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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팽현숙 남편 최양락 기 살리는 내조 재테크 공개!

“남편에게 잔소리 하기 싫어 시작한 사업으로 남부럽지 않은 재산 일구기까지…”

글 정혜연 기자 | 사진 조영철 기자 || ■ 장소협찬 M style

입력 2009.08.24 17:09:00

최양락과 결혼을 하면서 방송을 떠나 궁금증을 자아냈던 팽현숙. 그는 식당·사업 등을 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열심히 살고 있었다. 그가 처음으로 털어놓은 최양락과의 21년 결혼생활 & 현명한 내조법.
팽현숙 남편 최양락 기 살리는 내조 재테크 공개!


올해 초 SBS ‘야심만만2’로 컴백한 최양락(47)은 전성기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덩달아 88년 그와 결혼, 연예계를 떠난 팽현숙(44)의 근황도 궁금해진다. 그러던 중 최근 언론에 팽현숙이 재테크에 크게 성공했다는 기사가 보도됐다. 주택 임대사업용으로 보유한 부동산이 10여 채가 된다는 것.
지난 7월, 팽현숙이 운영하는 경기도 남양주 순댓국집을 찾았을 때 그는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마치 부동산 투기를 한 것처럼 비춰진 기사 내용 때문이었다. 그는 당황했고 최양락도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남편은 언제나 ‘하나 엄마는 할 수 있어’라고 말했어요. 속으로는 불안불안할지언정 한 번도 걱정된다는 말은 않고 응원해줬죠. 저도 그런 소리 들으면 더 신이 나서 즐겁게 일했고요. 연예인은 이미지가 중요한데 부동산 투기꾼처럼 보도되는 바람에 남편이 어찌나 속상해하던지…. 저도 상처를 많이 받았어요.”
그가 일군 결과물은 모두 부단한 노력 덕분에 가능한 것이었다. 결혼 당시만 해도 두 사람의 손에는 아무것도 쥐어져 있지 않았다.
“신혼 초 남편이 방송국에서 받아오는 월급은 얼마 되지 않는데다 그마저도 불규칙했어요. 그래서 제가 사업을 시작했고 시행착오를 많이 겪기는 했지만 저만의 노하우를 쌓게 됐죠. 이 시대를 사는 20, 30대 주부에게 그런 시행착오를 줄이고 성공하는 지름길을 알려주고 싶었는데….”

스물한 살 때 방송국 로비에서 만난 최양락과 결혼
젊은 시절 눈에 띄는 미모로 주목받았던 팽현숙. 그가 개그우먼이 된 건 순전히 최양락 때문이었다. 팽현숙은 스물한 살 때 연예인이던 친구를 만나기 위해 방송국을 찾았다고 한다. 로비에 앉아서 친구를 기다리는데 그의 옆 테이블에서 최양락과 전유성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고.
“개그우먼도 날씬하고 예뻐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그러고 나서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저와 눈이 마주쳤죠. 그러자 제게 다가와 ‘무슨 일로 방송국에 왔냐’고 물었어요. 친구를 만나기로 했다고 하자 갑자기 ‘개그맨이 되면 성공할 것’이라며 도와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전유성까지 나서서 설득했지만 그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한 번도 생각지 않은 길이라 자신이 없었기 때문. 그때 최양락이 그의 이름을 물었고 팽현숙이라는 이름을 들은 그는 어깨를 들썩이며 웃어댔다고. “그 이름이면 됐다”며 자신만 믿고 시험을 보라는 남편에게 이끌려 개그맨이 되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매일 눈물이 쏙 빠질 만큼 혼나면서 개그를 배웠죠. 결국 개그맨 콘테스트에서 장려상을 받고 일을 시작했어요. 저를 이 길에 들어서게 했다는 책임감 때문인지 남편은 그 후로도 작은 코너에 투입시켜주는 등 신경을 많이 써줬죠.”
이후 두 사람은 2년 반동안 KBS ‘유머 일번지’ ‘남 그리고 여’라는 코너를 함께 하며 큰 인기를 끌었다. 코너가 끝날 때쯤 두 사람은 선후배 이상의 관계로 발전해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진지하게 ‘부모님이 널 보고 싶어 하신다’고 말하더라고요. 평소 유난히 절 예뻐하기는 했지만 의외였죠. 알고 봤더니 시부모님이 코너를 함께 하던 절 보시고는 마음에 들어하셨고, 둘이 잘해보라며 하셨더라고요.”
최양락에게 적극적인 애정공세를 받았지만 그는 경제관념이 희박하고 술을 좋아한다는 점 때문에 망설였다고 한다. 그러던 중 한 스포츠 신문에 두 사람의 열애 기사가 보도됐고 최양락은 팽현숙의 부모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진심을 보였다고 한다. 두 사람은 88년 결혼식을 올렸고, 개그맨 커플 1호가 됐다.

팽현숙 남편 최양락 기 살리는 내조 재테크 공개!

“남편이 일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경제권은 전적으로 제가 가졌어요”
결혼 당시 잘나가던 최양락은 겹치기 출연, 야간업소 출연을 절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키며 오로지 방송에만 집중했다. 때문에 수입은 한 달에 1백50만원도 안됐고, 이마저도 술을 좋아하는 탓에 모으지 못했다고. 두 사람은 양가 부모의 도움으로 아파트 전세를 얻어 신접살림을 차렸다.
“1년 동안 남편이 벌어오는 출연료를 저축하면서 알뜰하게 살았어요. 큰돈은 벌지 못해도 절약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이를 낳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죠. 남편은 선후배와의 술자리에서 늘 아이디어를 짰기 때문에 잔소리도 할 수 없었어요. 들어오는 돈은 일정한데 나가는 돈은 점점 늘어만 갔죠. 어쩔 수 없이 제가 사업에 뛰어들었어요.”
경기도 이천이 고향인 그는 첫 사업 아이템으로 도자기를 선택했다. 그 계통에 밝은 지인이 있었고 그에게도 생소한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고. 하지만 1년이 지날 때까지 손해가 계속되자 가게를 접었다고 한다. 그때 그는 단순한 호감에 이끌려 장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이후로 개그우먼이 되기 전 패션모델로 활동한 경험을 살려 옷가게를 했어요. 몇 년 뒤에는 음식 솜씨를 살려 레스토랑을 했고요. 결국 음식점이 제일 적성에 잘 맞는다는 판단이 섰죠.”
그 사이 남편은 급격하게 변하는 개그계에 적응하지 못하고 후배들에게 밀려났다. PD에게 프로그램 하차를 종용받은 그의 낙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남편은 한국을 떠나고 싶어 했고, 그 마음을 헤아린 팽현숙은 순순히 그의 뜻에 따랐다.
“그동안 번 돈을 다 모아서 호주로 갔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집을 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신분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단 선불로 1년치 렌트비를 다 내고서야 겨우 집을 구할 수 있었죠. 하는 일 없이 지내긴 했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의 부부는 호주에서 머무르며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다. 여유롭게 살아가는 호주 사람들을 보면서 인생을 즐기는 법도 배웠다. 하지만 한국에서 가져간 돈은 금방 바닥을 드러냈고 생계에 어려움이 닥치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싶었던 팽현숙은 먼저 남편에게 돌아가자는 말을 꺼냈다.
“남편 얼굴을 보니까 한국을 떠나기 전 드리워져 있던 수심의 그림자가 말끔히 걷혀 있더라고요. 돌아가자고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 수긍했죠(웃음). 그런데 그때 초등학교 4학년이던 하나는 호주가 좋았나보더라고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계속 호주로 가서 공부하고 싶다고 해서 지원을 해줬죠.”
딸은 현재 호주에서 영어교육학을 전공하고 있다. 그는 “돌아보면 딸이 공부에 흥미를 갖고 열심히 하게 된 것이 호주 체류의 가장 큰 수확”이라고 말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최양락은 방송에 복귀, ‘알까기’로 큰 인기를 얻었다. 팽현숙도 음식점을 다시 열었다. 모든 일이 순탄하게 흘러갔고, 그는 더 큰 꿈을 갖게 됐다.
“호주에서 부동산 임대업이 체계적으로 돌아가는 걸 보고 우리나라도 그런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귀국해서는 부동산 쪽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하기 시작했어요. 어릴 적부터 별 다섯 개짜리 호텔을 운영하는 게 꿈이었거든요(웃음).”
그는 남편이 방송활동을 해서 벌어들이는 수입을 무조건 저축해 목돈을 모았고 그 돈으로 아파트를 샀다. 이후 부동산에 대한 안목을 키우고 임대주택사업을 시작했다. 중개업자의 말만 믿지 않고 직접 발품을 팔아 부동산을 보는 안목을 키웠고, 신중하게 매입한 부동산은 쉽사리 팔지 않는다는 노하우도 터득했다. 그의 꿈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앞만 보고 달려오느라 신경 쓰지 못한 주변 사람들 챙기며 살 생각
처음에 그가 순댓국집을 연다고 하자 사람들은 ‘형편이 그렇게 어렵냐’며 걱정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모양새를 따지다 보면 어떤 일도 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내가 명문 대학을 나왔는데 그런 일은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하지만 그렇게 따지다 보면 어떤 일도 못해요. 월급이 백만원이라면 그걸 당연하게 생각지 말고 백만원 이상의 값어치를 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급 카페를 할 수도 있었지만 실익을 따져서 순댓국집을 열었고, 성공만 하면 된다는 각오로 했는데 지금 이렇게 자리를 잡게 돼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그는 얼마 전 21년 동안의 재테크 노하우를 모아 ‘팽현숙의 내조 재테크’라는 책을 냈다. 글을 쓰면서 그는 지나온 길을 다시금 돌아보게 됐다고 한다.
“사업이 잘될수록 가슴 한편이 허전해지더라고요. 주변 사람을 신경 쓰지 못하고 앞만 보며 달려왔거든요. 한번은 고교 은사님이 식당까지 찾아와 메모를 남기고 가셨더라고요. 직접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하는데 그러지도 못하고…. 앞으로는 주변을 돌아보며 살려고요.”






결혼 21년, 자식 농사와 사업, 내조 모두 성공한 팽현숙.

여성동아 2009년 8월 5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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