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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여제 신지애 아버지 신제섭씨 “두 딸 똑 소리 나게 키워내기까지”

글 문다영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신제섭 제공

입력 2010.02.17 10:41:00

사고로 아내를 잃고 홀로 신지애를 최고의 골프선수로 키워낸 아버지 신제섭씨. 얼마 전엔 둘째 신지원양의 서울대 합격 소식으로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그가 밝히는 신지애와의 추억, 그리고 특별한 자녀교육법.
골프여제 신지애 아버지 신제섭씨 “두 딸 똑 소리 나게 키워내기까지”


LPGA 투어 상금왕·신인상 수상, 미국골프기자협회 올해의 최우수여자선수상, 네 번의 우승과 두 번의 준우승 및 3위 입상. 2009년 프로골퍼 신지애(22)의 수상 내역이다. 2005년부터 국제대회에서 특출난 기량을 선보인 신지애 뒤에는 언제나 아버지 신제섭씨(51)가 있었다. 99년 6월, 처음 신지애가 골프채를 잡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든든한 스승이자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그는 예비 프로골퍼 부모들에겐 우상과도 같다. 그런데 그 바쁜 와중에 둘째 신지원양이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수시 합격하는 기쁨도 맛봤다. 2003년 교통사고로 아내를 잃고도 세 자녀를 뒷바라지하며 훌륭하게 키워낸 그가 조만간 신지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발간할 예정이다. 현재 신지애의 전지훈련을 위해 호주 골드코스트에 머물고 있는 신제섭씨와 서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순진하고 꾀 부릴 줄 모르던 우직한 아이
그는 신지애가 처음 골프채 잡던 날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열광적인 스포츠광이었고, 학창시절 운동선수로 활약하던 신씨는 ‘자식을 낳으면 첫째는 무조건 운동선수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한국인이 세계를 제패한 종목인 양궁과 골프 사이에서 고민하던 신씨는 경제적 사정으로 신지애를 양궁 명문학교인 광주두암초등학교에 보냈다. 하지만 목사인 그가 목회지를 따라 영광으로 이사하면서 더 이상 양궁을 할 수 없었고, 신지애는 가끔 골프를 치는 아버지에게 “한번 쳐보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일주일 속성강습 후 그는 하경종 프로를 찾아갔다. 가능성이 엿보이는 딸을 보며 “이왕 시작한 것, 세계적인 선수로 키워보자”는 다짐을 했다.
어떤 순간에도 늘 얼굴에 미소를 띠는 신지애를 두고 혹자는 “심장이 없는 것 같다”고도 한다. 하지만 어릴 때 신지애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마음 여리고 겁 많은 순둥이였다고.
“시장에 따라와서 가지고 싶은 것이나 먹고 싶은 것을 사달라고 하다가도 ‘안 돼!’ 하면 두 번 조르는 일이 없었고, 집 앞 가게에서 과자를 사가지고 올 때도 2차선 도로를 건널 때 100m 밖에서 차가 보이면 지나가는 사람이나 가게 주인에게 길을 건너게 도와달라던 아이였어요. 골프 연습 중에 제가 일이 있어 자리를 비울 때면 전화가 왔어요. ‘아빠, 저 힘든데 조금 쉬었다 연습하면 안 돼요?’ ‘아빠, 배고픈데 밥 먹고 연습하면 안 돼요?’ 제가 보지 않으니 요령껏 쉬기도 하고 먹기도 하면 되는데 꾀를 모르는 아이였죠.”
신지애의 우직함은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골프를 마음껏 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신지애는 중학교 2학년 당시 무료로 연습할 장소가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새벽 6시부터 골프장에 찾아가 일반인들에게 함께 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방법을 생각했다. 하지만 어린 학생을 선뜻 받아주는 이들이 거의 없었기에 신지애는 합류의 기회가 올 때까지 퍼팅그린에서 묵묵히 연습에 임했다. 그 와중에 신지애가 주로 찾았던 무안골프장 사장이 신지애를 눈여겨봤고, 어린 학생의 끈기와 성실함에 탄복한 그는 “무기한 무료 연습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전국대회를 나갈 때면 시합 경비를 대주기도 했다. 신씨는 “지애가 성장하는 데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지만, 그분의 배려가 가장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하고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하지만 그분의 마음을 움직인 건 꾀를 피우거나 게으름을 피우지 않았던 지애 자신이었다”고 말한다.
속 한번 썩인 적 없는 착한 딸이지만 반항기는 있었다고 한다. 신씨의 기억에 남아 있는 신지애의 반항은 두 번. 그런데 모두 신지애 친구와 선배들의 아이디어였다.

골프여제 신지애 아버지 신제섭씨 “두 딸 똑 소리 나게 키워내기까지”

신제섭씨 가족은 2년여 전 새 가족을 맞았다. 2008년 11월 촬영한 사진으로 왼쪽부터 신지원, 신지애, 신제섭, 이영애, 신지훈군.



“지애가 고1 때 전국에서 연습을 제일 많이 하는 선수일 거라는 소문이 났어요. 힘들게 훈련하는 지애에게 언니들이 ‘지애야 아빠가 무섭더라도 한번 대들어봐. 아빠는 너 골프 시켜야 하니까 너한테 질 수밖에 없을 거야’라고 한 모양이더라고요. 지애가 이 말을 그대로 실천해서 저에게 반항을 했어요. 너무 화가 나서 골프채를 집어던졌고, 하나가 부러지기도 했던 것 같아요. ‘아빠는 골프 잘 치는 딸보다는 아빠를 존중하는 딸이 더 좋다’며 이럴 바엔 골프를 그만두라고 했죠. 골프협회에 전화해서 예정돼 있던 경기 참가를 취소하는 액션까지 보여줬어요. 그랬더니 지애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다며 나가는 거예요. 아, ‘정말 그만두면 어쩌나’ 하고 애가 타서 곧장 지애와 친한 골프선수 어머니께 전화를 했어요. 다행히 그 어머니가 다음 날 찾아와 지애와 대화를 나눴는데 ‘언니들이 아빠한테 한 번 대들면 그 다음부턴 편하게 골프 칠 수 있다고 해서 해봤는데 우리 아빠에겐 안 통해요’라고 했다더라고요. 우습기도 하고 아찔하기도 했던 순간이에요.”
겨우 위기를 넘긴 신씨는 2005년 아시아 투어 때도 같은 일을 겪었다. 대만에서 2개 시합이 있었는데 그중 한 경기 결과가 좋지 않아 신지애를 꾸짖다가 덜컥 “아빠는 한국에 갈 테니 너 혼자 다녀봐라”는 말을 하고 말았다고. 그런데 신지애가 여느 때와 달리 “알겠다”고답하자 거꾸로 신씨가 당황했다. 말을 번복할 수 없어 일단 짐을 챙겨 호텔을 나섰다는 신씨. 차마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던 그는 홧김에 호텔 옆 식당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는데 그때 윤수정 프로 아버지가 신씨를 찾아와 “지애가 지금 아빠가 한국 간다고 진짜로 짐을 싸서 나가버렸다고 울면서 찾아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도 하는 수 없이 호텔로 돌아온 척한 신씨는 사건의 원인이 선배 프로골퍼들의 “외국까지 와서는 너한테 질 수밖에 없을 테니 한 번 더 반항해봐”라는 조언 때문임을 알게 됐다. 신씨는 “순진한 지애 덕분에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조수미 어머니에게 배운 ‘칭찬의 힘’

골프여제 신지애 아버지 신제섭씨 “두 딸 똑 소리 나게 키워내기까지”

지난해 3월 LPGA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 역전 우승한 신지애.



신지애를 세계적인 골프선수로 키워낸 것도 대단한데 얼마 전에는 둘째 딸 신지원 양이 서울대학교 물리천문학부에 수시 합격해 신씨는 많은 이의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그는 “아이들이 엄마를 잃은 뒤 정신적으로 성장해 스스로 열심히 한 덕분”이라면서도 “부모의 믿음이 아이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준다는 생각으로 키웠다”고 말한다.
일례로 신지애는 경기 내내 웃음을 잃지 않는데 그를 뒷바라지하던 당시 신씨는 골프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여유로움이고, 그 여유로움은 자신감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찾은 가장 좋은 방법은 바로 칭찬이었다.
“어느 날 TV에 성악가 조수미씨가 나왔어요. 최고의 위치에 올라서게 된 원동력은 ‘어머니의 칭찬’이었다고 말하더라고요. 조수미씨 엄마는 항상 ‘넌 세계적인 성악가가 될 수 있는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칭찬했고, 그 한마디가 조수미씨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줬다는 겁니다. 그 인터뷰를 보는데 무언가가 제 뇌리를 쾅 내리치는 것 같았어요. 제가 제 딸인 지애를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어요. 사랑과는 다른, 지애에게 꿈을 심어주고 자신감을 심어주는 게 보이지 않는 힘이 되리라는 생각을 갖게 됐습니다. 그 후부터 지애가 경기를 못할 때 꾸중과 책망 대신 칭찬하는 방향으로 교육방침을 바꿨어요. 그 칭찬이 지애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었고, 후에 역전승을 많이 하는 ‘파이널 퀸’이 됐어요.”
또한 세상 누구보다 부모가 먼저 자식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신지애가 주니어 선수일 당시 신씨는 신지애의 골프 실력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했다. 신씨는 숏 퍼팅이 약했던 딸을 보며 “지애는 숏 퍼팅만 잘하면 우승할 텐데 숏 퍼팅이 너무 약해”라는 말을 늘 하고 다녔다고. 그런데 희한하게도 신씨가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신지애는 여지없이 그의 말대로 잘해내지 못했다. 그러던 그에게 누군가가 “부모가 내 자식을 못 믿으면, 이 세상에서 누가 내 자식을 믿겠어”라는 말을 했다. 신씨는 “충격적이었다”며 “혈육 간에 텔레파시 같은 게 있는지 경기 중 어떤 예감이 들면 꼭 그대로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 말을 들은 후부터는 어떤 상황에서도 긍정적인 결과를 생각하며 지애에게 염원을 보내게 됐다”고 말한다.
신씨가 세 자녀를 키우며 터득한 또 하나의 교육방법은 “부모가 가진 꿈의 크기만큼 자식이 큰다”는 것이다. 골퍼 부모 대부분이 세계대회는 무리라고 생각할 때 우물 안 개구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국제대회를 목표로 했고, 그것이 신지애의 시야와 꿈을 세계무대로 넓혀주었다고 한다. 서울대에 합격한 신지원양도 마찬가지였다.
“지원이는 초등학교 땐 문학에 소질이 많았어요. 그런데 중학교에 올라가더니 과학에 관심을 갖더라고요.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방학 때면 고려대학교에서 열리는 과학교실캠프에도 참가시키고 발명품 전시회 등에 참가할 수 있게 했어요. 천체 망원경까지 사줬지요. 그랬더니 그 꿈을 고이 키워 결국 올해 서울대 물리천문학부에 수시 합격했어요. 지애가 상금으로 지원이 과외비를 내주는 등 많은 도움을 준 것도 큰 힘이 됐죠. 막내 지훈이는 예능에 재능이 있어서 장래 꿈이 가수나 성악가예요. 언제 또 바뀔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뮤지컬도 보여주고, 성악가·작곡가도 만났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합창부에 들어갔는데 여전히 활동하고 있지요. 자녀에게 꿈을 주입하고 강요하기 보다는 과연 부모인 내가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자녀를 가르치고 있는가를 분명히 해야 하고, 자녀를 위해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를 돌아봐야 자녀도 무한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 잘 자란 건 아내 덕분…”

골프여제 신지애 아버지 신제섭씨 “두 딸 똑 소리 나게 키워내기까지”


신씨의 ‘목표성취에 따른 확실한 보상시스템’도 톡톡히 한몫을 했다. 신씨는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용돈을 보상에 의해 주고 있다. 신지애의 경우 연습 때 버디를 잡으면 5백원, 어프로치 연습을 할 때 홀컵 50cm 안쪽에 붙이면 2백원을 주기로 약속했다. 그래서 신지애는 용돈이 필요하면 자연스럽게 연습을 하러 가자고 했다고 한다. 그 보상체계는 지금도 이뤄지고 있다. 프로 입문 후 보기가 하나도 없는 라운드당 1백만원, 우승하면 1백만원 등의 방식으로 용돈을 줬고, 미국 LPGA에 데뷔해서는 액수를 2백만원으로 올렸다. 신지애의 자동차 역시 아버지와 한 약속으로 좋은 성적을 내고 받은 보상이다.
둘째 딸 신지원양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신씨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부터 전교 1등을 하면 1백만원씩 주기로 약속했다”며 “1년에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각각 2번씩 있어서 최대 4백만 원이 나갔다”고 말한다. 어린 학생에게 주는 보상치고 너무 많은 액수인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있었지만 신씨는 “학비 외에 다른 용돈을 주지 않기 때문에 옷도 사고, 참고서·교통비 등을 보상으로 받는 용돈에서 해결한다고 생각하면 많은 돈은 아니다”며 “무엇보다 노력한 결과에 대한 보상은 확실히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골프여제 신지애 아버지 신제섭씨 “두 딸 똑 소리 나게 키워내기까지”

왼쪽부터 신지원 지훈 지애 남매.



아내와 사별하고 신씨는 철저한 교육방침 하에 세 남매를 그 누구보다 훌륭하게 키워내기 위해 노력해왔다. 아이들이 잘 따라주고 각자의 위치에서 성공을 이뤄가는 모습을 보며 큰 기쁨을 느꼈지만 마음 한구석은 늘 비어 있었다.
“지애가 우승할 때면 더욱더 먼저 떠난 아내 생각이 납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울 때도 묵묵히 제 뜻을 따라 열심히 뒷바라지했어요. 그런데 지애가 우승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서 마음이 아파요. 지애가 고1 때 경희대 총장배에서 처음으로 전국대회 우승을 했을 땐 그 사람 생각에 시상식을 보지도 못하고 그저 한쪽 콘크리트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습니다. 생전 행복했던 모습과 제가 잘해주지 못했던 일들이 생각났고, 그럴 때마다 가슴이 저려와요.”
세 남매가 잘 자라준 것은 모두 아내의 덕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신씨가 강하고 절제된 생활을 요구하는 교육방식으로 이끌었다면 아내는 부드러움과 온유함으로 자식들을 보듬어 안는 스타일이었다는 것. 그래서 신씨는 아내의 사고 후 아이들을 모아놓고 “엄마의 성품과 신앙을 본받아라”라고만 당부했다고 한다. 신씨는 “아이들의 성품을 보면서 그 사람의 영향이 참으로 컸다는 것을 느낀다”며 “지애의 우승 때마다 아내의 산소를 찾아가면 누가 한 건지 모르지만 항상 벌초가 되어 있는데 그만큼 아내가 많이 베풀고 간 증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골퍼의 아버지로서 그 누구보다 노력했고, 많은 시련을 감내해왔을 신씨. 하지만 그는 오히려 지난 세월이 즐거웠다고 한다.
“지애 엄마를 보낸 때를 빼놓고는 힘들다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의 꿈을 위해 제가 이렇게 힘쓸 수 있다는 게 좋았어요. 묵묵히 제 방식을 따라준 아이들 때문에 더욱 즐거웠죠. 물론 아이들을 키우며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있지만 일부러 그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하진 않아요. 사실 성격은 다혈질인데 막상 화가 나면 혼자 중얼중얼 하면서 ‘그럴 수 있지. 내가 이런데 본인인들 오죽하겠나’ 하면서 속으로 삼킵니다.”
신지애 직업의 특성상 신씨는 첫째 딸과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늘 딸과 함께 울고 웃어온 신씨지만 지난해는 만감이 교차한 시기였다. 단연 신지애의 해였지만 아쉬움도 많다.
“지난해 2월 하와이 터틀베이에서 열렸던 ‘SBS 오픈’이 지애의 LPGA 공식 데뷔전이었어요. 2008년에 초청받아 나간 경험이 있는 데다 초청선수로 LPGA 대회에서 3번 우승한 경력이 있어서 은근한 기대를 했는데 둘째 날, 예선 탈락하고 말았죠. 프로 입문 이래 기록한 최악의 스코어이자 최초 예선 탈락이었어요. 아…. LPGA 데뷔 전부터 언론마다 ‘적응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1승도 올리기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인 보도가 쏟아지던 상태에서의 탈락이라 더욱 상심이 컸지요. 다행히 이후 두 번째 경기 만에 2타 차로 역전우승하면서 꿈의 무대인 LPGA의 첫승을 거뒀어요. 그날 저녁 인터넷을 통해서 본 한국 신문 기사가 생각나네요. ‘파이널 퀸이 돌아왔다’는 제목이었습니다.”
‘올해의 선수상’을 1점 차로 놓친 것도 신씨는 못내 아쉽다. 그 1점 차로 전설적인 선수인 낸시 로페즈 이후 31년 만에 신인상·상금왕·올해의 선수상을 한 번에 거머쥘 기회를 놓쳤기 때문.
몇몇 아쉬운 순간이 있었지만 신씨는 신지애로 인해 2009년이 행복했다고 밝힌다. 특히 ‘LPGA 투어 챔피언십’ 대회 기간에 열린 ‘2009년 LPGA투어 신인상과 상금왕’시상식을 잊을 수가 없다.
“지애가 골프를 치면서 세웠던 목표가 있었습니다. 한국·일본·미국 신인왕과 LPGA의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거였어요. 일본 투어의 신인왕은 수상하지 못했지만 한국에 이어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이 뛰고 있는 미국 무대에서 신인상을 수상했다는 것이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어요. 지애가 신인상 수상소감을 영어로 연설해 기립박수를 받았던 것도 기억에 남아요. 시상식이 끝나고 ‘어디 우리 딸 한 번 안아보자’ 하며 안아봤더니 눈물이 나더군요. 지난 10여 년의 생활이 순간 주마등처럼 지나갔어요. 대견하고 자랑스럽고,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꿈을 이루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생 2막에선 가족 위한 집 짓고파
조만간 신씨와 신지애가 함께한 21년의 기록이 책으로 발간될 예정이다. 그 책에 담긴 내용이 아버지로서의 1막이었다면 올해부터는 새로운 2막을 위해 달릴 생각이다. 신지애가 아닌 세 남매와 함께 꾸는 꿈이다.
“아이들이 자신들의 삶 속에서, 자신들의 영역에서 자신들의 꿈을 마음껏 펼쳐나가기를 바랄 뿐입니다. 저는 조언자로서의 역할을 잘해줘야죠. 그런데 한 가지는 꼭 이루고 싶어요. 연립주택 4채를 지어서 우리 네 식구의 집을 한 채씩 마련하는 겁니다. 아이들이 결혼을 한 뒤 그곳에 가정을 꾸리건, 혹은 일 때문에 다른 지역으로 간다고 할지라도 그 집은 항상 아이들의 명의로 해놓고 싶어요. 명절 때든 언제든, 항상 돌아갈 곳은 가족이라는 것을 잊지 않게 해주고 싶어서입니다.”

여성동아 2010년 2월 5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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