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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Sex

‘초식남’과 ‘육식녀’가 만났을 때 사랑은 필 수 있을까

글 신동헌‘섹스 칼럼니스트’ | 사진제공 REX

입력 2009.08.04 10:02:00

시대별로 신세대를 칭하는 명칭이 다르다. ‘야타족’으로 대변되던 X세대부터 정보통신기술과 접목된 Y세대, 첨단 사고방식을 지닌 디지털 시대에 맞는 Z세대까지. 그렇다면 지금의 화두는? 여자에 관심이 없는 대신 외모 가꾸기 바쁘고 유행에 민감한 자기중심적인 남자, ‘초식남(草食男)’이다. 그에 반해 여자들의 성숙도는 나날이 빨라지고 있다. 남녀간 불협화음의 원인이 아닐 수 없다.
‘초식남’과 ‘육식녀’가 만났을 때 사랑은                      필 수 있을까

세상의 발전이 너무나 빨라서 따라가기가 버겁다는 생각이 든다는 건, 예전에는 나이를 먹고 있다는 증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요즘은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산다. 20세기에 청춘을 보낸 사람들은 그나마 행복했던 건지도 모른다. 아무 신경 쓰지 않아도 유행의 흐름과 최신 상식을 알 수 있었던 그때와 달리, 요즘은 ‘유행’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나도 광범위하고 그 움직임도 빨라서 갓 스무 살을 넘긴 아이들이라고 해도 헐떡대며 그 끄트머리를 좇곤 한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그 나이 또래 아이들이 유행을 추종하는 심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들은 거의 강박관념에 가까울 정도로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안테나를 곤두세우고 산다. 요즘 아이들이 욕을 입에 붙이고 살고, 웃음 대신 째려보는 눈초리를 가지고 살면서 버르장머리 없음을 ‘쿨’한 것으로 착각하고 사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나는 90년대에 20대 시절을 보낸, 그 유명한 ‘X세대’다. 어떤 독자들보다는 어릴지도 모르지만, 나는 70년대 말부터 80년대에 20대를 보낸 누나를 넷이나 두고 있기 때문에 꽤 많은 세대의 성적 정체성을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콧대 높은 넷째 누나는 남자친구가 손을 잡자고 하면 거침없이 차버리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도 꽤 예쁘고 몸매도 ‘나이스 보디’인 우리 누나와 사귀면서 손 한 번 못 잡는다는 건 꽤나 고역이었을 거다. ‘섹스’를 ‘손잡다’로 순화해서 표현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우리 누나의 콧대로 보면 옛 남자친구들은 아마도 진짜 손잡자고 했다가 차였던 것 같다. 같은 남자로서 불쌍하기도 하고, 지지리도 못난 놈들이라고 엉덩이를 발로 차주고 싶기도 하다.
우리 누나들은 다들 미모가 제법 빼어났다. 그래서인지 따라오는 남자들도 꽤나 많았다. 태권도 선수였던 나는 누나들이 결혼하기 전까지 쌍절곤을 들고 버스정류장에 마중을 나가곤 했다. 따라오는 남자들이라고 해도 다행히 변태는 아니고, 누나들에게 구애를 하기 위한 남자들이었다. 대부분 허우대도 멀쩡하고, 매너도 좋았다. 대부분은 쌍절곤을 빙빙 돌리는 나를 보고 돌아갔고, 가끔 넉살 좋은 형님들은 “남동생 하나 잘 뒀다”면서 아이스크림 따위를 사주려고 하기도 했다. 누나가 빨리 가자고 하는 바람에 그들에게 뭔가를 얻어먹었던 적은 없지만, 나는 그들 덕분에 ‘남자의 구애’는 그렇게 하는 거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그런 일이 반복되면서 생각이 살짝 바뀌었다. 남자들이 아무리 그렇게 해도 누나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누나들은 죄다 누군가에게 소개를 받거나 선을 봐서, 아니면 직장 내에서 연애 감정이 싹터 결혼을 했다. 이로써 나는 지나가는 여자에게 호감을 느끼더라도 그걸 표현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걸 알게 됐다.
여자에게 대시해 무시당하느니 ‘간지 나는’ 유행 좇는 요즘 남자들
그래서인지 90년대, 내 나이 또래 아이들은 다들 ‘야타’란 걸 했는데, 나는 그게 그렇게 싫었다. 친구들과 ‘야타’를 하러 가더라도 나는 그냥 큰 키로 서 있는 역할만 맡았다. 낯 모르는 여자에게 말을 건다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십중팔구는 완전히 무시를 당하고, 웃으면서 꼬임에 넘어온다고 해도 내 맘에 드는 여자일 확률은 무척 낮았다. 이런 건 효율이 떨어질 뿐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 보기에도 너무 창피했다. 내가 ‘야타’를 완전히 끊은 건 우리가 여자들의 무시를 당하면서도 “끝내주는 록카페가 있다니깐요~”를 외치는 모습을 어느 초등학생이 측은한 듯 쳐다보는 모습을 본 후부터다. 놈은 막대사탕을 쭉쭉 빨고 있는 주제에 웃음을 머금고 우리를 보고 있었다. 그 자식이 진짜로 우릴 보고 측은해서 쯧쯧 소리를 낸 건지, 그냥 사탕 빠는 소리였는지 확실하지는 않다.
요즘 초식남이 늘어나고 있는 건 우리 ‘X세대’ 때문인지도 모른다. 초식남(草食男)이라는 말은 일본의 여성 칼럼니스트 후카사와 마키가 처음 사용한 말인데, 기존의 ‘남성다움’(육식적)을 강하게 어필하지 않으며 이성과의 연애보다 자신의 취미활동에 적극적인 남자를 일컫는다. 동성애자와는 다르지만,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한다는 점은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비슷한 의미로 ‘토이남’이라는 말도 있다. 토이 유희열의 노래 가사에 나오는 남자처럼 낭만적이고 목가적인 삶을 추구하는, 유행에 민감하고 여성들과 잘 통하지만 성적으로는 전혀 관심이 없는 남자들이다. X세대들이 기존 한국적 문화와 달리 방탕한 삶을 추구한 탓일까? 요즘 주변에는 초식남들이 너무도 많이 눈에 띈다. ‘야타’ 하는 나를 보며 사탕을 쯧쯧 소리 내어 빨던 그 놈도 분명히 초식남이 돼 있을 것 같다.
그들이 ‘초식’하는 이유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유행’에 대한 강박적인 추종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은 남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신경 써야 할 게 너무 많다. X세대의 공통적인 추억이 ‘어렸을 적 부잣집 아들 녀석 집에 있던 무언가’라면, 요즘 아이들은 뭘 해도 ‘간지’ 나는 녀석이다. 요즘 아이들이야 물질적인 부족함은 없다. 이 아이들의 문제는 같은 MP3를 써도 뭘 쓰고 어떤 이어폰을 매칭하며, 이때 바지는 어디 걸 입고, 거기에는 어떤 색상의 스니커즈를 조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걸음걸이는 어때야 하며 친구들과 인사를 나눌 때는 어떻게 하고 말을 할 때는 어떤 식으로 한다는 식의 추상적인 ‘간지’를 추구한다는 거다. 동성 친구끼리도 태도나 감각이 극도로 중요해진 이 시대에서 이성의 마음속까지 완전하게 충족시킨다는 건 사실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귀하게 자란 요즘 아이들의 자존심은 우리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높다. 이성에게 호감을 나타내거나 스킨십을 시도했다가 거절당하는 ‘간지 상하는’ 상황을 만드느니, 아예 성적 호기심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아이들이 성적으로 훨씬 개방적이지 않느냐고? 물론 그렇다. 여자들은 초식남과는 또 반대다. 요즘 여자들은 순결을 예전처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잘나가는데’ 방해만 되는 요소다. 만약 제대로 ‘간지 나는’ 남자가 다가왔을 때 “아버지가 엄하셔서” “결혼하기 전에는 안 하기로 했는데” 따위의 말을 꺼냈다가는 아마 친구들 사이에서 평생 놀림거리가 될 거다.
‘Winner Takes It All’. 요즘 젊은 세대들의 섹스는 예전보다 훨씬 양극화가 심해졌다. 가진 자는 더 많이 가질 수 있고, 못 가진 자는 아예 관심이 없는 척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이러다가 여자들이 생식 능력 있는 남자를 만날 수 있도록 일부다처제가 부활하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러고 보면 옛날 남자들, 좀 촌스럽기는 해도 ‘얄쌍한’ 요즘 남자들보다 훨씬 남자다웠던 것 같다.


신동헌씨는…
라틴어로는 ‘카르페 디엠’, 우리말로는 ‘현재에 충실하라’는 좌우명대로 하고 싶은 건 다 하면서 살고 있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모터사이클, 자동차, 여자, 그리고 자신을 쏙 빼닮은 아들이다. 죽을 때까지 와이프를 지루하지 않게 할 자신에 넘치는 결혼 3년 차.

여성동아 2009년 8월 54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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