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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아버지의 이름으로

임채무, 막장 시아버지를 위한 변명

글 김명희 기자 사진 이기욱 기자

입력 2010.03.16 14:35:00

자식을 향한 비뚤어진 부성. MBC 일일드라마 ‘살맛납니다’속 임채무는 그 복잡다단한 아버지의 심경을 섬세하게 표현해내고 있다. 멜로와 코믹, 선과 악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에게 변신의 마침표란 없어 보인다.
임채무, 막장 시아버지를 위한 변명


배우가 되고 싶었던 까까머리 고등학생은 새벽마다 장충체육관에 나가 발성 연습을 했다. 군대에 가서도, 결혼을 해서도, 아버지가 돼서도 연습을 거른 적이 없다. 11년 무명생활 끝에 84년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과 진실’의 남자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 얼굴만 믿고 발성 연습을 게을리 했더라면 잡을 수 없는 기회였다. 이후 멜로 연기의 귀재, 코믹 연기의 달인, 그를 지칭하는 수식어는 변화무쌍하게 바뀌었다. 그리고 지금은 전대미문의 악역으로 시청자의 미움을 받고 있다. “너무 못됐다” 며 욕하는 사람이 부지기수. 거리에 나섰다가 한 할머니에게 난데없이 등짝을 맞기도 했다. 할머니를 살짝 안아주고 돌아선 그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돌았다. “내가 헛으로 연기한 게 아니었어!” MBC 드라마 ‘살맛납니다’의 막장 시아버지 장인식으로 출연 중인 임채무(61) 이야기다.

미움 받으며 희열 느껴
고학을 통해 자수성가한 인식은 아들 유진(이태성)에 대한 집착으로 비뚤어진 부성애를 보여준다. 아들의 출세를 위해 며느리도 번듯한 집 규수를 얻고 싶었지만, 아들보다 연상인 데다 가진 것 없는 태권도 강사 출신의 민수가 출현하자 민수를 악랄하게 괴롭힌다. 아내와 며느리를 심하게 구박하는 장인식을 보며 화를 내던 시청자들도 손주의 초음파 사진을 보며 남몰래 울고 웃는 그의 모습에 마음이 살짝 흔들린다. 임채무가 그리는 장인식은 불우했던 자신의 어린시절 때문에 자식에게 더 집착하지만, 결국은 자식에게 못 이기는 척 져주는 인간적인 아버지다.

- 여성들의 공공의 적이 됐습니다.
“사람들이 욕하는 것도 이해가 갑니다. 그간 드라마에서 며느리를 미워하는 시어머니는 많았지만, 장인식 같은 시아버지는 처음이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저는 장인식이 완전히 비현실적인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도 아버지입니다. 단지 남들과 다른, 유별난 부정을 지녔을 뿐이죠.”
- 비난받는 캐릭터에 대한 변명인가요.
“인식과 같은 환경에서 성장한 사람은 자식에 대한 애정이 과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인식이 이해가 갑니다. 다만, 조석으로 칠면조처럼 변하는 캐릭터라 연기하는 데 에너지가 좀 더 필요하긴 하네요. 계속 고함을 치기가 힘들어 조정하기도 했어요.”

임채무, 막장 시아버지를 위한 변명


- 그래도 미움을 받는 건 속상할 텐데.
“사람의 얼굴이 천태만상이듯 성격도 다 달라요. 다양한 인물을 현실성 있게 그려내는 게 진짜 배우죠. 전 시청자들이 욕할 때마다 돌아서서 웃습니다. ‘아, 내가 연기를 제대로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죠. 또 그동안 좋은 아버지 역만 했기 때문에 색다른 역할을 맡게 된 것도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너무 심하게 하면 우리 아들, 딸 결혼 못 시킬 것 같아 요즘은 좀 자제하고 있어요. 그랬더니 ‘귀엽다’는 말도 하시네요(웃음).”
- 극중 ‘질 떨어지게!’라는 말이 유행어가 됐습니다.
“제가 개그맨은 아니니 어떤 말을 유행시키려는 생각은 없었어요. 너무 거기에 집착하면 다른 데 신경을 못 쓸 것 같기도 했고요. 하지만 대본에 ‘기분 나쁘게’라고 쓰여 있어도 느낌을 살리기 위해 ‘질 떨어지게’라고 바꿔서 말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질 떨어지게’ 들리지 않았기에 시청자들이 사랑해주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웃음).”

실제로는 자상한 남편, 쿨한 아버지



임채무, 막장 시아버지를 위한 변명


실감나는 연기 탓에 많은 사람들이 임채무도 장인식과 같은 권위적인 남편, 못된 아버지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생각이다. 임채무는 아내 박인숙씨(57)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자상한 남편이다. 한 어린이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던 그는 아역배우 엄마의 소개로 박씨를 처음 만나 한눈에 반해 그 자리에서 프러포즈를 했고 3개월 만에 초고속으로 결혼했다.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 중이던 아역배우는 처남, 아역배우의 엄마는 장모가 됐다. 지금도 아내가 귀찮아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애정 표현을 한다. 얼마 전에는 그가 운영하는 놀이공원을 아내 명의로 해놓은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결혼 당시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보잘 것 없는 무명배우이던 자신과 결혼해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그렇게 두고두고 갚는 중이다. 반면 자녀들에게는 다소 엄격한 편이라고 한다.
- 실제로는 어떤 아버지인가요.
“큰아이가 이제 서른셋인데 아직 장가를 못 갔어요. 안 간 게 아니라 못 갔어요. 내가 집을 안 사줘서 그렇다는데, 못 사줍니다(웃음). 유학까지 보내 공부시켰으면 됐지 집까지 사줘야 하나요. 대신 집 살 돈의 반을 모으면 나머지는 무이자로 빌려주겠다고 했어요. 전 자식한테 기대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습니다.”
- 소위 말하는 ‘쿨’한 아버지시군요.
“우리나라 부모는 자식에게 모든 애정을 쏟아붓고 은근히 자식에게 기대는데 그러면 안 돼요. 인식의 캐릭터와 자식에 대한 기대감은 다르지만, 개인적이고 고지식한 것은 저도 인식과 비슷해요. 나중에 결혼해서라도 자주 찾아오면 고맙고, 그러지 않더라도 섭섭해하지 않으려고 해요.”
- 놀이동산을 아내 명의로 한 건 어떤 의미에서인가요.
“나는 재산에 신경 쓰지 않고 일만 하겠다는 뜻이기도 하고, 아내에게 빚진 마음을 갚자는 뜻이기도 하고…(웃음).”
- 연기와 사업을 병행하려면 어려운 점이 많을 텐데….
“사업가로 성공하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놀이공원이다 보니 즐기러 오는 분들이 많고, 그런 분들과 만나면 저도 즐거워요. 그게 사업을 하는 가장 큰 이유죠. 22년간 놀이공원을 운영하다 보니 어떤 책임감이 생기더군요. 아이들에게 자연과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줄 방법을 모색하다가 생태학교로 변모시키는 게 어떨까 구상하게 됐어요.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전에 저부터 배워야 할 점이 많더군요. 그래서 초심으로 돌아가 이것저것 배우고 있죠.”

연기상보다 자랑스러운 연습 1등

임채무, 막장 시아버지를 위한 변명


40년 가까이 한 분야에 종사하며 일가를 이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임채무에게도 물론 고비가 있었다. 기나긴 무명시절을 겪으며 아내와 아이들 볼 면목이 없어 눈물을 떨군 적도 있고, 야간업소를 전전하며 설움을 겪은 적도 있다. 하지만 배우의 꿈만은 접지 않았다. 그럴수록 남들보다 먼저 촬영장에 나가 연습을 하며 때를 기다렸다. 그가 37년 배우 생활을 하면서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건 연기상도, 부와 명예도 아니다. 지금까지 리허설, 대본 연습에서 단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는 “극중 며느리로 나오는 김유미가 ‘오늘도 선생님 때문에 1등을 놓쳤다’고 억울해하더라”며 웃었다. 그는 연기에서 변신을 시도했던 것처럼 깜짝 놀랄 만한 모습으로 앨범도 내고 다양한 시도로 놀이공원에도 생기를 불어넣을 계획이다.
- 안주할 수도 있는 나이인데, 끊임없이 변신을 시도하는 이유는.
“연기자로서 한 가지 이미지만 보여줬다면 지금까지 생명력을 이어갈 수 없었을 거예요. 배우는 언제든지 팔릴 수 있는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또 변신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집중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고, 고민하고 노력한다는 의미예요. 자화자찬하자면 저 역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기회가 안 주어진다고 투덜거리는 사람 중에서 막상 변신의 기회가 왔는데 준비가 안 돼 제대로 연기를 해내지 못한 경우도 많아요.”
- 후배들이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 같습니다.
“예전에는 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방송국 공채를 통해 배우가 될 수 있었는데 요즘에는 겉모습만 그럴 듯하면 배우가 될 수 있어요. 그러다 보니 기본이 안 된 배우들이 드라마에 나오기도 하는데 저는 그런 드라마를 안 봐요. 방송인으로서 자긍심을 갖고 있는데, 그런 후배들을 보면 속이 상하거든요. 또 배우는 목소리가 굉장히 중요해요. 가슴에 울림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전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학교 가기 전 장충체육관으로 가 1시간씩 발성 연습을 했어요. 후배들에게도 목소리를 잘 가다듬으라고 강조했는데 이제는 잔소리 같아 말을 아끼고 있어요.”

- 고등학교 때부터 연기자를 꿈꾼 건가요.
“같은 반에 가수 차중락씨 동생이 있었는데 저보고 목소리가 좋다고 가수를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발성 연습을 시작했는데 목소리가 좋아지는 게 느껴져 계속했어요. 지금은 큰 자산이 됐죠.”

임채무, 막장 시아버지를 위한 변명

임채무는 촬영장에서 후배들에게 엄하면서도 자상한 선배다.



- 데뷔 후 11년 정도 무명생활을 겪었는데, 포기하고 싶었던 적은 없었나요.
“다 그만두고 이민 가려고 영어를 배운 적도 있어요. 그런데 잘 된 친구들을 살펴보니까 남들이 뭐라고 하든 묵묵히 자기 길을 간 사람들이더라고요. ‘못난 사람이 거울 탓 한다’고 나도 다른 사람 원망하지 말고, 나를 바꾸자고 맘먹었어요. 남 탓 안 하고 내가 열심히 하니까 결국 기회가 오더라고요.”
- 가을에는 새 앨범을 낼 계획이라고요.
“제가 노래를 한다고 하면 으레 태진아·송대관 같은 스타일이 아닐까 하는데 아주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서 고민 중입니다. 간주에 비보이 춤을 춘다든지, 서태지 같은 스타일에 도전해본다든지, 열심히 준비 중이니 기대해 주세요.”

여성동아 2010년 3월 5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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