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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아 성장과정 & 성공비결

브라이언 오서 코치가 본

글 이설 기자 |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 ■ 자료제공 ‘한 번의 비상을 위한 천 번의 점프’(웅진지식하우스)

입력 2009.09.22 17:01:00

치아 교정기를 낀 동양소녀와 40대 노랑머리 아저씨가 만났다.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 하지만 두 사람은 누구보다 잘 통했다. ‘피겨 사랑’이라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 오서 코치와 김연아의 아름다운 동행기.
김연아 성장과정 & 성공비결


음악을 듣거나 공연을 보면서 가장 흡족한 순간은 마음을 적시는 작품을 만났을 때다. 일상에서 벗어난 기발함과 아름다움은 오감을 설레게 한다. 김연아의 연기를 볼 때도 꼭 그랬다. 섬세하면서 강렬하고 평화로우면서 호전적인 그의 몸짓은 전 국민을 환상의 세계로 초대했다.
‘피겨 퀸’의 신화는 김연아 홀로 이룬 것이 아니다. 그에겐 ‘3인방’으로 불리는 조력자가 있다. 어머니 박미희씨(52)와 브라이언 오서 코치(48), 그리고 데이비드 윌슨 안무가(43)가 그들이다. 특히 브라이언 오서 코치는 김연아를 만든 1등 공신으로 통한다. 그를 만난 2006년부터 김연아가 숨은 끼를 100% 발휘하며 세계적 선수로 발돋움해서다. 최근 오서 코치가 자신과 제자의 이야기를 담은 책 ‘한 번의 비상을 위한 천 번의 점프’를 펴냈다.

‘미스터 트리플 악셀’과 수줍은 한국 소녀의 만남
제자가 ‘국민 요정’에 등극하면서 그도 덩달아 ‘국민 코치’가 됐다. 발 빠른 누리꾼들은 신속하게 오서 코치의 인물 탐구에 들어갔다. 지금은 세계 피겨 퀸의 스승이지만 한때는 그 자신도 피겨 황제였다. 81년부터 88년까지 8연속 캐나다 챔피언이었으며, 올림픽 은메달도 두 번이나 목에 걸었다. 79년 주니어 선수로는 처음으로 트리플 악셀을 연기해 ‘미스터 트리플 악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세월이 흐르고 날렵한 몸매가 푸근해지면서 그는 코치의 길을 생각하게 된다. 그 즈음 한국 꼬마 소녀가 마법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2006년 5월의 일이다.
김연아 성장과정 & 성공비결

“당시 연아는 데이비드 윌슨에게 새 안무 프로그램을 받기 위해 캐나다를 방문했어요. 한데 연아 어머니가 저를 알아보시곤 ‘안무가 완성되는 3주 동안 점프를 가르쳐달라’고 부탁해왔어요. 제 경력은 물론 별명까지 알고 있어서 기꺼운 마음으로 승낙했죠.”
그가 느낀 김연아의 첫인상은 ‘교정기를 낀 수줍은 소녀’. 하지만 빙판에 오르자 그런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어린 소녀의 정확한 기술과 흡인력 있는 연기에 그는 감동했다. 즐거운 3주간의 연습기간이 후딱 지나갔다. 하지만 인연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어머니 박씨가 다른 일정을 모두 취소하면서 연말까지 지도를 부탁했고, 연말에는 정식 코치가 되어줄 것을 요청했다. 뜻밖의 요청에 그는 선뜻 “Yes”라고 답할 수 없었다. 프로 선수생활을 하면서 코치를 병행해왔지만, 누군가의 전담 코치가 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큰 선수로 키우려면 절대적인 시간투자가 필요한데, 저는 그럴 상황이 아니었어요. 무엇보다 스스로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것에 대한 확신도 없었고요. 그런 저에게 연아와 연아 어머니가 확신을 심어줬어요. 끈기 있는 설득에 결국 요청을 받아들였죠.”
코치를 맡겠다는 것은 곧 선수생활 은퇴를 뜻했다. 전담 코치를 하면서 프로선수로 뛸 수는 없었다. 모든 일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지도자 생활을 결심한 지 1주일 만에 한국에서 재능 있는 소녀가 날아왔고, 그의 첫 제자가 됐다. 서로에게 인생의 새 장을 열어준 인연. 그들은 앞날을 향해 힘차게 파이팅을 외쳤다.

김연아 성장과정 & 성공비결

있는 힘껏 가르치는 스승, 스펀지처럼 쏙 흡수하는 제자
“브라이언 오서 선생님은 제게 가장 딱 맞는 스승입니다.”
‘찰떡궁합’은 흔치 않다. 끊임없이 허물을 지적하고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제 간에는 더 그렇다. 그런 의미에서 오서 코치는 스승이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들은 셈이다. 함께한 시간은 3년 남짓이지만 두 사람은 눈빛으로 서로의 심사를 읽을 정도로 잘 통한다. 그들이 처음 만났을 때 김연아는 영어가 유창하지 못했다. 하지만 서로의 성실함과 스케이팅에 대한 열정을 알아보자 자연스레 교감이 싹텄다.
“연아는 제가 가르친 제자 중 가장 뛰어나요. 가르치는 모든 것을 완벽히 배우려 하고 스펀지처럼 흡수하죠. 처음에 말이 통하지 않아 제가 직접 시범을 보여 연아가 더 열심히 따라 했을 수도 있고요. 또 서로 닮은 점이 많아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저도 연아도 완벽주의자에다 승부욕이 강하거든요.”
그가 김연아를 가르치면서 신경 쓴 부분 중 하나는 감정 표현. 음악과 안무를 담당하는 데이비드 윌슨이 이 역할을 맡았다. 윌슨의 눈에 비친 김연아의 첫인상은 ‘깡마르고 심각한 얼굴을 한 소녀’였다. 멋진 스케이팅을 하면서도 표정은 왜 어두울까. 수줍음 때문임을 안 그는 ‘김연아 웃기기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연아의 유일한 단점은 지나치게 연습을 많이 한다는 것인데, 그 때문에 불필요한 긴장을 하기도 해요. 그럴수록 재미난 훈련이 필요한데, 윌슨이 그 역할을 훌륭히 해냈죠. 어떤 상황에서든 그는 연아를 웃겨요. 한 번도 ‘수줍음을 극복하라’고 요구하지 않은 채 말이죠. 단지 음악을 통해 숨겨진 감정을 끌어내고자 했죠. 연아는 가요·팝·클래식·록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음악을 듣거든요.”
두 스승과 스케이팅, 음악, 연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장난치며 김연아는 변해갔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무엇이든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을 덜고 자연스레 스케이팅을 즐겼다. 예전보다 걸음걸이는 당당해졌고 얼굴 표정은 부드러워졌다. ‘시적’이라 환호받는 그의 연기는 이런 감성훈련 속에 탄생한 것이다.
어린 시절을 평범하게 보내지 못한 어른은 정신적인 방황을 하기 쉽다. 또래와 어울려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며 좌충우돌하는 대신 하나의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해야 하고, 그 목표를 이루든 이루지 못하든 성장한 뒤에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 이는 대중스타와 스포츠 스타 모두에게 해당하는 일이다. 둘 다 육체적으로 최고의 기량을 보일 수 있는 나이는 20대 중반까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연아는 스케이팅 스타와 평범한 20세 대학생의 모습을 함께 간직하고 있다.
“3년간 연아는 스케이터로서, 인간으로서 몰라보게 성장했어요. 스케이팅을 통해 자신의 좋은 점을 발전시켜 몇 배나 더 아름다워졌죠. 무엇보다 평범한 여자아이처럼 수다 떨고 멋도 부릴 줄 아는 숙녀로 자라 너무 기뻐요. 연아는 쉴 때 노래방에 가고 인터넷을 하는 등 평범하게 보내요. 가족,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항상 자기 자신으로 있는 법을 터득한 것 같아요.”
타고난 재능도 있지만 김연아는 연습벌레로도 유명하다. 아무리 어려운 안무와 스텝이라도 바꾸거나 포기하는 법이 없다. 기어코 연기할 수 있을 때까지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가장 가까이서 그를 지켜본 오서 코치는 열정의 비결을 “스케이팅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연아는 스케이팅에 필요한 모든 면에서 뛰어나지만, 그중 으뜸은 스케이팅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점이에요. 그는 음악을 스케이팅으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고 즐겨요. 어릴 때부터 해온 혹독한 훈련을 잘 견딘 것도 그 때문이겠죠. 피겨 스케이팅은 한계가 없는 예술이에요. 최고임에도 배움을 멈추지 않는 제자 연아가 자랑스럽습니다.”

여성동아 2009년 9월 5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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