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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Interview

故 김형곤 친형 김형준

삼성 임원 퇴직 후 연극배우 데뷔한

글 이영래 기자 | 사진 지호영 기자

입력 2009.03.23 16:31:00

발성은 목 안에 고여 있었고, 몸짓은 뻣뻣했다. 두 달의 연습으로 애인과 본부인 사이를 오가는 중년남자의 비리고 교활한 감정선을 표출하기엔 아무래도 역부족이다. 그런데 연극이 끝나고 조명이 켜지는 순간 씨익, 쑥스럽게 웃는 그의 모습은 너무 낯익어 소름이 돋는다.
故 김형곤 친형 김형준


지난 1월, 김형준씨(53)는 삼성전자 국내영업사업부 인사담당 상무를 끝으로 25년간의 직장생활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엉뚱하게도 연극배우가 돼 무대에 올랐다.
“회사를 그만둘 때 보통 하는 말이 있죠. 내 청춘을 이 회사에 바쳤는데…. 저는 그런 말을 하고 싶지 않아요. 제가 좋아서 다닌 거지, 누굴 위해 다닌 건 아니니까. 경제적인 두려움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간 좋은 회사 다녀서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83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올해까지 25년. 긴 세월 동안 그가 주되게 해온 업무는 인사였다. 인사에는 직원 교육이나 채용 관련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필요한 인력을 추리고 잉여인력을 줄이는 일 또한 인사업무 중 하나였고, 그 또한 퇴직자를 추려내는 ‘저승사자’ 노릇을 하기도 했다. 퇴직이란 회사 입장에서 보면 언제나 많이 유예해준 것이고, 사원 입장에서 보면 너무 빠른 것이라는 삶의 오의는 일 속에서 그렇게 자연스레 터득돼 그의 일부가 됐다. 그러나 이제 갓 오십, 앞으로 남은 삶이 어떠할지 알 길 없는 생활인으로서 아무런 불안, 아쉬움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는 살풀이 무대에 올랐다.

인생의 전환점 스스로 자축하고파 무대 오를 결심 내
“제가 퇴직한다는 소식을 듣고 대학시절 친구인 허 대표(극단 라이프시어터 허정)에게서 연락이 왔어요. 연극을 한번 해보지 않겠냐고. 뜬금없는 제의라 처음엔 당황했죠. 어찌됐건 오랜 기간 몸담았던 직장에서 퇴직하는 마당이고, 내 인생의 전환점이란 의미에서 나와 지인들에게 뭔가 센세이셔널한 이벤트를 선물해도 좋지 않겠나 생각했습니다.”
대학로 라이프시어터에서 2월 중순까지 공연한 섹시 로맨틱 코미디 ‘수요일의 연인들’에서 그는 주인공 존 역을 맡아 무대에 올랐다. 학창시절 학예회 같은 자리를 통해서도 무대에 서본 적이 없던 그가 초로를 지난 나이에 덥석 주연을 맡다니, 너무 터무니없는 객기를 부린 것이라고 뒤늦게 후회를 했지만, 이미 팸플릿을 찍은 뒤라 포기할 수도 없었다.
사실 그가 무대에 선 것은 처음이라고 하지만 무대가 그에게 낯선 곳은 아니다. 지난 2006년 3월, 향년 49세로 타계한 개그맨 김형곤이 바로 그의 손아래 동생이다.
“저희 집엔 아들밖에 없어요. 모두 4형제인데, 제가 장남이고 형곤이가 둘째였죠. 아버님이 군인 출신이신데 어찌나 엄하셨던지 형곤이가 개그맨이 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어느 날 라디오를 듣는데 형곤이 목소리가 나와요. 제1회 개그 콘테스트에 형곤이가 가명으로 출전을 한 거였죠. 저는 사정은 모르고 신기하다, 신기하다 했는데 진짜 형곤이더라고요. 그해에는 형곤이가 아쉽게 떨어졌고, 2회에 실명으로 나가서 뽑혔죠.”
김형곤이 개그맨이 됐을 때 부모의 반대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훗날 개그계의 스타가 됐을 때는 좋아했지만, 고인의 재기발랄한 입담을 TV를 통해 보면서도 어머니는 “먹고살려고 저렇게 땀을 뻘뻘 흘린다”며 안쓰러워할 뿐이었다고 한다.

남자만 넷, 세 살 터울 김형곤과는 장난꾸러기 동지
고인이 남긴 최고의 대표작이라고 한다면 역시 ‘회장님, 회장님’ 코너. 수고한 임직원에게 공짜로 건강검진을 시켜준다고 생색내면서 ‘건강에 문제가 있으면 잘라버리라’고 지시하는 회장님 김형곤의 모습은 인사통이었던 형 형준씨의 아이디어였다고 한다. 회사라고 하는 곳, 인사의 뒷면에는 항상 그런 아이러니한 속마음이 숨어 있었고 그런 그의 경험담은 김형곤에 의해 코미디로 거듭났던 것.
“우리 형제는 다 개구쟁이였어요. 어렸을 때, 엄한 부모님 때문에 평소에는 집에서 숨도 제대로 못 쉴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부모님이 출타하시면 형제들끼리 놀다가 유리창이 깨져야 멈출 정도로 장난이 심했죠.”
故 김형곤 친형 김형준

문득 유년시절을 회상하던 그는 곧 입을 닫았다. 그는 고인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평소에도 누가 김형곤을 닮았다고 말하면 ‘나는 김형곤 형수하고 결혼한 사람’이라며 농으로 받아 넘겼다고. 그러나 고인의 아들 도훈군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날 인터뷰하러 와서 형곤이 이야기를 더 많이 물어보네요?’ 하면서도 그는 고인이 떠난 뒷일을 굳이 숨기지는 않았다.
“영국으로 다시 갔어요. 아무래도 한국에서 김형곤의 아들로 사는 것보다는 영국에서 그렇게 사는 게 낫겠다 싶어서. 아! 김형곤 아들이란 게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누군가의 그늘이 너무 크면 자기 삶이 없잖아요. 영국에서 자기 삶을 사는 게 제일 좋지 않겠어요?”
부친은 이미 노환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 고인이 가고 난 후 모든 것은 맏형인 그의 몫이 됐다. 거듭된 국회의원 출마와 몇 번의 사업 실패로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던 고인은 타계 직전, 비로소 기반을 잡아가던 상태였고, 대학로에 있는 ‘곤이랑 극장’ 등의 유산을 남겼다.
비록 이혼한 상태였지만 아들 도훈군의 뒷바라지를 해줄 전 부인에게 유산이 가는 것이 옳다는 생각에 극장 등의 유산은 모두 고인의 전 부인에게 등기해줬다고 한다.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앞으로도 계속 오르고 싶어요. 하지만 어디선가 불러준다고 하더라도 코미디는 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이유는 아니고, 나이 먹은 내 체면 지키고 싶은 욕심은 버리지도 못하면서 남을 웃기겠다고 나설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삼성은 임원 관리 프로그램에 의해 퇴직 후에도 2년간은 퇴직 전 월급과 비슷한 수준의 급여를 지급한다. 그러나 그는 이를 거부하고 일을 하는 쪽을 선택했다. 백화점·양판점 등에서 삼성전자 제품을 판매하는 판매직원을 관리, 파견하는 인력파견 전문업체인 윈윈파트너스를 세워 삼성에 인력을 공급하는 일을 하게 된 것.
그러나 기회만 주어진다면 그는 언제라도 다시 무대 위에 오르겠다는 각오다. 비록 반백의 머리로 처음 오른 무대인 터라 아직 모든 게 낯설 뿐이지만, 모두가 힘을 모아 극을 만들어가는 무대의 광기에 이미 그는 취했다고 이야기한다.

여성동아 2009년 3월 5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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