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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웅인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13년 만에 연극무대 나들이

글 김수정 기자 | 사진 지호영 기자

입력 2009.03.23 11:24:00

정웅인 하면 짓궂고 코믹한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실제 그는 과묵하고 진중한 편이다. 연극 ‘민들레 바람 되어’에서는 그의 이런 모습이 고스란히 표현된다.
정웅인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청바지 입고 비니를 눌러쓴 남자의 겨드랑이에는 연극대본이 말려 있다. 공연연습이 막 끝난 후다. 대폿집에 들러 시원한 막걸리로 칼칼해진 목을 축인다. 가슴이 후련해지고 아랫배에 포만감이 밀려온다. 정웅인(39)은 요즘 이렇게 산다.
“13년 만이에요. 설렘과 공포심이 동시에 밀려와요. 공연 도중 대사를 잊으면 어쩌나, 실수하면 어쩌나 하고…. 차 안에서도, 화장실에서도 쪽대본을 들고 다니고 자다가 벌떡 일어나 연습하죠. 야구로 치면 마운드로 걸어 나가는 선발투수 느낌이랄까요. ‘쟤는 얼마나 잘 던질까, 믿고 마운드를 맡겨도 될 놈인가’ 같은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듯해요.”
2월 중순부터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막이 오른 연극 ‘민들레 바람 되어’는 세상을 떠난 아내의 무덤에서 넋두리하는 한 가장의 삶을 그린다. 죽은 아내에게 승진했다고 거짓말하는 모습, 자식 걱정하는 모습, 죽기 전 삶이 고독하다며 하소연하는 모습이 애잔하다. 웃음기 어린 정웅인의 얼굴에도 웃음이 사라진다.
“연극열전2 프로그래머인 (조)재현이 형이 지난해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을 보면서 ‘정웅인에게 저런 진지한 면이 있었나?’ 하고 놀랐대요. 마침 동숭아트센터 대표가 대학 동기라 그 친구를 통해 제게 출연 제의를 했어요. 연극이나 한편 보자는 심산으로 ‘민들레 바람 되어’를 봤는데 아내와 아이들이 오버랩되면서 눈물콧물이 쏟아지더라고요. 공연 뒷풀이 자리까지 따라가 시켜달라고 했어요.”

언제나 믿음 주는 아내, 예쁜 두 딸
그는 “연극 출연을 결심했을 때 아내가 가장 기뻐했다”고 말했다.
“결혼하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돈과 연기 사이에서 갈등하는 일이 많아요. 연금·세금·보험 등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이 꽤 되고 육아비 역시 만만치 않아서 대학로를 자주 기웃거리면서도 도전할 용기가 안 났죠. 그런 제 모습이 마음에 걸렸나봐요. 작품을 결정할 때면 늘 아내는 물론이고 어머니, 동생, 매제 의견까지 묻는데, 이번에는 연극 대본을 보자마자 아내가 ‘오빠, 이건 무조건 해!’ 하더라고요. 무대에 선 모습을 꼭 보고 싶다면서.”
그는 지난 2006년 띠동갑 아내 이지인씨(27)와 결혼해 딸 세윤이(2)·소윤이(1)를 낳았다. 그는 자신을 ‘무뚝뚝하고 부족한 남편’, 아내를 ‘늘 믿음을 주는 여자’라고 표현한다. 살림솜씨 좋고 시어머니 잘 모시고 힘든 일에도 투정부리지 않는 아내 덕분에 결혼 후 일이 술술 풀리는 것 같다고. 띠동갑이지만 세대 차이를 못 느낀다는 그는 “서로에게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면 부부싸움 할 일이 없다”고 말했다.
“마음 한구석 아내에게 미안함을 갖고 있어요. 저와 아이들 때문에 젊음을 포기한 것 같거든요. 요즘 친정에서 산후조리를 하고 있는데, 떨어져 있으니 애틋한 마음이 더 커요. 의상숍 차리는 게 아내의 꿈인데,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아내가 다시 멋지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할 겁니다.”
그는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아빠다. 친구들과 술 마시다가도 문득 딸 자는 모습을 보고 싶으면 집으로 달려가고, 쉬는 날이면 아무리 피곤해도 아이를 데리고 가까운 곳으로 놀러간다. 세윤이는 할리우드 배우 톰 크루즈 딸인 ‘수리’에 빗대 ‘한국의 수리’라고 불릴 정도로 네티즌들의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는데, 그는 “예쁜 외모보다 먹성 좋고 별 탈 없이 자라주는 것이 고맙다”고 말한다. 요즘 한창 말을 배우고 있는 세윤이가 ‘아포(아빠)~아’ 하면서 자신을 마중 나올 때가 가장 기쁘다고.
“첫째는 저를 닮아 끼가 많아요. 마이크 잡고 흥얼거리는 걸 좋아하는데 자기 기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앉았다, 일어났다, 뛰다를 반복하는 걸 보면 ‘피는 못 속이는구나’ 싶죠. 연예인은 안 시킬 거예요. 자신이 가진 능력을 인정받지 못할 때의 박탈감을 딸에게 느끼게 하고 싶지 않거든요. 한달 된 둘째는 8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닮았는데, 주변에서 귀인이라고 부를 정도로 이목구비가 뚜렷해요. 손을 타서 바닥에 내려놓으면 자지러지는 게 문제지만…(웃음).”

정웅인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그가 가장 중요시 여기는 건 인성교육. 잘못된 행동을 하면 ‘맴매 갖고 와!’ 하면서 아이 눈물을 쏙 빼놓는다고. “유학 보내달라고 할까봐 마음 졸이고 있다. 영어 좀 한답시고 ‘에이요, 맨~’ 하면서 건방지게 굴면 어쩌냐”는 다소 이른 걱정과 “아이가 빨리 자라 함께 폭탄주를 마시면 좋겠다”는 이른 그의 바람에 웃음이 났다. 정웅인 부부는 둘 정도 더 낳을 계획이라고 한다.
“이 작품을 하면서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돼야겠다고 스스로에게 약속해요. 극중 주인공처럼 아내가 죽은 뒤 후회하지 말고 그때그때 아내에게 소중하다, 고맙다고 얘기해야겠다 싶고요. 나중에 아이들과 이 연극을 함께 보면 좋겠어요. 배우로서 존경받는 아빠로 기억되고 싶어요.”

코믹 전문배우라는 짐 벗고 다양한 연기 선보이고 싶어
정웅인은 “코미디 감각을 갖고 태어난 건 배우로서 고마운 일이지만 시트콤 ‘세 친구’, 영화 ‘두사부일체’ 시리즈에 출연하면서 코믹 배우 이미지로만 각인된 것 같아 허탈하다”고 털어놓았다. 과거 연극배우로 활동할 때만 해도 그는 성격파 배우로 통했다. 객석이 텅 비어도, 넉 달 동안 총 60만원을 벌어도 무대에 서는 게 행복했다. 하지만 호떡·순대 팔아 생계를 잇는 부모님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어머니 전대에서 꺼낸 돈에는 늘 호떡기름이 묻어 있었어요. ‘친구들에게 얻어먹지 말고 너도 좀 사’ 하고 그 돈을 주시면서도 부모님은 한 번도 제 일을 반대하시지 않았어요. 마음이 무거웠죠.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대학 동기인 장항준 감독의 소개로 지난 97년 브라운관에 데뷔한 후 대학로에 발길을 끊었어요. 이후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감 잡았어~’를 하면서 사람들을 웃겼고, 코믹 연기로 돈을 벌었죠. 그런 아들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아버지는 ‘너는 방송보다 무대에서 더 멋져’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어요.”
그는 과거 연극무대에서 함께 고생했던 동료배우들이 훗날 각광받는 것을 보면서 조바심이 났고 점차 연기에 대한 고민과 반성이 커졌다고 한다. 코미디를 하지 않겠다고 결심, 몇몇 작품에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지만 성과가 좋지 않았다고. 돈 때문에 다시 내키지 않는 작품을 선택해야 할 땐 곤혹스러웠다.
“예전에 오지명 선생님이 ‘너 더 이상 코믹 연기 하면 안 돼. 나도 코믹 이미지 벗고 싶은데 마음처럼 안 되더라’라고 충고하셨을 때 흘려들은 게 후회돼요. 누군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경우 언제로 갈 거냐’고 묻는다면 주저하지 않고 ‘‘세 친구’ 전으로 돌아가겠다’고 대답할 거예요. ‘세 친구’는 제게 집과 돈을 선물했지만 동시에 무거운 짐을 안겨 줬으니까요.”
그는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로 코믹 이미지를 완전히 상쇄한 건 아니지만 다른 연기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인 것 같아 만족스럽다”며 “코미디 장르를 하더라도 지금까지 보여준 코믹 연기 이상을 보일 자신이 없다면 더 이상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극이 손톱이라면 영화·드라마는 손톱을 치장하는 매니큐어라고 생각해요. 한동안 손톱 관리하는 데 치중했다면 지금은 매니큐어를 지우고 손톱 숨을 쉬게 할 때고요. 얼마 전 연극 출연료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나, 정웅인이야’ 하려는데 나문희 선생님도 그 정도 받는다는 말에 아무 말 못했어요(웃음). 영화와 드라마 할 때보다 허리띠 졸라매고 살아야겠지만 오랜만에 어머니를 공연장에 모시고 올 생각을 하면 생활비 걱정이 싹 사라집니다. 눈물 흘리면서 박수치실 모습만 상상해도 흐뭇해요.”
극중에서 30대부터 노인까지 폭넓은 연기를 펼치고 있는 그는 자신의 미래 모습을 상상하곤 한다. 롤모델은 신구, 정동환. 70이 넘어서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배역이 있다면 활동할 생각이라고. 유명 영화제·연극제에서 연기상을 받는 것도 목표 중 하나다.
“배가 나와도, 대머리가 돼도 멋진 배우가 되고 싶어요. 야구선수는 폐타이어를 치면서 연습하고, 축구선수는 운동장에서 뛰고 드리블하면 실력이 늘 텐데 배우는 어떻게 해야 실력이 늘까 고민이에요. 앞으로는 연출자와 기획자를 졸라 다양한 캐릭터를 맡게 해달라고 적극적으로 매달리고 초심을 잃지 않도록 틈틈이 연극무대에 오를 생각입니다.”

여성동아 2009년 3월 5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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