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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Interview

전신화상 딛고 희망 전도사로! 이지선 감동 스토리

“겉모습 아름다움 잃는 대신 마음의 아름다움 채우기로 결심하자 달라진 세상”

글 임윤정‘자유기고가’ 사진 지호영 기자

2009. 08. 24

꽃처럼 피어나던 스무 살, 이지선은 전신화상으로 인해 예전의 곱던 얼굴을 잃었다. 만개하기도 전에 뚝뚝 저버린 청춘. 그러나 생의 의지는 끈질겼다. 7개월간의 입원과 열한 번의 수술을 거쳐 절망 끝에 희망을 붙들었다. 지난 200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그가 여름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해 보건복지가족부 행정인턴을 자원했다. 희망을 전하는 일에 언제나 쉼 없는 이지선. 그 어여쁜 마음이 얼굴의 화상 자국을 지운다.

전신화상 딛고 희망 전도사로!  이지선 감동 스토리


이지선(32)을 기억하는가? 그는 몇 해 전 KBS ‘인간극장’에 사연이 소개돼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전신화상을 이기고 당당히 세상으로 나온 그의 모습은 그 자체가 감동이었다. 죽음과 편견의 문턱을 넘으며 고통의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밝은 이지선. 그를 보면 어제보단 오늘을, 오늘보단 내일을 희망할 수 있게 된다.
지난 2004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그가 방학을 맞아 잠시 귀국했다. 세 번에 걸친 피부이식수술을 받은 이후 여유를 즐길 틈도 없이 보건복지가족부에 한 달간 무보수 인턴을 자원했다. 이 늦깎이 신입사원은 요즘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느라 바쁘다. 먼저 인사하고, 먼저 말붙이는 살가운 성격 덕분에 인턴 2주 만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니, 이만하면 성공적인 첫걸음이다.
“방학이 되면 매번 수술을 받았어요. 수술 받으며 방학을 보내다 보면 끝나고 나서 되게 아쉽더라고요. 그러던 차에 우연히 보건복지가족부에서 인턴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했죠. 장애인 정책을 가까이서 지켜볼 수 있어 뜻 깊어요. 제게 주어진 주된 과제는 미국에서 어떻게 장애인 시설이 운영되고 있는지 관련자료를 찾아 번역하고, 정책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거예요.”
비록 지금은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하고 있지만 그 배움을 실천할 곳은 바로 여기다. 이번 기회에 우리나라 장애인 정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가까이서 지켜본 다음 미국으로 돌아가 우리나라 상황에 맞는 정책들을 더 깊이 공부해볼 생각이다.
늘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에 감사하는 이지선. 세상의 잣대로 보면 참 불행한 사람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장애를 가졌다고 해서 행복을 느낄 수 없는 건 아니다. 비록 얼굴은 화상으로 일그러졌지만, 그 누구보다 해맑은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사람이 이지선이다.


CD에 비친 자신의 모습 보고 세상 정지한 듯한 느낌, 그래도 놓지 않은 희망

행복과 불행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행복한 가정에서 구김살 없이 자란 이지선에게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불행이 찾아왔다.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4학년에 재학 중이던 지난 2000년. 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오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다. 음주운전자가 낸 6중 추돌사고. 온몸에 심각한 화상을 입은 그는 병원으로 후송된다. 다행히도 생명의 위기는 넘겼지만 7개월간 중환자실과 일반 병동을 오가며 치료와 수술을 반복했다. 온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고통스런 시간이었다. 벌거벗은 채 침상에 누워 몸 전체를 소독하고 다시 붕대를 감는 과정을 수도 없이 반복했다. 차라리 죽고 싶은 적도 있었다. 산소호흡기로 목을 눌러 산소가 들어오지 못하게 하거나, 몸에 연결된 줄을 뽑으면 죽을까 싶어 발로 당겨도 보았다. 하지만 생은 그렇게 쉽게 지지 않았다. 자서전 ‘지선아 사랑해’에 그 고통의 나날들이 고백되어 있다.
“사고 후 저는 스무 살을 떼고 세 살만으로 살기로 했습니다. 내 손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그랬고, 내 손으로 먹을 수 있게 되었을 땐 예쁘게 차리고 온 친구들 앞에서 수건과 빨래집게로 턱받이를 만들고 먹는 것보다 흘리는 것이 더 많게 밥을 먹어서 그랬습니다. 늘 다른 사람이 목욕을 시켜줘야 했고, 미팅에 나가서 만날 의대생들 앞에서 벌거벗겨져 치료를 받을 때 나는 마음으로 스무 살을 떼어버렸습니다.”

전신화상 딛고 희망 전도사로!  이지선 감동 스토리

생명은 건졌지만 뽀얗고 투명하던 피부는 다 쓸려나가고, 손가락뼈가 절반쯤 녹아버린 모습은 꽃다운 젊은 여자에겐 너무 가혹했다. 이지선은 처음 자신의 얼굴과 마주했을 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CD 케이스를 손에 들었는데, 거기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봐 버린 것. 순간 모든 것이 정지하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놀라는 모습을 엄마 아빠가 보면 슬퍼할까봐 아무렇지 않은 척 내색하지 않았다.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까지만 해도 회복될 거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화상이 뭔지 자세히 몰랐으니까. 적어도 ‘나는 다 나아서 나갈 거야. 다시 학교에도 다니고, 모든 생활이 가능하게 될 거야’라고 믿고 싶었던 거죠. 점점 희망이 줄어들면서 현실을 봐야만 할 때 참 슬펐어요. 하지만 삶이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님께서 제 인생을 여기서 끝나게 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거죠.”
이지선은 선택했다. 겉모습의 아름다움을 잃은 대신 속마음을 아름답게 채우기로. 그는 ‘지선이의 주바라기(www.ezsun.net)’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열고 자신의 좌절과 고통, 그리고 끝내 놓을 수 없는 희망을 써내려갔다. 자신은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불행하지 않다고. 네티즌의 격려와 사랑이 쏟아졌다. 이후 KBS ‘인간극장’에 출연해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냈다.
“길에서 저를 처음 보시면 굉장히 놀라서 피하거나, 동정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어요. 방송에 출연하면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저로 인해 저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위로받을 수도 있을 거라 생각했고요.”
화상을 딛고 일어선 한 젊은 여성의 사연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행복은 얼마나 가까이 있는지, 기쁨과 감사는 얼마나 작은 것에서 시작하는지를 보여주었다.
“짧아진 여덟 개 손가락으로 인해 사람에게 손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고, 1인 10역 해내는 온전히 남은 엄지손가락으로 생활하고 글을 쓸 수 있어 감사했습니다. 눈썹이 없어 무엇이든 여과없이 눈으로 들어가는 것을 경험하면서 사람에게 눈썹이 얼마나 필요한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건강한 피부가 얼마나 많은 기능을 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나마 남겨주신 피부들이 건강하게 움직이는 것에 감사합니다.” - ‘지선아 사랑해 ’ 중
매사 감사라는 말을 추임새처럼 달고 사는 이지선. 감사의 마음은 다시 행복으로 이어진다. ‘나는 저 사람보다 건강하니까, 저 사람보다 부자니까…’ 이러한 마음으로는 진정한 행복을 느낄 수 없다.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을 만났을 때 불행으로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지선은 이전의 모습에 비춰 이 정도로 좋아진 것에 감사한다.
9년 전 교통사고를 함께 겪은 그의 오빠는 결혼해 이제 세 살배기 아들을 두고 있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조카다. 그리고 두 번째 조카가 엄마 배 속에서 나올 채비를 하고 있다. 조카 얘기에 흐뭇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자친구가 있는지 물었다. 아직 없다고 한다. 요즘 들어 그의 부모도 그에게 남자친구가 생기길 내심 기대하는 눈치라고.



소외된 이들 돕기 위해 사회복지학 공부, 마라톤에도 도전하고 싶어
그는 한 달간의 인턴을 마치고 나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간다. 5년 전 자신의 경험을 살려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고 치료하는 심리치료사가 되기 위해 떠났던 유학이다. 지난해 보스턴대에서 재활상담으로 석사학위를 받았지만 더 시급한 것은 사회복지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 지난해 9월부터 컬럼비아대에서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다. 내년에는 박사과정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낯선 땅에서 만학의 꿈을 이루는 게 어디 쉬울까. 자신의 목표가 뚜렷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소한 것 하나까지 부딪치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더욱이 한국에 있으면 부모가 다 알아서 해주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일들, 하다못해 고지서 한 장까지 일일이 챙겨야 했다. 돌아오고 싶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의 책과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유학 떠난다고 이미 공언을 했던 터라 돌아올 수 없었다며 환하게 웃는 그다. 영어 실력은 늘지 않고 알아듣는 척하는 연기력만 늘었다며 겸손 어린 농담을 건네지만, 그는 지난 5년간 많은 걸 배웠고, 또 이뤘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장애인차별금지법’이에요. 처음 접했을 때 참 아름다운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지난해부터 시행되고 있는데, 미국은 이미 50년 전에 시작했어요. 역사가 깊은 만큼 이제는 문화로 자리 잡아서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은 불법’이라는 인식을 사회구성원들이 자연스럽게 하는 것 같아요.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장애를 가지지 않는 한 장애인이라고도 생각지 않고요.”
그는 11월쯤 마라톤에도 도전할 생각이다. 그가 홍보대사를 맡고 있는 푸르메재단의 재활병원 기금 마련을 위한 마라톤 대회다.
“마라톤은 처음이라 기대도 되고, 걱정도 돼요. 제가 뛰는 거리만큼 기부금도 올라가니 많이 응원해주세요.”
넝쿨로 뒤덮인 건물 앞에 선 이지선이 환히 웃는다. 시원하게 뻗어 올라가는 넝쿨처럼 서른두 살 청춘도 그렇게 뻗어나가길, 이지선 당신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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