살을 동정하는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 셰프는 어떤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냉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셰프들이 다 바텔 같다면 어쩌겠어? 특별 주문한 식재료가 도착하지 않거나 손님이 예상보다 많다거나 어떤 음식이 모자란다든가 하는 것은 흔히 벌어지는 문제들이잖아? 나는 바텔의 자존심이 과장됐다고 봐.”
자신의 명예를 지키는 것보다 자살로 파티 분위기가 망쳐질 것을 더 걱정했어야 한다고 말하는 로랭은 17세기 어느 귀족의 프라이빗 셰프가 아니라 21세기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의 프라이빗 셰프다. 2007년부터 영사관에서 근무하는 동안 영사가 세 번이나 바뀌었다. 영사는 바뀌어도 영사관 메트르 도텔(Maltre d’hotel: 급사장)이나 셰프들은 바뀌지 않는다. 주인 따라 해고되거나 연회가 잘못됐다고 다른 나라로 망명 갈 필요도 없다. 식재료가 도착하지 않았다고 책임지고 자살을 택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 물론 로랭의 말대로 영사관 셰프는 주어진 임무의 완벽한 수행을 위해 냉정하고 이성적이며 매사에 빈틈없어야 한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안달해서는 안 된다. 침착해야 한다.
프랑스 영사관에서는 여름휴가 한 달을 제외하고 각종 뷔페, 칵테일, 공식 만찬 등이 수시로 진행된다. 프랑스의 고위급 정치인들이나 유명 인사들은 뉴욕을 방문할 때 영사가 마련하는 만찬에 참석하곤 한다. 17세기 바텔만큼은 아니더라도 헤드셰프 스테판 베르디유(Stephane Verdille)와 수 셰프 로랭은 완벽한 만찬을 준비하기 위해 바짝 긴장한다. 노력에 대한 보람도 크다. 식사에 만족한 손님들이 직접 키친으로 와 인사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중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있다. 마치 루이 14세가 부엌으로 들어와 음식을 준비한 바텔에게 직접 인사하는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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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데 왕자의 샹티이 성. 루이 14세가 3천여 명을 이끌고 이 성의 연회에 참석했다.



일회용 이벤트나 출장연회를 책임지는 퍼스널 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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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롤랑 조페 감독이 만든 영화 ‘바텔’의 한 장면. 프랑스 배우 제라르 드파르디외(왼쪽)가 바텔 역을 맡았다.



2010년 여름 전직 영화배우 겸 모델 루스 포드(Ruth Ford) 남매를 위해 36년 동안 버틀러(집사)로 일해오던 네팔인 인드라 타망(Indra Tamang)이 98세로 타계한 여주인의 많은 재산을 물려받아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루스 포드는 소원해진 외동딸과 손자들에게는 단 한 푼도 남기지 않았다. 남매는 생전에 인드라를 “인드라 달링(Indra Darling)”이라 부르며 깊은 신뢰와 애정을 보였다고 한다. 많은 재산을 물려받은 타망은 “찰스, 루스 남매와 저 사이에는 우정이 있었어요. 그들의 고용인만은 아니었지요. 그보다 더 밀접한 관계였어요”라는 말을 남겼다.
뉴욕에는 이렇게 프라이빗 셰프 겸 집사로 일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고용주와 함께 거주하기도 한다. 우리 부부가 알고 지내는 프라이빗 셰프 올리비에 쇼메(Olivier Chaumet) 같은 경우는 고용주가 제공하는 맨해튼 아파트에서 따로 생활하며 출퇴근한다. 뉴욕의 거부들 중에는 세계 곳곳에 별장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들이 여행할 때 개인 비서, 프라이빗 셰프도 동행한다. 올리비에 부부도 고용주와 함께 장기 여행을 떠나곤 한다. 그들은 요리만 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미팅 약속은 물론 집안일 전체를 관리한다. 당연히 고용주와 거의 한가족처럼 지낸다. 고용주 가정사를 속속들이 꿰뚫고 있다. 그들에게 필수적으로 ‘신중함’이 요구되는 이유다.
특정인에게 독점적으로 고용된 셰프가 아닌 일회용 이벤트나 출장연회를 책임지는 셰프들은 프라이빗 셰프가 아니라 퍼스널 셰프라고 부른다. 즉, 영사관 프라이빗 셰프인 로랭이 자신이 따로 관리하는 개인 고객을 위해 칵테일파티나 특별 연회를 준비하게 될 때는 고객의 퍼스널 셰프가 되는 것이다. 남부 뉴저지에 사는 한 부유한 고객을 위해 소규모 디너파티를 준비했던 우리가 잊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다. 2년 전 일이다. 다음 호에 밝히도록 한다.

푸드칼럼니스트 이미령, 셰프 로랭 달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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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랭 달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 출신으로 파리 에콜 데 카드르, 시티 오브 런던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뉴욕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 르노 사와 브이그 텔레콤에서 일했다. 마흔 살이 되기 전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러 2007년 2월 말 뉴욕으로 와 맨해튼 소재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에서 조리를 배우고 지금은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 수 셰프로 근무하고 있다. 이미령은 연세대 음대,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파리 에콜 노르말 드 뮤직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브이그 사에서 국제로밍 및 마케팅 지역 담당 매니저로 일했다. 현재 뉴욕에서 Le Chef Bleu Catering을 경영하며 각종 매체에 음식문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두 사람은 런던 유학 중 만나 결혼했다. 저서로는 ‘파리의 사랑 뉴욕의 열정’이 있다. mleedallet@yahoo.fr

여성동아 2012년 1월 5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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