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준씨(30)와 김미혜씨(27)는 결혼한 지 갓 6개월 된 신혼부부다. 인천시 갈산동에 꾸민 둘만의 보금자리에서 아내는 아직 서툰 음식 솜씨지만 정성껏 밥상을 차리고 남편은 매일 아침 집에서 15분 거리에 있는 일터로 나선다. 누가 봐도 평범하고 흔한 신혼집 풍경. 아내 미혜씨가 젊디젊은 나이에 날벼락 같은 유방암 진단을 받지만 않았다면 말이다.
지난해 5월, 두 사람은 7년 연애 끝에 서로를 평생의 반려자로 맞기로 약속했다. 그런데 결혼 준비에 한창이던 8월 중순, 미혜씨 가슴에서 작은 덩어리가 잡혔다.
“정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조그맣게 튀어나온 게 만져지기에 그냥 피지 덩어리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가까운 병원 진단방사선과에 가서 가슴 사진을 찍었다. 병원에서는 물혹같은 게 보이니 종합병원에 가서 정확한 진단을 받는 게 좋겠다고 했다. 종합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한 결과 겨드랑이에서도 혹이 하나 더 발견됐다. 조직검사 결과 악성이었다. 병원에서는 바로 수술을 하자고 했지만 두 사람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미혜씨의 어머니가 2년 전 유방암 수술을 한 터라 충격은 더 컸다.
“어머니는 염증이 퍼지고 통증이 있었는데 저는 전혀 증상이 달라서 생각도 못했던 거죠.”
미혜씨 어머니는 열이 나고 아픈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초기에 암을 발견, 수술을 했다. 하지만 아무 증상이 없던 미혜씨는 조직검사 결과 이미 3기였고 임파선에 전이까지 된 상태였다. 미혜씨는 검사 며칠 후 수술을 받았다.
미혜씨는 결혼 예정일을 2주 앞두고 9월 초 병원에서 퇴원했다. 양가 식구들은 일단 식을 미루자고 했다. 하지만 명준씨의 생각은 달랐다.
“결혼식을 올려야 남편 자격으로 병원에 같이 다니고 간병을 할 수 있잖아요. 미혜씨도 남편이 곁에서 돌봐주면 더 든든할 거고 저도 떳떳할 것 같았어요. 남자친구는 언제든 떠날 수 있지만 남편은 옆 자리를 평생 지켜주겠다는 약속이니까요. 그리고 그때 미혜씨 머리카락이 정말 길고 예뻤어요. 항암 치료를 받으면 머리카락이 다 빠진다는데 아깝지 않느냐고, 그전에 웨딩드레스를 입는 게 좋겠다고 우겼어요.”
명준씨는 미혜씨가 암 판정을 받자 유방암 환자 가족들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서 정보를 얻었다. “애인이 암 수술을 받았는데 항암치료 받기 전에 결혼식을 해도 좋을까요”라는 사연을 카페에 올리자 많은 회원이 “괜찮으니 걱정 말고 결혼식을 올리라”는 격려를 해줬다고.
“결혼식 날 주례 선생님께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이니 서로의 건강을 잘 보살피고 지키라’는 말을 하셨어요. 그 말이 갑자기 가슴을 아프게 찌르면서 눈물이 확 쏟아지더라고요.”
주례사를 들으며 미혜씨는 마음속 깊은 곳에 애써 눌러놓았던, 앞으로 맞닥뜨려야 할 암과의 싸움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이 복받쳐 올라왔다. 신부와 가족들, 친구들이 모두 울어 눈물 범벅이 된 결혼식장에서 신랑은 신부에게 노래를 불러줬다. 나의 삶이 끝나는 날까지 너를 지켜주겠다고, 너를 사랑한다고.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게 이렇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될 줄 몰랐어요”
미혜씨는 결혼식이 끝나자마자 신혼여행을 떠나는 대신 항암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총 여덟 번의 항암치료를 받고 그 후에는 한 달 동안 매일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10월1일 첫 항암치료를 하고 2주일 만에 걱정했던 대로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지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줍는 게 일이었어요. 처음에는 머리 빠지는 게 눈에 보이니까 속상한 걸 이루 말할 수가 없었어요. 그나마 덜 빠지게 하겠다고 머리도 안 감고 버텼죠.”
명준씨는 아내가 가을 낙엽처럼 우수수 떨어져 날리는 머리카락을 바라보며 우울해하는 것이 정신건강에 영 안 좋을 것 같았다. 차라리 머리를 말끔하게 밀어버리고 가발을 쓰자고 설득해 직접 아내의 머리를 밀어줬다. 가발을 맞추러 간 날, 미혜씨는 암 진단을 받았던 날보다 더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내가 정말 아픈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슬픔을 가눌 길이 없었다고.
김명준 김미혜 부부는 “암과의 싸움은 지금부터”라며 의지를 다졌다.
미혜씨는 4차 항암치료 후 중간 검사를 받았다. 여기서 특이사항이 없으면 예정대로 항암치료를 계속 진행하는데 다행히 결과가 좋게 나와 5차 항암치료를 받았다. 그런데 5차부터는 치료 강도가 높아져 미혜씨는 결국 응급실에 3일간 입원해야 했다. 빈혈과 어지러움, 피로감과 안구건조증이 겹치는 부작용으로 몸은 고달프고 혹시 재발할지 모른다는 불안함으로 마음도 지쳐갔다.
“수술은 항암치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래도 견딜만 한데 치료가 계속될 수록 체력이 떨어지니까 무척 힘드네요.”
미혜씨는 두렵고 앞날이 막막해질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떠올린다고 한다.
“내가 남편을 참 잘 만났구나. 이렇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난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생각해요. 그래서 정말 행복합니다.”
그는 “지금 와 돌이켜보면 그 경황없는 와중에 결혼식을 올린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그래서 남편이 곁에 있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고 고마운지 모른다. 사랑하는 사람의 위로가 이렇게 큰 위안과 용기가 되는지 건강할 때는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이 부부는 암과의 싸움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며 의지를 다졌다. 암은 수술하고 치료했다고 완치되는 것이 아니라 평생 관리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남들처럼 행복하게 미래 계획을 세우고 싶을 신혼인데, 젊은 새댁답게 멋도 부리고 일도 하며 신나게 살고 싶을 나이인데 그동안 너무 울 일이 많았다. 하지만 고통과 슬픔은 그들의 사랑을 더욱 강하게 단련시켰고 가족의 소중한 의미를 가르쳐줬다. 사랑하는 사람의 웃음이 있다면 세상 무엇도 이길 수 있다는 것, 이 시련이 아니었다면 깨닫지 못했을 귀한 가르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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