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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가수에서 배우로

연기자로 제2의 인생 사는 김원준

“마지막에 돌아갈 고향은 음악, 힘든 시기 거치며 얻은 우정”

글·이혜민 기자 사진·이기욱 기자

입력 2010.12.16 17:01:00

별이 빛나는 건 주위에 있는 항성들 덕분이다. ‘왕년의 스타’ 김원준 주변에도 그를 빛나게 하던 ‘항성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의 존재감이 줄어들수록 사람들은 그의 곁을 떠났고, 사람에게 상처 받는 아픈 일상이 반복됐다. 그럼에도 김원준은 끝까지 자신을 지켜준 친구들이 있었기에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었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던 순간 ‘우정’이란 힘으로 제2의 인생을 사는 김원준의 담담한 고백.
연기자로 제2의 인생 사는 김원준


지난 11월16일 첫 공연을 시작한 뮤지컬 ‘라디오스타’에 반가운 얼굴이 등장했다. 원조 ‘꽃미남’ 가수 김원준(37)이 왕년의 스타가수, 최곤 역으로 무대에 오른 것이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라디오스타’를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한물간’ 가수 최곤과 그를 평생 보필하는 매니저의 우정을 그린다. 2008년 초연된 ‘라디오스타’ 무대를 통해 가수에서 뮤지컬 배우로 새로운 도약을 한 그가 이번에 다시 같은 역할로 무대에 오른다. 새로 각색된 ‘라디오스타’에서 그는 어떤 감동을 선사할까.
공연 준비가 한창인 11월 초, 그를 서울 잠원동 소속사 사무실에서 만났다. 인터뷰를 준비하며 소속사 직원에게 커피 한잔 달라고 애교 부리는 모습에서 친근함이 전해진다. 눈을 반짝이며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그에게 다시금 ‘왕년의 스타’ 최곤이 된 소감을 물었다.
“좋은 작품을 한 번도 하기 힘든데, 두 번이나 하게 돼 영광이죠. 그만큼 책임감도 들어요. 지난번보다 못하다고 하면 안 되니까요. 극은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 이야기 구조가 바둑판처럼 구성됐다면 이번엔 극세사처럼 촘촘한 편이거든요. 대사로만 처리하던 것을 이번에는 노래로 (이 대목에서 그는 노래를 불렀다) ‘도대체 왜 나를 떠나는 건지, 비겁하고 치사한 변명뿐, 모든 게 이제 다 잘되가는데…’라고 부르는 식이에요. 굳이 앓는 소리를 하자면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예전 것을 비우고 다시 채워야 한다는 점에서 저 자신과의 싸움이란 생각으로 열심히 하고 있어요. 그래도 다행인 건 그전에 서범석씨에게 뮤지컬 정서나 연기하는 법을 배웠다는 거예요. ‘뮤지컬계의 이승철’이라고 부르고 싶은 유명한 배우인데 사석에서 몇 번 만나 친해진 덕분에 제대로 레슨 받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전작인 뮤지컬 ‘살인자잭’을 하면서 무대 보는 시야가 좀 넓어지기도 했고요. 그래도 뭐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수준이죠.”
김원준은 대본을 달고 산다고 했다. 대본 속에 답이 있다고 생각해서다. 가방 속에서 꺼내 보인 그의 대본은 마치 수험생의 참고서 같았다. 중요한 부분은 색연필로 칠해져 있고 펜 대신 연필로 감정 스케치를 해두기도 했다. 연필로 필기해둔 부분이 지우개로 지워진 흔적도 보였다.

텅빈 객석에서 노래 부르는 ‘라디오 스타’ 최곤 실제 나와 닮아
“탤런트인 (김)갑수 형이 같은 소속사여서 만날 때마다 형한테 어떻게 하면 연기를 잘할 수 있는지 물어봐요. 그런데 그때마다 형은 ‘원준아, 다 필요 없어. 그저 많이 해보는 게 ‘장땡’이야’ 그러시는 거예요. 그래서 그저 묵묵히 연습하고 있어요. 추석 지나고부터 매일매일 대본을 읽은 것 같아요. 주위 사람들 도움도 많이 받아요. 연극배우 출신인 김영무씨라고 같은 소속사에 있는 친구인데 권투할 때 스파링 파트너처럼 대본 나오면 같이 분석해주고, 상대 배역이 돼줘서 정말 고마워요.”
가사 외우는 데는 익숙하겠지만 두 시간여 진행되는 공연 대사를 외우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터. 그는 “욕심을 내지 않는 것이 대사를 잘 외우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너무 잘하려고 하지 않아요. 처음에는 의욕이 앞선 나머지 토씨 하나 안 틀리게 전달하려고 노력했는데 그게 병이 되더라고요. 지난번에는 ‘라디오스타’ 영화 주인공처럼 장발을 하려고 머리 붙이고, 몸짓도 거칠게 하고 그랬는데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제가 박중훈 선배님과 똑같이 하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어요. 관객들이 복사판을 보러 오는 게 아니잖아요. 어느 순간 저답게 소화해서 저만의 의미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그렇다고 제가 늘 전달을 잘하는 건 아니에요. 제 별명이 김기복이거든요(웃음). 기복이 하도 심해 좋을 때가 있고 엉망일 때가 있어서 허당이란 말도 많이 듣고요. 그래서인지 제 스스로에 거는 기대치가 낮아요. 실수하면 그냥 실수하고 그저 그 안에서 충실하려고 노력해요.”
자신만의 스타일로 연기한다는 그는 ‘라디오스타’에 남다른 애착이 있다고 했다. 실제 자신의 이야기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영화 ‘그 여자 작사 그 남자 작곡’에서 잘나가던 팝스타가 정식무대가 아닌 허름한 무대에서 노래하는 장면을 볼 때 느꼈던 감정이 든다고 했다.

연기자로 제2의 인생 사는 김원준

매일 아침 눈뜰 때마다 예전에 받은 트로피를 보며 스스로를 다독인다는 김원준.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저는 울컥하더라고요. 영화 ‘라디오스타’ 보면서도 그랬죠. 제 상황과 많이 닮아 있잖아요. 영화 초반에 최곤이 이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수로 변해 텅 빈 객석 앞에서 노래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저도 그런 자리에서 노래 불렀던 적이 있어요.”
김원준은 이 작품으로 연기라는 여행을 시작했다고 했다. 음악은 ‘고향’이기 때문에 언제든 돌아가고 싶은 곳이고, ‘연기’는 하루하루가 설레는 ‘여행’이라는 것. 그렇다고 여행이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MBC 드라마 ‘폭풍의 연인’으로 7년 만에 드라마에도 출연 중인 김원준은 연기의 어려움을 실감하고 있다고 한다. 한 호흡으로 내뱉는 뮤지컬과 달리 촬영할 때마다 에너지를 조율하는 것이 익숙지 않은 탓이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누군가가 자신을 배우라고 부르면 어색한 기분이 든다고 한다.
“배우라고 하면 손발이 오글오글거려요(웃음). 연기라고 하면 늘 ‘어리둥절’이란 단어가 생각나요. 최근에는 저를 가수 겸 배우라고 부르시는 분도 계신데, 그건 과찬이에요. 전 그저 ‘딴따라’일 뿐이에요(웃음).”



류시원·김진표·이세준…끝까지 곁에 있어준 고마운 친구들
김원준은 매일 아침 눈뜰 때마다 침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트로피를 보면서 다짐한다고 했다. ‘내게 이런 상을 주신 분들한테 누를 끼치지 말자. 마음을 가다듬고 트로피를 능가할 수 있는 무언가를 채워가자’며 다독인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독실한 할렐루야’라고 칭한 그는 신앙의 힘을 빌려 마음을 비우기 위해 노력 중이다. 얼마 전에는 인터넷 검색을 하다 누군가 자신에게 ‘퇴물가수’란 수식어를 붙인 걸 보고 미움이 아닌 고마움을 느끼기도 했다. ‘퇴물이긴 해도 나를 가수로 기억해주는구나’하는 마음에서였다. 물론 처음부터 자신을 향한 조롱에 너그러웠던 건 아니다. 그는 사랑하는 동생 탤런트 박용하를 떠나보낸 뒤부터 마음이 달라졌다고 한다.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동생이었어요. ‘형, 나 달려서 좋아요, 더 달려야 돼’ 하면서 밝게 산 동생인데 그렇게 가니까…,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게 인생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지고 있어도 만족할 수 없는 게 인생이란 생각을 했죠.”
또 어쩌면 지난 세월 겪은 시련의 시간 때문인지도 모른다. 김원준은 “유재석씨가 한 인터뷰에서 ‘나는 반은 무명이었고 반은 국민 MC였다’고 한 적이 있는데, 나는 절반의 전성기와 절반의 침체기를 겪으며 나 자신을 단련시켜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성공과 실패에는 그에 응당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광고회사에서 주최한 신인모델 오디션에서 1위를 하면서 앨범까지 내게 됐는데, 당시 ‘나무자전거’의 강인봉 선생님이 앨범 프로듀싱을 잘해주셔서 데뷔를 수월하게 할 수 있었어요. 2집 앨범 작업까지 강 선생님과 함께하다 작곡가 김형석씨가 3집 앨범에 참여하면서 음악의 다른 면모를 알게 됐죠. 그 전에는 음악 자체에 집중했지만 형석이 형을 알고부터는 음악하는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더 깊이 있는 음악을 배울 수 있었거든요. 그러던 중 김동률씨도 알게 돼 5집 때 ‘쇼’란 곡을 받았어요. 그 이후에는 혼자 잘났다고 독립해 6집부터 9집까지 내면서 내리막길을 걸었죠. 돌파구랍시고 ‘베일’이란 밴드를 만들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빚을 많이 져서 몇 년간 무대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한 덕에 빚잔치를 끝냈어요. 부모님께 기댈 수도 있었지만 그러고 싶진 않았어요. 덕분에 스스로 일어설 힘을 얻은 것 같아요. 사실 한번 안 되기 시작하니까 주변에서 안 도와주더라고요. 점점 궁핍해지니까 회사 사람들도 다 떠나가고, 곁에 있던 매니저는 없어지고… 매니저 없이 일한 게 90년대 말부터 2007년까지였던 것 같아요. 필요하면 그때그때 고용하긴 했지만 오랜 시간 함께한 사람은 없었어요.”

연기자로 제2의 인생 사는 김원준


쓴 웃음을 짓던 그는 “이 과정에서 친구를 얻기도 하고 잃기도 했다”고 했다. “고맙게도 인간관계가 정리됐다”며 쑥스러운 듯 얼굴을 매만진다. 때마침 류시원에게서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왔고 그는 “이 ‘짜식’, 양반은 못 된다”며 웃었다.
“잔소리꾼 류시원, 막내 동생 김진표, 항상 예의 바른 이기찬, 동네 형 윤정수…. 당시 제가 뭘 하든 함께 있어준 고마운 사람들이에요. 지금도 이분들을 휴대전화에 긴급요망, 가족, 흑기사로 분류해놨는데, 그만큼 각별한 사이예요. 정재형도 좋은 친구죠. 삶을 마감하려고 하다가 그들 덕분에 살아났으니까요. 제가 어울리는 사람들은 크게 두 그룹인데 하나는 시원이가 반장 역할을 하는 곳이에요. 거기엔 윤정수, 김진표, 박광현, 박용하, 태사자가 있어서 이들하고 으샤으샤 하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고요. 다른 하나는 그룹 ‘M4’로 같이 활동하는 이세준, 최재훈, 배기성인데 다들 ‘업·다운’이 있다는 공통점 때문인지 죽마고우 같아요. 이세준과는 요즘도 1시간씩 통화하는 사이예요. 이 친구들 덕분에 9집 발표하고 10년 만에 앨범을 낼 수 있었죠. 생각만 해도 뿌듯해지는 사람들이에요.”

연기로 다시 찾은 제2의 인생
그는 잊었다는 듯 무릎을 친 뒤 손으로 방문을 가리키면서 “아, 그리고 저 문밖에 있는 분 보셨죠? 그분이 지금은 그 누구보다 고마운 사람이에요” 하곤 방긋 웃는다. “제2의 인생을 살게 해준 은인이자 멘토”라고 칭한 그는 다름 아닌 김원준의 매니저, (주)후너스크리에이티브의 이홍철 이사다. 음악담당 기자와 가수로 알고 지내다 지난 2006년 우연히 재회했는데, 기자에서 매니저로 전직한 이홍철 이사가 그에게 함께 일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김원준은 회사를 운영하면서 겪은 상처 때문인지 제안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고 했다.
“그전에도 같이 일해보자는 제안이 여기저기서 꽤 있었어요. 중고 신인이니까 쓸 만하다고 본 거죠. 근데 나도 모르게 상대방 눈빛만 보면 끝까지 갈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나누게 되더라고요. 그런 제게 매니저 형이 몇 번이나 설득을 했고 제 마음도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어요. 데뷔 초기에 젊기만 하고 잘난 것 하나 없던 저에 관해 늘 좋은 기사를 써주셨던 분이라 신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차에 매니저 형이 이 작품을 네가 맡으면 좋겠다고 하면서 뮤지컬 ‘라디오스타’를 보러 가자고 했어요. 평소 뮤지컬을 자주 보는 편은 아니라서 큰 기대 없이 갔는데 막상 공연이 시작되자 울컥하더라고요. 창피한 것도 모르고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어요. 지금도 그 여운이 남아 있어요. 매니저 형 덕분에 이번 뮤지컬까지 하게 됐고 최근 회사와도 계약금 없이 쿨하게(웃음) 재계약하기로 했어요. 솔직히 말하면 매니저가 있어서 불편한 것도 있어요. 제가 잠이 많아서 하루에 8시간은 자야 하거든요. 별명이 등대예요. 등만 대면 잔다고(웃음). 근데 새벽부터 스케줄 잡아놓으면 힘들죠. 그래도 자장면 없이 못 사는 것처럼 이제는 매니저 없인 못 살겠어요(웃음).”
그는 현재에 만족한다고 했다. 어려운 시절 함께했던 버팀목 같은 친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김원준은 옛 시절을 함께 헤쳐온 친구들과 기나긴 삶을 같이 거닐고 싶다고 했다.
“살면서 굳은살도 박이고 입고 있던 갑옷도 내려놓으면서 소통하는 법을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저는 편안한 사람 좋아해요. 독불장군 같은 사람 별로 안 좋아하고, 포장하는 사람 역시 안 좋아해요. 가수라고 해도 무대에서 내려오면 그저 한갓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자기가 가수인 척하는 사람들을 싫어해요. 그래서 저도 그냥 사람들을 편하게 대해요. 동네 형처럼 친구처럼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요.”
그래도 이제는 친구들에게만 둘러싸이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얼마 전 죽마고우인 류시원의 결혼식 사회를 맡은 뒤 그 결심이 더 확고해졌다.
“절친인 김선아씨가 말하길, 사람들이 제가 당연히 여자친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가장 큰 약점이래요. 그래서 여자들이 접근을 안 한다는 거예요. 요즘 목표를 삼는 것 중 하나가 여자친구를 사귀는 것인데, 저도 이제 결혼해야 하지 않겠어요?(웃음) 물론 지금도 행복하긴 해요. 음악에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었는데 다행히 쉼표를 찍었고, 허물을 벗은 뒤론 마음이 튼실해졌으니까요.”

여성동아 2010년 12월 56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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