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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Star's Cafe

가수 데뷔 준비하는 트랜스젠더 이시연

글 이설 기자 | 사진 홍중식 기자 || ■ 헤어&메이크업 제니하우스

입력 2009.10.22 18:04:00

“제가 여자로 살고 있다는 게 와 닿았어요.” 보통 스캔들 주인공들은 걱정이나 억울함을 토로한다. 하지만 트랜스젠더 연예인 이시연은 같은 소속사 가수와 처음으로 열애설에 휩싸인 기분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는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더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살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가수 데뷔 준비하는 트랜스젠더 이시연


“저 괜찮아요?”
그녀는 여성스러웠다. 사진을 찍기 전 몇 번이고 거울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리까지 찰랑이는 긴 머리카락을 세심히 매만지며 웨이브를 살리려 애썼다. “무릎 상처는 사진에 나오면 안 된다”고 신신당부하기도 했다.
모델이자 배우인 이시연(29)은 요즘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감사하다. 그의 2년 전 이름은 이대학. 남자로 연예 활동을 하던 중 2007년 성전환수술을 통해 생물학적 여성이 됐고, 이듬해 법적절차를 거쳐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에 ‘2’를 달았다. 여자로 살기 시작한 지 2년. 그는 비로소 자신에 대한 정리를 끝내고 여자의 삶을 실감하고 있다.

1st Story: “왜 여자가 됐대?”
“연예 활동을 하던 중 수술을 받은 터라 부담이 컸어요. ‘사람들이 어떻게 볼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고민으로 연예계를 떠날 생각이었죠. 하지만 많은 분의 도움으로 견뎌냈고 계속 꿈꿀 수 있었습니다.”
성적소수자에 대한 인식은 많이 개선됐다.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당사자들의 속내는 여전히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는 영역으로 남아 있다. 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가 어떻게 다른지, 왜 위험한 수술을 받으면서까지 성별을 바꾸려는지 이해하는 이는 드물다. 트랜스젠더는 ‘몸과 영혼의 불일치’를 견디다 못해 몸을 바꾼 이들이다. 자신은 여자가 분명한데 남자의 몸을 타고났거나 내면은 남자인데 여자의 몸을 가졌을 때의 고통은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모를 부분이다. 이들은 영화 ‘천하장사 마돈나’의 주인공처럼 엄마 립스틱을 훔쳐 바르거나 몰래 하이힐을 신는 과정을 거치며 성 정체성을 깨달아 간다. 이시연도 그랬다.
가수 데뷔 준비하는 트랜스젠더 이시연

“초등학교 때부터 남중·남고를 다니는 내내 여성스러운 아이로 통했어요. 스스로가 이상하다고 처음 느낀 건 중학교 때였어요. 친구들끼리 여자 누드사진을 돌려보는데, 저는 사진을 봐도 아무 느낌이 없었어요. 대부분 그때쯤 깨닫는 것 같아요.”
장난감 자동차보다 인형을 좋아하고 여자아이들이 보는 패션잡지에 열광하던 아이. 그저 친구들과 취향이 조금 다를 뿐 남자라는 사실을 의심한 적은 없었다. 그러나 그안의 여성은 사춘기를 지나며 그를 지배했다. 혼란스러웠고 두려웠지만 누구에게도 내색하지 않았다.
“가족은 물론 가까운 친구에게도 털어놓을 자신이 없었어요. 고민 차원이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으니까요. 성격도 내성적이라 수술 전까지 속으로만 울었어요. 돌이켜보면 사춘기 시절의 저는 슬프지만 긍정적인 아이였어요.”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에는 가정형편이 기울어 고민할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학비는 물론 쌀까지 학교에서 타 먹어야 했다. 대학 진학이 사치일 만큼 형편이 어려워지자 그는 희망을 잃었다. 빨리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희망과 함께 손 놓았던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것은 고3. 무리를 해서라도 대학에 보내주겠다는 부모의 말에 필사적으로 노력, 대전대 패션디자인과에 합격했다.

2nd Story:‘여자보다 더 예쁜 남자모델 1호’
어린 시절부터 지금껏 그의 최대 관심사는 패션이다. 여학생들이 삼삼오오 머리를 맞대고 패션잡지를 볼 때 그는 시커먼 친구들 틈에서 홀로 패션에 탐닉했다. 지금도 한 달에 10권 이상 패션관련 책을 챙겨본다. 옷, 모델, 디자인, 패션사업 모두에 애정이 깊은 그가 패션디자인과를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연예계 생활의 시작인 모델의 꿈을 꾼 것도 이즈음이다.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는데 어느 순간 옷이 아닌 모델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옷을 입고 자신을 다양하게 표현하는 데 매력을 느꼈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생각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꼭 모델을 하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어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학교를 1년 마친 뒤 서울로 올라왔죠.”
열정 하나만 믿고 낯선 서울땅에 호기롭게 입성했다. 모델은 나이가 어릴수록 유리하기에 주저할 시간이 없었다. 지름길도 몰랐다. 한 손에는 지하철 노선도를 다른 한 손에는 모델 에이전시 전화번호를 쥐고 무작정 이력서를 내밀었다. 1년이 지나도 성과가 없자 보랏빛 희망은 점차 먹빛으로 변해갔다.
“지금은 스키니 모델이 대세이지만 당시만 해도 남성모델은 건장해야 했어요. 키도 180cm로 작은 편이고 몸도 왜소한지라 가는 곳마다 퇴짜를 맞았죠. 간혹 남성복 패션쇼에 합격해도 옷이 안 맞으니 일을 할 수 없었어요.”
심신이 지쳐 짐을 쌀 생각을 하던 중 기회가 왔다. 여성과 남성의 구분이 없는 중성적인 콘셉트의 무대가 열린 것이다. 예쁜 골격과 곱상한 외모의 그는 남성복과 여성복 모두를 훌륭히 소화했다. 마지막 의상은 윗옷 없이 남자 정장바지만 입는 스타일. 그가 등장하자 여기저기서 “여자가 가슴이 하나도 없다”고 수군거렸다. 그때부터 그는 여자보다 예쁜 남자모델로 인기를 구가하게 된다.
“운이 좋았어요. 그 무대에서 주목받은 뒤부터 일이 하나 둘 들어왔어요. 2년 정도 여성복 무대에 섰는데, 그런 모델은 제가 유일했죠. 그러면서 영화 ‘두사부일체’에도 캐스팅됐고요.”

가수 데뷔 준비하는 트랜스젠더 이시연

3rd Story:“여자가 됐다고 설거지만 하면서 살겠니?”
그는 연예계에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영화 ‘색즉시공’의 1편에는 남자로, 2편에는 여자로 출연한 것. 그가 수술을 끝내자마자 바로 ‘색즉시공2’에 출연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영화 마케팅 아니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조용히 수술을 마친 뒤 ‘색즉시공2’의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1편에서 신이의 여성스러운 남자친구 대학이가 2편에서는 근육질 남성으로 돌아온다는 내용이었죠. ‘색즉시공’의 윤제균 감독님이 이정재씨 사진을 주며 ‘3개월 동안 몸을 만들라’고 주문하더군요. 차마 그 자리에서 성전환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던 중 기사가 터졌죠.”
이런저런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하던 시점에 수술 사실이 알려지자 그는 반사적으로 숨어버렸다. 세상 모두가 자신을 욕하는 것 같았다. 연예인에 대한 꿈도 접었다. 진심으로 좋아하고 즐기는 일이지만 자신은 물론 가족들이 받을 상처가 걱정됐다. 그러던 중 윤제균 감독이 그를 호출했다.
“‘수술한 게 사실이냐’라고 묻는 윤 감독님께 영화 출연을 못하게 돼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더니 ‘타고난 끼가 있는데 여자가 됐다고 설거지만 하고 살겠느냐. 이왕 수술한 거 당당하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저를 배려해 여자로 역할도 바꿔주셨죠. 거기에 힘을 얻어 두려웠지만 해보기로 했어요. 촬영장에 처음 나갔을 때 사람들은 놀라는 한편 격려해줬죠.”
수술을 끝내자마자 정신없이 영화를 찍느라 자신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다. 27년을 남자로 살았는데 여자의 몸으로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완전한 여자가 될 수는 없었다. 트랜스젠더라는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했다.
그 과정은 쉽지 않았다. ‘쟤 이대학 아니야’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웃어넘길 수 없었고, 그런 종류의 관심이 반복되자 사람을 피하기 시작했다. 자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친구들에 대한 서운함도 컸다. 무엇보다 가족에 대한 미안함에 마음이 무거웠다.
“수술을 앞두고 속앓이를 하다가 어머니께 저의 성 정체성과 수술계획을 말씀드렸더니 ‘몰랐다. 미안하다’며 손을 잡아주셨어요. 군대에 있던 동생은 ‘형이 행복하면 그 길에 믿음을 가지라’고 편지를 보냈고요. 보수적인 편인 아버지와는 아직 서먹한 감정이지만 차차 좋아질 거라 믿어요.”



4st Story: “슬픈 30년, 아듀!”
그는 올해 말 가수로 데뷔할 계획이다. 공백기간 동안 새 소속사에 둥지를 틀고 노래, 춤, 악기를 배우며 바쁘게 지냈다. 모델에서 배우로, 가수로 보폭을 넓혀가는 그는 하고 싶은 게 참 많다. 진정한 아티스트로 평가받는 것이 최종 목표다.
“오랫동안 가수에 관심을 가졌지만 방법을 몰랐어요. 연기는 모델을 하다가 기회가 와서 자연히 하게 됐는데 가수는 먼 세상 일 같았거든요. 음악은 늘 저의 가장 친한 친구였어요. 기분이 가라앉으면 록을 들으며 미친 듯 웃고, 가슴이 답답하면 슬픈 노래를 들으며 엉엉 울었죠. 가수를 준비하는 지금 정말 행복해요.”
준비를 하면서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체력이다. 성전환 수술은 위험하고 힘들기로 손꼽히는 수술. 그는 수술로 여자의 몸을 얻은 대신 건강을 잃었다.
“수술은 다시 하라면 못 할 정도로 힘들었어요. 수술 받는 내내 먹지도 못하고, 수술이 끝난 뒤에도 한참을 누워 지냈어요. 수술을 받은 뒤에는 몸이 50대가 돼버려 감기에 걸리면 두어 달을 앓고 조금만 뛰어도 헉헉거려요.”
지친 심신을 위로해준 건 역시 어머니다. 수술부터 몸조리까지 어머니는 “내 딸”이라며 그를 보듬었다. 잊을 수 없는 순간은 어머니와 단둘이 목욕탕을 갔을 때. 말없이 서로 등만 밀었지만 이심전심 뭉클함을 느꼈다. 그렇게 어머니와, 동생과, 친구와 차례로 교통하며 지난해까지 지우고 싶은 존재였던 이대학에 대한 감정도 바뀌었다.
“이대학은 저 자신인 한편 스스로를 괴롭히는 존재였어요. 하지만 혼자 차분히 생각을 정리하니 고마웠어요. 그 아이가 저 때문에 힘들었지만 버텨내줬고, 그래서 성숙할 수 있었으니까요. 또 걔도 괜찮았거든요(웃음). 지난 30년간 울었으니 이젠 맘껏 웃고 사랑하며 살 거예요.”

여성동아 2009년 10월 55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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