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인이 사랑하는 ‘스타’ 자녀를 둔 부모는 얼마나 뿌듯할까. 팬들의 환호성만 들어도 가슴이 벅차오르고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누구의 부모’라며 자랑하고 싶을 것 같다. 하지만 높은 유명세만큼이나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을 듯하다. 혹여나 스캔들에 휘말리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잠잘 시간도 없이 바쁘게 움직이는 자식을 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먼저 들 터. ‘동방신기’ 멤버 영웅재중의 친어머니 오세영씨(48)는 무대 위에서 춤추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려와 TV를 잘 보지 않는다고 한다.
하얀 피부와 쌍꺼풀 짙은 또렷한 눈매, 살짝 올라간 입모양까지, 영웅재중은 엄마 오씨를 참 많이 닮았다. 아들이 엄마를 닮는 건 당연한 일이건만, 지난 15년 동안 두 사람은 서로의 생김새가 얼마나 비슷한지 모르고 살았다. 오씨는 “성격도 똑같다”며 미소를 지었다.
영웅재중에게는 낳아준 엄마와 길러준 엄마가 따로 있다. 그가 세 살 되던 해 지금의 양부모에게로 입양된 것. 이 사실은 지난 2005년 오씨에게 등기서류 한 통이 배달돼 오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오씨와 영웅재중의 재회가 이뤄지고 1년 뒤에 벌어진 일이다. 서류에는 ‘병역법위반피의자진술서’라는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
영웅재중이 입양 당시 양자가 아닌 친자로 양부모 호적에 오르면서 입양 전 이름인 한재준과 입양 후 이름인 김재중 두 이름을 지녀 이중호적 상태였던 것. 따라서 태어날 때 이름인 한재준은 입영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구속된다는 통보였다. 오씨는 한 쪽의 호적을 정리하기 위해 ‘친생자부존재관계소’를 제기했고 그러는 가운데 ‘영웅재중의 친부모가 친자확인소송을 제기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이로 인해 오씨와 양부모 측의 법정공방은 많은 오해를 낳았다.
지난 1월 영웅재중과 함께 촬영한 가족사진.
결국 이 사건은 영웅재중이 “낳아주신 부모님이 따로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양쪽 부모님 모두에게 효도하며 살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매듭지어졌다. 하지만 오씨는 네티즌으로부터 적잖은 비난을 받았다. ‘자식을 버렸으면서 영웅재중이 유명해지니까 돈 때문에 아들을 찾았다’는 내용의 비난이었다. 이에 대해 오씨는 “그저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자신은 아들에게 돈 한 푼 받은 적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라는 것.
“그동안 온갖 루머와 악플에 시달렸어요. 일본 팬들에게까지 소문이 퍼졌는데, 제가 재준이한테 7억원을 받았다느니, 아이가 돈이 없어 택시도 못 타고 다닌다느니 하는 말도 안 되는 루머들이죠. 반대로 재준이를 사랑하는 마음에 저한테까지 호의를 베푸는 팬들도 있어요. 저희 집에도 자주 놀러오는 친구들인데, 제가 밥이라도 한 끼 챙겨주려고 하지 어떤 도움도 받지 않아요. 며칠 전에는 재준이 사진을 뽑아서 보내준다고 하기에 그냥 파일로 전송해달라고 했어요. 사진 뽑고 앨범 만드는 데도 돈이 들잖아요.”
현재 오씨는 전세 3천만원, 지은 지 28년 된 빌라에 살고 있다. 영웅재중이 처음 그곳을 방문하고 했던 첫 마디가 “엄마 도와드릴까요?”였지만 그는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아들 입양 보내고 죄책감에 자살 시도
오씨가 아들과 헤어져 살게 된 데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오씨는 “‘자식 버린 어미’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겠지만, 그때는 참 살기 힘들었다”며 그간의 삶의 여정을 털어놓았다. 영웅재중이 태어나고 얼마 안 돼 철도공무원이던 남편은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에 손을 댔다가 전 재산을 사기당했다고 한다. 나중에는 온가족이 오갈 데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결국 오씨는 89년 이혼한 뒤 큰 딸과 영웅재중을 키웠다.
“식당에서 서빙을 했는데, 아침 10시에 나가면 밤 11시가 다 돼야 집에 들어왔어요. 그러느라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죠. 요즘처럼 어린이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 밥도 식당에서 얻어온 음식으로 먹이는 형편이었어요. 그러던 중에 알고 지내던 아주머니가 아이들 고생시키느니 차라리 부잣집에 재준이를 보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했어요. 친정 오빠네가 딸만 여덟인데, 재준이를 보내면 귀하게 잘 키워줄 거라면서요. 그때는 제 속으로 낳은 아이를 남의 집에 보낸다는 것이 얼마나 땅을 치고 후회할 일인지 미처 몰랐죠.”
아이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때부터 오씨는 악몽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길거리에서 누가 “엄마” 하고 부르기만 해도 뒤를 돌아보고, 자려고 누워도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고 한다. 정신과에 다니며 치료를 받을 정도로 죄책감에 시달린 그는 급기야 대전에 있는 한 바위산에서 약을 먹고 자살기도를 했다. 하지만 “질긴 목숨은 뜻대로 끊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그는 다시 아이를 데려오기로 마음먹고 충남 공주에 있는 양부모의 집을 찾아갔다.
영웅재중은 엄마 오세영씨의 얼굴을 똑 닮았다.
“아이를 다시 데리고 가겠다고 했지만 양어머니는 ‘나중에 자라면 만나게 해줄 테니, 당분간은 아이를 만나지 말라’고 저를 설득했어요. 그때부터 먼발치에서만 아이를 보며 살았어요. 학교 담임선생님을 만나 간간이 아이 생활하는 얘기도 들었고요. 그런데 아이가 고등학교에 갈 나이가 됐는데, 학적 파악이 안 되는 거예요. 아이 행적을 수소문하던 끝에 재준이가 동방신기 멤버가 됐다는 걸 알았죠.”
영웅재중은 중학교 2학년 때 ‘SM 얼짱선발대회’에서 1위를 수상하며 동방신기 멤버로 합류했다. 아들의 존재를 알고도 섣불리 다가갈 수 없었던 오씨는 2004년 경기도 시화에 있는 한 대형마트에 동방신기 CD를 사러 갔다가 영웅재중의 연락처를 알게 됐다고 한다.
“나이 든 아줌마가 동방신기 CD를 찾으니까 여고생들이 먼저 ‘동방신기 좋아하냐’며 묻더라고요. 조심스럽게 ‘동방신기 멤버 중에 조카가 있어요’ 했더니 한 여학생이 깜짝 놀라면서 ‘저 영웅재중 오빠랑 잘 알아요’ 하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재준이 공주 쪽 누나가 시화에서 슈퍼마켓을 했는데, 그 누나랑 잘 알아서 재준이 전화번호도 안다는 거예요. 그렇게 우연찮게 아이 전화번호를 알게 됐고, 한참 망설인 끝에 ‘재준이니?’ 하고 문자메시지를 보냈죠. 그랬더니 바로 ‘누구세요?’ 하고 답장이 오더라고요. 자신을 어릴 적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이 없으니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그때 처음 전화통화를 했어요.”
15년 만에 듣는 아들 목소리에 그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전화를 걸기 전 ‘절대 울지 말자’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던 그는 전화를 끊고 나서야 대성통곡하며 그동안 가슴에 쌓여 있던 응어리를 풀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재회는 서울 강남역에 있는 한 식당에서 이뤄졌는데, 그 자리에서 영웅재중은 어떤 원망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동안 살아온 얘기를 들려줬더니 이해를 많이 하더라고요. 오히려 저를 위로해주는 모습이 얼마나 고맙던지…. 어려서부터 아이의 심성이 참 고왔어요. 아이의 그런 속정을 잘 아니까 떨어져 있으면서 더욱 힘들었죠.”
오씨에게는 현재 영웅재중 외에 3명의 아이가 더 있다. 영웅재중의 친누나와, 재혼해서 얻은 두 남매. 92년 재혼했지만 두 번째 결혼생활도 4년 만에 막을 내렸다. 그러는 와중에는 아들의 죽음이라는 고통도 겪었다.
“의료사고였어요. 아이가 세 살 때 장염으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간호사가 주사를 잘못 놓는 바람에 허망하게 아들을 잃었죠. 그 충격으로 전신마비가 왔고, 결혼생활도 유지하기 힘들었어요. 버린 아이에 잃은 아이까지, 그때는 정말 살아갈 희망이 없었어요.”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그는 다섯 번에 걸쳐 자살을 시도했고, 마지막으로 동맥에 칼을 댔을 때는 막내딸이 그 광경을 목격하기도 했다. 현재 고등학교 1학년, 중학교 3학년인 두 아이는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모범생이라고 한다. 직장에 다니는 큰딸은 지난해 사이버대학에 입학해 학업에도 열심이라고.
“제 자식들이지만 그렇게 착할 수가 없어요(웃음). 재준이와도 허물없이 잘 지내요. 셋째는 어려서부터 신부가 되는 게 꿈이라고 하고, 막내딸은 사춘기인데도 속 한번 썩이지 않고 자기 일을 알아서 잘해요. 며칠 전에는 아이가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자기 친구들은 사춘기라 엄마한테 반항하는데, 자기는 그러지 못하겠대요. 자기까지 힘들게 하면 제가 또 나쁜 생각할까봐요. 어린시절 딸에게 아픈 기억을 심어줘 마음이 많이 아파요.”
“아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좋은 일 더 많이 하면서 살 거예요”
자그마한 체구로 온갖 모진 풍파를 견뎌온 오세영씨. 하지만 그는 결코 나약하지 않다. 오히려 여장부 중의 여장부다. 그는 “두 번째 이혼 후 생각을 180도 바꾸고 완전히 딴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고 말했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가세가 기울어 고등학교를 중퇴한 오씨는 아들 영웅재중을 만난 뒤 43세의 나이에 검정고시를 패스, 이후에 대학·대학원에까지 차례로 입학했다. 그는 “오랜만에 만난 아들에게 떳떳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재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이유는 몇 년 전 오랫동안 해온 주택사업이 부도나면서다. 오씨는 이혼 후 화장품 방문판매를 시작으로 보험업 등에 종사하며 남다른 영업실력을 발휘했고 99년부터는 재테크로 눈을 돌려 아파트 분양·경매 등으로 큰돈을 벌었다. 하지만 2003년 야심차게 시작한 전원주택 사업이 부도나면서 40억 가까이 되는 전 재산을 한 번에 날렸다고 한다. 그는 “돈이라는 게 벌 땐 쉽게 벌리는 것 같지만 관리를 잘 못하니까 결국은 다 수포로 돌아가더라”며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이후 다시 보험업을 시작한 그는 지난달 이를 그만두고 현재 치킨 사업을 준비 중이다. 따또치킨 본사 영업이사를 맡고 있는 동시에 경기도 부천에 매장도 오픈했다. 오씨는 사업자금은 영웅재중과 전혀 상관없음을 몇 번이고 강조했다.
오씨는 치킨사업을 시작하면서 본사 측에 한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고 한다. 돈만 벌 게 아니라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기로. 경희사이버대에서 사회복지학을 전공한 그는 이미 20여 년 전부터 봉사단체에 소속돼 꾸준히 독거노인과 결손가정의 아이들을 돌봐왔다.
“봉사활동은 제 생활의 일부라 할 수 있어요. 저 역시 평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기에 작은 도움의 손길이 얼마나 큰 희망이 되는지 잘 알죠. 재준이한테도 자주 하는 말이지만 이번에 새롭게 시작하는 사업이 잘돼서 좋은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외로운 노인과 결손가정의 아이들을 한 가족으로 묶어주는 복지사업을 하는 게 꿈이에요. 사실 아이를 보육원에 맡긴 부모는 죄책감 때문에 아이 얼굴도 보러 가지 못하는데, 노인과 아이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쉼터 같은 곳이 생기면 가정형편상 아이를 키우지 못하는 부모도 수시로 아이를 만나러 가고, 그러면서 가족의 끈을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도 이런 제 꿈을 알고 많이 응원해줘요.”
또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아들과 함께 무대에서 노래 부르는 것. 영웅재중의 춤과 노래 실력은 엄마에게서 물려받은 것으로, 오씨는 최근 서울 용산구민회관에서 열린 ‘트로트가요제’와 케이블채널 M.net ‘슈퍼스타 K’ 오디션에 참가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은 ‘동방신기’ 공연을 보고 싶어도 티켓 살 돈이 없어서 못 보잖아요. 그런 아이들을 위해 무료 공연이 많이 열리면 좋겠어요. 제가 여력이 된다면 그런 자리를 직접 마련하고 싶은 욕심도 있고요. 그때 재준이와 함께 무대 위에서 노래를 부르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웃음).”
인터뷰를 마무리할 무렵 오씨의 휴대전화로 영웅재중 팬으로부터 문자메시지 한 통이 왔다. ‘동방신기’가 일본공연을 마치고 방금 귀국했다는 내용이었다. 아들 소식에 금세 얼굴이 환해진 오씨는 아들에게 문자를 보내겠다며 잠시 양해를 구했다. 몇 마디로는 부족했는지 그는 꽤 오랜 시간 장문의 편지를 써 메시지를 전송했다. 그러고는 그동안 아들과 주고받은 다정한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여줬다.
그에게 “영웅재중이 어떤 아들이 되면 좋겠냐”고 묻자 오씨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명예로운 사람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자식을 향한 모든 엄마의 마음이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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