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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나 강수진 인생 고백

“낯선 이국 땅에서 좌절감 느끼고 눈물 흘리던 소녀가 세계적 무용수 되기까지…”

글·정혜연 기자 / 사진·성종윤‘프리랜서’, 동아일보 사진DB파트, 크레디아 제공

입력 2008.12.22 15:22:00

발레리나 강수진은 아름다운 얼굴보다 못생긴 발로 더 유명하다. 울퉁불퉁하고 상처투성이인 그의 발은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이에게 주어진 훈장 같다. 그가 뼈를 깎는 듯한 고통을 견뎌낸 건 발레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강수진이 들려준 성공 뒷얘기 & 터키 출신 남편과의 결혼생활.
발레리나 강수진 인생 고백

훤칠한 키, 가느다란 팔다리가 눈에 띄는 동양인 발레리나가 수많은 금발의 무용수를 제치고 좌중을 압도하는 연기를 선보였다.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수석무용수 강수진(41). 지난 11월17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불혹을 넘긴 나이의 그는 호소력 짙은 몸짓과 표정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에서 10대 줄리엣을 맡아 훌륭하게 재현해 냈다.
무대에 오르기 이틀 전 만난 그는 “이번 공연은 나에게 남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86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입단한 후 7년 만에 처음으로 주연을 맡은 작품이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이었다는 것. 데뷔 무대에서 스무 번이나 커튼콜을 받을 정도로 그는 실력을 인정받았다. 그는 “당시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강수진이 데뷔할 때부터 곁에서 그를 지켜본 슈투트가르트의 예술감독 리드 앤더슨은 “수진은 데뷔 때보다 지금이 더 아름다운 발레리나”라며 “시간이 흐를수록 빛이 나는 무용수”라고 평가했다.

“늦게 시작한 발레, 최고가 되기 위해선 연습밖에 길이 없었어요”
강수진은 고전무용을 하다 선화예중 1학년 때 발레로 전공을 바꿨다. 초등학교 저학년 무렵 발레에 입문하는 다른 친구들에 비해 시작이 늦은 편이었다. 안으로 움츠리는 동작이 많던 고전무용에 익숙해진 몸을 밖으로 뻗어야 하는 동작이 대부분인 발레에 맞게 바꾸는 것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발레리나로서 최상의 신체조건과 감성을 지닌 그는 자신이 부족한 만큼 노력하자 무섭게 실력이 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선화예고 1학년 때 학교를 방문했던 모나코왕립발레학교 교장의 눈에 띄어 장학금을 받고 모나코로 유학을 떠났다.
발레리나 강수진 인생 고백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오른 발레리나 강수진의 발.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발레를 하러 외국으로 떠난다는 사실에 들떴었죠. 그런데 유학 간 첫날 등교하자마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모두들 저보다 월등히 나은 실력을 갖고 있었거든요. 말도 통하지 않는 이국 땅에서 혼자 살아가며 그들과 경쟁할 생각을 하니 앞이 캄캄하더라고요. 다 그만두고 싶었어요.”
일주일 후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하기 위해 교장실 문을 두드렸을 때 교장은 울먹이는 그를 아무 말 없이 안아주었다고 한다. 교장의 따뜻한 위로는 외로움을 견디는 힘이 됐다. 그 뒤로 피나는 연습이 시작됐다.
“기숙사 수위 아저씨가 잠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몰래 연습실로 가 밤을 새우며 연습했어요. 밤에는 전깃불도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에 인근 왕궁을 밝히는 조명을 이용했죠. 그 무렵 잠을 잔 기억이 거의 없어요.”
강수진의 발은 참 못생겼다. 무대 바닥과 닿은 발등 부분에는 관절이 생겨 울퉁불퉁하고 상처투성이다. 그는 발이 까지면 생고기를 잘라 발에 덧댄 뒤 토슈즈를 신고 춤을 췄다. 한번은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던 중 생고기의 핏물이 토슈즈 밖으로 새 나와 놀란 적도 있다고. 이런 노력 끝에 그는 왕립발레학교 졸업을 앞두고 스위스 로잔발레콩쿠르에 나가 동양인 최초이자 최연소로 우승,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학교를 졸업하던 해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독일 슈투트가르트발레단에 입단, 새로운 발레인생을 시작했다. 그의 나이 열아홉이었다.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은 세계 27개국에서 최고라고 인정받은 무용수들이 모인 곳이에요. 하나의 작은 세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입단 후 그는 한 시즌에 토슈즈 2백 켤레를 바꿔야 할 정도로 연습을 많이 했다. 그리고 드디어 93년 ‘로미오와 줄리엣’의 주인공 줄리엣을 맡았다. 이후 97년에는 수석발레리나로 지명됐고, 99년에는 ‘카멜리아의 여인’으로 무용계의 아카데미 시상식이라 불리는 ‘브누아 드 라 당스’에서 최우수 여성무용수상을 받아 또 한번 세계를 놀라게 했다.

발레리나 강수진 인생 고백

지난 11월, 강수진은 혼신의 힘을 다해 한국에서의 마지막 줄리엣을 선보였다.


부상으로 심한 좌절 겪을 때 곁에 있어준 남편
탄탄대로를 걷던 그는 상을 받던 해 스포트라이트와 동시에 아픔도 겪었다. 다리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은 것. 그때 그는 “난생처음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고 연습을 중단했다”고 한다.
“‘지젤’을 준비하는데 왼쪽 정강이 부분이 아파서 걸을 수가 없었어요. 병원을 찾았더니 뼈에 금이 갔으니 붙을 때까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하더군요. 하루도 연습을 쉰 날이 없던 제겐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어요.”
5년 전부터 통증이 있긴 했지만 무용수의 다리가 아픈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부상으로 인한 고통보다 활발하게 활동해야 할 나이에 위기가 찾아온 것이 원망스러웠다고 한다.
무대를 떠나 있는 동안 행복하지 않았다는 그는 재활치료를 거쳐 2001년, 복귀에 성공했다. ‘로미오와 줄리엣’ ‘말괄량이 길들이기’ 등의 주연을 맡아 화려하게 무대를 장식했던 것. 공연을 마친 뒤 그는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고 한다.
“부상에 대한 충격이 컸나봐요. 공연을 잘 치르고 나서도 몸이 굳어 제대로 춤을 출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남더라고요. 그때 제가 마음을 다잡을 수 있도록 곁에서 지켜준 사람이 바로 지금의 남편이에요.”
그의 남편 툰치 소크멘씨(48)는 터키 출신으로 슈투트가르트발레단의 무용수 중 한 명이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2002년 결혼식 없이 혼인신고만 하고 부부가 됐다. 당시 그의 연애 소식을 듣지 못했던 국내 팬들은 갑작스러운 결혼 발표에 깜짝 놀랐다.
“남편과는 결혼 전 친구로 10년 이상 가까이 지냈어요. 부상을 입은 후 제 곁을 떠나지 않고 힘이 돼준 그에게 점점 빠지게 됐죠. 남편 말로는 그때까지 제가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않아 속을 많이 태웠대요(웃음).”
남편은 현역 무용수 때 그와 호흡을 맞춰 로미오를 연기하기도 했고, 줄리엣의 사촌오빠인 티볼트 역으로 한 무대에 서기도 했다고 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남편은 “때로는 로미오처럼 로맨틱하기도 하고, 때로는 티볼트처럼 불같은 사람”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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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은 “줄리엣처럼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바칠 수 있다”고 말했다. 오른쪽은 남편 툰치 소크멘씨.


현재 남편은 은퇴한 뒤 그의 매니저로 활동하고 있는데 무용수 출신인데다 그의 육체적·정신적 고민을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는 집에 들어가면 남편과 발레 이야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고. 둘이 오붓이 소파에 걸터앉아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가장 즐겁다고 한다.
“전 사실 감정적인 편이라서 웃음도 많고 눈물도 많아요. 남편과 있으면 항상 웃게 되고 울 것 같은 날에도 미소를 짓게 되죠. 매일같이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남편이 있는데 어떻게 웃지 않을 수 있겠어요?(웃음) 그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에요.”

“아이 갖기 위해 노력했지만 뜻대로 안돼 마음 편하게 갖기로 했어요”
강수진은 2002년 슈투트가르트발레단 종신회원이 됐고 지난해에는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정부로부터 ‘캄머탠처린(Kammertanzerin)’으로 선정됐다. ‘캄머탠처린’은 ‘궁중무용가’를 뜻하는 것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 양국 정부가 세계문화예술 발전에 헌신한 최고 무용인에게 부여하는 일종의 장인 지정 제도. 해마다 대상자를 물색하되 적임자가 있을 때만 시상하는데 수상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예술단체를 선정해 그 단체에서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고, 범죄행위에 연루될 경우 면책특권까지 받는다. 지금까지 선정된 이는 강수진을 포함해 모두 4명. 무용가로서는 최고의 영예로, 그의 수상 소식에 누구보다 기뻐한 이는 그의 부모였다고 한다. 강수진은 부모 이야기가 나오자 눈시울을 붉혔다.
“열다섯에 유학을 간 뒤 부모님과 함께 제대로 시간을 보낸 적이 없어요. 발레에 빠져 살다 보니 그렇게 됐죠. 모나코에 있을 때는 일주일에 한 번 통화를 하면서 전화기를 붙잡고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나요. 독일로 옮겨가게 됐을 때도 제 생활에 바빠 부모님을 제대로 챙겨드리지 못했기 때문에 늘 미안한 마음뿐이에요.”
그에게 자신을 닮은 아이를 낳고 싶은 생각이 없냐고 묻자 “지금 충분히 행복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세상에 노력해도 안 되는 일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결혼하고 나서 남편과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거든요. 나중에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 힘들더라고요. 남편이 힘들어하는 제 모습을 보더니 ‘편하게 생각하자’고 말해줘 부담감을 털어냈죠. 2세는 언젠가 때가 되면 생길 것 같아요. 지금은 강아지 ‘킹콩’과 고양이 ‘캔디’를 자식처럼 생각하고 살기 때문에 행복해요.”
마흔 넘어서도 여전히 아름다운 몸짓으로 시선을 끌어당기는 그는 요즘 젊을 때보다 표현력이 좋아진 것을 느낀다고 한다. 하지만 자신도 언젠가 은퇴를 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후배 양성에 힘쓰게 될 것 같다고.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모르지만 언젠가 저도 무대에서 내려올 날이 있겠죠. 그때가 되면 독일에서든, 한국에서든 작은 스튜디오를 열어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아직 확신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때가 되면 자연스레 진심으로 원하는 쪽을 선택할 것 같아요.”

여성동아 2008년 12월 54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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