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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 그리고 이혼…시련 이겨낸 키다리아저씨 서수남 희망 노래

“밑바닥 경험하고 다시 일어선 지금이 내 인생의 화양연화”

글 임윤정 기자 | 사진 조영철 기자 || ■ 장소협찬 호텔 리베라 카페 비스타(02-3438-4322)

입력 2009.09.22 10:40:00

서수남의 인생은 밝음과 어둠이 공존한다. 가수로 노래교실 강사로 이름을 드높이던 전반기는 어둠 한 자락 껴들지 않은 눈부신 시절이었다. 반면 58세 나이에 아내가 빌린 사채로 인해 나락을 경험한 후반기는 한 줄기 빛조차 새어들지 않는 암흑의 나날이었다. 인생의 우여곡절을 겪으며 한층 여유로워진 그가 절망 끝 희망을 노래한다. 다 잘될 거라고.
사채, 그리고 이혼…시련 이겨낸  키다리아저씨 서수남 희망 노래

인생의 쓴맛 단맛을 죄다 경험한 서수남(66)의 얼굴은 의외로 편안해 보였다. 먹고사는 일에 온 정신을 쏟으며 아등바등 살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주변에 마음을 쏟는 여유가 생겼다. 마음을 비우면 마음의 자리가 더 넓어지는 법이다. 온화하게 웃고 있는 그의 입 양끝에 세월이 그린 주름이 넉넉하게 걸려 있다. 그 주름을 따라 인생의 희로애락이 굽이친다. 세월을 드러내는 건 얼굴만이 아니다. 그가 부르는 노래에도 지나온 세월이 고스란히 비쳐든다. 최근 발표한 노래 ‘잘~ 될 거야!’는 고통스런 지난날을 훌훌 털어내고 행복한 앞날을 그리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고 하잖아요. 생각은 말이 되고 말은 습관이 되고, 또 습관은 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하기도 해요. 노래도 마찬가지죠. 긍정적인 자세는 자기 자신은 물론 다른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커요. 누군가 “잘될까?” 물었을 때 다소 무책임할진 모르지만 ‘잘될 거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긍정적 의식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해요.”

노후 준비할 나이에 빚더미에 올라앉아 자살까지 생각해
그는 지난 2000년 아내가 사채업자에게 빚을 지고 집을 나가 빚더미에 앉았다. 그로부터 2년 뒤 부재자 신고를 한 아내와 이혼하는 고통을 겪었다. 아내가 노후를 위해 부동산·주식 등에 손을 댄 것이 발단이었다. 장장 6~7년을 비밀에 부친 채 어떻게든 혼자서 만회하려다 보니 손실액은 더 커졌다. 결국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렸고, 그게 눈덩이처럼 불어나 16억원이 됐다. 그는 아내가 집을 나가고 나서야 그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됐다.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된 그에게 남은 거라곤 절망뿐이었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릴 생각만 했어요. 어머니만 안 계셨다면 아마 죽음을 선택했을지도 몰라요. 스물여섯 살에 혼자돼서 평생 아들을 위해 헌신해온 어머니를 두고 갈 수 없었어요. 그건 부모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일이니까요.”
생을 포기하려고 생각했을 때 노모가 해준 말이 있다. “하나님은 바로 된 사람을 절대 버리지 않는다. 자신의 삶이 바르지 못한 걸 스스로 뉘우치면, 언젠간 다시 그를 불러 세워주신다”며 아들을 달래고 보듬었다. 삶의 지혜가 담긴 어머니의 말에 그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도 시원찮을 노년에 찾아온 경제적 위기를 만회하는 것이 어디 쉬울까. ‘쉰여덟이 생의 종착역인가? 여기서 남자답게 목숨을 끊고 생을 마감해야 하나? 살아야 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 숱하게 자문자답하고, 신앙에 의지해 기도하면서 자신에게 닥친 인생 최대의 위기를 극복해나갔다.
그 시절 얘길 꺼낼 때마다 항상 조심스럽다. 그래도 30년 가까이 살 부대끼며 살았던 사람인데, 누워서 침 뱉기가 되는 것 같아서다. 지금껏 소식을 끊고 사는 아내지만 이젠 다 용서했다. 아내의 허물은 곧 자신의 허물이기 때문이다. 다만 아내 때문에 피해 본 사람들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뿐이다.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온 그는 이제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산다. 돈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생각이 얼마나 어리석은지도 알게 됐다. 그러면서 인생을 사는 보람도 새로 깨치게 됐다. 그전에는 자신이 무엇을 위해서, 또 무엇 때문에 살아왔는지 알지 못한 채 무작정 달려오기만 했다. 쓰디쓴 실패가 그의 삶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었다.
서수남은 자신의 인생을 산에 오르는 일로 비유했다. 그동안 정상에 오른다는 일념 하나로 주변의 경치를 살펴볼 겨를이 없었다. 숨을 헐떡이며 힘겹게 정상에 오르고 보니, 미처 보지 못한 산 아래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앞만 보고 달려온 지난날이 얼마나 어리석은지 그제야 깨달았다. 지금까지 ‘나’와 ‘나의 가족’만 보고 살았다면, 이제는 ‘우리’ ‘우리의 이웃’에 눈을 돌리며 살고자 한다. 아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법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그는 절망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이 녹아든 희망 메시지를 전하는 일에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사회복지법인 은평천사원 나눔센터 홍보대사가 돼 2백60명의 어린이와 장애인들의 ‘키다리아저씨’를 자처했다.
“70년대 방송을 통해 몇 번 찾아간 것이 인연이 됐어요. 50년 전 조그만 아동보육원으로 시작해 엄청난 규모의 장애인복지시설단체로 발전했어요. 그동안 외부에서 지원을 받기만 했는데, 이제는 그걸 좀 나눠주자는 생각에서 얼마 전 나눔센터를 개관했대요.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기관이라는 사실에 감동해서 흔쾌히 수락한 거예요.”
그는 그동안 서울 대학로와 인사동 등지에서 지나가는 행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노래를 부르는 무료 공연도 펼쳐 왔다. 이른바 ‘서수남 희망 캠페인’이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상황이지만 자비를 털어 이 같은 무대를 지속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사채, 그리고 이혼…시련 이겨낸  키다리아저씨 서수남 희망 노래

“가수들이 길거리에서 마이크 없이 노래하는 걸 좋아해요? 아니죠. 하지만 이렇게 열악한 환경 속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통해 어렵고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동기 부여를 하는 거죠. 더욱이 방송에서 보여주는 것보다 직접 찾아가 가까이에서 보여주는 게 효과가 커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한다기보다는 제 모습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느끼게끔 하는 거죠.”

돈이나 명예는 물거품… 노래 부를 수 있다는 것 자체에 감사
어느덧 가수로 살아온 지 45년이 훌쩍 넘었다. 무명생활 5년, ‘서수남과 하청일’로 노래한 세월 20년, ‘서수남노래교실’을 열고 솔로로 활동한 지 20년이다. 불운이 닥쳤던 몇 년을 제외하곤 행운이 따라준 인생이었다고 담담히 회고한다.
69년 ‘서수남과 하청일’로 데뷔해 ‘동물농장’ ‘팔도유랑’ ‘수다쟁이’ ‘과수원길’ 등 동요 같은 가요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사랑을 두루두루 받았다. 아직도 키 큰 서수남과 키 작은 하청일이 재잘재잘 숨넘어가며 가사를 읊어대는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 두 사람은 대학 동아리에서 처음 만나 음악이라는 서로의 공통된 관심사로 인해 급속도로 친해졌다. 미8군 무대에서 5년 동안 무명생활을 하다가 문화방송이 개국하면서 하청일과 듀엣을 만들어 본격적인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저희가 서구 음악을 받아들인 1세대잖아요. 미국의 컨트리 음악을 가요와 접목시킨 거죠. 당시는 트롯풍의 노래가 주류여서 약간 이단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좋았어요. 일단 키 큰 사람이 기타 치고, 키 작은 사람이 하모니카 불면서 노래하는 모습이 특이하고 재미있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노래도 어렵지 않고 밝고 경쾌해서 어린이들한테도 인기가 많았어요.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음악을 많이 하다 보니 가수로서의 생명력이 길었던 것 같아요.”
사채, 그리고 이혼…시련 이겨낸  키다리아저씨 서수남 희망 노래

88년 하청일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외톨이’가 됐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서수남음악학원. 솔로 활동을 병행하며 기타와 노래교실을 운영했다. 그러던 중 90년대 노래방 붐과 함께 노래교실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렇게 스타강사로 10년을 군림하면서 돈과 인기를 양손에 거머쥐었다. 그 시절은 서수남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절정기였다. 돈도 벌 만큼 벌어봤고, 인기도 누릴 만큼 누려봤다. 하지만 그것은 한낱 물거품에 지나지 않다는 사실을 지난 경험을 통해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인생이 그를 혹독하게 가르친 것이다.
20년 지기 짝꿍 하청일의 소식이 궁금해 그에게 물었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사업이 어려워져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고 한다. 각자의 일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터라 10년 동안 소식이 끊겼다가 최근에서야 다시 연락이 닿고 있다. 함께한 세월이 20년이고, 함께하지 못한 세월이 또 20년이다. 각자 사는 모양새가 어떻든 간에 한번 만남을 가져야 할 것 같아 연말쯤 찾아가볼 생각이다.
서수남은 가수로 살아오고,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감사한 것만 깨달으면 행복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 누구에게나 슬픔도 있고, 고통도 있다. 힘센 사람이라고 해서 다 건강하고, 돈 많은 사람이라고 해서 다 행복하지 않다. 세상사 사는 건 다 비슷비슷하다. 어디에 기준을 맞추고 사느냐에 따라 삶의 질도 달라질 수 있다.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블로그 운영, 행복은 스스로 만드는 것
남들은 은퇴할 나이에 전국을 다니며 희망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는 서수남. 요즘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방송 출연과 교회나 주부 모임 등에 초청강사로 강연을 하고, 남은 시간은 자신의 인터넷 블로그 ‘마이 라이프’(http://blog.naver.com/suhsoonam) 관리에 쓴다. 2004년 개설한 후 하루 평균 3천 명, 누적 방문자 90만 명을 기록 중인 파워 블로그다. 젊은이들의 전유물로만 알려져 있던 블로그를 60대 중반의 가수가 운영한다고 해서 네티즌들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하지만 내용이 알차지 않았다면 금세 잊혔을 것이다. 여행기, 맛집, 방송활동 이야기 등 그가 겪고 느끼는 일상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다. 특히 ‘서수남 인터뷰’라는 카테고리에는 고두심·전유성 등 주인장이 직접 만나 인터뷰한 다양한 방송계 사람들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방송에 의존하지 않고 제 생각을 맘껏 펼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어요. 하루에 네다섯 시간 정도 할애하는데 사실 상당히 고달픈 일이죠. 하지만 작업하는 동안 얻어지는 쾌감이 있어요. 제가 포스팅하기를 기다리는 네티즌도 많으니까요. 카테고리를 다양하게 개발해서 ‘저 블로그는 한번쯤 들어가봐야 해’ 하는 재밌고 유익한 블로그를 만들어나가고 싶어요.”
가장 화려했던 시절만 생각하며 사는 인생은 비참할 것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서 보람을 찾아서 살면 그 순간이 바로 화양연화다. 열정만큼은 젊은이 못잖게 팔팔한 서수남. 그의 인생은 60부터가 아니라 바로 지금부터다.

여성동아 2009년 9월 54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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