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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류지용 인터뷰 & 심사평

호기심 많은 주부 류지용 여성동아 통해 작가로 데뷔하다

글 김명희 기자 사진 조영철 기자

입력 2010.02.17 15:37:00

섬세한 감수성을 지닌 역량 있는 여성작가가 탄생했다. 제42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서 ‘사라진 편지’로 당선된 류지용씨가 그 주인공. 두 아이를 낳아 키우며 박사학위를 받고 대학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그는 이제 맘 놓고 글을 쓸 수 있게 됐다며 안도했다.
제42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류지용 인터뷰 & 심사평


폭설로 쌓인 눈이 아직 녹지 않아 온통 하얀 세상 앞에 그가 서 있다. 눈이 녹고 날씨가 풀리면 겨우내 움츠렸던 생명들이 숨을 쉬기 위해 밖으로 나올 것이다. ‘제42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류지용씨(42)는 자신의 앞에 펼쳐질 새로운 세상이 궁금한 듯 호기심 가득한 표정이었다.
“남편과 아이들, 그리고 글 쓰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갚아야 할 빚이 더 늘어난 거죠(웃음). 앞으론 열심히 쓰는 일만 남았다고 생각하니 감사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앞섭니다.”
류씨는 초등학교 6학년·3학년 두 아이를 둔 주부다. 수상 소식에 누구보다 크게 기뻐한 건 두 아이였다고.
“저는 제가 엉터리인 걸 알기 때문에 아이들한테는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았어요. 아이들을 믿고 맡겼죠. 다만 공부를 호기심을 갖고 즐겁게 하라는 이야기는 많이 했어요. 학문의 ‘문(問)’자는 ‘묻는다’는 뜻이잖아요.”
결혼 후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대학원에 진학, 현대문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현재 고려대에 출강 중이다. 초등학교 때 글짓기 대회에 나가 여러 번 수상을 하고, 대학 시절에는 리포트 잘 쓴다는 이야기를 곧잘 들었지만 자신에게 글에 대한 재능이 있는 줄 몰랐다. 바쁘게 사느라 소설에 대해 생각할 틈도 없던 그는 어느 순간부터 가슴이 답답해지는 걸 느꼈다고 한다. 방에 틀어박혀 스스로 질문하는 시간이 늘었다. 생각은 힘이 세다. 상상은 나래를 펴고, 모든 언어적·비언어적 경험이 깨달음의 대상이 됐다.
“살림에 썩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는 편도 아니에요. 이도 저도 아닌 경계인이랄까. 방 안에 유폐되다시피 해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문기가 트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진심으로 사람들 마음 움직이는 글 쓰고 싶어
당선작 ‘사라진 편지’는 ‘홍길동전’의 작가 허균의 누이 허난설헌(허초희)의 이야기다. 허초희는 조선시대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살다간 인물 중 하나. 조선중기 석학 허엽의 셋째 딸인 그는 열여섯에 김성립에게 출가했으나 정쟁에 휘말린 아버지의 객사에 이어 어린 두 아이를 차례로 잃고 불행한 결혼생활을 하다가 스물일곱에 요절했다.
‘지난해 사랑하는 딸 잃고, 올해 사랑하는 아들 잃어 애달프고 애달픈 광릉 땅에 두 무덤이 마주하고 있네…’로 이어지는 오언고시 ‘곡자(哭子)’를 비롯해 1백42수의 시를 남겼는데 그는 죽기 전 자신의 시를 모두 불태우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사라진 편지’는 천재시인 허난설헌이 시대와 불화하며 몰락하는 과정을 슬프도록 아름답게 그렸다. 그의 글은 사료와 자료에 의존하기보단 직관에 따른 것이다. 때문에 사실성 면에서 일부 허점이 지적되기도 했다.

제42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류지용 인터뷰 & 심사평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왜 그래?’라는 질문을 던지는 걸 좋아했어요. 그러면서 주류보다는 주변인에 관심을 갖게 됐죠. 제 첫 장편은 조광조에 관한 것이었고, 허난설헌은 두 번째로 도전한 장편이에요. 소재는 역사에서 차용했지만 허난설헌의 입을 통해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쏟아져 나온 게 아닌가 합니다. 그렇다 보니 아쉬운 점도 있어요. 작품의 캐릭터가 생생하게 살아야 하는데 저라는 인물의 틀 안에 갇힌 게 아닌가 하는 거죠. 앞으로 제가 극복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류씨는 요즘 아들을 위해 구입한 노벨문학상 수상자들에 관한 만화를 탐독 중이라고 한다. 미처 몰랐던 작가들의 세계에 흠뻑 빠져 그 안에서 자신의 길을 가늠하는 중이라고.
“앞으로 부지런히 글을 써 작가로 안정적인 자리를 찾는다면 역사소설은 창작이 아니라는 편견에 한번 도전해보고 싶어요. 또 제 글이 어느 한 사람에게라도 진심으로 닿을 수 있다면 더 좋겠고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서는 기교보다 본질이 앞서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심이 묻어나는 글에는 생명이 있다고 믿습니다.”
류씨의 글을 읽은 한 지인은 그에게 “40년 동안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주머니 속 송곳처럼 재능은 언젠가는 빛을 발하는 법. 이르지 않은 나이에 문기를 확인한 류지용씨의 열정적인 창작활동을 기대한다.



■ 2010 여성동아 장편소설 심사평
“‘사라진 편지’는 허난설헌 이야기 중심으로 삶의 복합성 드러낸 수작”
심사위원·소설가 이경자 연세대 국문과 교수 정과리

제42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류지용 인터뷰 & 심사평


예심을 통해 올라온 이채원씨의 ‘나의 마라톤 참가기’와 류지용 씨의 ‘사라진 편지’는 저마다 고유한 개성을 갖춘 작품이었다. ‘나의 마라톤 참가기’는 문체가 깔끔하고 마음의 미묘한 결과 굴곡의 시시각각 문양을 적절히 표현해냈다. 나름대로 읽히기에 성공한 작품이다. 언어를 맛깔나게 쓸 줄 아는 사람의 솜씨였다.
게다가 남편이 불륜을 저지르는 계기가 된 마라톤이 동시에 아내로 하여금 정신의 위기를 탈출하도록 돕는 중요한 방편이 된다는 아이로니컬한 설정이 이채롭다. 단순히 흥미를 자극하기 위한 얄팍한 수단이기보다는 삶에 대한 모종의 깨달음에 도달하기 위한 필수적인 장치로서 기능한다 할 수 있다.
즉 이 난해하기 짝이 없는 삶을 인내의 실습장이자 살아 있음의 감지기로서 기능하는 장거리 달리기에 대입함으로써, 산다는 것의 수동성과 허무함을 견딘다는 것의 능동성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리고 다시 그 견딤의 생리학으로부터 산다는 것의 존엄함과 삶의 기쁨을 느끼는 전개로 이어졌다.
하지만 장거리를 뛰는 요령, 식단 관리, 혼인과 이혼율, 사생아 수 등등 핵심 이야기와 관련된 세목들의 번잡한 정보가 소설 안으로 통합되지 못했다. 결국 내용들이 층을 이뤄 마치 소설책 한 권이 폐지 창고 속에 담긴 것처럼 보였다. 이 창고로부터 소설을 구출해내어 쓸데없는 생활정보들을 덜어내고 나면 깔끔한 중편 하나가 겨우 남는 꼴이 될 수밖에 없다.
‘나의 마라톤 참가기’가 지나친 사실성으로 소설적 허구를 훼손시키고 있는 반면, 조선조 시인 허난설헌의 기구한 일생을 추적한 ‘사라진 편지’의 경우 사실성 측면에서는 허점이 많은 작품이다. 이름과 명칭과 어법들은 시대적 배경과 맞물리는 듯이 보이나 느낌, 생각과 표현은 오늘날과 어울린 것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역사적 인물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는 경향은 현재 한국 소설의 장에서 진부해진 감이 없지 않다. 공동체의 울타리가 절대적으로 강력했던 시대에 그 울타리 내부에 속하지 못한 인물이 겪는 고통과 투쟁 그리고 비극은 우리에겐 너무나 흔한 주제가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제42회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류지용 인터뷰 & 심사평


그러나 ‘사라진 편지’는 적어도 세 가지 장점을 가지고 있다. 첫째, 이 소설에는 허난설헌의 생애를 중심으로 다양한 삽화가 다각적 층위에서 끼어들고 있다. 이 삽화들이 각각 독자적이면서도 중심 이야기와 긴밀히 연관된 촉매 이야기들로 기능하고 있어서, 말 그대로 장편의 이름에 값하는 삶의 복합성을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둘째, 인물의 비극을 시의 비극으로 옮겨놓고 있다는 점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시의 언어와 다른 언어들이 겨루는 대목들이다. 직접 인용된 시들 하나하나가 언어의 전사가 되어 시 언어 존재 이유를 위해 투쟁한다.
셋째, 이러한 언어들의 겨룸을 통해서 시와 정치의 관계에 대한 성찰을 크게 드러내고 있다는 점이다. 독자는 시가 도원에서 노닐지도 않고 또한 현실 정치에 매몰되지도 않은 채, 정치의 한복판에서 죽음과 신생을 되풀이하는 몸부림을 매번 체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체험은 문학의 가장 소중한 덕목에 속하는 것이다. 이 작품을 당선작으로 결정한 소이이다. 축하를 보내며 정진을 바란다.

*당선작을 뽑기까지 | 이번 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에는 모두 24명이 응모, 총 24편의 작품이 접수됐다. 예심은 문학평론가 권명아씨가 맡아 2편을 본심에 올렸고 이경자·정과리 두 명의 심사위원이 지난 1월11일 열린 본심에서 류지용씨의 ‘사라진 편지’를 당선작으로 결정했다.
*응모자 명단(가나다 순) | 강복희 권소희 김덕중 김소윤 김영숙 김정희 김한숙 류지용 박성숙 박현기 신경화 신은수 안혜영 열하 오성희 이남순 이동미 이미경 이미혜 이채원 전신애 정서하 최윤정 홍정주

여성동아 2010년 2월 5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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