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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뮤직 라이프

‘음악캠프’ 진행자 배철수 라디오와 함께한 20년 세월

글 정혜연 기자 사진 조영철 기자

2010. 03. 16

매일 저녁 6시면 라디오를 통해 친근한 목소리를 들려주는 배철수. 올해로 ‘배철수의 음악캠프’ 20주년을 맞은 그가 음악인생을 풀어놓았다.

‘음악캠프’ 진행자 배철수 라디오와 함께한 20년 세월


6개월마다 개편이 이뤄지는 방송가에서 한 프로그램이 수십년간 명맥을 이어오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MBC 간판 라디오 프로그램 ‘배철수의 음악캠프’(이하 음악캠프)는 그런 면에서 박수를 받아 마땅하다. 올해로 20년째 저녁 6시면 로고송을 들을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의 터줏대감 배철수(57). 처음 마이크를 잡은 이후로 하루도 빠짐없이 청취자와 함께한 그는 “20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르겠다”며 활짝 웃었다.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른다더니 20년이 한순간에 흘러가버렸어요(웃음). 정말 행복하게 방송을 했기 때문에 진행을 하다가도 문득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제가 초년에 고생이 심했기 때문에 말년에는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것 같네요.”
그가 방송을 진행하는 동안 국내 음악계 동향도 많이 달라졌다. ‘음악캠프’를 시작한 90년대에는 록밴드와 댄스뮤직, 성인가요가 주류를 이뤘는데 이제는 R·B·힙합·일렉트로니카 등 새로운 장르의 음악이 등장해 팝보다 가요를 즐겨 듣는 이들이 늘어난 것. 그 역사의 중심에 서 있던 배철수는 “반가운 현상”이라고 평했다.
“젊은 층이 팝을 듣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음악수준이 높아졌다는 걸 방증하는 거라 생각해요. 80년대 조용필·송골매 등이 열심히 했기 때문에 음악계의 대세가 가요로 기운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한편으로는 팝이 미친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는 생각도 합니다. 국내 음악계를 이끌고 있는 작곡가들 거의가 어린 시절부터 팝을 즐겨 듣던 세대거든요. 세계 음악계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고 발맞춰 가는 국내 음악계를 볼 때면 흐뭇하죠.”
‘음악캠프’가 처음 방송되던 시절, 같은 시간대에 비슷한 팝음악 프로그램이 몇몇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둘 사라지고 현재 남아 있는 프로그램은 음악캠프밖에 없다. 그 때문에 배철수는 해를 거듭할수록 이 프로그램에 애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20년간 직접 듣고 좋다고 판단한 노래만 틀어
배철수는 누군가 자신에게 “최선을 다했냐”고 물어본다면 “그렇지 못했다”는 대답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어떤 인간이든 게으른 속성이 있지 않습니까. 1년 3백65일 똑같은 시간에 나가야 하는 방송에서 매번 만족할 만한 방송을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에요. 그 대신 20년 동안 저 스스로 정한 몇 가지 원칙을 잘 지켜왔다는 점에서 부끄러움은 없습니다.”
그는 자신을 신뢰하는 청취자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음악캠프’에서 나가는 곡들은 직접 선정했다. 새 음반이 발매되면 미리 들어보는 것은 물론이고 어떤 면에서 음악성이 있다는 것까지 꼭 코멘트를 덧붙였다.
“선곡의 기준은 간단해요. 제가 들어보고 좋으면 틀어주는 겁니다. 간혹 ‘왜 음반 타이틀 곡만 트느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것도 나름대로의 기준이 있어요. 타이틀이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면 그 곡은 대중의 기호를 만족시킨 곡이기 때문에 틀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분들은 자신이 푹 빠진 음반의 맨 끝 곡을 틀어달라고 하는데 그런 건 자기 혼자 집에서 들어야죠.”

‘음악캠프’ 진행자 배철수 라디오와 함께한 20년 세월


그는 언제나 선곡이 어려웠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크게 알려진 곡을 틀면 깊이가 없다는 지적이 들어왔고, 대중의 선호와 관계없이 음악성이 높은 곡을 틀면 난해하다는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또 80·90년대 주류를 이루던 팝송을 틀면 젊은 층이, 최근의 히트송을 틀면 중년층의 항의가 어김없이 날아왔다.
“하루는 어떤 분이 ‘당신은 왜 삼천만의 팝송만 트냐’고 핀잔을 주더라고요. 70·80년대 음악을 같이 한 친구들은 ‘이제 네 프로그램은 못 따라가겠다’며 아는 곡이 없다고 성토를 해요. 대중의 취향은 정말 다양해서 하루도 불만이 나오지 않는 날이 없죠. 모두의 의견을 따를 수 없지만 방송 두 시간 전, 새로 나온 음반을 들어보고 제 견해를 바탕으로 선곡을 하는 저만의 원칙만은 지키는 편이죠.”
그는 또 방송이 진행되는 두 시간 동안 음악을 묶어서 틀 때면 연관성이 있도록 신경을 썼다고 한다. 첫 곡부터 마지막 곡까지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 그는 청취자가 듣고 물 흐르듯 흘러간다는 느낌을 받도록 애썼다고 말했다.
20년을 맞아 가장 화제가 된 것은 그동안 그가 단 하루도 지각과 결석을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배철수는 “내세울 게 그것밖에 없다”며 웃음 지었다.
“학교 다닐 때 보면 공부 못하는 아이들이 지각·결석은 잘 안 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웃음). 몸이 아파도 한 번도 방송을 펑크낸 적 없다는 건 정말 자랑할만 해요. MBC에 계신 분들은 저를 직원으로 보는 경우도 있어요. 구내식당을 매일같이 이용하는데 식당 아저씨들과는 정말 친해졌죠.”
그는 20년 동안 무슨 일을 하든지 ‘음악캠프’를 1순위로 뒀다고 한다. 이 프로그램에 지장을 줄 것 같은 행사나 인터뷰 스케줄은 아예 잡지 않았다. 돈도 많이 주고 한 시간이면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왜 하지 않느냐는 주변의 말에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번잡한 걸 싫어하는 성격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가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는 ‘가장 기억에 남는 아티스트’에 관한 것. 하지만 그는 이 질문에 대해서만은 유독 대답을 멈칫했다.
“정말 어려운 질문이에요. 국외 아티스트들이 내한공연을 할 때면 저희 프로그램을 꼭 거쳐갔는데 모두 그들만의 철학이 있었기에 누구 한 사람을 꼽을 수가 없어요. 다만 제가 스튜디오 밖으로 나가서 90도로 인사한 사람은 있어요. 보통은 인터뷰이에게 기선을 잡히지 않기 위해 절대 나가지 않는데 어릴 때부터 우상이던 에릭 울프슨이 왔을 때는 달랐죠. 두 번 오셨는데 그때마다 몸이 편찮으셨거든요. 두 번째 방문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셔서 더 오래 기억에 남네요.”
그와의 인연을 기억하고 연말에 엽서를 보내온 훌리오 이글레시아스도 잊을 수 없다고 했다. 또 리키 마틴은 내한할 때마다 음악캠프를 찾아 세 번을 인터뷰하고 비공식적으로도 한 번 만난 적이 있어 반갑게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다고.
국내 아티스트 중에서는 데뷔 때부터 ‘음악캠프’를 종종 찾던 서태지가 기억에 남는데 만날 때마다 반가움의 표시로 껴안으려고 해서 난감하다며 웃음 지었다. 그는 “이런 유명 아티스트를 만나며 인간적으로도 발전한 것 같아 감사하다”고 말했다.



‘음악캠프’ 진행자 배철수 라디오와 함께한 20년 세월


“20년 전 방송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음악을 하다가 우연히 방송을 진행하게 된, 그냥 그런 찌질한 사람이었어요.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 부끄럽지만 전 지금 그때보다는 조금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각 분야 대가들을 만나 서로 마주 보고 앉아 삶의 철학이라든가 삶을 사는 자세, 성장과정 같은 것을 이야기하면서 배운 점이 많거든요.”
그럴 때마다 배철수는 자신도 그들과 똑같이 누군가에게 귀감이 된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고 한다. 가끔 자신에게 ‘형 방송 듣고 제 인생이 달라졌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을 보면 기분이 묘해지면서 두려워지기도 한다고.
“처음 방송을 할 때 10대이던 친구들이 이제는 30대가 됐고, 20대이던 대학생들은 쉰을 바라보고 있죠. 오랜 팬 중에는 제가 자신의 인생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사람도 있는데 그때마다 막중한 책임감을 느껴요.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생각을 많이 하고 신중하게 뱉으려고 하죠.”
그는 이어 “방송을 하려면 인간에 대한 애정을 가슴속에 늘 품고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친하게 지내던 분이 해준 말인데 현직 기자 생활을 하면서 세상의 부조리에 맞서겠다고 전력투구하다가 자신의 말 한마디에 스러져가는 이들을 보며 느낀 점이라며 그에게 진지하게 충고했다고. 이후 그는 전국적으로 방송되는 프로그램일수록 진행자의 말 한마디가 갖는 파급력이 크기에 인간미를 잃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했다.

‘배철수의 음악캠프’ 20년 정리한 책 내며 책임감 느껴
그는 20주년을 맞아 ‘레전드, 배철수의 음악캠프 20년’이라는 책을 냈다. 이와 함께 팝계 명반 1백 장을 선정해 절판됐던 음반도 출시했다. 그는 책 제목이 ‘레전드’라는 것에 대해 민망하다고 말했다.
“너무 건방진 느낌이 들어서 처음에는 반대했어요. 그런데 집에 가서 생각해보니 인간 배철수나 디스크자키 배철수는 현재진행형이라 전설이 될 수 없지만 이 책에 수록된 1백 장의 음반은 세계 음악계에서 전설이라 불릴 만한 것이니 괜찮겠다 싶었죠. 또 한편으로 대한민국 방송 환경에서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그만의 색깔을 잃지 않고 20년 동안 해온 것은 방송 역사에서 전설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결국 찬성했어요.”
그보다 그가 더 신경 쓰는 것은 따로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자신이 명반을 선정한 데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이 나올 것이 우려된다는 것. 그는 중학교 때부터 기타를 치고 노래를 했던 음악인생 20년과 팝음악 방송을 진행한 20년 경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가 크게 야단치거나 혼내지 않겠다 싶어 선정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또 다른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외국 유수의 음악 잡지나 평론가들이 명반 1백선을 선정한 적이 있는데 대중의 선호와 엇나간 경우가 많았어요. 그 때문에 평론가보다 대중과 가까운 제가 그 사이에서 균형을 갖고 알맞게 선정을 해보고 싶기도 했어요.”
배철수는 우스개로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처럼 20년 과거를 정리한 책을 냈으니 이쯤에서 그만두면 아름다울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이어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진행하는 것이 재미없어지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언제라도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주변에서는 듣기 좋으라고 10년 더해서 30년을 채우라고 해요(웃음). 처음 시작할 때는 ‘5년만 해도 대단하지’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6개월마다 개편을 할 때면 저라도 언제든 잘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편을 무사히 넘길 때마다 방송에서 ‘이번 6개월도 즐겁게 잘해보겠다’고 말하죠. 제가 방송에서 헛소리하는 것 같고, 더 이상 제가 진행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가차 없이 그만두라고 말해주세요. 그때까지는 열심히 하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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