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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Star's Cafe

자신감 넘치는 중년! 양희은과의 데이트

글 임윤정 기자 | 사진 조영철 기자 || ■ 장소협찬 디이너라이크(02-3446-2422)

2009. 10. 22

70년대 통기타 하나 달랑 메고 청년들의 가슴을 뜨겁게 지폈던 양희은. 30여 년이 흐른 지금까지도 목소리 하나로 그 세대의 삶과 애환을 따스하게 보듬고 있다. 그런 그가 오는 10월 콘서트 ‘느리게 걷기’로 팬들과 만난다. 삶의 보폭을 줄이고 쉬엄쉬엄 가라는 의미의 공연 제목은 50평생 살면서 얻은 그의 인생관이기도 하다.

자신감 넘치는 중년! 양희은과의 데이트


양희은(57)에게서는 존재감이 느껴진다. ‘가수 양희은’으로서뿐만 아니라 ‘인간 양희은’으로서도 그렇다. 그가 카페 문을 힘차게 밀고 들어와 특유의 낭랑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점심시간이 지나 비교적 한산한 카페가 순간 꽉 찬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나 여기 있다’는 존재감을 확실히 부각시킨 그는 무대 위에서 노래하듯 말 한마디 한마디에 운율을 실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음악은 삶의 고민 풀어내는 통로
올 가을 그는 콘서트를 연다. ‘느리게 걷기’라는 제목이 말해주듯 공연장을 찾는 중장년층 관객이 잠시나마 여유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될 터다. 지금껏 잰 걸음으로 앞만 보고 걸어왔다면 이제는 느린 걸음으로 뒤도 돌아보고, 옆도 살피면서 살아도 좋을 나이니까.
“해마다 하는 공연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느리게 걷기’라는 제목에 맞는 다양한 레퍼토리로 관객들이 잠시 쉬면서 한숨 돌릴 수 있는 그런 무대를 만들 생각이에요. 지난 여름도 지겹게 안 갈 것 같더니만 순리대로 가을이 찾아오고, 바람도 기막혀지니까요.”
그는 아직도 무대에 설 때마다 도망치고 싶을 만큼 두려움을 느낀다. 가요계 대모에게 무대 공포증이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의외다. 이러한 무대공포증이 시작된 건 미국에서 7년 만에 돌아와 첫 콘서트를 열었던 마흔 살 무렵부터다. 그래도 그 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어 다행이다.
그가 공연에서 노래 못잖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관객과의 대화다. 나이 들면서 생기는 여러 가지 고민을 노래로 풀어내고, 노래로 풀기 어려우면 이야기로 풀어낸다. 더욱이 그는 라디오 DJ를 하면서 하루에 2백50~3백 통의 사연을 전국, 전 세계에서 받기 때문에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많이 접한다. 거기서 느끼고 배운 것들을 관객과 함께 나누면서 소통한다.
“중장년층은 주역에서 비켜나 있기 때문에 즐길거리가 그리 많지 않아요. 제가 멍석을 깔고 관객에게 오라고 청하는 거죠. 경기가 어려운 와중에 자식이 티켓을 사줬다는 게 전혀 아깝지 않을 그런 무대를 만들 거예요. 자만이 아닌 게, 저는 매번 공연이 끝나면 관객을 환송하거든요. 그들의 얼굴을 보면 ‘좋다, 싫다’ ‘실패다, 성공이다’가 확인되니까요.”
자신감 넘치는 중년! 양희은과의 데이트

그는 공연 때마다 설문조사를 해왔다. 왜, 누구와 함께, 어디서 소식을 듣고 왔는지, 어느 부분이 좋았는지, 아쉬운 곡, 좋았던 곡은 뭐였는지 등을 묻는 것이다. 거기서 얻은 자료를 다음 공연에 반영하곤 한다. 그의 공연의 주 관객층은 54~58년생 여성이다. 최근에는 남성과 젊은 관객도 조금씩 늘고 있다.
매일 아침마다 MBC 라디오 ‘여성시대’를 통해 이 시대 아줌마들의 애환을 어루만지며 함께 울고 웃는 양희은. 그는 얼마 전 MBC가 10년 이상 라디오를 진행한 사람에게 주는 ‘브론즈 마우스상’을 수상했다.
“단일 프로그램에서 만 10년이 넘었다 뿐이지, 사실 라디오 DJ를 한 건 훨씬 오래됐어요. 그래도 어떻게 생각하면 대단하다 싶기도 해요. 물론 저보다 20년이나 더한 이종환 선생님도 계시지만. 그 세월을 누가 따라갈 수 있겠어요. 성대모사하듯이 흉내 낼 수 없는 거예요.”
그는 지난 10년간 한 번의 결석과 두 번의 지각을 했다. 이를 제외하고는 단 한 번도 마이크를 놓아본 적이 없다. 지난해 결석을 했던 이유도 예상치 못한 폭설 때문이었다. 새벽 5시에 집을 나서서 방송국에 도착한 시간이 11시 40분. 라디오 부스의 빨간 온에어 전등은 이미 꺼져 있었다.
그동안 ‘여성시대’ 맡아 김승현, 전유성, 송승환 그리고 현재의 강석우에 이르기까지 4명의 남성 진행자와 호흡을 맞춰왔다. 이전 프로그램에서는 혼자서만 진행해오다 상대와 주거니받거니 더블 MC를 하려니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다.
“부부라면 이혼이라도 하지. 이거는 갈라설 수조차 없어요. 무조건 맞춰가야 해요. 피겨스케이팅 복식조 같아요. 여자가 공중에서 세 바퀴 돌고 딱 내려오면 남자가 받아주는 거죠. 서로 믿음이 있어야 해요. 강석우씨와 호흡을 맞춘 지는 2년 조금 넘었는데, 처음 6개월 정도는 서로 까칠했어요. 둘 다 ‘극소심 A형’으로 성격이 비슷해요. 낯가림이 심해서 어글어글 못 다가가요. 지금은 아주 잘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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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취자 사연에 같이 울고 웃으며 인생 배우는 라디오
‘여성시대’는 세상을 가르쳐준 스승과 같다. 가슴으로 써 내린 사연 하나하나가 그 어떤 인생론보다 강한 울림을 준다. ‘신춘편지쇼’에서 심사를 맡아준 성석제·박완서 작가도 의견을 같이했다. 프로그램 앞으로 보내지는 편지는 가슴 저린 사연이 대부분이다. 물론 일상의 소소한 기쁨을 전하는 이도 있지만, 가족 때문에, 사랑 때문에, 가난 때문에, 병 때문에 고통 받고 괴로워하는 이가 더 많다. 삶의 고단함과 지난함이 배어 있는 그들의 사연을 읽는 DJ와 그것을 듣는 청취자 모두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양희은은 이러한 묵직한 사연이 갱년기와 겹치면서 처음 5년 동안은 힘들었다.
“빨리 털어내지 못하는 성격이에요. 사연의 무게가 묵직하면 방송 끝나고 나서도 ‘하하하’ 못해요. 오래된 체증처럼 징건하게 얹혀 있어요. 그래서 굉장히 괴로웠어요. 도대체 내가 사연을 한 번 읽어주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 그러다 5년쯤 지나서 깨닫게 됐어요. 그 사람한테는 도움이 못 돼도 차마 그 글조차 쓰지 못하는 어느 누군가한테는 다를 수 있겠다. ‘어머 저건 내 얘기잖아’ 공감하면서 자기 객관화가 가능하겠구나 싶었어요. 그렇게 우울한 마음에서 벗어나게 됐던 것 같아요.”
라디오는 그 어떤 것보다 솔직한 매체다. TV는 80% 이상을 시선으로 뺏기지만 라디오는 그렇지 않다. 청취자가 집중하면서 듣기 때문에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으면 금방 들통이 난다. 그래서 살아온 것과 말하는 것이 어긋날 경우엔 ‘어제는 이렇게 얘기하더니 오늘은 딴 소리한다’는 말을 듣게 된다. 방송에서 최대한 솔직하려고 한다. 자신이 사연속 주인공의 처지가 돼서 그들과 함께 슬퍼하고 기뻐하며 울고 웃는다. 그 바탕엔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인간 양희은’의 따스한 시선이 깔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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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프로에서 재치 있는 입담꾼으로 변신한 보통 아줌마
국민의 애창가요로 자리 잡은 ‘아침이슬’은 양희은의 이름을 대신한다. 그 역시 그 노래를 38년째 부르게 될지 전혀 예상치 못했다.
“‘아침이슬’에 담긴 순수한 에너지가 많은 청년의 가슴을 두드리게 한 이유라 생각해요. 노래 안에 사심이 없으면 오래가요. 1년 만에 죽는 노래가 있고, 40년까지 가는 노래가 있어요. ‘야, 이건 좀 히트하면 좋겠다’ 하는 노래는 오래가지 못해요.”
기교와 사운드가 아닌 진심으로 사람들과 만나온 그에게 악기는 딱 하나다. 바로 목소리다. 20대의 카랑카랑하던 목소리는 이제 더욱 포근하고 깊어졌다. 힘은 없지만 기가 넘친다.
“성대는 가장 빨리 늙는 기관이에요. 많은 사람이 한결같다고 말하는 건 나에 대한 첫인상을 그대로 간직해주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아요. 20대 목소리를 50대에 내면 그것도 징그러운 거예요. 순리대로 나이를 먹어야죠.”
그의 목소리는 무대에서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 내레이션으로도 자주 만날 수 있다. 스스로 ‘다큐 광’이라 할 정도로 섭외가 들어오면 발 벗고 반긴다. 남보다 먼저 볼 수 있다는 게 그 소박한 이유다. 최근에는 KBS ‘천하무적 야구단’의 내레이션도 맡고 있다. 또 ‘세 바퀴’ ‘시골 밥상’ 등 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재치 있는 입담을 과시하고 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이 그를 만나면 개그맨을 본 듯 많이 웃는다. 학창시절부터 ‘웃기는 애’로 통했다는 양희은.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은 ‘무섭다’, 잘 아는 사람은 ‘우습다’ 그런다. 진중하게 노래 부르는 모습이나 쩌렁한 목소리 때문에 오해하는 사람도 많지만 실제 그에겐 여성스러운 면이 훨씬 많다. 맛깔스런 요리 솜씨도 그중 하나다.
“우리 나이 때면 기본이죠. 밖에서 고달프고 힘들수록 꼭 요리를 해 먹어야 해요. 제가 해서 먹고 기운 차려야지 그렇지 않으면 뒤집어져요. 맨홀 뚜껑이 폭발하는 거지. 영혼의 목욕 같은 거예요. 저 역시 보통 주부와 똑같이 살아요. 일 없으면 밖에도 잘 안 나와요. 외식도 잘 안 하고, 맛도 없고요. 우리 신랑한테 요리학원을 권하고 있어요. ‘내가 지금까지 해 먹였으니 이젠 늘그막에 당신이 나를 해 먹이라’고요.”
87년 결혼해 그간 곡절도 많았지만 20년 넘게 살 비비며 살고 있는 부부. 39년 만에 조우한 대학 동창이 그에게 건넨 첫마디가 ‘너 이혼 안 했니? 나는 이혼했어. 나는 너 이혼할 줄 알았어’였다. 그는 ‘나도 그럴 줄 알았어’라고 응수했다. 그 한마디가 결혼에 대한 양희은의 변이다.
요즘 그의 부부는 전장 같은 집에서 살고 있다. 집을 지은지 12년 만에 수리 중이기 때문이다. 남편이 설계해서 여자가 쓰기에 불편한 점이 한 둘이 아니었다. 그걸 12년 참고 살다 이제야 고친다.
“아름답게 나이 듦에 대하여 얼마나 골똘히 생각한다고요. 아름답게까지는 아니고 잘 늙어가기. 그거야말로 영원한 명제 아니겠어요. 거침없는 노년이 되고 싶어요. 미뤄뒀던 거, 하고 싶은 거 하려 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그건 거침이 있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거침없이 살고 싶다는 것은 몸과 마음이 건강한 노년이 되고 싶다는 거예요.”
사는 것과 노래하는 것이 크게 다르지 않는 가수가 되고 싶다는 양희은. 이번 공연 역시 그런 진솔함이 느껴지는 무대로 만들 생각이다. 늘 앞만 보고 달려왔기에, 이제는 격하고 힘든 게 싫다. 그러한 삶의 자세가 콘서트 ‘느리게 걷기’ 속에 투영될 것이다.
이번 공연은 10월28~31일과 11월6~7일 각각 서울 코엑스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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