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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노래하는 건축가 양진석

글 김유림 기자 | 사진 지호영 기자

입력 2009.06.17 18:53:00

건축가 양진석이 8년 만에 가수로 돌아왔다. MBC ‘러브하우스’로 명성을 날리던 시절 3집 앨범을 발표했던 그는 한동안 철저히 건축가로만 지내오다 또다시 일(?)을 벌였다. 열한 살 연하 바이올리니스트 아내와 음악 소리만 나오면 어깨를 들썩이는 세 살배기 딸까지, 그와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과 같다.
노래하는 건축가 양진석


그림 그리는 가수, 소설 쓰는 탤런트, 옷 짓는 배우…, 연예계에는 다양한 재주를 가진 사람이 많다. 건축계에서 이런 팔방미인을 꼽으라면 ‘노래하는 건축가’ 양진석(44)이 떠오른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러브하우스’로 유명세를 탄 그는 2001년 앨범 ‘10년의 사랑’을 발표하고 콘서트까지 열었다.
서울 청담동, 그가 대표로 있는 건축설계사무소에 들어서자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감지됐다.
이사한 지 일주일이 채 안된 탓이다. 하지만 그의 방에 들어서자 비로소 잔잔한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책상 위 아이팟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그가 8년 만에 발표한 4집 앨범 타이틀 곡 ‘이제 다시 살아보려 해’. 양진석은 이번 앨범의 전체 프로듀싱과 전곡 작사를 맡았다. 특히 가사는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머릿속에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해뒀다가 곡 색깔에 맞춰 어울리는 문장들을 이어 완성했다고 한다.
“다른 건축가들은 식당에 가면 냅킨에 스케치를 한다는데 저는 가사를 적어요(웃음). 나이 들수록 가사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이 아닌 제 얘기를 하고 싶어서인데, 그러다 보니 가사 내용이 거의 다 친구, 인생, 사랑 얘기죠.”
이번 앨범에 수록한 ‘단 한가지 소원’이란 노래는 결혼 4년 차에 접어든 그가 커플이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만든 노래라고 한다.
“제 경험과 주변 친구들의 얘기를 들어봐도 사랑하는 사람에게 바라는 건 정말 소소한 것들이더라고요. 아침에 함께 눈뜨는 것, 한 식탁에서 밥 먹는 것, 하루에 한 번씩 ‘사랑한다’고 문자 보내는 것 등이죠. 이 노래를 만들면서 ‘과연 나는 얼마나 아내의 소원을 잘 들어줬을까’ 하고 반성 많이 했어요(웃음).”

“아내 덕분에 가정이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지 깨달았어요”
2004년 비교적 늦은 나이에 결혼한 그는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는 사랑에 무덤덤한 남자였다고 고백한다. 총각시절 여자에게 공을 들이는 시간에 인색했던 것. 그의 아내 김주현씨(33)는 독일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돌아온 바이올리니스트로 현재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두 사람의 첫 만남은 클래식 음악인 모임에서 이뤄졌다. 당시 KBS 교향악단과의 협연을 위해 잠시 귀국했던 김씨는 모임에서 그를 만난 뒤 일주일 더 한국에 머물렀다고 한다.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는 결혼할 생각이 별로 없었어요. 사실 제가 매력이 많은 남자도 아니고요(웃음). 그런데 모임에서 먼저 아내가 저를 알아보면서 제 앨범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희귀 음반을 모으는 취미가 있나 보다 했는데 나중에 결혼하고 보니 소장하고 있는 음반이 6천 장이 넘었어요(웃음). 처음 만난 날부터 음악에 대한 얘기가 잘 통하고 또 아내가 건축을 좋아해 서로 호감이 생겼어요.”
열한 살이라는 나이 차는 두 사람의 결혼에 어떤 장애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아내에게 뭔가 미안한 마음”이 들었던 양진석은 결혼 선물로 자신의 서재를 들어내고 그곳에 바이올린 연습실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6천 장의 음반을 깔끔하게 보관할 수 있는 장식장도 함께. 그는 결혼을 하고 나서야 가정이 주는 행복이 얼마나 큰 지 깨달았다고 말한다.

노래하는 건축가 양진석


두 사람 사이에는 세 살배기 딸 유진이가 있다. 늦은 나이에 얻은 아이라 더 없이 예쁘고 사랑스럽지만 많이 놀아주지 못해 아쉬웠는데, 지난 어린이날에 모처럼 아빠 노릇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어린이대공원에서 갤러리 오픈식이 있었어요. 제가 설계한 작품이라 가족과 함께 참석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놀이동산 입구에 차를 세우고 유모차를 끌고 한참을 걸어 올라갔죠. 아내와 저는 힘이 들어 기진맥진했지만 아이는 인파에 섞여 무척 즐거워하더라고요. 오랜만에 아이를 위해 뭔가 해줬다고 생각하니 뿌듯했어요(웃음).”
아이 얘기를 하며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짓던 그는 “아이는 누구를 닮았냐”는 질문에 “다행히 나를 많이 안 닮았다”며 재치 있게 답했다.
음악과 건축은 창의적인 사고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는 여러 예술분야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한다. 특히 영화에 등장하는 조형물을 보고 감명받을 때가 많아 일주일에 적어도 세 편 이상은 본다고.
사무실 한쪽에는 그가 지금까지 모은 카세트테이프와 음반 CD, 영화 DVD, 사진과 그림 액자가 가득 쌓여 있었다. 휴게실처럼 보이는 공간에는 ‘아라비안나이트’가 연상되는 화려한 오리엔탈풍 쿠션과 조명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는 “직원들과 와인 파티를 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공간인데, 아직 한 번도 사용을 못했다”며 웃었다.
양진석은 직원들 사이에서 ‘두 얼굴의 사나이’로 통한다. 일에 있어서만큼은 완벽주의에 고집불통이고, 원칙을 강조하다 보니 잔소리도 많이 하기 때문. 하지만 퇴근 후 회식 자리에서는 코미디언으로 돌변하곤 한다. 직접 사회를 보면서 분위기를 끌어올리기도 하고, 무대로 나가 신나게 노래도 부른다는 것. 그는 “차갑거나 뜨거운 게 좋지, 미지근한 건 별로이지 않냐”고 반문했다.
“제 고집은 어려서부터 유명했어요. 한번은 부모님이 위인전을 많이 읽으라고 50권짜리 전집을 사주셨는데, 안 읽고 부모님께 혼나는 게 싫어서 사흘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 읽은 적이 있어요. 밥도 안 먹고 학교도 안 갔죠(웃음). 성격이 이렇다 보니 손해를 볼 때가 많아요. 특히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할 때도 제 생각과 맞지 않으면 자리를 박차고 나오거나 상대를 가르치려고 들죠(웃음). 나이 들면 성격도 바뀔 줄 알았는데…, 쉽게 고쳐지지 않네요.”



일할 땐 고집불통, 놀 때는 코미디언인 두 얼굴의 사나이
성균관대 건축학과 재학시절 그룹사운드 ‘노래그림’에서 활동하며 음악에 빠져 지내던 그는 대학 졸업을 앞두고 건축과 음악 중 어떤 것을 택할지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결국 “잘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은 다르다”는 아버지의 권유로 건축가의 길을 선택한 그는 88년 일본 교토대로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은 버리지 않았다.
수시로 곡을 만들어 한국에 있는 멤버들에게 보냈고, 일본에서는 현지 음악문화를 마음껏 들으며 음악에 대한 눈을 새롭게 떴다. 외로운 유학생활에서 음악은 그의 유일한 친구였다고 한다. 그렇다고 건축 공부를 등한시한 건 아니다. 주말마다 국도여행을 다니면서 건축물 사진을 찍었는데, 그 분량이 슬라이드 필름으로 3만 장이 넘는다고 한다. 졸업할 때 성적도 전 과목 A+를 받았고, 95년 귀국 후 바로 국내 유수의 건축회사에 입사했다.
그때부터 그는 건축과 음악을 오가는 짜릿한 이중생활을 시작했다.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한 음악 프로듀서의 제안으로 생애 첫 솔로 앨범을 발표한 것.

노래하는 건축가 양진석

“앨범을 내긴 했지만 가수로 활동할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하지만 회사생활을 하면서 틈틈이 한눈을 팔았어요. 당시 근무하던 회사가 대학로에서 가까웠는데, 저녁 시간만 되면 사람들 밥 먹으러 나간 틈을 타 저는 공연장으로 달려갔죠.
콘서트에서 게스트가 출연하는 시간이 보통 그쯤이어서 가능했어요. 무대에서 노래 몇 곡 부르고 연주도 한 뒤 다시 회사로 돌아와 일을 마치고 또다시 공연 뒤풀이 장소로 이동했어요(웃음).”
남들은 하나도 갖기 힘든 재능을 두 가지나 갖고 있는 그는 음악과 건축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렸다. “건축은 고통스럽지만 보람 있는 일이고, 음악은 그저 즐거운 일”이라고. 그는 자신이 설계한 건물이 세워지는 걸 보면 말로 설명하기 힘든 성취감과 만족감이 느껴진다고 한다.
2001년 MBC ‘러브하우스’에 출연할 때는 인생을 배울 수 있어 더욱 의미 있었다고. 당시 전 국민은 매주 그의 마술 같은 대변신에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건축을 공부하는 많은 학생들이 그를 롤모델로 삼았다.
“한번은 실 평수 9평인 곳에서 열한 가족이 사는 사연이 방송됐는데, 신동엽씨와 얘기를 나누다가 저도 모르게 수납장을 30개로 만들어보자고 약속을 한 거예요. 그런데 열심히 만들다 보니 48개가 됐더라고요. 가족 분들이 울면서 개수를 세는 모습이 감동적이었죠.‘러브하우스’는 제게 잊지 못할 추억을 많이 만들어준 고마운 프로그램이에요.”
2002년부터 한양대 건축학부 겸임교수로 출강 중인 그는 조만간 책도 출간할 예정이다. ‘눈뜨면 사람 그리고 건축(가제)’이란 제목으로 7년 동안 신문 및 잡지에 기고해온 칼럼을 묶어 ‘건축을 보는 눈을 키우라’는 메시지를 전한다고 한다. 양진석은 이번 4집 앨범 홍보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그는 예전처럼 방송에 몰두하기보다는 대중에게 마음으로 다가가는 음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시 노래 할 수 있어 행복하다”며 밝게 웃는 그에게서 여유로움과 자신감이 느껴졌다.

여성동아 2009년 6월 54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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