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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도전하는 인생

소설가로 변신한 손미나

파리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말하다

글·이혜민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입력 2011.08.17 09:13:00

‘세상 모든 일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프랑스 파리에서 돌아온 손미나가 이렇게 외친다. 운명적인 사랑에 대한 소설을 쓴 것도 이런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뒷걸음질 치다가도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는 그에게 다시금 청춘을 느낄 수 있었다.
소설가로 변신한 손미나


건강미 넘치는 구릿빛 피부, 흑진주처럼 빛나는 눈빛. 언젠가부터 이런 모습이 손미나(39)의 트레이드마크가 됐다. KBS 아나운서로 재직하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돌아와 여행작가로 전직해 ‘스페인 너는 자유다’ ‘태양의 여행자-손미나의 도쿄 에세이’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를 쓰는 틈틈이 ‘엄마에게 가는 길’ ‘연필 하나’ 등 번역서를 낸 그가 이번에는 소설가로 돌아왔다. 프랑스 파리에서 머물며 쓴 소설 ‘누가 미모자를 그렸나(웅진지식하우스)’를 펴낸 그는 이 소설을 통해 네 남녀의 운명적인 사랑을 이야기했다. 갓 구운 바게트만큼이나 신선한 소설을 들고 행복감에 젖어 있는 그를 만났다.

‘우주적인 움직임에 의해 운명 지어지는 것… 그런 게 사랑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이나 국적, 신분, 하는 일… 뭐 그런,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이랑 상관없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은 따로 있다는 그런 생각. 거부할 수 없는… 그러니까 말 그대로 잃어버린 반쪽을 찾은 것처럼, 자물쇠에 꼭 맞는 열쇠를 찾은 것처럼, 운명적으로 사랑에 빠지는 상대가 존재할 것 같아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해요?’-(‘누가 미모자를 그렸나’ 중에서)

파리, 소설의 시작
▼ 여행작가로서 10년간 10권의 책을 쓰겠다고 했는데 중간에 소설을 펴낸 이유가 궁금합니다.
“여행 에세이를 세 권 쓰고 나니까 제 자신이 부족하다는 걸 느꼈어요. 좋은 글을 써내려면 새로운 문화를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적으로 성장해야겠다 싶었죠. 이왕 글쟁이로 살기로 결심했으니 어려운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기도 했고요. 나중에 이 글을 보고 웃을 수도 있지만 30대가 얼마 남지 않은 이 시점에서 사랑에 대한 제 생각을 정리해봤어요. 불안정한 현재라는 상황에서 행복을 찾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었던 것 같아요.”
▼ 언제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했나요.
“2009년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살았는데 6개월 정도 지났을 때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막상 플롯을 정하는 데만 1년이 넘게 걸렸죠. 칩거 생활을 하면서 영화도 책도 엄청나게 보고 글도 열심히 썼는데 쓰다 지우기만 반복했어요. 할 얘기는 무궁무진한데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정확히 몰랐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 시간이 지나니까 표면적으로 하고 싶은 얘기를 놓아버리고 진짜로 하고 싶은 얘기를 찾아낼 수 있었죠. 그러다 지난해 12월 어느 날 ‘프랑스를 배경으로 소설을 풀어내야겠다’ ‘이제는 소설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하룻밤 만에 도입부를 썼어요.”
▼ 여행 에세이와 소설을 쓸 때 차이는 무엇인가요.
“에세이는 생각나는 대로 정리하면 되는데, 소설은 방향을 잃으면 이도저도 안 되기 때문에 쓰기가 까다롭더라고요. 소설이 특별한 형식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잘 짜인 가구처럼 짜임새 있게 이야기를 풀어가야 하거든요. 결말을 고려해 복선도 넣어야 하고요. 소설 쓰는 내내 헤엄칠 줄도 모르면서 바다에 뛰어든 기분이 들었어요. 장소도 서울에서 프랑스로, 시제도 현재 미래 과거를 오가는 바람에 힘들었고요. 하지만 결과물만큼은 엉성하게 내고 싶지 않아서 7번의 수정 작업을 거쳐 6개월 만에 완성했습니다.”
▼ 그동안 많은 나라를 여행한 경험이 소설을 쓸 때 도움이 됐나요.
“그럼요. 이번 소설의 배경이 된 프랑스 봄레미모자도 여행하면서 발견한 곳이에요. 프랑스 남편을 둔 페루 친구가 자기가 가본 프랑스 지역 중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소개해줬는데, 너무나 아름다운 시골마을이라 가자마자 마음을 빼앗겼죠. 여행에서 만난 사람이 등장인물로 나오기도 해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유물을 추적하는 ‘워싱턴포스트’ 기자도 실제로 만난 분이죠. 그렇지만 극중 인물은 창조할 때가 더 많아요. 주인공과 함께 예술모임을 꾸려가는 사람들만 해도 프랑스의 문화사적 흐름을 샅샅이 조사한 뒤 만들어낼 수 있었죠.”

소설가로 변신한 손미나

손미나는 사람을 예술적으로 만드는 파리에서 소설을 쓰며 인생을 생각했다.





▼ 소설을 읽다 보면 ‘마음속에 있는 악마를 다스리지 못하면 자기 자신조차도 사랑할 수 없다’ ‘인생이란 게 뭔가를 애타게 좇는다고 해서 그것이 꼭 손에 들어오는 건 아니다’ 같은 조언이 눈에 띄는데요. 이런 얘기는 여행에서 만난 이들에게 들은 건가요?
“그럴 수도 있지만 제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정리했다고 하는 편이 맞을 거예요.”
▼ 여행하면서 소설을 쓴다는 것이 육체적으로 힘들지 않았나요.
“여행가이긴 하지만 낯선 곳을 계속 돌아다니는 건 아니에요. 프랑스를 여행할 때도 한 곳에 거처를 마련해두고 현지인들처럼 살면서 좀 더 긴 호흡을 갖고 부근을 다니죠. 루브르박물관을 휙 둘러보지 않고 한 달간 찬찬히 보는 식이에요. 이번에 소설을 쓸 때는 주로 파리 집에 머물렀어요. 글을 쓴다는 건 오래달리기 같은 일이니까 생활 습관을 잘 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하루 최소 1, 2시간은 운동하고 음식도 잘 챙겨 먹고 밤늦게까지 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 힘들지 않았어요. 소설을 쓰면서 저라는 사람을 풀어나가고, 그런 제 모습을 통해 사람들과 소통한다는 기대만으로도 기운이 났죠.”
▼ 많은 도시를 여행했는데 프랑스에서 소설을 쓴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아르헨티나를 여행했는데, 그곳이 프랑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더라고요. 앞으로 유럽에 대한 여행 책을 쓸 텐데 유럽 문화의 근간이 되는 프랑스를 가야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파리에 살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새침데기 같은 이 도시에 영 정이 안 붙더라고요. 1년이 지나도 마찬가지였죠. 그러다 어느 순간, 그곳이 놀라우리만치 신비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파리는 저처럼 예술과 큰 상관 없이 살아온 사람에게 스케치북과 물감을 사다 그림을 그리게 하고, 시와 소설을 쓰게 만드는 마력을 지닌 도시거든요.”

다시 꿈꾸는 운명적인 사랑

소설가로 변신한 손미나


그는 1년 열애 끝에 결혼에 골인했지만 1년도 채 지나지 않은 지난 2008년 이혼했다. 순식간에 타올랐다 사그라진 사랑을 한 만큼 깊은 상처를 받아 움츠러들 만한데 그는 오히려 여행길에 올랐다. 손미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힘든 일은 담아두지 말고 찬란한 태양 아래 던져라. 그러면 그늘조차 없을 것이다”라고 위로해줬고 덕분에 그는 태양을 마주하고 걸으며 아픔을 조금씩 이겨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사랑을 기다린다. “살아오면서 세상에 그냥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걸 절감했다”며 “운명적인 사랑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런 운명을 기다리며 살고 싶다”는 손미나.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데 거침없던 그가 이 대목에서는 조금 머뭇거렸지만 감정 그대로를 드러내려고 애쓰는 모습이 역력했다.
▼ 소설을 쓰면서 사랑의 아픈 상처를 치유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을 안 해봤는데, 저는 의도적으로 그 기억을 지우려고 노력해요. 2008년에 책을 번역하러 스페인에 간 것도 그래서였죠. 하지만 그 경험을 아픈 상처라고까지 생각하지 않아요. 처음에는 ‘왜 하필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싶었는데 이제는 그 일을 계기로 좀 더 성숙하게 된 걸 감사하게 생각해요. 도리어 이 일을 통해 인생에서 선택이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죠.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에 비하면 제가 겪은 일은 아무 것도 아니잖아요. 그동안 인생의 어려움을 교묘하게 잘 피해왔는데 제게도 어려움이 닥친 거니까 현명하게 잘 견뎌야겠죠. 물론 그 일 때문에 위축될 때가 전혀 없는 건 아니에요.”

소설가로 변신한 손미나


▼ 늘 당차 보이는 손미나씨에게도 이혼 경험이 인생의 무게로 다가오나요.
“그런 것 같아요. 누구나 ‘자신의 십자가’를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저도 예외가 아니에요. 사람들이 ‘남자친구 있느냐’고 물으면 도둑이 제 발 저리듯 제가 먼저 이혼 사실을 말하곤 했어요. 싱글이라고 말하면 뭔가를 속이는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제가 구구절절 얘기하니까 외국 친구들이 별로 중요치 않은 걸 왜 얘기하느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알게 됐죠. 그들에게는 그 일이 사람을 판단하는 잣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요.”
▼ 겉으로는 씩씩하게 잘 사는 것처럼 보여요.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 일이 기사화됐을 때 많은 분들이 ‘당신이 그동안 보여줬던 모습에 비춰보면 올바른 선택을 했을 것이다, 용기를 잃지 말고 잘 살길 바란다’고 격려해주셔서 많은 힘을 얻었어요. 사람마다 인생이 다르고, 살다 보면 넘어질 수도 있으니까 ‘내가 용감하게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책임감도 들어요. 아직도 한국에서는 이혼한 여자들이 죄인처럼 사는 경우가 많잖아요.”

다시 길 위에서 열정을 채우다
서점에서 팬에게 “당신의 글이 힘든 내 손을 잡아줬다”는 인사를 받은 날에는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부르다는 손미나. 그는 앞으로도 어딘가에서 얻은 지혜로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길 원한다. 그 자신이 동경하는 스페인 사람들처럼 인생의 희로애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그가 꿈꾸는 내일은 어떤 모습일까.
▼ 도전정신이 강한 분이니 누구보다 잘 살아갈 것 같아요.
“특별히 도전정신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에요. 제가 원하는 일을 하는 편이죠. 문을 두드리면 그 문이 열린다고 하는데, 정말 간절히 소망하면 이뤄지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순간만 바라보고 살지는 않아요. 저는 ‘계획녀’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계획을 많이 세우는 편이거든요. 아나운서였을 때도 막연하게나마 인생 계획을 세웠죠. 언젠가 이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유학을 가고, 책을 쓰겠다는 계획을 쓴 건데, 어느새 그 내용을 마음에 새겨놓았더라고요. 놀라운 건 그 계획이 거의 다 실현됐다는 건데, 계획이란 게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지만 그걸 마음에 되새기면 그 바람대로 인생이 움직이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1년은 과대평가하고 일생은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래서 후배들에게 너무 많은 계획은 세우지 말되 인생의 큰 밑그림만큼은 그리고 살라고 권해요.”
▼ 소설까지 썼는데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요.
“여행작가니까 여행서를 더 써야겠죠? 우리나라를 소개하는 책을 프랑스어, 영어, 스페인어로 출간하고 싶어요. 8월 말에 여행 에세이를 쓰러 프랑스에 다시 가는데 프랑스어를 더 열심히 공부하려고요. 프랑스어와 스페인어를 할 줄 알면 국제기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니까 앞으로 그쪽에서 일을 해도 좋겠죠. 지금은 학위 따는 것이 의미가 없다고 느끼지만 나중에 박사 학위를 따서 할머니 교수님이 돼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멋질 거예요. 아무래도 저는 변화를 통해 성장하는 사람 같아요. 소설을 쓰고 나니 애벌레에서 나비로 거듭난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거울을 보면 제 눈동자가 희망에 찬 대학생 때로 돌아간 것 같아서 요즘 많이 행복해요.”
▼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불리고 싶은가요.
“전 그냥 손미나로 불리면 좋겠어요. 저는 손미나란 존재가 너무 좋거든요. 선배들이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사회인이 되라’고 하셨는데, 저도 오랜 세월을 산 뒤 누군가에게 귀감이 되고 싶어요. 한 방에 로또 당첨되는 사람이 아닌 노년에 다큐멘터리에 등장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죠. 직업은 중요한 것 같지 않아요. 어떤 길에 들어섰다고 해도 진정으로 그 여행을 충실히 하다 보면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도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얻고, 그 에너지를 전하며 살고 싶습니다.”

여성동아 2011년 8월 5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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