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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작별

서른 셋 박용하 자살 선택한 이유&유가족·절친 소지섭 비통한 심경

“위암 말기 아버지 대신 아파주지 못해 괴로워한 착한 아들”

글 김유림 기자 사진 장승윤 문형일 현일수 기자

2010. 08. 16

선한 눈매에 해맑은 미소가 아름다웠던 박용하가 스스로 짧은 생을 마감했다. 자살 동기로 아버지의 병환, 사업 난항 등이 꼽히고 있다. 유가족이 들려준 그의 생전 모습 & 자살에 이르게 된 결정적 원인.

서른 셋 박용하 자살 선택한 이유&유가족·절친 소지섭 비통한 심경


배우 박용하(33)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세상에 작별을 고했을까. 한류스타로 승승장구하던 그였기에 죽음의 원인은 물음표로 가득하다. 더욱이 당시 그는 일본 전국투어 콘서트 중이었고, 한국에서도 곧 윤은혜와 드라마 ‘러브송’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싸늘한 그의 시신이 처음 발견된 건 비가 쏟아지던 6월의 마지막 날 이른 아침. 최초 목격자는 그의 어머니였다. 캠코더용 충전기 전선으로 목을 맨 아들을 즉시 병원으로 옮겼으나 이미 박용하는 숨을 거둔 뒤였다.
오후가 되자 비보를 접한 고인의 지인들이 침통한 표정으로 서울 강남성모병원에 마련된 빈소를 찾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달려온 사람은 박용하의 절친 소지섭. 친구를 잃은 슬픔에 오열하는 그의 모습이 많은 이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장례식 기간 내내 한시도 빈소를 떠나지 않은 소지섭은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날 때까지 해맑게 웃고 있는 고인의 영정 사진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발인은 불교식으로 치러졌다. 유족과 지인, 팬들의 눈물이 비와 함께 흘렀다. 영정사진을 든 소지섭 뒤로 가수 김원준, 김현중, 탤런트 박광현 등 평소 고인과 돈독한 사이였던 동료 연예인들이 운구에 나섰다. 2백여 명의 일본 팬들도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하기 위해 발인식에 참석했다. 북받치는 슬픔에 그 자리에 주저앉아 통곡하는 팬들도 있었다. 고인을 실은 운구차는 생전 활동했던 방송 3사를 들른 뒤 고인이 태어나고 자란 서울 합정동과 논현동 자택을 거쳐 화장터로 향했다. 경기도 성남 영생관리사업소에서 화장 절차가 진행됐고 이후 고인의 유해는 경기도 분당에 있는 메모리얼파크 추모관에 안치됐다.

눈물의 장례식, 하늘도 울다

서른 셋 박용하 자살 선택한 이유&유가족·절친 소지섭 비통한 심경


그리고 이틀 뒤 묘소에서 고인을 마지막으로 배웅하는 삼우제가 열렸다. 아들을 잃은 충격으로 발인식에 참석하지 못했던 박용하의 부모도 이날만큼은 힘겨운 몸을 이끌고 삼우제에 참석했다. 위암말기 투병 중인 아버지는 염주를 돌리며 소리 없이 흐느꼈고, 어머니 역시 가슴을 치며 애통해했다. 소지섭은 고인의 영정에 술을 한잔 따르고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제사상 한편에는 고인이 평소 좋아하던 과자와 커피 등이 놓여 있었다.
30분가량 진행된 삼우제는 “비가 내리는 가운데도 용하를 잊지 않고 찾아주셔서 감사하다”는 박용하의 매형 김재현씨의 인사말로 끝이 났다. 그러자 장례 기간 내내 함께 울던 하늘이 거짓말처럼 맑게 개었다. 누나 박혜연씨는 조금은 마음을 추스렀는지 지인에게 “용하가 하늘에서 웃고 있나 봐요” 하며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박씨는 부모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기자에게 “힘들지만 조금씩 추스르고 계시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이어 박씨는 지인과의 대화를 계속했다.
“아버지가 많이 아프셔서 걱정이에요. 저 아이가 도대체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혼자 이곳에서 얼마나 외로울까요. 그렇게 착한 아이였는데….”
누나는 그만 돌아가자는 남편에게 “용하 한 번만 더 보고 올게요”라고 말하고는 다시 묘소로 올라갔다. 반짝이는 대리석 묘를 쓰다듬으며 “용하야, 용하야” 하고 나지막이 속삭이는 누나의 눈에 또다시 눈물이 고였다.
장례식 내내 상주 노릇을 한 데 이어 장례비 일체를 부담한 것으로 알려진 소지섭은 가족이 떠난 뒤에도 한참 동안 고인의 곁을 지켰다. 이후 그는 경기도 파주 약천사에서 치러진 초재에도 참석해 “이제는 제가 아들이 돼드릴게요”하며 유족들을 위로했다. 스타로 이름을 알리기 전, 어려울 때 처음 만나 우정을 쌓은 박용하와 소지섭은 박용하가 사망하기 전까지 같은 아파트 아래·위층에 살며 친형제처럼 지냈다.



서른 셋 박용하 자살 선택한 이유&유가족·절친 소지섭 비통한 심경

1 발인에 참석하지 못했던 박용하의 부모가 삼우제에는 모습을 드러냈다. 2 슬픔에 잠긴 박용하의 누나 부부. 3 4 김민정, 류시원, 김원준 등이 박용하의 마지막 가는길을 배웅했다. 5 상주 노릇을 한 박용하의 절친 소지섭의 슬픔이 크다.



두 사람은 98년 드라마 ‘보고 또 보고’에 출연 중이던 박용하가 ‘앙드레 김 패션쇼’ 무대에 모델로 서면서 처음 만났다. 당시 소지섭은 모델로 점차 이름을 알릴 때였는데 서로 동갑이라는 사실을 알고 바로 친해졌다고 한다. 박용하는 2008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연예인 중 베스트프렌드’를 묻는 질문에 “소지섭이다. 스물한 살 때 PC방에서 새우탕면 먹으면서 쌓은 우정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그는 “나는 창천동, 지섭이는 대방동에서 30만원짜리 월세방에 살았지만 꿈을 놓지 않았다. 며칠 전에도 소주를 마셨다”고 답했다. 소지섭 역시 최근까지도 여러 인터뷰에서 가장 친한 친구로 박용하를 꼽았다.

아버지 병환으로 힘들어했던 ‘둘도 없는’ 효자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과연 박용하는 무엇 때문에 힘들었을까. 사건을 담당한 서울 강남경찰서는 “부친의 암 투병과 사업, 연예활동을 병행하는 데 따른 스트레스로 술을 마시고 충동적으로 자살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 “우울증과 금전적인 문제는 없었고, 유서나 비망록 등 자살 동기를 추정할 유품도 발견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주변 지인들에 따르면 최근 고인은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불면증에 시달린 날이 많았다고 한다. 박용하의 한 측근에 따르면 박용하는 경찰의 공식 발표와 달리 평소 우울한 모습을 자주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공식석상에서는 밝은 모습이었지만 활동을 하지 않을 때는 침울한 분위기일 때가 많았고, 폭음도 자주 했다는 것. 실제로 박용하는 방송에서 우울증을 토로한 바 있다. 지난해 MBC ‘네버엔딩스토리’에서는 “일본 생활이 길어지고 한류 스타로 인기가 높아지는 만큼 우울증과 자괴감이 커졌다. 한국으로 돌아오고만 싶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앞서 그는 2008년 드라마 ‘온에어’로 인기를 얻었을 당시 SBS 아침방송에 출연해 한류스타라는 부담감 때문에 우울증을 겪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일본에서 인기 있는 한류스타 이미지를 갖고 컴백을 하는데, 그 기대에 미치지 못할 것에 대한 불안감이 들었다. 실제로 너무 오랜 만이라 스스로 기대했던 만큼 못했던 부분들이 마치 살을 찢는 듯한 고통으로 다가왔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그는 가족에게는 힘든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지난 7월13일 경기도 파주 약천사에서 치러진 고인의 이제에서 만난 박용하의 친척들은 고인을 “둘도 없는 효자”라 평했다. 이날 박용하의 부모와 누나 내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는데, 이유는 아버지의 건강 상태가 갑자기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제를 마치고 소나무 그늘로 자리를 옮긴 고인의 고모부는 한참 하늘을 올려다보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에 의하면 박용하는 아버지의 발병 사실을 안 뒤로 많이 괴로워했다고 한다.
“자살 동기를 둘러싸고 말이 많은 것 같은데, 용하가 가장 힘들었던 건 아버지가 많이 아프다는 거였어요. 지난 4월경 수술이 잘 안 되자 더욱 상심이 컸어요. 두 달 가까이 집 밖에 잘 나가지도 않고 두문불출했을 정도였죠. 그렇게 효자일 수 없어요.”
박용하 가족과 20년 가까이 친하게 지냈다는 약천사 신도 A씨 역시 고인이 아버지의 병환으로 힘들어했던 사실을 안타까워했다.
“용하는 아버지가 아프신 것에 대해 죄책감을 많이 느끼는 듯했어요. 지난해 하와이에서 공연을 크게 열었는데, 그 전에 아버지가 위암이란 걸 알았지만 공연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는 바람에 병원에 늦게 가서 그렇게(말기) 됐다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그게 어디 용하 잘못이겠어요. 그런데도 그 착한 아이는 자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프신 거라 생각했던 거죠.”

어려서부터 예의 바르고 밝고 쾌활한 성격이었던 박용하는 운동 음악 미술 등 뭐든 잘하는 모범생이었다고 한다. A씨는 “용하네 엄마가 교육열이 남달랐을 뿐 아니라, 항상 아이들에게 겸손과 예의를 강조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족 전체가 선하고 모범적인 사람들”이라고 칭찬했다.
“아버지도 아프기 전까지 절에서 봉사도 많이 하시고 적극적인 분이셨어요. 아들이 그 정도로 유명하면 어깨에 힘이 들어갈 만도 한데, 전혀 그렇지 않았어요. 용하 엄마도 마찬가지고요. 최근에 용하 엄마는 남편을 살리려고 사방팔방으로 뛰어다녔어요. 병수발도 사람 쓰지 않고 혼자 다 했고요. 그런데 덜컥 아들을 잃었으니…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프죠.”
박용하에게 아버지는 아버지 그 이상의 존재인 것으로 보인다. 박용하는 사망 전날 밤에도 술에 취한 상태에서 아버지의 등과 어깨를 주무르며 “아버지 대신 내가 아파야 하는데 미안해. 미안해” 하고 울먹였다고. 박용하는 2년 전 한 인터뷰에서 IMF 때 빚보증을 잘못 서 가족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야했던 때를 떠올리며 “하루아침에 낙오자가 된 아버지의 뒷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를 연예계로 이끌어주고 연예활동과 관련해 정신적 버팀목이 돼준 사람 역시 아버지. 그의 아버지 박승인씨는 송창식 정수라 등의 음반을 제작한 원로 음반제작자로 지난 2008년 박용하가 설립한 1인 소속사 ‘요나엔터테인먼트’의 대표이기도 하다. 그런 아버지의 힘겨운 투병생활은 박용하가 사업을 운영해가는 데 있어 적잖은 심적 부담으로 다가왔을 것으로 판단된다. 더욱이 박용하는 올 초 회사 내 공금횡령 사건으로 오랫동안 함께 일해온 매니저와 결별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또한 사업이 구상한 대로 진행되지 않는 데 대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요나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한 뒤 출연한 영화 ‘작전’, 드라마 ‘남자 이야기’가 연이어 흥행에 실패하면서 한국에서의 입지가 일본에서의 인기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들었을 터. 박용하는 지난해 영화 ‘작전’ 개봉을 앞두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일본 활동을 하면서 한국에서 잊히는 것이 두려웠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도쿄 헌화식에서 일본 팬들에게 큰 위로받아

서른 셋 박용하 자살 선택한 이유&유가족·절친 소지섭 비통한 심경


박용하는 한류스타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발히 활동해온 것에 비해 자산규모는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고인이 살고 있던 집은 그의 소유가 아닌 부친 명의의 전세였다. 전세금이 8억원인 고급 아파트이기는 하지만 10년 가까이 톱스타로 사랑 받아온 것을 감안하면 고개를 갸웃하게 하는 일이다.
박용하의 추모 행렬은 일본에서도 이어졌다. 지난 7월18일 일본 도쿄 국제포험A홀에서 1만5천여 명의 팬이 모인 가운데 헌화식이 이뤄졌다. 당초 박용하의 일본 전국투어 도쿄 콘서트가 열릴 예정이었던 장소라 팬들의 슬픔은 더욱 컸다. 이날 콘서트 티켓 환불을 요구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틀 뒤 고인의 삼제에서 다시 만난 박용하의 누나 박혜연씨는 끝내 인터뷰는 고사했지만, 도쿄 헌화식을 다녀온 뒤 마음이 다소 편안해졌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헌화식에는 박용하의 부모님도 함께 참석했다고 한다.
“이제야 용하가 편안해졌구나 싶었어요. 날씨가 얼마나 화창했던지…, 부모님도 같은 말씀을 하셨고요. 오늘도 일본 팬들이 삼제에까지 와주셨어요. 용하를 사랑해주시는 많은 분들에게 어떻게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비록 용하는 떠났지만 용하를 기억해주시는 많은 분들이 있다는 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돼요.”
하늘에서 그도 부디 어깨의 짐을 덜어내고 편안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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