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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악녀연기’로 존재감 알린 최수린

“15년 무명 설움, 단란한 가정생활” 첫 고백

글 김유림 기자 | 사진 조영철 기자

입력 2009.04.22 14:12:00

KBS 주말드라마 ‘내 사랑 금지옥엽’에서 독한 연기로 화제를 모은 최수린. 리포터로 방송생활을 시작한 그는 데뷔 15년 만에 처음으로 대중의 주목을 받는 데 성공했다. 여섯 살배기 아들이 TV에 나오는 그를 보고 즐거워할 때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한다.
‘악녀연기’로 존재감 알린 최수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최수린(35)이 처음 ‘내 사랑 금지옥엽’에 나왔을 때 시청자의 반응은 이랬다. 딱히 떠오르는 작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침드라마 주인공을 맡은 적도 있지만 연기자로서 그의 존재감은 미미했다. 무려 15년이란 오랜 시간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이번 드라마로 대중의 뇌리에 강한 인상을 남길 수 있었던 건 남다른 근성 덕분이다. 역할의 비중에 상관없이, 심지어 딱 한 장면 나오는 역할이라 해도 언제나 그는 감사한 마음으로 촬영장에 나갔다.
“솔직히 지금까지 참 안 풀렸죠(웃음). 이번 드라마는 지난해 SBS ‘황금신부’에 단역으로 출연했을 때 함께 일했던 작가의 추천으로 출연하게 됐어요. 그때도 딱 두 신 나오는 역할이었는데 감사하게도 저를 잘 보셨나봐요. 이번 드라마는 캐릭터도 마음에 들었고, 무엇보다 주말드라마에 메인으로 합류하는 거라 무척 설레고 기뻤죠. 하지만 초반에는 인지도가 낮은 탓에 의상 협찬사를 구하지 못해 고생을 많이 했어요. 영주는 외모가 화려해야 하기 때문에 무난한 옷은 잘 어울리지 않거든요. 어쩔 수 없이 처음에는 직접 옷을 구입하기도 했어요. 그러다 드라마가 20회에 접어들 때쯤 협찬사가 붙더라고요(웃음).”
극중 전설(김성수)의 전 아내이자 유명 작곡가인 영주는 이혼 전 불륜을 저지른 것도 모자라 전설이 인호(이태란)와 재혼하려 하자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며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다. 물론 드라마 말미에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전설과 인호의 결혼을 돕지만 최수린은 드라마가 방영된 지난 6개월 동안 시청자로부터 호되게 욕을 먹어야 했다. 3월 중순 먼저 촬영을 끝냈다는 그는 “많은 비난의 화살을 받았지만 이번 드라마로 연기에 대한 자신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한창 영주가 악행을 저지를 때는 식당에 가면 아주머니들이 ‘등짝’을 때리면서 구박하셨어요. ‘젊은 놈이 그렇게 좋냐?’ ‘자식을 나 몰라라 하면 벌 받는다는’등, 제가 진짜 영주라도 되는 듯 미워하시더라고요(웃음). 그래도 드라마를 재밌게 봐주시는 덕분이라 생각하니 기분 나쁘기는커녕 오히려 뿌듯했어요.”

‘악녀연기’로 존재감 알린 최수린

연기하고 싶어 오디션마다 세 번, 네 번 쫓아다니며 열정 쏟아
이태란과 방송국에서 머리채를 쥐어잡고 싸우는 장면도 화제를 모았다. 다행히 NG 없이 한 번에 끝냈지만 여러 각도에서 촬영해야 하는 탓에 서너 번 치열한 몸싸움을 벌였다고 한다. 특히 김성수가 손목을 잡고 끌고 나가는 장면에서는 너무 아파 눈물이 나올 정도였다고.
그가 이번 드라마에서 ‘나쁜 여자’를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었던 데는 외형적으로 풍기는 도도함과 말꼬리를 살짝 들어올리는 독특한 말투가 한몫했다. 인터뷰 중간에도 몇 차례 영주의 말투가 들려왔는데, 그는 “일부러 악해 보이려고 애쓰지 않았는데도, 드라마가 전개되면서 나도 모르게 영주 캐릭터에 동화된 것 같다”며 웃었다.
서울예대 방송연예학과를 졸업한 최수린은 지난 94년 SBS 공채 MC 1기로 데뷔했다. 동기로는 조영구·지석진·황수정 등이 있다. 한동안 리포터로 활동한 그는 방송 일이 자신의 적성에 맞지 않다고 생각할 즈음, 드라마 PD로부터 연기제안을 받았다고 한다.



“리포터로 활동할 때를 생각하면…, 정말 창피할 정도로 못했어요(웃음). 생방송 도중 말을 더듬는 건 기본이고, 사람들 앞에만 서면 심장이 두근거렸죠. 그러다 아침드라마에 출연하게 됐는데 비록 단역이었지만 새로운 재미를 찾을 수 있었어요. 사실 그전까지는 연기를 하게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방송연예학과에 진학하긴 했지만 막연하게 방송 일에 종사하겠거니 했지, 탤런트에 특별히 뜻이 있었던 건 아니거든요. 연기를 하기 전에는 어릴 때 꿈을 되살려 미대에 다시 들어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죠(웃음).”

‘악녀연기’로 존재감 알린 최수린

하지만 연기자의 길 또한 만만치 않았다. 영화·드라마 오디션을 숱하게 보러 다녔다는 그는 “매번 돌아오는 건 ‘좌절’뿐이었다”며 그만두고 싶을 때도 많았다고 털어놓았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했던 건 누군가로부터 거절당할 때 느껴지는 모멸감이었다. 그는 “단 몇 분으로 사람을 평가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았고, 그런 면이 연기자라는 직업에 회의를 갖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그는 더욱 오기로 달려들었다고 한다.
“오디션을 보면 한 번만 지원하는 게 아니라 오디션 시작하는 날부터 끝나는 날까지 매일 갔어요. 한번은 영화 오디션이었는데, 연락이 안 와서 답답한 마음에 차를 몰고 지방으로 내려간 적도 있어요. 감독님을 만나 의사를 물어봤더니 ‘미안하지만 다음 기회에 보자’고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다음 날 또 내려갔어요. 데뷔 초부터 ‘나이 들어 보인다’는 게 콤플렉스였는데, 이번에도 그 이유 때문에 거절당했나 싶어서 다음 날 아침 헤어스타일을 완전히 바꾸고 다시 감독님을 뵈러 간 거죠. 하지만 대답은 똑같았어요. 제가 안쓰러웠는지 밥을 사주면서 먹고 가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스물다섯에 결혼, 인공수정으로 어렵게 아들 얻어
연기에 대한 열망은 결혼 후 더욱 강해졌다고 한다. 흔히 그가 미혼일 거라 생각하지만 최수린은 스물다섯,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당시 여자 연기자에게 결혼은 연기 인생의 큰 장애물로 여겨졌지만 그는 “일 때문에 사랑을 놓치고 싶진 않았다”고 한다. 재일교포인 남편은 현재 서울과 제주도, 일본을 오가며 사업을 하고 있다. 제주도에 따로 거처가 마련돼 있기 때문에 일이 없을 때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그가 제주도로 내려가는 날도 많다. 신혼 때는 한동안 제주도에 머물며 남편과 함께 스킨스쿠버를 즐기고, 해안도로를 달리며 낭만을 즐겼다고 한다. 하지만 처음부터 생활권이 서울이었던 그는 벌써 10년째 남편과 주말부부로 지내고 있다.
“사실 남편은 제가 연기하는 걸 그리 반기지 않아요. 얼마 전에는 전화해서 ‘드라마가 그렇게 인기 있어?’ 하고 묻더라고요. 저도 그냥 ‘그런가봐요’ 하고 덤덤한 척 말했죠(웃음). 남편은 저를 굉장히 객관적으로 평가하려고 해요. 신혼 때도 제가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따뜻하게 다독여주기는커녕 ‘당신의 어떤 점이 문제인지 생각해보라’며 냉정하게 말하던 사람이죠. ‘당신은 내 눈에는 매력적이지만 보통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닐 수 있다. 그러니 당신의 스타일만 고집하지 말고 다른 옷도 입어보고, 다른 표정도 지어보라’면서요. 그것 때문에 싸우기도 많이 했어요(웃음).”
평소 남편의 빈자리는 여섯 살배기 아들이 채우고 있다. 아이는 부부가 결혼 5년 만에 얻은 귀한 보물. 한동안 일 욕심에 임신을 미뤘던 탓인지 정작 아이를 원하는 시점에서는 쉽게 임신이 되지 않아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한다. 결국 의학의 힘을 빌려 임신에 성공한 그는 요즘도 하루에 몇 번씩 아이 얼굴을 어루만지며 “우리 아들은 하느님이 주신 귀한 선물이지?” 하고 묻곤 한다.
“남편과 저, 둘 다 건강에 이상은 없는데 임신이 안되더라고요 ‘이러다 영영 아이를 못 낳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어요. 결혼하고 바로 임신을 시도하지 않은 것도 후회되더라고요. 결국 인공수정을 시도했는데, 세 번이나 실패하고 네 번째 성공했어요. 총 네 번밖에 시술할 수 없다고 해서 마지막에는 시험관아기 시술도 함께 시도했죠.”
그는 남편이 있는 제주도에서 아이를 낳은 뒤 1년 만에 KBS 아침드라마 ‘위험한 사랑’으로 복귀했고 2년 뒤 ‘헬로 애기씨’ ‘강남엄마 따라잡기’ 등에 출연했다. 당시 그는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로 호평을 받았는데, 정작 그는 화면에 나오는 자신의 모습을 보기가 무척 거북했다고 한다. 임신 중 불었던 몸무게가 원상복구되지 않았던 것.
“임신 전 일부러 몸무게를 9kg 정도 늘렸는데 아이 낳은 뒤에도 그때 찐 몸무게에서 더 이상 내려가지 않더라고요. 임신해서는 몸무게가 80kg까지 나갔어요. 살이 찌니까 나이도 더 들어 보여서 독한 마음으로 다이어트를 시작했어요. 먹는 걸 최대한 줄이고 걷기와 근력운동을 함께 했죠.”
당시 그는 딱 밥 세 숟가락으로 하루를 버텼다. 한 끼에 밥을 한 숟가락만 먹는 대신 시금치와 김치로 허기를 달랬다고 한다. 그는 같은 방식으로 6개월간 다이어트를 해 10kg 가까이 몸무게를 줄였다.



최수린은 탤런트 유혜리와 친자매 간이다. 두 사람 모두 예명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그는 2001년 이름을 본명 최정일에서 최수린으로 바꿨다. 나이가 열 살 터울인 두 사람은 어려서부터 친구처럼 사이좋게 지냈다고 한다. 자매는 성인이 돼서도 같은 연기자의 길을 걸으며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벽이 돼주고 있다.
“언니한테 연기를 많이 배웠어요. 제가 대본을 받아 가면 항상 언니가 먼저 시범을 보였죠. 그러고 나서는 똑같이 따라해 보라고 해요. 제가 거의 국어책 읽듯이 하면 한숨을 푹 쉬면서 ‘연기를 꼭 해야겠어? 그렇게 하고 싶어?’하면서 야단을 쳤어요(웃음). 그래도 언니 덕분에 연기가 뭔지 조금씩 알게 됐어요.”
지난해 여름부터 ‘내 사랑 금지옥엽’을 위해 열심히 달려온 그는 앞으로 이 여세를 몰아 더욱 바쁘게 활동하고 싶다는 바람을 내비쳤다. 아이에게 신경을 많이 못 써주는 건 미안하지만 그가 연기자로서 좋은 모습 보이는 것 또한 아이를 위한 길이라 믿는다고.
“그동안 정말 많이 쉬었거든요(웃음). 이제는 좀 바빠지면 좋겠어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너무 욕심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번 드라마로 잠깐 주목을 받았다고 해서 제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 건 아니니까요. 어느 순간 다시 무명으로 돌아갈지도 모른다는 걸 항상 염두에 두면서 현실에 최선을 다할 거예요. 대신 어떤 배역이든 재미있게 하고 싶어요. 한 신 나오는 역할도 상관없어요. 어떤 분들은 ‘이제 나이도 있는데 배역을 좀 가려가면서 맡아라’라고 하시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해요. 설령 비슷한 캐릭터만 맡더라도 매번 다른 색깔로 표현하면 되니까요.”

의욕으로 가득 찬 그의 화사한 웃음이 봄날의 상큼함과 닮아 보였다.

여성동아 2009년 4월 5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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