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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결혼 넉 달 만에 홀로 된 故 조오련 부인 이성란 애끊는 고백

“남편의 죽음이 내 잘못이라는 사람들의 말 견디기 힘들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막막”

글 정혜연 기자 | 사진 박해윤 기자

입력 2009.09.23 14:01:00

세상에 이보다 더 가슴 아플 사람이 또 있을까. 지난 4월, 열네 살 나이차를 극복하고 조오련과 부부의 연을 맺은 이성란씨. 하지만 그는 남편의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넉 달 뒤 또다시 혼자가 됐다. 이씨는 눈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결혼 넉 달 만에 홀로 된 故 조오련 부인 이성란 애끊는  고백


지난 8월4일 전남 해남에서 가슴 아픈 소식이 들려왔다. ‘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이 심장마비로 쓰러졌다는 것. 곧바로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그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향년 59세. 지난해 이맘때 독도 33바퀴 돌기 대장정을 마쳤을 정도로 건강하던 그였기에 충격은 말할 수 없이 컸다.
몇 시간 뒤 그의 아내 이성란씨(45)가 음독자살을 시도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생전에 우울증을 앓던 조오련이 복용해온 수면제를 한꺼번에 삼켰다는 것이다. 이씨의 오빠가 이를 발견해 병원으로 옮기고 신속하게 위세척을 해 다행히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이튿날 저녁, 가족의 부축을 받으며 힘겹게 빈소로 들어선 이씨의 모습은 말이 아니었다. 퉁퉁 부은 얼굴은 눈물로 얼룩져 있었고, 초점을 잃은 눈에는 그 무엇도 들어오지 않는 듯했다. 빈소를 지키던 조오련의 두 아들과 마주하자 그는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갑작스레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세 사람은 부둥켜안고 말을 잇지 못했다.
장례식이 진행되던 날 이씨는 몇 번이고 쓰러졌다. 함께한 날은 짧았지만 정이 깊었음이 느껴졌다. 해남군 국제장례식장에서 발인을 마치고 노제를 치른 후 조오련의 관구는 계곡면 법곡리 자택 뒷산에 마련된 장지에 안장됐다. 남편을 묻고 집으로 내려온 이씨는 “저기 그 사람이 기다리고 있어. 나도 따라갈래”라고 통곡하며 실신하기를 반복해 보는 이의 가슴까지 아리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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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가자는 약속 지키려 수면제 먹어
마감을 앞둔 지난 8월17일 그의 집을 다시 찾았을 때 두 사람이 함께 살던 황토집 정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정리되지 않은 짐이 군데군데 놓여 있었다. 이씨는 낯선 이의 방문에 당황한 듯했지만 이내 자리를 내줬다.
그는 제주도에서 가져온 신혼 살림살이를 정리하던 중이라고 했다. 검은 티셔츠에 하얀 상장 핀을 꽂은 이씨는 여전히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그는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날 아침 8시쯤 올케언니와 뒷산 산책코스로 나갔다가 11시쯤 집으로 돌아왔어요. 들어오니까 현관에 반듯하게 누워계시더라고요. 얼굴에 푸른빛이 도는 걸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요. 바로 119에 신고하고 인공호흡을 여러 차례 했죠. 그런데도 숨을 안 쉬니까 어찌할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구급차가 와서 조치를 했는데 … 이미 늦은 것 같았어요.”
전날까지 건강하던 사람이었기에 이씨의 충격은 더욱 컸다. 그때 생전에 남편이 했던 말이 그의 머리를 스쳐지나갔다. “홀로 지낸 시간이 서로 너무나 길었으니 즐겁게 살다가 갈 때는 한날 한시에 죽어 같이 묻히자”는 것이었다. 이씨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집에 있던 수면제를 한꺼번에 입 안으로 털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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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식장을 떠나는 운구차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 흘리던 이성란씨.


“‘나중에 같이 가자’는 말을 늘 했어요. 지금도 같은 심정이에요. 아침에 일어나면 늘 옆에 누워 있던 사람이 없으니까 제일 먼저 묘소로 올라가요. 그러면 꼭 옆에서 날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이 옆에 내가 누워야 하는데’ 그런 생각이 많이 들어요.”

자살을 시도한 터라 이씨의 가족들은 그를 한시도 내버려두지 않는다고 했다. 전화라도 받지 않으면 바로 아랫집에 사는 오빠가 뛰어 올라온다고. 올케가 그와 함께 살다시피하고 있었다. 그래도 걱정이 되는지 그의 오빠는 이씨의 전남편과 살고 있는 고등학생 딸을 불러와 엄마와 함께 지내게 했다. 적어도 자식과 함께 있으면 죽을 생각은 하지 않을 것 같아서라고 한다.
비보가 전해지던 날, 서울에 있던 이씨의 아들·딸은 어머니도 조오련을 따라 죽은 줄 알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아들은 해남으로 향하던 열차 안에서 TV모니터에 ‘조오련 부인 자살’이라는 자막이 뜨는 걸 보고 급히 집으로 전화했지만 받지 않자 걱정이 더했다고. 아들은 곧 오보라는 사실을 알고 안도했지만 그의 딸은 ‘엄마가 죽으면 같이 죽을 것’이라는 문자를 보낼 정도로 힘들어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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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오련이 세상을 뜬 뒤 10여 일만에 다시 만난 이씨는 여전히 기운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반대하는 가족 설득해 결혼, 꿈만 같았던 신혼생활
두 사람은 올해 초 처음 만나 인연을 맺었다. 서울에 살던 이씨는 오빠가 운영하는 배추절임 공장에 일손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이를 돕기 위해 내려온 터였다. 오빠와 친분이 있는 조오련은 식사 때면 내려와서 함께 밥을 먹곤 했다. 이씨는 그때 챙겨주는 이 없이 홀로 지내는 그의 모습이 쓸쓸해 보였다고 한다.
“남자 혼자 사는 게 안쓰러웠어요. 산속이니까 식사하기가 마땅치 않아서 끼니를 자주 거르더라고요. 가끔 올케가 음식을 해서 올라갈 때면 같이 가곤 했는데 집이 엉망이었어요. 청소해주고, 먹을 것도 챙겨주면서 정이 들었죠. 점잖은 분이었는데 유머감각이 넘쳐서 가끔 던지는 말에 많이 웃었어요. 이런 곳에서 혼자 사실 분이 아니라는 생각에 더욱 챙겨 드리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그러다 같이 살게 됐죠.”
결혼 넉 달 만에 홀로 된 故 조오련 부인 이성란 애끊는  고백

이씨의 가족은 그가 고생할 것이라고 걱정해 결혼을 말렸다고 한다. 반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확신했던 이씨는 “내가 잘할 것”이라며 가족을 설득했다. 조오련도 이씨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그를 데리고 전처의 묘소로 갔다고 한다. 그곳에서 이씨를 소개하며 “나 이 사람하고 결혼해요. 이해해줘요. 그리고 앞으로 잘 살 테니 걱정 말아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기분이 묘했어요. 마음이 아프기도, 서운하기도, 고맙기도 했죠. 혼자 힘들게 사는 모습을 전 부인이 보기 힘들어했을 텐데 앞으로 잘 사는 모습 보여주면 하늘에서도 웃을 거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두 사람은 석 달 정도 함께 살다 지난 4월, 해남의 한 교회에서 가족들을 모아놓고 조촐하게 식을 올렸다. 조오련의 두 아들 성웅·성모씨는 9년 동안 홀로 지내던 아버지를 돌봐줄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에 매우 기뻐했다고. 이씨에게 큰절까지 올리며 깍듯이 ‘어머니’라고 불렀고, 이후에도 늘 고맙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결혼 넉 달 만에 홀로 된 故 조오련 부인 이성란 애끊는  고백

결혼식을 올린 후 두 사람은 곧장 제주도로 내려갔다. 조오련이 대한해협 횡단을 준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씨에게 “우리만큼 신혼여행을 길게 가는 사람도 없을 것”이라며 제주도에서의 생활을 즐거워했다고 한다.
“대한해협 횡단, 독도 33바퀴 도전 전에 이미 와봤기 때문에 자기는 제주도 곳곳을 전부 안다고 했어요. 명소를 한꺼번에 볼 수도 있지만 ‘1년 동안 있을 테니 아껴두고 하나씩 보자’고 하더라고요. 하루 종일 훈련하고 돌아와서 지쳤을 텐데도 심심했을까봐 저부터 신경 써주는 사람이었어요. 그 마음 씀씀이가 참 고마웠어요.”
수영계의 큰 별이었지만 환갑의 나이에 대한해협을 건너는 일은 누가 봐도 무리였다. 곁에서 말렸을 법도 하다. 아니나 다를까 조오련의 각오를 듣고 이씨가 건넨 첫 마디는 ‘괜찮으시겠어요?’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결심은 확고했다. 자신의 계획을 차근히 설명하며 ‘가능하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고 한다.
“내년이면 대한해협 횡단 30주년이라 다시 한 번 도전하고 싶다고 했어요. 본인의 의지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말릴 수가 없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건강관리에 신경 써주는 것밖에 없었어요.”
제주도에서 생활하던 두 사람은 7월 말 해남으로 ‘휴가차’ 돌아왔다. 사람 좋기로 유명한 조오련은 고향에 돌아오자마자 선물을 사들고 양가 어르신을 찾아 인사를 올렸다고 한다. 가족들은 모두 그때까지 조오련의 건강상태가 매우 좋았다고 말했다.
항간에는 조오련이 대한해협 횡단을 후원할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소문도 있었으나 이씨는 사실이 아니라고 했다. 도움을 주기로 한 사람이 나타나 문제가 차차 해결되고 있던 중이었다고 한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도 힘들다고 말했다.
“누군가 ‘왜 죽었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묻더라고요. 제 탓을 하는 것 같았어요. 또 ‘함께 산 날이 얼마 되지도 않는데 왜 수면제를 먹었느냐’며 의아해 하는 것 같기도 해요. 함께 살던 사람이 곁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고통스러운데… . 남의 일이라고 함부로 말하는 게 속상해요. 견디기 힘드네요.”

사람들이 조오련 기억할 수 있도록 생가 잘 보존하고 싶어
인터뷰 중간 중간 이씨는 남편을 그리며 한참 동안 눈물을 흘렸다. 한숨을 내쉬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그의 막막한 심정이 절절하게 느껴졌다. 결혼식 때 예물을 주고받은 게 없어 남편을 추억할 물건이라고는 6년 동안 그가 쓰다가 선물해준 성경책뿐인데 그마저도 없어져 가슴 아프다고 했다.
집 안에는 조오련의 젊은 시절 사진으로 가득했다. 홀로 남은 이씨가 그 사진을 보며 더욱 슬픔에 잠길 것 같았다. 다른 곳으로 가는 편이 나을 것 같았지만 이씨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말했다.
“보고 싶을 때 사진이라도 볼 수 있으니까 좀 나아요. 생전에 이곳을 많이 아꼈어요. 집으로 들어오는 길이 험해서 차가 올라올 수 있도록 포장도 하고, 사람 사는 곳 같이 꽃도 심고 나무도 심고 싶다고 했어요. 그런 일은 제가 할 수 있잖아요. 가끔 멀리서 팬이라며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이 기억할 수 있게 생가를 잘 보존하고 싶어요.”

여성동아 2009년 9월 5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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