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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춤은 내 운명

한국의 ‘빌리 엘리어트’ 를 만나다

춤을 위해 태어난 아이들

글 정혜연 기자 사진 지호영 기자

입력 2010.04.16 15:21:00

80년대 영국 어느 탄광촌에 살던 열한 살 소년 빌리. 이 소년은 역경을 딛고 훗날 세계 최고의 발레리노가 된다. 2010년 한국에서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화려한 무대에 오를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는 네 명의 소년. 이들은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차세대 ‘빌리’를 꿈꾼다.
한국의 ‘빌리 엘리어트’ 를 만나다


절망 속에 피어나는 꽃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보여준 영화 ‘빌리 엘리어트’. 영국의 몰락하는 탄광촌에서 발레리노를 꿈꾸던 소년 빌리는 열정에 이끌려 험난한 여정을 시작한다. 결국 그는 피나는 노력 끝에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춤을 선보이고, 세계 최고의 발레리노로 성장한다. 2000년 개봉돼 진한 감동을 준 이 작품은 5년 뒤 뮤지컬로 만들어져 영국 런던 빅토리아 극장에 올랐다. 그리고 이듬해 영국연극협회가 주최하는 올리비에 어워드에서 최고 뮤지컬상을 비롯한 4개 부문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특히 빌리 역을 훌륭하게 소화한 13세 소년 리암 모어는 최연소로 최고 배우상을 받아 화제를 낳았다.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한국에서 오는 8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가 무대에 오른다. 3년간의 사전 제작기간 중 제작사 매지스텔라가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주인공 빌리를 선발하는 것. ‘변성기를 지나지 않은 키 150cm 이하 대한민국 소년 누구나’를 대상으로 서울·부산·대구·광주 등 전국에서 오디션이 치러졌다. 8백여 명의 소년이 응시한 오디션은 2009년 2월부터 1년간 총 4차에 걸쳐 진행됐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주인공으로 발탁된 한국의 빌리 4명을 지난 3월 초, 연습실에서 만났다.

국제 대회 1등! 미래가 기대되는 발레 영재 김세용

올해 중학생이 된 김세용군(13)은 발레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 있는 발레 영재다. 여섯 살 무렵, 구부정하게 앉아서 노는 아들을 본 아버지는 자세를 바르게 잡아주려고 발레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우연찮게 시작한 발레에 세용군은 재능을 보였고 초등학교 때부터 발레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다.
몸을 유연하게 만들기 위해 고된 스트레칭을 하는 것부터 어려운 동작을 완벽하게 익히는 것까지 쉬운 게 하나 없었다. 하지만 세용군은 “발레를 시작한 이후 한 번도 힘든 적이 없다. 발레를 하는 순간만큼은 모든 것을 잊고 깊이 빠져 드니까 즐겁다”고 말한다. 그렇게 연습한 덕분에 초등학교 6학년 때 출전한 콩쿠르에서 우승을 했고, 미국 뉴욕에서 열린 2009 유스아메리카 그랑프리에 한국 대표로 나가게 됐다. 세계 각국에서 1백50여 명이 출전했는데 세용군은 이들 중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세용군은 “참가한 아이들이 너무 많아서 수상은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상을 타게 돼 정말 깜짝 놀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상을 타서 돌아온 아들에게 아버지는 꿈을 좀 더 구체화시킬 기회를 마련해줬다.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오디션 공고를 보여준 것. 세용군은 “발레는 자신이 있었지만 그 외 탭 댄스나 아크로바틱, 노래와 연기는 자신이 없어 그냥 경험 삼아 응시했다”고 한다.

한국의 ‘빌리 엘리어트’ 를 만나다




“오디션 보는 날 시험장에 아이들이 잔뜩 있어서 놀랐어요. 다들 노래도 춤도 잘하더라고요. 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 못했는데 1차 오디션에 통과해서 정말 기뻤어요.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어요. 그때부터 탭 댄스·아크로바틱 등을 배워서 2차·3차 오디션을 봐야 했거든요. 연습하면서도 늘 불안했는데 마지막인 4차 오디션을 통과한 다음 주인공이 됐을 때 마음이 놓였어요.”
세용군이 다니는 학교가 예술중학교이다 보니 많은 친구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다른 반에 오디션에 나갔다가 아깝게 떨어진 친구가 있어 더욱 그렇다고. 친구들은 그에게 표가 나오면 꼭 달라며 보러 가겠다는 약속을 벌써부터 하고 있다. 그럴 때면 세용군은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처음엔 발레만 했기 때문에 다른 춤을 배우는 게 어려웠어요. 발레는 부드러운데 탭은 절도 있게, 아크로바틱은 힘차게 해야 하더라고요. 발레의 틀을 깨려고 노력했죠. 지금은 새로운 춤에 발레를 자연스럽게 연결해서 더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어요.”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중 세용군이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장면은 ‘일렉트리시티(electricity)’다. 춤을 출 때 기분이 어떠냐는 질문에 빌리가 “그러면 뭔가가 타오르는 느낌이 내 몸 깊은 곳으로부터 터져나오고~”라며 노래를 한 뒤 춤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장면이다. 세용군은 발레를 할 때면 자신도 꼭 그런 느낌을 받는다고 한다.
“춤은 출 때마다 기대되고 설레요. 가장 기쁜 순간이요? 연습해도 잘 안되던 동작이 갑자기 될 때! 새로운 동작을 익혀서 내 것으로 만들 때 정말 행복해요. 앞으로 연습을 더 많이 해서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빌리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웃음).”

연기·노래·춤 다~ 되는 뮤지컬 보이 이지명

한국의 ‘빌리 엘리어트’ 를 만나다


똘망똘망한 눈으로 똑 부러지게 대답하는 모습이 남달라 보이는 이지명군(13)은 이미 학교에서 스타다. 초등학교 시절 이미 뮤지컬 ‘라이온 킹’의 심바, ‘명성황후’의 세자로 출연한데다 TV 드라마 단역으로 연기한 경험이 있기 때문. 이번에 ‘빌리 엘리어트’ 주인공까지 맡아 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어시간에 자신의 인생에 대해 글짓기를 했어요. 중학교 입학하고 일주일밖에 안 돼서 친구들이 절 몰랐는데 ‘빌리 엘리어트’에 출연한다고 하니까 다들 연예인인 줄 알아요(웃음). 웬만한 친구들은 다 사귀었는데 모두 착하고, 과목별 선생님도 전부 좋아서 요즘 학교 가는 게 진짜 즐거워요.”
지명군은 신문에서 광고를 본 아버지의 권유로 오디션을 보게 됐다. 뮤지컬 배우를 꿈꾸는 아들을 위해 직접 연기학원을 알아보고 좋은 선생님을 찾아주기도 한 그의 부모는 이 기회를 통해 아이가 꿈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지명군도 오디션 광고를 봤을 때 가슴이 두근거렸다고. 하지만 오디션장에 들어서자마자 기가 죽었다고 한다.
“어떤 아이는 재주넘기를 하더라고요. 어찌나 잘하는 아이들이 많던지 통과할 거라는 상상은 요만큼도 안 했어요. 그냥 사람들 앞에 서서 아무 생각 없이 연기에 빠져들었는데 운 좋게 1차를 합격했어요. 그다음 2차부터는 발레·탭 댄스·힙합 등 춤을 배워서 오디션을 봤는데 진짜 열심히 연습해서 자신감이 조금씩 생겼죠.”
뮤지컬 배우로서의 재능을 타고났다는 평을 듣는 지명군은 평소 지독하게 연습하는 성실파다. 그는 인천에서 학교를 다녀 방과 후 엄마와 두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서울 강남의 연습실로 향한다. 다섯시부터 시작되는 요일별 댄스 수업을 마치면 노래와 연기 개인수업을 받고, 토·일요일에는 모자라는 부분을 하루 종일 연습한다. 수요일 딱 하루만 집에서 휴식을 취하는데 어린 소년에게는 견디기 힘든 연습 일정일 것 같았다.
“덤블링을 하다가 다치기도 하고 몸이 피곤할 때도 있지만 하기 싫었던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요. 제일 좋아하는 건 연기예요. 어릴 때부터 연기를 했기 때문에 습관이 들어서 감정 없이 연기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때면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연기’를 하려고 다시 정신을 집중시켜요.”
재미있는 일화 하나. 아크로바틱 선생이 지명군에게 우스개로 “머리가 커서 덤블링하기 불리하겠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상처받았을 법도 한데 그는 “오기가 생겨서 더 열심히 했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건 언제나 즐겁다”는 어른스러운 답변을 했다. 앞으로 어떤 ‘빌리’가 되고 싶은지 묻자 지명군은 전문 뮤지컬 배우 같은 포부를 드러냈다.
“뮤지컬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주어진 대본이나 안무에 따라 그냥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장면마다 ‘빌리는 왜 이렇게 말하고 행동했을까’라는 생각을 먼저 해요. 진짜 빌리가 된 것처럼 마음에서 우러난 춤을 출 거예요.”

춤추는 경제학 박사 꿈꾸는 탭 댄스 신동 정진호

한국의 ‘빌리 엘리어트’ 를 만나다


뮤지컬 영화를 좋아하는 엄마 덕분에 ‘싱잉 인 더 레인’을 우연히 본 여덟 살 소년은 탭 댄스에 매료됐다. 춤은 여자만 추는 줄 알았는데 남자가 더 멋지게 출 수 있다는 걸 처음으로 알게 됐다. 그날로 탭 댄스에 푹 빠져들었고 어느새 신동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SBS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에도 출연해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된 정진호군(12)은 어른 못지않은 탭 댄스 실력을 자랑한다. 절도 있는 발놀림, 자연스러운 몸짓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진호군은 그의 방송출연 장면을 본 제작사 측에서 수소문을 해 오디션 볼 것을 권유했고, 긴 테스트를 무난히 소화해 발탁된 케이스다. 캐스팅 제의가 왔을 때 기분이 어땠냐고 묻자 “네?”라고 되묻는다. 알고 보니 아이가 자만할 것을 우려한 엄마가 그런 이야기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한다. 진호군은 밝게 웃으며 “아직도 빌리가 된 일이 꿈만 같다”고 말했다.
“탭 댄스만 잘했지 발레는 하나도 몰라서 걱정했어요. 유연성이 떨어지는 편인데 처음 연습할 때 얼마나 아팠는지 몰라요. 다리를 쫙쫙 찢고 90도로 발 벌려 서는 걸 하고 나면 밤에 제대로 잠을 못 잤어요. 연습한 지 1년쯤 돼가는데 지금은 많이 나아졌어요(웃음).”
진호군은 욕심 많은 엄친아다. 영어로 유창하게 자기 소개를 하는가 하면, 바이올린을 켜는 것도 즐기고, 학교 성적도 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탭 댄스 전문가가 꿈일 줄 알았더니 의외로 경제학 박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옛날부터 경제 현상에 관심이 많았어요. 학교 수업 중에 수학을 제일 좋아하고요. 엄마한테 경제에 관해 이것저것 물어보는 걸 동네 어른들이 보시고 ‘너는 경제학 박사를 하면 좋겠다’고 말씀하셔서 그때부터 꿈꿨어요. 춤추는 것도 좋은데 취미로 열심히 해서 ‘춤추는 경제학 박사’가 되려고요(웃음).”
어느 것 하나 놓치고 싶지 않다는 진호군은 쉬는 날이면 뒤처진 공부를 몰아서 한다고. 집이 안양인 터라 왔다 갔다 하면서 뮤지컬 연습하랴, 공부하랴 보통 일이 아닐 것 같았다. 힘들 텐데도 진호군은 웃으면서 “매일 매일이 즐겁다”고 말한다. 특히 어려운 아크로바틱 안무를 성공시킬 때면 짜릿하다고.
“빨리 무대에 오르고 싶어요. 뮤지컬 장면 중에서 빌리의 선생님이 의미 있는 물건을 가져오라고 하자 빌리가 돌아가신 엄마의 편지를 가져와 슬픔을 참는 장면을 제일 좋아해요. 제가 감동을 받았던 것처럼 사람들이 제 연기를 보고 똑같이 감동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뽀얀 피부, 샤프한 외모의 미소년 발레리노 임선우

한국의 ‘빌리 엘리어트’ 를 만나다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이 보통 남자아이와는 다르게 분위기 있어 보인다. 임선우군(11)은 얼핏 봐도 눈에 확 띌 정도로 미소년이다. 1차 오디션에서부터 미소년 이미지로 심사위원의 가슴을 설레게 했을 정도라고. 네 명 주인공 중 나이는 가장 어리지만 키가 큰데다 몸짓이 우아해 형들에게 뒤지지 않는다. 학교에서 인기가 많을 것 같다고 하자 “전혀 아니에요”라며 쑥스러워한다.
선우군도 세용군과 마찬가지로 굽은 허리를 펴기 위해 다섯 살 때 발레를 시작했다. 하면 할수록 즐거움을 느껴 지금은 발레리노가 되는 게 꿈이다. 발레 콩쿠르에서 여러 번 수상할 정도로 가능성도 인정받고 있다. 세용군의 뒤를 이어 올해는 선우군이 2010 유스아메리카 그랑프리에 출전한다.
“세용이 형보다는 아직 많이 부족해요. 그렇지만 꼭 1등 하고 싶어요. 발레는 제게 정말 좋은 친구예요. 우울한 기분이 들 때 발레를 하면 그런 기분이 다 날아가요. 그렇게 춤추고 나면 정말 행복해져요.”

한국의 ‘빌리 엘리어트’ 를 만나다


주인공 중 가장 어리다 보니 힘들어하기도 할 것 같은데 지도 선생 말로는 프로페셔널한 모습을 보이는 아이라고 한다. 선우군은 아크로바틱을 하다가 넘어져 손목이 꺾인 적도 있고, 오른쪽 다리의 인대가 늘어난 적도 있다. 그럴 때면 오히려 더 잘하고 싶어진다고.
“발레만 전공했으니까 다른 댄스를 배울 때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다치면 아프고 속상하기도 했지만 좋아서 하는 거니까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죠. 발레를 제외하고 새로 배운 것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거요? 음… 노래요. 학교에서 음악시간에 배우기도 했는데 지금은 제대로 배워 더 잘하게 된 것 같아 재미있어요(웃음).”
책 읽는 걸 좋아하는 선우군은 쉬는 시간이면 책을 펼친다. 한 번 펼친 책은 그 자리에서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대단한 집중력의 소유자다. 지금까지 읽은 책만 2천 권이 넘는다고. 감동적인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자 책 이름부터 내용까지 줄줄 읊는다. 요즘은 연습시간에 쫓겨 책을 읽지 못하는 게 가장 아쉽다고 한다.
넉 달 후면 1년여의 연습 과정이 모두 끝나고 관객과 마주한다. 무대에 설 시간이 가까워 올수록 선우군은 설렌다고 한다.
“형들이랑 연습 많이 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보러 왔으면 좋겠어요. 빌리의 생각과 마음을 다 느낄 수 있도록 남은 시간 동안 더 열심히 연습할 거예요.”

여성동아 2010년 4월 5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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