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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Star's Cafe

코믹 뮤지컬 ‘더 팬츠’ 주연 김정민 유태웅

한 목소리로 외치다 “니들이 남자를 알아?”

글 김수정 기자 | 사진 홍중식 기자

2009. 05. 21

‘최고급’ 찜질방이 아니라 ‘싸구려’ 목욕탕이다. ‘팬츠’가 아니라 ‘빤스’다. 남탕을 배경으로 한 코믹 뮤지컬 ‘더 팬츠’에서 쫄쫄이 의상에 팬티 한 장 걸치고 나오는 김정민·유태웅은 이렇게 외쳤다, “빤스만큼은 죽어도 못 벗어!” 민망한 곳을 가린 채.

코믹 뮤지컬 ‘더 팬츠’ 주연 김정민 유태웅

수증기가 서린 남탕 사우나. 아무리 연극이라지만 남탕이라는 말에 공연장 커튼을 조심스레 열었다. “벗어! 얼른 벗지 못해?” “절대 못 벗어!” 한참 동안 때밀이와 손님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진다. ‘빤스’가 문제였다. 뜨거운 조명 아래 빤스 때문에 이리 뛰고 저리 뛰던 김정민(39)·유태웅(37)의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진다.
4월 중순 서울 대학로에서 막이 오른 ‘더 팬츠’는 때밀이라는 직업을 나타내기 위해 팬티를 입어야 하는 사람과 말 못할 사정으로 팬티를 입을 수밖에 없는 남자 등 남탕 안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코믹 뮤지컬이다. 쫄쫄이의상에 사각팬티만 입은 두 사람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친근하다.

“4천원짜리 동네목욕탕 다녀요”
목욕탕은 서민의 공간이다. 물값 아낀다며 집에서 좀처럼 씻지 않던 사람들은 살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때를 민다. 데면데면했던 동네사람들은 서로 등을 밀어주다가 ‘목욕탕 친구’가 된다. 하지만 어느 순간 찜질방에 사람들을 빼앗기면서 하나 둘 사라졌다. 두 사람은 “목욕탕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했다는 게 흥미로웠다”고 했다.

유태웅(이하 유) 형은 목욕탕 자주 가요?
김정민(이하 김) 난 한 일주일에 두 번 가. 우리 동네 목욕탕은 4천원이야. 4천5백원 하는 데도 있는데 거긴 아직 안 올랐어. 목욕탕 크기가 연극무대만 하지. 예전에는 내가 탕에 들어가려 하면 사람들이 위아래로 훑어보고 수군거렸는데 요새는 안 그러더라.
그러게요. 버스나 전철 탈 때도 사람들의 시선이 불편한데 홀딱 벗어야 하는 목욕탕은 어떻겠어요. 근데 총각 때는 민망하더니 아저씨 되니까 신경이 덜 쓰이더라고.
여자들도 목욕탕에서 가슴이 큰가 안 큰가부터 본다잖아. 남자도 그런 거지, 거시기가 큰가 안 큰가… 이제는 ‘볼 테면 봐라, 연예인이라고 다른 거 있냐. 사람 몸이 거기서 거기다…’ 하고 쿨하게 넘겨(웃음). 나는 어릴 때부터 그 목욕탕에 다녔는데 주인아저씨한테 연극 티켓을 줘야 하나 싶을 정도로 친해. 근처에 시설 좋은 목욕탕도 있는데 왠지 옮기기 싫더라고. 동네 사람들과 인사하고 얘기 나누고, 가끔 재미있는 사람도 만나고…. 목욕탕만큼 사람냄새 나는 곳이 없는 것 같아.
재미있는 사람?
열 돈 넘는 금목걸이·팔찌를 하거나 몸에 문신을 새긴 건달 말이야. 우리 동네 목욕탕에도 가끔 건달이 와.
나는 그런 사람들과는 되도록 눈을 안 마주치려고 해요. 사우나에 앉아 있는데 ‘어험’ 하면서 들어오면 내 몸이 벌써 저만치 나가 있더라고.
나도 그래. 탕 속에 있다가도 ‘아, 20분 더 있어야 하는데…’ 하면서 마지못해 나가는 거지(웃음).
형은 목욕탕에 얼마나 있어요?
한 시간 정도? 반신욕하는 걸 좋아해서 탕에 몇 번씩 들어갔다 나오면 그렇게 되더라.
나는 30분이면 끝나요. 아내와 가면 늘 밖에서 30분 이상 서성거렸는데, 요새는 내가 아이들 데리고 가니까 나 씻고 아이들 씻기면 아내 나오는 시간과 얼추 맞더라고.
나는 주로 혼자 다녀. 결혼해서 아들 데리고 목욕탕 가는 게 소원이었는데 최근에 한번 해봤지. 그런데 생각보다 힘들더라. 남탕이 익숙지 않아서인지 아이가 엄마랑 안 떨어지려고 하고, 씻기는데 손도 많이 가고.
난 여태껏 때를 밀어본 적이 없어요. 매일 샤워하는데 무슨 때를 그렇게 밀어.
시원한 맛이지, 뭐. 난 때밀이아저씨한테 맡겨. 그래서인지 연극 연습하면서 그 아저씨 생각이 많이 나더라고(웃음). 때밀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닌가봐. 때 미는 풍경이 익숙할 법도 한데 목에 수건 두르고, 오른손에 이태리타월 끼고 왼손은 옆구리에 얹는 내 모습이 어찌나 어색하던지….

코믹 뮤지컬 ‘더 팬츠’ 주연 김정민 유태웅

목욕시설이 잘돼 있는 집이 많고 찜질방, 불가마가 많이 들어서서 그런지 ‘때밀이’라는 단어가 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목욕탕이 하도 넓어서 옛날처럼 자리싸움하는 풍경도 볼 수 없고.
요새도 자리싸움 있어. 오래전 일인데 일회용 샴푸 때문에 어떤 사람과 다툰 적이 있어. 탕에 들어갔다가 와보니까 샴푸가 없어졌더라고. 목욕탕이 쩌렁쩌렁 울리게 ‘여기 있던 내 샴푸 누가 썼어?’ 소리쳤지. 어떤 사람이 와서 ‘버리시는 거 아니었어요?’ 하기에 ‘반 쓰고 나머지는 갔다 와서 쓰려고 했죠’ 하고 인상을 찌푸렸더니 머리를 긁적이면서 ‘제가 하나 사드릴게요’ 하더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좀 민망해.
그런 거 보면 목욕탕은 가식이라는 게 없는 곳 같아요.
면도기 2백원, 칫솔 1백원… 돈 주고 산 건데 쓰지도 못하고 잃어버리면 아깝잖아. 다시 사러 가기도 귀찮고. 그렇다고 매번 여자들처럼 목욕용품 싸갖고 다니는 것도 그렇잖냐.
그러고 보면 여자는 목욕탕 가기 불편할 것 같아요. 목욕탕 운영하는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남탕은 매달 흑자인데 여탕은 적자라고. 물도 많이 쓰고 수건도 남자보다 두 배 더 쓴대요. 비누·치약 갖다 놓으면 순식간에 없어지고. 요새는 많이 나아졌지만 예전에는 목욕탕에서 빨래를 많이 해서 ‘빨래금지’라고 벽에 써 붙였대요.
이젠 그런 풍경이 그립다.

“몸은 아저씨지만 마음은 청춘!”
세월은 목욕탕만 관통한 게 아니다. 두 사람 모두 연예계에 데뷔한 지 15년째. ‘슬픈 언약식’ ‘무한지애’ 등으로 90년대 가요계를 주름잡았던 김정민은 한때 침체기에 빠졌다. ‘올드미스다이어리’ ‘히트’를 통해 연기자로 나섰던 그는 오는 6월이면 가수로 돌아올 예정. 유태웅은 94년 MBC 공채 탤런트로 데뷔해 이정재, 장동건 등과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받았다. 슬럼프에 빠져 오래도록 헤어나오지 못하다가 ‘야인시대’ ‘불멸의 이순신’으로 다시 일어섰다.



오랜만에 뮤지컬에 도전한 건데 쫄쫄이 의상에 사각팬티라니!
그래도 너는 몸이 좋아서 슈퍼맨 같더라. 난 엉덩이에 살이 없어서 폼이 안나.
처음 형을 만났을 때는 거칠 것 같았는데 꼼꼼한 구석이 있어요.
너야말로 사극에 많이 출연해서 그런지 전사 이미지였는데. 난 지금껏 한두 번 본 게 전부일 만큼 뮤지컬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게 사실이야. 이 작품은 재미있을 것 같아 덜컥 도전했는데 연습하면 할수록 어려운 장르인 것 같아. 노래도 내가 부르는 분위기와 달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스럽고.
난 노래 잘하는 형이 부럽던데요.
고맙다. 한편으로는 더 늦기 전에 도전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 사실 데뷔 후 그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잘 떠오르지 않아. 목표를 두고 살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아. 음악이 좋아서 가수가 됐고, 운이 좋아 잘 풀렸고, 그러다가 침체기에 빠졌고…. 돌이켜보니 남은 건 앨범 몇 장뿐이더라고.
그래도 지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그 일로 인해 가정이 유지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이에요. 예전에 슬럼프에 빠졌을 땐 그 이유조차 모르겠더라고요. 그저 화나고 불안하고….
그때 복싱을 했다면서?
술과 사람을 워낙 좋아해서 만일 그때 운동을 안 했다면 술독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거예요. 처음엔 스트레스 풀 겸, 체력도 단련할 겸 한 건데 2003년 프로복싱 신인왕전에 참가해 헤비급 신인왕에 올랐어요. 무념의 순간이랄까…, 복싱을 하면서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기왕 욕심 버린 거 홀가분하게 있자 생각하면서 연극무대에만 섰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드라마 섭외가 계속 들어오더라고요.
나는 음악의 방향성을 잡지 못해 해맸었어. 음악적 변화를 시도하려다가 사람들이 예전 노래가 좋다고 하면 고민하고, 또다시 변신하려고 하면 어느 정도 선에서 합의점을 찾고, 변화하면서 진화하는 게 어려운 일인 것 같아. 하지만 그 시기가 나쁘진 않았어. 6월에 나오는 이번 앨범은 만족스러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긴다’는데, 앨범이 가죽이 되면 좋겠어.
저는 요즘 15년간 찍은 발자취에 대한 책임감이랄까, 무게감을 느끼고 있어요. 만일 배우로서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무게감으로라도 남고 싶어요.
아…. 마음은 아직 원더걸스고 소녀시대인데.
그래도 나이는 못 속이나봐요. HOT, 젝스키스 나왔을 땐 그룹은 물론 멤버 이름, 나이도 금세 외웠는데 요즘 나오는 친구들은 못 외우겠더라고요.
그냥 동생 같고 조카처럼 귀여운 거지, 뭐. 나는 걔네들보다 애프터스쿨이 좋더라. 섹시하잖아! (웃음)

코믹 뮤지컬 ‘더 팬츠’ 주연 김정민 유태웅

하하하. 형은 평소 어떻게 자기관리하나요?
나는 하루에 두 끼만 먹어. 오전 10시 반에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오후 6시에 저녁을 먹은 뒤엔 아무것도 먹지 않지. 술 마실 때도 안주는 많이 먹지 않으려고 하고. 벌써 15년째 그런 생활을 유지하고 있는데 긴장하지 않으면 금세 살 찔 것 같아.
얼마 전에 건강종합검진을 받았는데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복부비만으로 나오더라고요. 저는 먹는 걸 워낙 좋아해서 실컷 먹고 미친 듯이 움직여요. 아직도 권투를 하고 있고, 아침에는 테니스를 쳐요.
나는 예전에 골프를 좋아했는데 요새는 도저히 못 치겠더라. 총각 때는 ‘자기관리비’라는 명목으로 씀씀이가 컸지만 지금은 나보다 가정을 챙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기니까 하고 싶은 일도 참게 되더라고.

“최고의 남편, 최고의 아빠 되고 싶어요”
두 사람은 아이들 얘기로 수다가 끊이질 않았다. 김정민은 재일교포 3세 타니 루미코씨(30)와 결혼, 두 살배기 아들 태양이와 지난해 7월 태어난 아들 도윤이를 두고 있다. 유태웅은 지난 2004년 8세 연하 문채령씨와 결혼해 2005년 큰아들 재동이를 얻은 데 이어 희동이, 재민이를 얻었다. 아들 부자인 두 사람은 “딸을 낳고 싶은데…” 하면서 미소 지었다.

공연 끝나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려고요. 두 달 동안 연습하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
나는 평소 집 근처 공원으로 자주 놀러 가. 태양이는 장난감자동차 타고 둘째는 젖 먹고, 나는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그런 게 행복인 것 같아.
우리집 앞에도 올림픽공원이 있어서 나들이가기 좋더라고요. 큰아이는 자전거를 타고 둘째는 그 뒷좌석에 앉고 아내는 셋째를 태우고 유모차 끌고. 넷째도 갖고 싶긴 한데(웃음).
나도 갖고 싶은데 아내가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하는 걸 보면 안쓰럽더라고. 아내가 셋째가 딸이면 낳을 생각이 있다는데 그거야 우리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아이들 크는 거 보면 참 신기하지? 태양이는 벌써 음감이 있다니까! 다른 아이들이 ‘응애’ 하고 울 때 ‘응애, 애’ 하고 리듬감 있게 울더니, 요즘은 ‘아빠, 힘내세요~’ 하면서 흥얼거려.
나는 아이들이 논리적으로 다가올 때 깜짝 놀라요. 한번은 신호등이 빨간불일 때 지나갔더니 ‘아빠, 빨간불인데 왜 지나가요? 그때는 멈췄는데 지금은 왜 다르게 하죠?’ 하고 묻더라고. 호기심도 많아졌어요. 지난 3월 종영한 드라마 ‘유리의 성’을 보더니 ‘아빠는 왜 집이 두개예요?’ 그러더라고. ‘저건 가짜 집이야. 아빠 집은 여기야’라고 설명했는데, 아직은 어떤 게 현실이고 어떤 게 드라마인지 잘 구분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제 한 동료배우가 자기 아들에게서 온 문자메시지를 보여주더라. ‘아빠, 자지가 맞는 거예요? 고추가 맞는 거예요?’라고 물었는데 ‘원래 사전에 나온 건 위의 건데, 보통 얘기할 땐 뒤의 걸 많이 써’ 하고 알려줬다면서. 나도 아들과 그런 대화를 하는 날이 빨리 오면 좋겠어.
나는 이번 공연을 본 가족들의 반응이 궁금해요. 아이들이 공연내용은 잘 모르지만 내가 부르는 노래를 다 외우거든요. 다른 작품 할 때는 아내에게 미리 대본 보여주고 내용도 얘기해줬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얘기를 안 해서 아내가 뭐라고 할지 기대돼요. 쫄쫄이 의상 입은 거 보면 무척 놀라겠지?
내 아내는 한국인과 결혼한 일본 친구들과 함께 오겠대. 일본은 남탕에서 여자가 때를 미는데 막이 오르자마자 놀라는 건 아닐까 걱정돼. 아내 친구들 사이에서 욘사마 버금가는 ‘정사마’로 불리는데 쫄쫄이 의상을 입은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점도 쑥스러워.
남탕에 여자라…, 가끔 생활 속에서도 문화차이를 느끼나요?
그다지. 차이를 느낀다 해도 허허허 웃고 말지. 아내가 배려심이 많아. 방금 전 ‘동대문시장에 도착했어요. 예쁜 봄옷이 있는데 조금 비싸네요. 돈 좀 더 찾아도 될까요?’ 하고 묻더라고. ‘그런 건 묻지 않아도 된다’고 말은 하는데, 작은 것 하나하나까지 남편과 의논하려는 마음이 고맙고 귀여워.
그런 게 내조 아닐까요. 제 아내는 내가 어떤 일을 하든 믿어줘요. 사람들이 주도권을 누가 쥐고 있냐고 묻는데, 한쪽이 ‘따라와’ 한다고 다른 한쪽이 무조건 따라가는 건 잘못된 것 같아요. 굳이 한쪽이 주도권을 가져야 한다면 차라리 온종일 집안일하고 아이들과 씨름하는 아내에게 주도권을 주고 싶어.
네 말이 맞아. 가족 중 아프거나 실의에 빠진 사람이 없다는 걸로도 얼마나 다행이야. 앞으로 큰 욕심을 바라기보다 하루하루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텐데(웃음).
연극에서처럼 형이 반드시 입어야하는, 지켜야 하는 ‘빤스’는 뭐예요?
나보다 남을 배려하는 것. 너는?
가족이요. 아내에게 최고의 남편, 아이들에게 최고의 아빠가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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