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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view

초심으로 50년 연기한 배우 이순재 인생 이야기

“연기는 완성 없는 예술, 지금도 100% 만족은 없습니다”

글 이설 기자 | 사진 조영철 기자

입력 2009.08.25 09:35:00

연기 외에 그는 봉사, 홍보대사, 인터뷰 등을 마다하지 않았다. 대중과 끊임없이 호흡하며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 그것이 배우의 또 다른 책무이자 당연한 보답이라 생각해서다. 노구의 어깨에는 전혀 힘이 들어가 있지 않았다.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
초심으로 50년 연기한 배우 이순재 인생 이야기

배우로 사는 건 쉽지 않다. 자신과 밀고 당기기의 연속인 ‘연기’와 승부하는 틈틈이 대중적 인지도도 쌓아야 한다. 그래야 연기할 기회가 돌아온다. 배우로서의 생명력을 얻는다. 한평생 그런 배우로 살다 가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원로배우’는 배우 최고의 영광이다. 무대를 떠나지 않았다는 것. 남들과 다른 자존심 외길을 걸었다는 것. 늘어나는 잔주름과 뱃살까지 대중과 함께했다는 것. 이 과정을 거친 ‘원로배우’는 그래서 더 존경스럽다.
배우 이순재(75). 그는 왕성히 활동하는 몇 안 되는 대한민국 원로배우다. 최고상을 받은 배우가 함께 출연한 그에게 헌사를 보내는 것은 이제 익숙한 풍경이 됐다. 직접 스케줄을 관리한다는 그와의 약속장소에 늦지 않게 도착했다. 이미 자리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는 그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서울대 철학과 시절 명배우 연기에 감복해 연극 시작
“두려움이요? 물론 있죠. 작품 시작할 때마다 그런 마음이 조금씩 들어요. 백지에서 그간 연기한 인물과는 다른 캐릭터를 창조해야 하니까요. 연륜이 있고 최선을 다해도 완벽할 순 없어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할 수도 있고, 시청자가 보기에 미흡한 부분이 보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연기경력 50년. 눈 감고 대본을 외우고 귀 닫고 상대배우와 척척 호흡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두렵다고 했다. 설렌다고 했다. 오는 9월부터 촬영하는 ‘거침없이 하이킥2’의 인물설정을 고민하고 있었다. 서울대 연극반 시절 연극 ‘지평선 너머’로 시작해 영화와 드라마로 무대를 넓힌 그는 시간이 지나면서 TV 쪽에 무게를 두고 ‘사랑이 뭐길래’ ‘이산’ ‘거침없이 하이킥’ ‘베토벤 바이러스’ 등으로 시청자를 찾았다. 서울대 철학도가 연기를 시작한 이유. 예술, 오로지 예술적 경지의 연기를 하고 싶다는 열망 때문이었다.
“대학 때 영화에 빠져 지냈어요. 50년대인 당시 별다른 취미거리가 없었으니까. 한번 극장에 들어가 하루 종일 보는 날도 많았어요. 요즘은 할리우드 영화가 대세지만 당시에는 오히려 장르가 다양해 이탈리아·영국·프랑스·일본 예술영화에 매료됐죠. 영국 캐럴 리드 감독의 ‘심야의 탈출’은 개봉관에서 두 번, 재개봉관에서 네 번, 논산훈련소에서 한 번, 총 일곱 번을 보았습니다.”
영화에 대한 사랑은 연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대학 3학년 때 연극반 초대멤버로 연기를 접했다. 외국 명배우들의 대사를 몇 번씩 곱씹으며 영화를 본 탓일까. 처음이었지만 연기가 낯설지만은 않았다. 그간 영화와 나눈 교감이 자연스레 연기에 배어나온 것이다. 정식으로 배울 곳이 없어 연기 교본과 해외 잡지를 어렵사리 구해 독학하던 시절. 그의 젊은 날은 그랬다.
“연극반 친구들과 발성·발음부터 연습했죠. 선천적 자질도 중요하지만 결국 연기도 훈련이에요. 빙판에서 수천 번 쓰러져야 김연아 선수가 되는 것처럼 연습하면 실력이 늘 수밖에요. ‘나’라는 소재로 여러 캐릭터를 연기한다는 것, 내 세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거저 얻을 수 없어요. 김태희씨는 최형인 교수에게 지도를 받는다는데, 부족하면 노력해야 연기자죠. 우리 때는 선배들 앞에서 책읽기를 두세 시간씩 했어요.”

초심으로 50년 연기한 배우 이순재 인생 이야기

“‘사라지는 주인공’이 아닌 ‘진짜 배우’가 많아졌으면…”
배우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결심을 한 건 영국배우 로렌스 올리비에 때문이었다. ‘햄릿’으로 분한 그의 연기를 보며 “아, 저 정도 연기라면 평생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 졸업과 동시에 연극 문을 두드렸으나 만만치 않았다. 그래서 젊은 연극인들과 의기투합해 ‘실험극단’을 세웠다. 고 이낙훈, 고 여운계, 오현경 등이 멤버였다.
“지금이야 인기 직종이 됐지만, 그때만 해도 아무나 건드려도 되는 직종이 거지와 배우였어요. 경제적 수익성도 없고 전도가 약속된 것도 아니었죠. 또 배우들이 생활에 절제가 없어 가정이 파탄 나는 일이 많아, 그렇고 그런 직종으로 각인됐어요. 최근 고 장자연씨 사건으로 안타까웠는데, 50년대에도 권력으로 돈으로 배우들을 유린했죠. 그런데도 선택한 건 연기를 예술로 봤기 때문이에요. 또 처신만 잘하면 당당하고 깨끗한 직종이라고 생각했고요.”
언제부턴가 연예인은 ‘한 방’만 터지면 부와 권력이 넝쿨째 들어오는 직업으로 통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들은 춤이든 외모든 대중에게 어필하는 스타성을 인정받기 위해 애쓴다. 자연히 연기에 대한 열정보다 인기와 부를 위해 연예계에 입문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이순재는 이런 현실을 우려했다. 10년 넘게 강의하는 세종대 연극영화과 대학원 제자들에게 신신당부하는 것도 이 부분이다.
“‘무엇을 목표로 연극영화과에 들어왔느냐. 스타를 원하고 왔느냐, 예술적 욕구로 왔느냐’. 학생들에게 항상 배우가 되려는 목적을 물어요. 거울에 스스로를 비춰 보고 어느 쪽인지를 선택하라고 하죠. 배우는 용모가 멋지고 노래를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연기 모르는 가수나 모델이 인기 있다고 주인공 시키고…. 예술적 의지 없이 내공이 쌓이지 않은 상태로는 40년, 50년 연기를 못 하죠. 70년대부터 얼마나 많은 주인공이 사라졌습니까.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죠. 젊어서 눈에 띄지 않아도 어떤 역이든 소화하는 실력 있는 배우가 되라고 당부합니다.”
그는 배우의 높은 개런티 문제에도 고개를 저었다. 출연료가 폭등한 건 2000년대 이후. 한류열풍 주역이라는 이유로 편당 수천만원씩 주는 출연료가 정상이냐고 반문했다. 최근 일고 있는 출연료 자정 움직임이 반갑기 그지없다고.
그는 지금도 국어사전을 뒤진다. 발성 연습을 한다. 고희가 넘은 나이에도 쉼 없는 연기훈련은 많은 후배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그가 특히 강조하는 부분은 언어. 연기의 기본은 대사이고, 대사의 기본은 발성과 호흡이라고 생각해서다. 언어조차 익히지 못하는 배우에게 척척 주인공을 맡기는 요즘. 그는 그런 후배들을 보면 쓴소리를 아끼지 않는다.
“연기할 때 당연히 인물에 맞는 대사를 해야 해요. 박사라면 전문성·연령·지적수준 모두를 내포한 말투로 연기해야죠. 그 1차 조건이 언어, 즉 말이고요. 또 인물을 설정할 때는 외형부터 잡아야 해요. 한번은 한 연기자가 엘리트 비즈니스맨 역할인데도 모델처럼 차려입어 ‘그건 웨이터 복장’이라고 조언을 한 적이 있어요. 연기는 공동의 작업이에요. 시스템 안에서 자유롭게 의사소통해야 서로 발전하죠. 그래서 알아들을 만한 배우에게만 좋게 이야기해요. 연출자가 미처 그런 부분을 지적하지 못할 때가 있거든요.”
북한 정치범 수용소를 소재로 한 뮤지컬 ‘요덕스토리’에 나오는 함북 회령이 이순재의 고향이다. 그는 사춘기 시절까지 조부모의 손에서 자랐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광복 후에야 부모의 보살핌을 받을 수 있었다. 서울중과 경기고를 잇는 ‘엘리트 코스’는 그의 성정에 큰 영향을 줬다. 특히 그의 완벽주의는 스파르타식으로 ‘최고가 되라’고 훈육하던 중학교 시절에 시작된 것이다.
“막 문을 연 서울중은 늘 ‘일류 학교가 되려면, 일류가 되려면 이 정도로 안 된다’고 가르쳤어요. 겨울이라도 주머니에 손을 넣거나 모자가 비뚤어져도 엄청 혼났죠. 하지만 그 학교 출신이 사회에 나가서 사고 쳤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어요. 지금 열린교육 운운하는데, 교육은 엄격함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는 정작 자녀들의 교육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돈이 되지 않는 직업 탓에 아이들이 어려서부터 늘 밖으로 나돈 탓이다. 한 달에 1주일 집에 머무를까 말까 했다. 그의 두 자녀는 연예계와 전혀 관련 없는 길을 걸었다. 아들은 일반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고 딸은 결혼해 미국에서 주부로 살고 있다. 자녀교육은 물론 가정경제와 그의 옷매무새까지 묵묵히 챙긴 아내는 늘 고마운 존재다.
“명성여고 연극반 연기지도를 맡았는데, 제 처제가 당시 2학년이었어요. 여차저차 언니를 소개시켜줘서 사귀게 됐죠. 제가 생활이 안정적이지 않으니 선뜻 프러포즈도 못하고 망설이던 중 아내가 해외 순방공연을 떠났어요. 한국무용을 전공했거든요. 그런데 다녀와서도 마음이 한결같아 3년 만에 결혼했죠.”

“대중 없이는 배우도 없어, 부르는 곳 어디라도 갈 것”
연예계에서 이혼소식은 유난히 잦다. 한쪽이 연예인인 커플도 마찬가지다. 그는 이혼하는 배우가 많은 이유를 경제적인 조건에서 찾았다. 좋은 감정으로 결혼하지만 욕심이 커져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닥치면 신뢰를 지키지 못한다는 것. 그는 “경제적으로 이용하는 경우도 많고 서로에게 실망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특히 여배우들이 부채 등 경제적으로 이용당하는 일이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부부에 대한 생각을 풀어놓았다.
“결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지만 조건도 중요해요. 아무리 사랑해도 열흘 굶으면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조건보다 중요한 건 됨됨이에요. 악하거나 독하거나 게으른 사람은 피하고 창의적이고 부지런하며 성격이 밝은 사람은 가까이 해야죠. 후자의 사람이라면 어려운 조건을 극복할 수 있거든요. 무엇보다 자녀에 대한 책임을 절감해야죠. 부부 사이는 책임과 신의로 유지해 나가는 것이니까요.”
대중과 적당히 거리를 두는 배우도 많다. 이미지 관리를 위해 그편이 안전하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이순재는 다른 입장을 보였다. 배우는 대중의 호응으로 존재하는 직종이기에 본인을 아낄 필요가 없다는 것. “돈은 못 내도 몸으로 때워 사회에 보답하겠다”는 소탈함. 권위보다 친근함으로 다가오는 원로배우의 지혜가 빛났다.

여성동아 2009년 8월 5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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