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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진솔한 고백

배우 김정민 아픔 딛고 비상하다

“아버지 폭력·어머니 가출… 가슴 시린 가족사 이기고 다시 찾은 행복”

글 임윤정 기자 사진 조영철 기자 || ■장소협찬 블룸&구떼(02-541-1530)

입력 2009.11.24 10:24:00

젊음은 새로운 도전이 두렵지 않은 나이다. 그래서일까. 최근 데뷔 앨범을 발표하고 가수로도 나선 김정민. 김수현 작가의 드라마 ‘사랑과 야망’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지금껏 브라운관 안팎에서 밝고 유쾌한 모습만 보여줬지만, 그 이면엔 굴곡진 가족사가 자리한다. 그러한 아픔을 딛고 당당하게 선 지금, 그는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배우 김정민 아픔 딛고 비상하다


김정민(21)에게는 소녀와 여인의 향기가 공존한다. 천진한 미소를 가진 얼굴에서는 소녀의 모습이 언뜻언뜻 비치고, 훤칠한 키에 균형 잡힌 몸매는 성숙한 여인, 그 자체다. 약속 장소에 들어서자마자 그는 당당함과 살가움이 반쯤 섞인 말투로 인사를 건넸다. 처음 만난 이에게도 스스럼없이 언니나 오빠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하고 거침이 없다. 이러한 성격은 새로운 도전을 주저하지 않는 것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 그는 미니 앨범 ‘이노센스(Innocence)’를 발표하고 가수에 도전했다. 타이틀곡 ‘넌 아냐’는 복고풍 라틴댄스곡이다. 이 노래는 그가 직접 노랫말을 붙였다.
“이상형을 찾는다는 내용의 가사예요. 제 이상형은 아무 조건 없이 저만 사랑해주는 사람인데, 주위에서 ‘지금은 네가 경험이 없어서 그렇지 5년만 지나면 달라진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같은 제목의 스타화보도 함께 선보였다. 발표하자마자 검색 순위 1위에 오르는 등 반응도 뜨겁다. 기존의 귀엽고 순수한 이미지에서 벗어나 섹시한 매력을 선보였던 것. ‘이노센스’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화보 전체로 보면 섹시 콘셉트는 분명 아니다. 비키니 사진이 화제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초점이 맞춰졌을 뿐이다.
“기사 제목 가운데 하나가 ‘얼굴은 유아용, 몸매는 성인용’이더라고요. 좋은 뜻인 줄은 알지만, 기분이 좀 그렇더라고요. 제 본연의 모습은 발랄함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판단은 보는 사람의 몫이겠지만요.”
그는 화보를 찍기 위해 몸매 관리에 정성을 쏟았다. 체중 감량보다는 근육을 늘리는 데 집중했다. 웨이트 트레이닝을 주로 하고 콩국수와 두부 등 콩이 들어간 음식으로 식단을 짰다. 그 결과 한 달 반 만에 10kg이나 감량했다. 그에겐 악바리 같은 근성이 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반드시 하는 성격이에요. 사람들이 뜻한 바를 이루지 못하는 것은 도전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에 따른 노력이 귀찮아서라고 생각해요. 저는 노력이 필요하다면 노력할 거고. 가능한 한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싶어요.”

아버지 때문에 열 세살 때 가출
가슴 깊은 곳에 묻어둔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는 일이 어디 쉬울까. 최근 그는 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지금껏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숨겨진 가족사를 어렵사리 꺼내놓았다. 마치 상처에 내려앉은 딱지를 억지로 떼어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을 터다.
그의 고향은 전남 보성이다. 고향은 늘 그리움의 대상이지만, 그에겐 사뭇 다른 느낌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곳에서 보낸 유년시절의 아픈 기억이 향수마저 앗아가 버렸다. 그가 열세 살 무렵 어머니는 아버지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나갔다. 하루아침에 중학교 1학년에 다녀야 할 여자 아이가 집에서 다섯 살 된 남동생을 키우게 됐다. ‘여자는 살림만 잘 배워서 시집 가면 된다’며 학교에 보내지 않았던 것이다.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엄마 없이 살 용기가 도저히 나지 않았다. 그래서 무작정 동생을 데리고 어머니가 있는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머니의 편에 서서 이혼을 돕기도 했다.
“엄마가 법원에 이혼 신청을 했는데, 그때 제가 진술서를 썼어요. 어떻게 보면 불효일지도 몰라요. 힘들어 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같은 여자로서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각자의 삶을 사는 게 더 나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하지만 이혼이 아버지로부터 완전한 방패막이가 되지는 못했다. 아이들을 키울 형편이 안 됐던 어머니가 다시 남매를 아버지에게 돌려보냈던 것이다. 4개월 동안 지옥 같은 생활이 이어졌다. 틈만 나면 달아날 생각을 하던 차에 기회가 찾아왔다. 밤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사촌언니가 하는 미용실에 얹혀 살며 일을 도왔다. 하지만 두고 온 동생이 내내 눈에 밟혔다. 그러던 어느 날 미용실로 찾아온 어머니에게 동생을 데리고 와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이후 숱한 우여곡절 끝에 동생 역시 서울로 올라오게 됐다.
이렇듯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벅찬 일들을 겪은 김정민. 시간이 흐르면서 상처가 어느 정도 치유되긴 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여전히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남아 있다.
“그동안 미움도, 원망도 많았어요. 지금은 안타깝다는 생각이 제일 커요. 가끔 생각나거나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래도 저를 낳아주신 아빠잖아요. 지금은 서로 연락이 닿지 않는 상태예요. 언젠가 한번 봐야 하는데…. 더 나이 들고 편찮아지시면 모셔야 된다는 생각은 있지만, 사실 아직까진 용기가 나지 않아요.”
아픈 기억들을 곱씹어내는 동안 애써 눈물을 꾹 참아내는 듯 보였다. ‘솔’ 톤으로 내뱉던 말투는 나직하게 가라앉았고, 거침없이 이어지던 대화도 중간 중간 한숨 섞인 침묵이 끼어들었다. 그는 가슴에 담아뒀던 이야기를 털어놓아 후련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더 무겁기도 하다.
“저와 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싶었어요. 열세 살 여자 아이가 우연히 길거리에서 캐스팅되어 그래도 이만큼 사랑받는 연예인이 됐잖아요. 이렇게 멋진 반전이 일어날 수 있으니까 힘을 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런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이야기가 풀리는 것 같아서 속상해요. 특히 엄마에게 상처를 드린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커요. 가장 힘들었던 건 엄마였으니까요.”
하지만 방송이 나간 이후 어머니는 “나는 밖에 나가지 않으면 되지만, 너는 일하는데 괜찮겠느냐”며 오히려 딸을 걱정했다. 그러한 내리사랑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어머니에게 마음으로 의지하는 부분이 컸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지금 이 순간 성공했다고 말할 순 없지만, 요즘 그는 정말 행복하다. 작은 것에 감사하면서 삶을 즐길 수 있는 여유도 생겼다. 앞으로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한다. 연예인은 보여지는 직업이기 때문에 자신이 즐거워야 보는 사람도 즐겁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신의 모습을 통해 사람들이 건강한 에너지를 받았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상처를 숨기면 결국 나중에 곪아터지게 마련이다. 자신의 이야기를 용기 있게 세상을 드러낸 김정민. 그것만으로도 상처는 아물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다.

배우 김정민 아픔 딛고 비상하다


어머니 재혼 후 가족의 따스한 정 새삼 느껴



요즘 그는 유년시절 누리지 못했던 가족의 따스한 정을 새삼 느끼고 있다. 지난해부터 한 지붕 아래 가족이 모여 살게 됐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 만들어진 가족 구성원대로 살아가진 못한다. 대신 새로운 아버지와 두 명의 남동생이 더 생겼다. 비록 혈연으로 연결되지는 않았지만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단란하게 살고 있다.

결혼생활 내내 힘들게 사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어머니의 재혼 사실을 알았을 때 어린 마음에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혼하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도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새 아버지는 어머니 곁을 든든히 지켜줄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친딸처럼 아껴주기에 지금껏 받아보지 못했던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곤 한다.

“엄마는 저에게 친구이자 애인 같은 분이에요. 그래서 엄마와 노는 게 더 좋아요. 저한테 하시는 말 중에 가장 싫어하면서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말이 있어요.‘너는 엄마처럼 살지 말아라’죠. 제 나이가 스물한 살인데, 딱 이때 엄마가 저를 임신하고 낳았어요. 여자로서의 인생이 거의 끝나고 아내와 엄마로서의 인생이 시작된 거죠. 전 지금 하고 싶고 갖고 싶은 것도 무척 많은데, 엄마는 여자로서 삶을 희생한 거잖아요. 그래도 저를 보면서 대리만족을 많이 느끼신대요. 그래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새벽녘에 일어나 엄마를 찾으며 칭얼대던 다섯 살배기 동생은 어느덧 초등학교 6학년이 됐다. 직접 씻기고, 먹이고, 재우면서 아들처럼 키웠기 때문에 그 정이 더 각별하다. 자식을 둔 어머니처럼 교육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 동생에게 ‘ㄱㄴ’을 떼준 이후로 지금껏 틈틈이 공부도 봐주고 있다. 겨울 방학에는 청학동 캠프에도 데려가 볼 생각이다. 그래선지 동생에게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으냐고 물으면 서슴없이 누나라고 답한다.

“언니나 오빠가 연예인이면 자랑하고 다닐 텐데 남자아이라서 그런지 내색하지 않는 것 같아요. 친구들이 ‘너희 누나 앨범 냈다’고 하면 ‘몰라, 몰라’ 이러나 봐요. 잘생겨서 나중에 크면 연예인 할지도 몰라요. 제가 어느 정도 버팀목이 돼줄 수 있어야 하는데…. 동생이 더 잘 돼서 누나가 묻어가면 안 되잖아요(웃음). 사실 중학생 남동생들도 있는데, 방송에서 막내 얘기만 해서 섭섭해하지는 않을까 미안한 생각도 들어요. 아주 의젓하고 듬직해요. 남동생 셋 거느린 누나로서 미래가 보장된 느낌이랄까요(웃음).”

우연히 배우 입문, 운명처럼 여기고 연기할 생각

올해로 연기 경력이 벌써 7년이다. 그가 연기자의 길을 걷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미용 일을 끝내고 지하철역 앞에 서 있는데, 트렌치코트 입은 한 남자가 자신을 계속 쳐다봤다. 낯선 사람의 시선이 불편하고 무서웠는데, 다행히 조금 있다가 사라졌다. 그러나 다시 나타나 한참을 쳐다보더니 명함 한 장을 건넸다. 바로 그 남자가 그에게 연기자의 길을 열어준 지금의 소속사 사장이다.

“사장님 말씀에 까만 피부에 키만 훌쩍 큰 촌스럽게 생긴 아이가 하나 서 있더래요. 명함을 줄까 말까 하다가 촌티를 벗겨낼 자신이 없어서 그냥 갔는데, 눈빛이 기억에 남더래요. 그래서 다시 와서 명함을 주셨던 거죠. 제 기억으로는 한 3일쯤 있다가 전화한 것 같은데, 사장님은 제가 그 다음 날 아침 일찍 전화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 우연한 만남을 하늘이 내려준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힘들고 어려웠던 시간을 단번에 보상해준 선물. 만약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하고 연락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배우 김정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기자의 길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데뷔작인 청소년 드라마 ‘반올림’에서 방영 초기 그의 비중은 훨씬 작았다. 연기를 전문적으로 배울 기회가 없었던 터라 또래 배우들보다 뒤처졌다. 그래서 더 악착같이 매달렸던 것 같다. 손에 쥔 게 없는 사람은 그걸 놓치지 않으려고 혼신의 힘을 다하는 법이니까. 6개월 정도 지나자 상황은 역전됐다. 주위에서 칭찬이 쏟아졌고 비중도 커졌다. 노력 여하에 따라 눈부신 스타가 되고, 훌륭한 배우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면서 더 열심히 하게 됐다. 못 다 한 공부에도 열정을 쏟았다. ‘반올림’ 오디션에 붙고 나서, 곧바로 검정고시 준비도 해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모두 마쳤고, 지금은 어엿한 대학생이 됐다.

그는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무난하게 입성한 배우 중 하나다. ‘반올림’ 이후 성인 역할을 주로 맡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성인 연기자로 흡수될 수 있었다. ‘사랑과 야망’의 경우엔 열일곱 살의 나이에 스물일곱 살 여자를 연기했다. 어린 나이에 성인 역을 잘 소화한 덕분에 선배들의 칭찬도 많이 받았다. 특히 김수현 작가로부터는 “저런 친구가 연기를 해야 해”라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

“김수현 선생님이 ‘내 남자의 여자’ 하실 때 저에게 러브콜도 해주셨어요. 당시 제가 다른 드라마와 계약된 상황이어서 부득이하게 참여하지 못했죠. 신인 배우에게 그런 기회를 주셨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해요. ‘사랑과 야망’하면서 연기나 화법 등 많은 걸 배웠거든요. 선생님 작품 했다면 더 많이 배울 수 있었을 텐데 아쉬워요.”

지금 영화 대본이 서너 개 들어와 있다. 행복한 상황이다. 하지만 연기는 잠시 미뤄두고 연말까지는 가수 활동에 전념할 생각이다. 앨범을 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는 평생 할 것이다. 연기 경력 7년. 70년쯤 해야 ‘아, 연기 좀 했구나’ 싶을 것 같다. 그때쯤 후배 연기자로부터 ‘아, 참 멋진 배우였다’는 소리도 듣고 싶다.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평생 그것을 운명처럼 여기며 살고 싶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은 젊은 배우 김정민. 이제 가슴 아픈 가족사는 숨겨야 할 치부가 아니다. 치열한 노력을 가능하게 하는 인생 자산이다. 젊음이 아름다운 것은 꿈꿀 수 있기 때문이다.

여성동아 2009년 11월 55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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