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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예술가의 삶

故 백남준 부인, 구보타 시게코 못다한 사랑 이야기

“남준은 연인이며 예술적 동반자이자 최고의 스승…, 힘겨웠던 삶은 수업료라 생각하면 아깝지 않아요”

글 이혜민 기자 사진 지호영 기자, (주)웅진씽크빅 제공

입력 2010.08.18 09:48:00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비디오 아티스트 고 백남준 뒤에는 헌신적인 아내 구보타 시게코씨가 있었다. 그녀는 어린아이 같은 감성을 지닌 백남준의 연인이며 누이이자 예술적 동반자였다. 남편을 그리며 한국을 찾은 그의 순정과 추억.
故 백남준 부인, 구보타 시게코 못다한 사랑 이야기


장마가 한창이던 7월의 어느 날, 서울의 한 카페에서 고 백남준의 아내 구보타 시게코 여사(73)를 만났다. ‘이세이 미야케’의 검정 블라우스와 수수해 뵈는 재킷을 입고 뿔테 안경을 걸친 채 나타난 그는 70대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어 보였다. 미국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맨하탄 백’을 어깨에 가로질러 멘 모습을 보니 ‘실용적인 뉴요커 할머니’ 답다.
섬유업체 거부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6·25 전쟁 발발과 파산을 경험하고, 미학과 음악공부를 위해 홍콩, 일본, 독일, 미국, 유럽을 떠돌아다니는 전위예술가이자 비디오아티스트의 삶을 살았던 고 백남준. 부초처럼 살던 그가 마음으로나마 뿌리를 내릴 수 있었던 건 바로 동료 예술가 구보타 시게코를 만난 뒤부터다. 둘은 10년 동안 연인으로 지낸 끝에 1977년 결혼해 함께 살았지만 2006년 백남준이 타계한 뒤 시게코는 그들의 예술무대였던 뉴욕을 지키며 작품 활동을 계속 하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그에게 소감부터 물었다.
“남준의 나라에 와 기뻐요. 그와 함께 왔더라면 더 좋았을 텐데…. 한국 방문을 앞두고 예전에 일기 대신 찍어온 비디오를 보며 다시금 남편의 음성을 듣고 움직임을 보니 눈물이 나더라고요. 그와 함께 처음으로 한국에 왔던 그날의 설렘도 떠올랐고요.”
그에게 그때 추억을 묻자 대뜸 날짜부터 말한다. “1984년 6월22일.” 일본 하네다공항을 출발해 김포공항으로 왔다고 답하는 그의 눈빛이 반짝였다.
“남준이 34년 만에 고국을 찾은 날을 어떻게 잊겠어요. 당시 그는 세계 주요도시에서 대대적으로 생중계된 우주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로 큰 성공을 거뒀어요. 이후 여기저기에서 러브콜을 받아 도쿄에서도 전시를 했는데 그곳에 들른 김에 한국에도 왔던 거죠. 계획했던 건 아니고 친구의 권유로 갑작스럽게 결정한 거였어요. 독일로 유학 갔다 사실상 가족과 연락이 끊기고 그 사이 부모님을 여읜 남준은 한국 방문이 망설여진다고 했지만, 막상 와서는 얼마나 좋아하던지…(웃음).”
누구보다 가까이 백남준을 지켜본 그는 백남준이 평생토록 고국을 그리워했다고 말한다. 모든 격식과 관습으로부터 탈피한 예술세계를 추구한 그도 고향에 대한 향수만은 간직했다는 얘기다. 냉전 시대, 동구권 나라의 전시 초청을 받아들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시간 한국 여권을 소지한 것이 그만의 나라 사랑 방식이었다.(이후 미국 방문자 자격으로는 창작활동에 한계를 느낀 백남준은 시민권을 획득했다)

오랜 시간 한국 여권 소지하며 한국인으로 살려고 노력했던 이방인
“남준은 어머니 품도 많이 그리워했어요. 5남매 중 막내인데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 어머니 아버지 사이에서 잠자던 아이였다니 어느 정도인지 아시겠죠(웃음). 남준이 어머님의 유품인 가요 레코드 모음집을 소중히 다룬 것도 바로 그리움 때문이에요. 샤머니즘을 작품에 반영시켰던 것도 어쩌면 집안에 대소사가 있을 때마다 무당을 찾아가던 어머니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서였을 거예요.”
두 사람의 사랑은 운명을 먼저 알아본 시게코에게서 시작됐다.
“1963년 요미우리신문을 통해 남준을 처음 봤는데, 멋지다고 생각했죠. 파괴적인 퍼포먼스로 유럽을 놀라게 하는 한국인 전위예술가라니…. 당시 그룹 ‘옹카쿠’에 소속돼 전위예술을 추구하던 저로선 피아노를 ‘치지 않고’ ‘먹는’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충격이었어요. 1년 뒤 일본에서 열린 그의 공연을 봤는데 정말 ‘섹시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실 공연은 난장판 그 자체였어요. 남준이 벽에 계란을 던지고, 피아노를 부수고, 신고 있던 가죽구두에 물을 부어 마시고, 붓 대신 머리로 그림을 그리고…. 그런데 그 넘치는 에너지가 무서우면서도 멋있더라고요. ‘이 사람은 정말 본질(original)을 아는 사람이구나’ 싶었죠. 예술가에게 본질만큼 중요한 개념은 없거든요.”

故 백남준 부인, 구보타 시게코 못다한 사랑 이야기

텔레비전을 활용한 비디오아트를 추구한 백남준·구보타 시게코 예술가 커플.



백남준에게 첫눈에 반한 시게코는 그를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고 한다. 당시 공연이 끝난 뒤 ‘옹가쿠’ 그룹 친구들과 차를 마시던 백남준이 혹평일색이었던 예전 자신의 전시회를 칭찬해준 뒤로는 마음이 더 기울어졌다. 하지만 천재 예술가를 다시 만나는 건 쉽지 않았다. 시게코는 계획을 세워 만남의 가능성을 높이기로 한다. 바로 백남준처럼 유명한 예술가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당시 존 레논의 부인이 된 오노 요코와 함께 플럭서스운동(무정부주의, 허무주의 등을 신봉하는 다다이즘과 맥을 같이 하는 예술 행동주의)의 구성원으로 활동하던 그는 어느 날 한 통의 편지를 받는다. 플럭서스 운동의 기수인 조지 마치우나스가 플럭서스 콘서트에 참여해 달라고 부탁해온 것. 시게코로서는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부모님이 결혼자금으로 모아둔 돈을 받아 뉴욕에 있는 플럭서스 본부로 향했고 그곳에서 다시 운명을 만난다.
“잔뜩 기대하고 갔는데, 막상 가보니 플럭서스 본부가 뉴욕 차이나타운의 허름한 건물에 있더라고요. 약간 실망했죠. 그때 누가 나를 보고 찡긋 웃는데 바로 그 사람, 남준이었어요(웃음). 그 뒤부터 자연스럽게 친해졌죠. 당시 그는 전위예술과 함께 텔레비전을 활용한 비디오아트를 추구했는데, 마침 제가 필요했던 거죠. 텔레비전을 들어주는 무임금 노동자 친구가 있는데 왜 좋아하지 않았겠어요(웃음). 서로 얘기도 잘 통했고요. 남준은 제가 주관이 뚜렷해서 좋다고 맘에 든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수줍음이 많았는데 제가 먼저 다가가길 잘한 것 같아요.”



故 백남준 부인, 구보타 시게코 못다한 사랑 이야기

비디오아트의 선각자인 남편 백남준을 인생 최고의 스승으로 여기는 시게코.



하지만 사랑은 순탄치 않았다. 백남준은 첼리스트이자 전위예술가인 샬럿과 함께 공연을 하느라 시게코에게 소홀했다. 시게코는 샬럿에게 질투를 느끼고 급기야 자신을 사랑한다는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지만 백남준은 “나는 결혼을 하지 않을 사람”이라며 끄떡도 하지 않았다. 시게코는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대신 자신을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했지만 3년 만에 다시 백남준 곁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또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그의 아이를 임신하려던 차, 자궁에 문제가 생겼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미국에서의 비싼 수술비를 감당하지 못해 일본으로 돌아가려던 찰나, 백남준은 그에게 특별한 선물을 안겼다. 프러포즈였다. 백남준은 “나를 후원하는 단체에서 보험에 가입해줬다. 배우자가 되면 그 혜택을 볼 수 있으니 결혼하자”고 제안해 온 것이다. 당시 기분을 묻자 시게코 여사가 함박웃음을 짓는다.

독신 고집하던 그가 프러포즈한 이유
“너무 놀랐어요. 남준은 인생에서 보장받을 만한 무엇이 없는 사람이고, 항상 창의적이고 도전적으로 살고 싶어 했기 때문에 결혼을 안 한다던 사람이에요. 그랬던 그가 제게 프러포즈를 한 거니까, ‘드디어 꿈이 이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어찌됐든 결혼은 결혼인 거잖아요.”

故 백남준 부인, 구보타 시게코 못다한 사랑 이야기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작품 ‘다다익선’.



결혼생활은 행복했다. 백남준은 자신만의 독특한 피아노 연주로 아내에게 기쁨을 선사했다. 그만의 음표를 따라 ‘멋대로 치는’ 피아노였지만 시게코는 창의적인 그의 연주가 좋았다. 말하는 속도가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많은 사람들이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아내만큼은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즐겁게 대화했다. 백남준은 유머감각이 풍부했다. 전시를 하기 위해 여러 나라를 오갈 때마다 자신이 사랑하는 텔레비전 모형을 사다주기도 하고 그녀의 마흔살 생일을 기념해 4백달러를 주기도 하고 카드도 자주 건넸다.
하지만 때로는 백남준의 무심한 경제관념이 시게코의 신경을 건드리기도 했다. 당장 밥값도 없는데 중간에 흰 줄이 생기는 컬러텔레비전을 사와선 “이것이 예술이야. 너무 아름답지 않아?”라고 하면 시게코는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유복한 집에서 자라나 “어머니에게 ‘돈은 물 쓰듯이 써야 한다’고 배웠다”고 주장하던 그는 수시로 텔레비전을 수십대씩 사놓곤 작업을 구상했다.
하지만 시케코는 그런 남편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수밖에 없었다. 예술가의 아내가 된 이상 이해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건 예술가인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백남준의 작품은 ‘깨진 텔레비전’ 등 파괴적인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사가는 사람이 드물어 시게코는 큐레이터로 강사로 활동하며 생계를 꾸렸다.
“남편에게 남준을 위한 시간이 오고 있다고 말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만의 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작품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야 한다고 했죠. 이제는 누군가 피아노를 부수면서 파괴적인 예술을 하거나 텔레비전으로 작업하면 백남준을 떠올리잖아요. 사람들에게 작가의 정체성을 인식시키기 위해서는 시간과 함께 작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죠.”
그 누구보다 창의적인 예술가의 반려자인 그에게 예술가와 결혼한다는 것의 의미를 물었다.
“솔직히 예술가와의 결혼을 권하지는 않겠어요(웃음). 저는 아티스트와 결혼하면 당분간 가난하게 사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당분간’이라는 게 일평생일 수도 있더라고요. 물론 예술가는 돈이 아닌 예술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이지만 막상 그렇게 살아보니 현실은 가혹하더군요.”

다음 생에서도 다시 만나 그의 아이 낳고 싶어
그럼에도 시게코는 가혹한 상황을 현명하게 헤쳐나간 여자였다. 뿐만 아니라 미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 없는 백남준에게 부족한 조형감각을 일깨워준 사람이라는 평도 듣는다. 그야말로 내조의 여왕인 것.
“일본에선 내조를 잘하는 여자를 두고 ‘아게망’이라고 하는데, 저도 그런 면이 있긴 했죠(웃음). 평상시에는 부끄러움이 많은 남준을 대신해 제가 나서 유능한 이들을 소개시켜주었거든요. 그런데 남준도 제게 아게망 같은 존재예요. 제게 비디오아트 기술을 알려준 최고의 선생님이었으니까요. 무엇보다 우리는 서로의 개성을 보완했어요. 남준은 에너지가 넘치고 다이내믹한 걸 하지만 조형미가 부족했고, 전 반대로 미적인 아름다움을 알았지만 에너지가 부족했어요. 그래서 서로 도와가며 윈윈했죠. 돌이켜 보면 그가 하도 많은 텔레비전을 사는 바람에 경제적으로 힘들었지만, 그게 다 제 수업료라고 생각하면 아깝지 않아요. 그만큼 최고의 선생님한테 배웠으니까요.”

故 백남준 부인, 구보타 시게코 못다한 사랑 이야기

백남준은 텔레비전을 수십대 수백대씩 사놓곤 작업을 구상했다.



남편에게 ‘사사’ 하다보니 좋은 점만큼 나쁜 점도 많았다. 무엇보다 남들의 시선이 따가웠다. 시게코는 어느 순간 자신을 비디오아티스트라고 소개하면 사람들이 ‘남편 덕 본다’는 표정을 짓는다는 걸 알아챘다.
“사람들이 저를 남준의 아류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그와 함께 살다보니 비디오 아트에 빠질 수밖에 없었거든요. 물론 남편에게 배웠지만 예술가이기 때문에 저만의 방식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했죠. 때로는 학생이 선생님보다 나을 수도 있는 법이예요(웃음). 스스로는 제 작품이 더 예쁘다고 생각하면서 그 작품들과 함께 살며 매일매일 행복해하기도 해요. 물론 제가 남준의 아내였기 때문에 비디오아티스트로서 주목받지 못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게 제 운명이에요. 그걸 깨닫는데 오랜 세월이 걸렸죠. 이젠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이렇게 인정받는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해요.”
인터뷰를 마치며 최근 ‘나의 사랑 백남준’(이순)을 펴낸 시게코 여사에게 다음 생애에서도 그와 결혼하고 싶은지 물었다.
“그는 정말로 따뜻한 사람이었어요. 심지어 부모님보다 더 따뜻하게 나를 보듬어줬죠. 그가 없었더라면 현재의 나 또한 없을 정도로요. 그래서 제가 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기로 한 거예요. 우리는 좋은 시간을 보냈고, 힘든 시간을 함께 이겨냈어요.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남준을 대신해 ‘예술은 강하다. 절대 포기하자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와 또다시 결혼하겠냐고요? 물론이죠. 그가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으니 다음 번엔 남준에게 꼭 아이를 낳아주고 싶어요.”
백남준 또한 그녀와의 또 다른 내일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1. 위대한 부인이고
2. 위대한 요리사이고
3. 위대한 간호원이고
4. 위대한 작가이고


그리고 이런 내용이 100페이지는 더 계속되는
구보타 시게코를 나는 사랑하고 존경한다.

2003년 3월 28일, 마이애미 남편 백남준

여성동아 2010년 8월 5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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